충무로 ‘브레송갤러리‘에서 전시한 ’사람이다‘전에 반가운 분이 찾아 오셨더라.


‘포토 트래블 인’의 노은향씨 였는데, 쪽방촌 사람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내의 스물 한 벌과 양말 네 박스를 가져오셨다.

일전에 빈민들을 돕고 싶다는 전화는 받았으나, 전시장 오는 김에 직접 가져 오신 것이다.


전시가 끝난 후, 동자동으로 옮겨 놓았으나 하루라도 빨리 전해주고 싶었다, 

방을 차지한 짐도 짐이지만, 추위에 떠는 주민들을 생각해서다.
‘서울역 쪽방촌상담소’나 ‘동자동 사랑방’같은 단체에 넘겨 줄 수도 있었으나 많은 량이 아닌데다,

사이즈가 대개 커서 체형에 맞는 분들을 찾아, 직접 전해 주고 싶어서다.






'홈리스추모제'가 열린 지난 21일, 배낭에 몇 개 들어가지 않아 두 차례나 짐을 옮겼으나, 약간은 조심스러웠다.

누군 주고, 누군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체형이 맞는 분들을 불러내어 전달했는데, 다들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이제 남아 있는 여섯벌은 외부 출입을 잘 하지 않고, 은둔하는 분들을 찾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을에 뜻밖의 잔치가 열린 것이다.

동자동에 사는 다섯 쌍의 합동결혼식이 지난 25일 오후4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있었다.

다들 노숙에서 탈출하여 함께 살고 있으나, 여지 것 결혼식을 못 올린 늙은 부부들이다.

박소영 신부는 지난 번 전해주었지만, 내의가 모자라 세 쌍은 한 벌씩 밖에 전해주지 못했다.

대신 신혼여행 같다오면, 멋진 결혼사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들 얼굴은 모르지만, 노은향씨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브레송갤러리’의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마지막 전시를 잘 마쳤습니다.
‘사람이다’전은 갑작스레 치루 게 된 전시라, 솔직히 보여드리기 부끄러운 전시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책한 계기는 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사람답게 찍어보고 싶습니다.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기획전 자체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지만,  많은 사진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지역민들이나 친구 위주로 전시회를 열었기에 사진판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페북을 알고부터 달라졌습니다. 몰라도 될 것을 알아 열 받기도 하지만,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정치판은 물론 사진판도 예나 지금이나 개판이었습니다.

특히 ‘최민식사진상’ 사건에 뚜껑 열렸습니다. 결국 모든 게 도루묵 되었지만, 그런 상은 없는 것만 못합니다.

저승에 계신 선생님께서는 시원섭섭하게 여길지 모르나 섭섭해 마십시오.

돈보다 선생의 정신이 제대로 이어지는 훌륭한 사진상이 분명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치러 진 ‘사진인을 찾아서’란 기획전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사진으로 갑질하는 시대도 끝내야 합니다.
좋은 사진가들을 만나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삼천포로 빠졌네요.

 

이 전시를 어렵게 추진한 김남진관장은 물론이고, 멀리 부산에서 오르내리며 애쓰신 이광수교주님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과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아, 이 전시를 준비한 정영신씨도 애 썼습니다.

손해 보지 않고, 병원비나마 조금 보탤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눈빛출판사’에서 책이 출간되는 삼월경에 열 두명의 사진가 전체를 아우르는 전시가 있다니,

그 때 이 기획전의 의미도 분명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진전을 알리는 엽서는 물론, 개인적 안내가 전혀 없이 폐북에만 알렸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

SNS 시대를 실감했습니다.

 

오픈 다음 날부터 들린 분으로는 정복수, 강 민, 김승환, 문성식, 한금선, 이치환, 정중근, 장경호, 장순향, 김진호, 엄상빈, 양시영, 임경일, 노연덕, 정은하, 이지숙, 유용예, 주용성, 장진영, 윤성광, 윤가현, 석현혜, 이민주, 이기명, 이경자. 김주영, 박희철, 이은숙, 이인철, 최 열, 송주원, 권은경, 모종현, 신락선, 손은영, 고경대, 조수빈, 박찬원, 정병수, 조병철, 윤철규, 오세인, 이병진, 구자호, 김문호, 김승현, 방종모, 임종두, 이민, 이명재, 이수철, 김광수, 김주혁, 정길채, 김태형, 박찬호, 신현림, 고은경, 조남수, 이상설, 김상배, 류연복, 임금희, 하재은, 조임환, 안해룡, 한만인, 이승준, 조충식, 오현경, 노은향, 이용철, 강필선, 이규철, 강재준, 조성균, 정동용, 유경희, 박태정, 곽대원, 전활철, 정재안, 박세라, 서정길, 이관우, 홍은경, 조건숙, 김선영, 장재순, 이희인, 유병용, 이주용, 김상현, 김명성, 마동욱, 고 헌, 류상열, 김대현, 박 건, 정정엽, 전상덕, Pere와 Caleigh, 이창수, 윤명희, 최근모씨 등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네요.

