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앞 둔 86년, 청량리 역전의 금성 광고판 제작현장이다.
문구처럼 기술 정상에는 접근했는지 모르나, 정치나 사람들의 정신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제 구호를 바꾸자.
“인간성 정상에 도전하자”고...

1986년 청량리 / 조문호사진


▲조문호 사진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20대 국회에 문화예술 전문가가 아무도 없다.
비례대표로 뽑힌 국회의원도 없지만, 비례대표에서 지역구를 갈아탄 문화계 출신 후보들까지 모조리 낙마해 버렸다. 지금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 기조로 삼아 정권의 성패를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단 말인가.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 문화예술을 대한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 도 없겠지만, 나온다 해도 헛다리짚을 게 뻔하다.


지역구 의원 중에는 자칭 ‘문화 전문가’라는 분들이 더러 있다. 제발 좀 웃기지 마라. 문화 예술에 대한 철학이나 전문지식도 없이 보좌관 도움으로 관련법 몇 개 발의하고, 어설픈 글로 책 한 권 냈다고 문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문화예술 전문가가 없는 국회로 문화융성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지만, 앞으로 가난한 예술가들 살 길이 막막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즘 예술인들이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유명 연예인의 그림이 경매에서 고가에 팔린다는 소식으로, 평생 그림에만 매달렸던 전업작가들이 심한 박탈감을 느껴 왔는데, 이젠 조영남의 대작논란으로 사기꾼 취급까지 받게 됐다.

조영남 씨는 평소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을 즐겨 인용했다. 그 말 자체는 재미있게 풀어가려는 말이었지,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자기가 사기를 쳤으니 사기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예술을 사기’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상식을 깨는 시도를 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나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이 진정 깨 부시고자 했던 것은 기존의 예술가들이 갖고 있던 권위이자 기존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던 선입견이지 창작 행위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기득권에 도전하던 예술가들의 창조 정신이 왜 