 

전시장을 오가며 찍은 사진들을 올리오니, 그 날을 추억하세요.
관람한 모든 분을 찍었어야 하는데, 빠진 분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다들 고마웠습니다. 특히 사진을 구입해 준 여러분들, 잊지 않겠습니다.

사진,글 / 조문호

 

 

 



자신의 삶보다 찍고자 하는 대상의 삶속으로 들어가 ...20일까지 갤러리 브레송 

 

 

조문호의 ‘사람이다’ 전이 오는 2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리고 있다.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열두 번째 마지막 작가로 열린 조문호의 ‘사람이다’기획전은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이 땅의 숨겨진 고수를 찾는 놀이’였다.

 

 

 
▲ 사진가 조문호

1년 동안 김남진(갤러리 브레송) 관장의 기획아래 사진비평가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 교수가 작가론을 쓰고, 결과물을 눈빛출판사에서 펴내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1월, 고정남의 ‘불친절한 사진?’를 시작으로 최영진의 ‘있는 그대로 그렇게, 그 모태를 재현하다’, 이영욱의 ‘사진으로 사진에 대한 신화를 깨다’, 김보섭의 ‘인물과 오브제로 기록하는 감성적 민족지, 이재갑의 '아픈 역사를 이면과 기억으로 엮는 서사시’, 제주도에서 국화빵 CEO로 나선 권철의 ‘독대(獨對), 문진우의 ’당신이 보지 못했던 부산의 모든 것, 신동필의 ‘부르지 못한 노래’, 이수철의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레퀴엠, 강정효의 ’제주의 풍경, 민속 그리고 역사‘, 김문호의 ’사진 문법‘ 에 대한 도전, 마지막으로 조문호의 ’사람이다‘로 대미를 장식했다.

 

‘사진인을 찾아서’는 사진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전시란 생각이 든다. 20년 전에 사진 유학파들이 만든 ‘한국사진 수평전’이 한국에 등장해, 만드는 사진이 한 때 유행했었다. 사진이 사진논리에 묻혀가는 것을 경계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많은 사진인들이 서양의 사조에 골몰하고 있을 때, 우리사진은 제대로 숨도 못 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진인을 찿아서’ 프로젝트는 한국 사진사를 다시 쓰는 의미 있는 기획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열린 조문호의 사진 세계를 조명하는 사진들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초창기 사진에서부터, ‘87 민주항쟁’, ‘전농동 588번지’, ‘인사동 사람들’, ‘장터 사람들’과 현재 찍고 있는 ‘동자동 사람들’ 에 이르기까지 한 주제에 10여점씩 묶어 선보이고 있다.

 

 

두메산골 사람들

 산이나 불교상징 이미지 등 생업과 관련된 사진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일관되었다. 그 사진들은 지나치며 찍은 것이 아니라 찍고자 하는 대상과 함께 살며 찍은 사진이다. 한 때는 인사동 예술가들을 찍기 위해 인사동의 허름한 건물 옥탑 방을 얻어 살았고, 성노동자들을 찍기 위해 윤락가로 들어갔으며, 두메산골 사람들을 찍으려 정선 굴암리로 이주하기도 했다. 그는 ‘그들의 삶을 체험하지 않고는 제대로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순간적 찰나보다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전농동 588번지

한 때는 ‘동강’ 탐사에 참여하다 동강 주변에 사는 산골 사람들을 찍기도 했다. 당시는 동강 댐 논란으로 동강의 자연생태가 사회적 이슈였으나, 그보다는 그 곳에서 평생 살아 온 두메산골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87민주항쟁 사진들도 그 현장에 있는 사람에 집중되어 있다. 방독면을 쓴 청소부아저씨, 최루가스를 못 견뎌 종이로 코를 막은 수녀님, 십자가를 들고 눈물을 흘리는 박종철 열사 어머니 모습 등 슬프면서도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7 민주항쟁

  그의 사진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쳐다 본 입상들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눈동자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고자 했던 것이다. 애잔한 슬픔과 그리움을 머금은 사진의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감이 짙게 깔려있다. 그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진가다. 또한 사진의 생명력은 널리 공유되고 소통되는데 쓰여야 한다고 믿는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다.

 

인사동 사람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널리 하는 내러티브 만들기 같은 것을 그리 중요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 원경도 잡고, 중경도 잡고 근경도 잡으면서 중간 중간에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오브제 같은 것도 집어넣는 것이 대개들 하는 방식인데 그는 그런 방식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조문호 작가론을 쓴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인물 사진(portrait)을 주로 찍는 것은 사진 찍는 일을 실존적으로 행위 하는 결과다.  -중략-

 

 

노숙인

오로지 꽂히는 것은 인물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극(劇)이 아니고 사실(事實)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도리깨질을 하고 있으면 그냥 그 도리깨질 하는 그 자리를 찍어 보여주면 될 일이다. 화전민이 밭을 태우면 그냥 그 불 탄 밭에서 그를 찍을 뿐이다. 방도 부엌도 마루도 모두 있는 그대로다.

   
▲ 2013 장터 사람들

  그곳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 모습만 보여주면 되지, 굳이 사진가가 어떤 이야기를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 더 보태거나 뺄 필요도 없고, 순서를 짤 필요도 없다. 기록자로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해서이기도 하고, 사진가의 존재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그들 개개를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존중하며 찍어 온 대상들은 하나같이 권력과 재력에 밀려 난 서민들이다. 자신의 몸을 파는 성노동자, 첩첩산골에 사는 농민들, 이 장 저 장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인사동의 가난한 예술가들, 동자동 빈민들 등 모두가 사회적 약자뿐이다.

 

   
▲ 2016 동자동 사람들

일부러 사회적 약자들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더 순수하고 인정이 많았다고 한다. 이제 칠순의 나이에 동자동 쪽방 촌으로 들어가 빈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에 대한 그의 집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자신의 삶보다 찍고자하는 대상의 삶이 더 우선인 것 같다.

  “나의 사진은 고고한 예술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회의 한 기록으로 충실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족하면 그만이다. 이 약자들의 작은 기록도 보석처럼 빛나는 세월이 분명 올 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12월12일 / 정영신기자

 

 

 

두메산골 사람들 / 정선, 최돈연 2003

 

 

 

2016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인을 찿아서 12- 조문호論

 

 

'사람이다' 조문호 사진전 

 

전시일시 : 2016년12월10일(토) -12월20일

전시장소 : 갤러리 브레송 (02-2269-2613)

초대일시 : 2016년 12월 10일 오후5시

 

 

  

 

조문호

: 人本

 

이광수 / 사진비평가, 부산외대교수

 

사진가 조문호는 올해 칠순이니 얼추 잡았을 때 인생 40 여년 가까이를 사진판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굴지의 사진 저널의 편집장이나 심사위원 등 웬만한 직함도 몇 가져보기도 했고, 위로는 사진계 1세대와 아래로는 사진계 2 세대에 낀 세대의 사진가이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데다, 사람 자체도 무골호인이라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술을 좋아하고, 형식이나 의례를 따지지 않아 그를 좋아하는 사진계 선후배가 들끓는다. 그런데 그가 40년 가까이 가진 사진에 대한 태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지가 그저 그렇고, 독창성이 어떻고, 그래서 직품이라 하기에는 어쩌고 하는 말을 할 뿐, 그가 사진으로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이는 없다.

 

어떤 인터뷰에서 조문호의 아내이자 동지인 사진가 정영신은 그를 이렇게 말 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포기라는 게 없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정말 어떤 일을 하던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진가...이 말보다 그를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을 난, 찾지 못했다.

 

 

장터 사람들 (영덕 권정순) 2013

 

장터 사람들 (남원 박경순) 2013

 

 

1. 사진, 실존으로서의 행위

그는 사진의 생명력은 널리 공유되어 소통되는데 쓰이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가다. 자신의 사진이 여러 군데 많이 걸리고, 그 사진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품 값을 비싸게 책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서 높은 가격으로 한 두 점만 팔려 돈을 벌 수 있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보고 즐겼으면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사진으로 예술을 하기 위해 창의적 발상을 하거나 독창성을 계발하려 하거나 깊은 관념을 집어넣어 어렵게 해석하려 하거나 하는 따위의 작업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장터 사람들 (괴산 정숙현) 2014

 

 

그가 인물 사진(portrait)을 주로 찍는 것은 이렇듯 사진 찍는 일을 실존적으로 행위 하는 결과다. 그의 두메산골 사람들은 이러한 사진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애초에 그는 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강원도 동강에를 갔다.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처음 계획은 동강 댐 건설에 반대하면서 그 일을 다큐멘터리로 작업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일을 위해 정선에 머물렀으나, 정작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곳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후 그는 그 곳에 사는 두메산골 사람들을 찍기 위해 정선에서 6년간 눌러앉아 그곳 사람들을 찍었다. 사회 문제로 출발하였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사람에게로 이었으니, ‘사람은 사진가 조문호에게 지남철에 끌리는 쇳가루다. 그가 사람 자체에 매료당한다는 것은 그의 사진 스타일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널리 하는 내러티브 만들기 같은 것을 그리 중요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 원경도 잡고, 중경도 잡고 근경도 잡으면서 중간 중간에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오브제 같은 것도 집어넣는 것이 대개들 하는 방식인데 그는 그런 방식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꽂히는 것은 인물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극()이 아니고 사실(事實)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도리깨질을 하고 있으면 그냥 그 도리깨질 하는 그 자리를 찍어 보여주면 될 일이다. 화전민이 밭을 태우면 그냥 그 불 탄 밭에서 그를 찍을 뿐이다. 방도 부엌도 마루도 모두 있는 그대로다. 그곳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 모습만 보여주면 되지, 굳이 사진가가 어떤 이야기를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 더 보태거나 뺄 필요도 없고, 순서를 짤 필요도 없다. 기록자로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해서이기도 하고, 사진가의 존재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그들 개개를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메산골 사람들 /  삼척 김지석 2003

두메산골 사람들 / 정선, 최종대, 이선녀 2000

 

 

결국 그의 사진 찍는 행위는 예술이나 진보 운동과 같은 어떤 본질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가 조문호가 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의 실존적 행위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행위다. 행위자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그런데 사진가 조문호의 그러한 실존 행위는 그를 소유의 존재로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사람과의 소통과 그 안에서의 능동적 주체성을 찾으면서 사진을 하다 보니 먹고 사는 문제에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래서 일곱 살 박이 아들의 눈물을 가슴에 묻으면서 가난에 몸서리치면서 아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남긴 말 한 마디가 가슴을 후빈다. ‘사람을 생각한다면서 가족을 등한시 하는 것에 대한 고뇌가 평생 무겁습니다.’

 

 

인사동 사람들 / 천상병 1983

 

인사동 사람들 / 김언경 1990

 

 

2. 사람, 세계의 중심

사람을 그렇게나 좋아 하는 것이, 사진가 조문호는 영락없는 예술가다. 그 누구한테도 규제받지 않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는 쓴 소리를 마구 던지는,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그런 가난한 예술가 말이다. 조문호는 비록 한 평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고 힘들게 살면서 허기진 뭔가를 그 인사동 사람들을 통해 메웠다. 그 인사동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할 때, 그가 카메라를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한둘씩 세상을 떠나 그 때 그 사람들이 없어져 갈 때 그들과 나눴던 사람 냄새를 보존하기 위해 그들을 사진으로 박제해두고 싶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지천으로 깔렸던 그 정()과 우애를 담아놓고 싶었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 기억하게 하고, 가난한 예술인들은 사진에 남아 서로를 기억하도록 하고, 그래서 모두 소풍마치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나누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인사동 사람들 / 신경림 2006

 

사진가 조문호가 사진 평생을 사람에 꽂혀 카메라를 처음 들었던 때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찍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80년대의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그리 하였듯, 사회 비판에 목소리를 냈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을 치열하게 작업하기도 했고, 사라져 가는 강원도의 산하를 아름답게 남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꼭 사람이었다. 그 시절 데모하는 현장을 많은 사진가들이 찍어댔지만, 조문호만큼 사람 한 사람 인물을 슬프면서도 재밌고, 웃기지만 뭉클한 사람 사진을 많이 찍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방독면을 쓰고 일에 지쳐 기대어 있는 청소부 아저씨, 매운 최루가스에 콧구멍을 종이로 틀어막은 근엄한 수녀님과 경찰 젊은이, 박종철 열사의 사진을 가슴에 달고 십자가를 한 손에 높이 들며 연신 눈물을 흘리는 명동성당 앞의 박종철 어머니’, 역촌동 가는 버스에서 창문을 열고 힘껏 박수를 치면서 시위 부대를 격려하는 이를 앙다문 어떤 아저씨 ... 그는 민주화운동 현장에서도 보이는 것이 사람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람에 웃고 울고, 천상 사람 앓이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팔자일 것이다.

 

 

 

민주항쟁 / 충무로 1987

 

민주항쟁 / 신촌  1987

 

민주항쟁 / 명동성당 1987

 

 

역시나 그랬다. 그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진가 최민식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젊었을 때 음악을 좋아해서 고향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마을의 정미소를 개조해 음악 감상실을 차려 음악에 흠뻑 빠져 살다가 부산으로 올라가 남포동에서 국악 주점을 하였다. 그때 사진가 최민식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찍은 최민식의 사진에 조문호는 완전히 빠져들었고, 가산을 거덜 내는 대가도 치렀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며 낮은 자들의 삶을 목도하는 도리를 최민식으로부터 배웠다. 그렇지만 사진 찍는 스타일은 최민식과는 많이 다르다. 최민식은 대상에 대해 사진가가 개입하지 않는 채 사진을 찍는다. 소위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조문호는 결정적 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상의 움직임을 고정시키고 시선을 렌즈에 고정하도록 찍는다. 눈동자란 마음의 거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자르거나 후보정을 과하게 하는 따위 또한 하지 않는다. 사진에 나오는 지금은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나중에는 다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사람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다 그러한 그의 사람과 사진에 대한 관점이 깊게 반영된 것들이다. 천상병, 김영수, 신경림, 김언경, 심우성, 공윤희... 그들이 박힌 저 사진은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웃고 울고 떠들었던 술집, 찻집, 골목, 담벼락, 거리들이 있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었는데 ...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다. 조문호의 사진은 그 슬픔을 머금는다.

 

 

노부부 / 여의도 1990

 

완행열차 / 동해남부선 1982

 

사진가 조문호는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사진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대해 날선 비판을 거침없이 하는 어른이다. 2015년도 사진계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제2회 최민식 사진상 부정심사 문제 때도 조문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진가라면 그 거대 권력 앞에서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는 평소에 자신에게 많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원로 사진가 선배들에게조차도 거리낌 없이 비판의 메스를 가했다. 한국의 사진계가 인맥과 학맥에 휘둘려 그 썩고 문드러짐이 극에 달했고, 그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는데 그렇데 된 데에는 당신들 원로 사진가들이 자기 제자들을 챙기기만 하지 옳지 못한 일을 한 데에 대해 따끔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라는 일갈이다. 가히 죽비 소리다.

 

그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진계가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금도를 지켜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것이 최민식 사진상이라면 사람이 그 사진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적어도 최민식 사진을 폄하하는 자들이 최민식이라는 이름 석 자를 더럽히는 짓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 홍보에 혈안이 된 협성재단은 최민식의 이름을 빌어 최민식 정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저 유명한 사진가에게 상을 주기로 운영위원장과 짜고 부정한 짓을 했음이 드러났다. 사진가란 사람을 존중하고, 작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최민식 정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음에 대해 사진가 조문호는 분노한 것이다. 일부 심사위원은 그 돈과 권력에 노예가 되어 사진가에게는 심장과 같은 을 스스로 파버린 것에 대해 그가 분개한 것이다.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말이다.

 

전농동 588 / 1984

 

3. 따뜻함, 대상과의 거리

조문호 사진이 다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사진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아마 이구동성으로, ‘따뜻하다라고 하지 않을까? 청량리 588은 그 따뜻함이 가장 잘 드러난, 사진가 조문호의 첫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이다. 청량리 588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그곳에서 아예 눌러 붙어 살면서 작업한 서울시 전농동 홍등가에 대한 기록이다. 몸 파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데도, 사진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느낌이 아련해진다. 언젠가 만난 적 있었던 듯 한, 그 아련한 우리들의 과거 그 시절에 내 친구였고 내 누이였던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청량리 588 안에서 사진가 조문호는 그 여인들의 몸 파는 행위를 보지 않았고 그 시공간 속에 살던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따뜻해서가 아니고 그에게 사진을 찍히는 그 대상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따뜻해진 것은 사진가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따뜻한 사진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얼마나 메워지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돈으로도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가 조문호의 사진에는 겉모습이 찍히는 것이 아니고, 속마음이 찍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들은 그 마음을 보고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전농동 588 / 1984

전농동 588 / 1985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그 명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란 순간적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아닌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이다. 그가 처음에 이곳을 찍으러 갔을 때 그는 사회적 공간성의 의미로 이곳을 찍고자 했다. 그러다가,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서 사람을 찾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소외라는 이념이나 588이라는 공간의 사회사적 의미를 말하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와 똑같이 돈 벌면서 웃고 울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의 사진집은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그 여인들의 행위를 사회악으로 규정해서 일소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의 시책에 저항하는 몸짓인 셈이다. 그들은 윤리를 타락시키는 윤락녀가 아닐 뿐더러 우리가 구원해줘야 할 악의 무리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누이였을 뿐이다. 그것을 사진가 조문호는 사진으로 말을 한 것이다.

 

 

동자 동 사람들 2016

 

지금 사진가 조문호는 70 나이에 또 하나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2016년 추석 무렵 그는 홈리스들이 사는 서울 동자동 쪽방 촌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사진 행위를 통해 그들에게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곳은 지금은 다 잃어버린 정()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과 한 식구(食口)가 되었다. 얼마 후 동료 사진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작은 사진전을 열고, 사진을 한 장씩 그들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다. 사진이 잘 나오거나 못 나오거나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못 나왔다고 사진을 삭제해버리면 그 찍힌 사람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차마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 누군가로부터 사람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거, 그거 하나만 느끼게 되면 더 이상의 바람이 없다. 그는 동자동 사람들작업이 사진가로서 하는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라 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그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으니 힘이 생기고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그 작은 콤팩트 카메라 들 힘만 있으면 그는 또 어딘가 힘없고 무시당하지만 사람 사는 맛이 있는 그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리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나누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노숙인 2016

 

 

 

 

 

 

 

 

 

   

 

 

 

  

 

 

 


‘On the Road’


사진가 김문호씨의 ‘성시점경(盛市點景)’전이 지난 21일 오후6시 30분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개막식에는 사진가 김문호씨를 비롯하여 비평가 이광수교수, 김남진 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가 엄상빈,

강제욱, 이한구, 남 준, 곽명우, 윤길중, 정영신, 김 원, 한금선, 박병문, 이석필, 이주영, 아리미, 김자손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모여 들었고, 미술평론가 곽대원씨와 행위예술가 타이거백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에 사진가들이 많지만, 김문호씨 처럼 깊이 생각하며 작업하는 다큐 사진가는 그리 흔치않다.

이십여 년 전에 ‘사진집단 사실’ 동인으로 함께 할 때부터 그의 사진 작업에 대한 진지함은 알고 있었지만,

작년에 열었던 ‘wasteland’전에서 결정적인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문명비판에 대한 시각이 압도적이다,
그가 발표했던 ‘On the Road’의 사유는 대상에 대한 그의 고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변혁에 눈 돌릴 때, 그는 자신의 일상을 성찰한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현대문명의 비정함을 텅 빈 도로와 자동차 그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으로,

현대 문명에 물들어가는 도시인들의 일상을 들추어 낸 것이었다.

한 때 찍었던 초상 사진들이 인간에 대한 애정의 눈길이었다면 ‘온더 로드’는 인간이 만든 문명에 대한 사유로 넓혀졌고,

그 다음에 보여 준 ‘Shadow’에서 제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 사실로 바꾼 대표적인 사진가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진가 김문호씨의 관심적 대상은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고, 사실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로 점철된다.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미지를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나 미학적 형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정신이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나 사유가 그만큼 깊은 사진가를 여지 것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 우리나라 대표적 사진가가 변방으로 밀려다니다, 이제 사 조명 받는 우리나라 사진판의 현실이 너무 한심스럽다.

어쩌면 더러운 사진판에 휩쓸리지 않았기에 그가 온전히 살아남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의 부족한 식견으로는 아무리 나발 불어도 사족에 불과해,

정확하게 김문호씨의 사진을 읽어 낸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평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대체한다,

“인간이 소외된 도시 풍경, 인간이 사라져버린 현대 문명, 그 위에서 사진은 더 이상 객관성을 담보하는 다큐멘터리로 존재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진가 김문호의 인간과 문명에 대한 사진 담론이다. 2015년 전시한 <wasteland>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이미지로 말하는 인간에 대한 담론. 인간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도, 그것을 이미지로도 담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세상. 그런 문명사적 맥락에서 사진가 김문호는 사진이 사실에 대한 사유 재현을 위한 매체로서 매우 적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진가 김문호는 이번에는 도시의 기호화 된 상징에 주목한다. 미완성작 <인더시티>는 특별한 내러티브로 구성되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렇지만 또 다시 사실과 사유의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는 표상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중이다.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건물들이 서서 만들어내는 풍경,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사실로 기호화 되어 존재한다. 아파트는 거대한 산 앞에 자리하여 너무나 떳떳하게 자연의 풍경을 바꾸어버리면서 그것이 자연의 위치에 서버렸다. 광고판에 그려진 이미지는 비실재지만, 그것보다 더 실재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다 획일화 되어 버린 판타지의 세계, 사진가 김문호는 이 시대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천착해야 할 과제를 여기에 두는 중이다."


30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사진인이라면 꼭 한 번 보아야 할 전시다.

장애인 가족사진 2005


'wasteland' 팽목항2015


'wasteland' 매향리2015


'shadow'2013-2015

'인더시티'2013-2016


그런데, 김문호씨 전시에 들려 큰 낭패를 당했다.


김남진 관장과의 오래 전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죄로 ‘브레송’ 가기를 꺼려했지만,

김문호씨는 워낙 좋아하는 사진가라 들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날 발목 잡힌 것이다.

‘사진가를 찿아서’란 브레송 기획전 마지막 주자로 정했다며 여러 사람 앞에서 공표해 버린 것이다.


여지 것 사양해 온 것은 쟁쟁한 젊은 사진가들도 많은데, 늙은이가 끼어 더는 것도 그렇지만, 마음 편히 사진전을 열 형편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름정도 남겨두고 결정한 것은 무리였다. 

전시비용도 비용이지만, 전 작품을 보여 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있는 사진으로 전시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옛날 필름을 스캔 받아 수정할 일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죄 없는 정영신씨가 모든 어려움을 뒤집어쓰게 되었는데,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자동에 할 일도 많은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낭패를 당하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 듯이, 한 번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없다.
오는 12월 10일이 마지막 매 맞는 날이니, 부디 오셔서 힘껏 두들겨 주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계 거장 데이비드 라샤펠展
"예술은 관람객의 것"…5년만에 내한

엘턴 존을 촬영한 작품 'Never Enough'.


패션·광고계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40대 중반 순수예술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젊은 감각을 수십 년간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업적인 요구보다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예술계로 뒤늦게 편입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53)도 상업적인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다 순수예술로 넘어온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힐러리 클린턴뿐만 아니라 패리스 힐턴, 레이디 가가, 마돈나, 패멀라 앤더슨,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잭슨 등 전 세계 유명인들은 거의 모두 렌즈에 담은 그다. 10년 전 광고계를 은퇴한 그가 개인전을 위해 5년 만에 내한했다. 서울 인사동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아름다움의 본질(inscape of beauty)'전을 열기 위해서다. 1980년대 인물 사진부터 최근작까지 총 180여 점이 건물 4개 층에 모두 걸린다.

1963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태어난 라샤펠은 1980년대 앤디 워홀과 키스 해링, 장미셸 바스키아 등 팝아트 거장들과 어울렸다. 성소수자인 그는 학교 폭력과 따돌림으로 15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열일곱의 나이에 뉴욕에 가서 앤디 워홀이 편집장으로 있었던 잡지 '인터뷰'의 사진가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앤디 워홀에 대해 "너무 재미 있는 분이었다. 어머니 같았다"고 회상한다. 라샤펠은 사진을 기록이라는 관점보다는 영화처럼 세트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것으로 접근한다. 흑백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컬러'에 대한 본능적인 표현을 중시한다. 화려한 색상이 키치적이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예술은 관람객의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은 각기 보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각각의 작품을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보고 다르게 해석합니다."

전시장에서는 그가 렌즈에 담았던 유명인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에서 열린 '보티첼리 리이매진드'에 출품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주목 받은 작품인 '비너스의 재탄생'도 전시된다.

 최근작인 '정원에서 한때(Once in the garden)'는 다소 도발적인 작품이다. 어맨다 레포어, 나오미 캠벨, 패멀라 앤더슨 등의 누드 작품도 왔다. 수위가 높은 작품들은 'M2'에만 걸렸으며 이 공간은 만 19세 이상만 관람 가능하다. 라샤펠의 작품은 인간의 탐욕과 과대망상적 소비에 대한 묘사, 다채로운 색감과 관능, 판타지로 가득 차 있다. 전시는 19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일반 1만3000원.


[매일경제 / 이향휘 기자]




사진가이자 경영컨설턴트인 하재은씨가 선보이는 “세계10대 글로벌 명품시장”사진전이

지난 9일 오후5시부터 인사동 ‘아라아트’ 4층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약 13년 동안 우리 전통시장에 문화의 옷을 입혀 활성화시키는 일에 전념해 온 작가는

골목형시장 육성사업, 글로벌 명품시장육성 사업 등 특성화시장 육성사업의 연구용역 책임연구원과

상인대학 책임교수로 있으며, 국내시장 제도개발에 힘쓰고 낙후한 시장의 선진화에 전념해 온 사진가다.

2014년 미국CNN에서 세계 10대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발표할 때부터 시작된 이번 작업은

사진 기록으로 선진시장을 연구하는 또 다른 가치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세계 글로벌 시장 사진 200여점이 전시된 사진전에는 선진시장의 다양한 매장 형태와 기능,

효과적인 상품진열과 고객 관심 등, 평소 우리가 보지 못한 해외시장의 사례를 골고루 볼 수 있다.

그는 사진가이기 이전에 시장경영에 관한 전문가로서 사진의 예술성 추구보다 우리가 시장경영에서 배워야 할
사례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도쿄의 쮸끼지 생선 시장의 참치 경매하는 흥미로운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개막 공연으로 탭댄스가 펼쳐졌는데, 미국선진시장의 이벤트를 보는 듯, 또 다른 즐거움도 선사했다.

개막식에는 작가 하재은씨 가족을 비롯한 많은 시장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공윤희, 이규상, 안미숙, 정영신,

남 준, 곽명우씨 등 반가운 사진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사진전’은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전시와 함께 “The World’s Luxury Market” 하재은 사진집(‘눈빛출판사'/가격; 25,000원)도 출판되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 ‘한국종합예술대에서 교편 잡는 사진가 이주용 교수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평창동 연화정사옆에 있는 작업실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다는데, 전망이 끝내 주었다.

북한산 자락의 옹기종기 몰린 집들이 석양에 물들고 있었고, 작업실은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희귀한 대형 박스카메라들이 즐비했고, 온갖 석불과 오래된 물건들이 여기 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30여년 전 이주용교수가 미국서 공부할 때, 안젤 아담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사진계 거목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취재한 원고를 내가 근무했던 월간사진으로 보내주어 2년 가까이 연재했는데,

국내사진인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하였다.


그 뒤 귀국해서는 포토291“이란 사진잡지를 창간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래 좋은 잡지보다 아마추어를 상대로 한 대중잡지만 간신히 살아남는 현실은, 오래 지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이후, 이교수를 전시장에서 한 두 차례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작업실을 방문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몇 일전 동자동 쪽방촌 작업에 필요한 자재 도움을 페북에 올렸는데, 그 걸 보고 도와주겠다며 전화해 준 것이다.

사용하는 비싼 프린트기를 빌려주려다, 아예 새것으로 사 주겠다는 것이다

 그토록 고마운 인정을 베푸는데, 이주용교수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


그동안 동북아 天然堂사진관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 동경을 거쳐 오사카,

북경을 잇는 한,,3국의 현재와 과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 작업이었다.

역사적 기록성과 사진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공유한 중요한 전시였다.

또한 순회전이 열린 도시에서 만난 가족들의 초상사진을 촬영함으로, 동시대 초상사진의 사회학적 의미를 주지시키기도 했다.

 

그런 중요한 작업을 직접 못 본 게 아쉬웠지만, 인물을 통한 사회적 다큐멘터리 작업은 계속된다니, 기대되는 바가 크다.

방문한 작업실에는 사진관의 배경그림을 그리는 화가 조수 나우미씨와 함께 있었는데,

그런 훌륭한 조수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도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작품들과 작업실에 늘린 기자재들에 취해, 평소 습관처럼 해왔던 사진 찍는 일과

서울도시빈민 프로젝트에 대한 자문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프린트 기자재를 구입해 주려, 내가 사는 쪽방까지 방문해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결론은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말인데,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좀 더 세밀한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주민들의 마음이 열렸을 때,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

한 지역에 많은 사진가들이 몰리면 자연적으로 부작용이 일어 날 소지가 많다며,

인간적인 소통보다 사진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진가가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 빈민가의 철저한 현장조사가 선행된 후, 사진가들이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구역별로 나누어 한 지역에 한두 명만 들어가, 상호 협력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문제는 기획전문가인 브레송의 김남진 관장께 부탁할 생각인데, 본인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경험 많은 사진가들의 자문을 구한 후, 좋은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공개할 작정이다.

 

그리고, 저녁 무렵엔 부산에서 활동하는 다큐사진가 조성기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성기씨는 10여년 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 함께 한 적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이산가족 같은 감은 있었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 자리에는 조성기씨를 비롯해 사진가 박종면씨와 인성욱씨가 동행했는데, ‘유목민매상께나 올렸다,

서로간의 정보 교환은 물론, 사진판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화를 안주삼아 퍼 마셨는데,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와 푸른별이야기 최일순씨, 그리고 뒤늦게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도 합류했다.

다 연줄연줄 아는 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성기씨가 부산가는 열한시 기차표를 취소하고,

내가 사는 서울역쪽방에 끼어 자겠다고 했다. 내 사는 꼴도 보고 싶었겠지만,

서울 올라 온 김에 눈빛에서 나오게 될 사진집 서문을 부탁하러 이경홍교수를 만나려는 것이다.

 

쪽방 갈 놈들이 겁도 없이 택시까지 잡아타고 갔는데,

입주한지 몇 일 되진 않았지만, 긴 밤 손님은 처음 받았다.

술이 취해 매점에서 소주와 이 것 저 것  별의 별 것을 다 집어넣었다. 내일도 처먹어야 사니까...

그 날 밤 술 마시며, 전 주인이 남겨 놓고 간 유품, 꽃그림을 안겨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상도 말로 참 욕봤다!

 

하루 일기가 길었던 만큼, 그 이튿날은 죽어나야 했다.

 

사진, / 조문호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입니다

그림은 전에 살던 분이 남기고 간 유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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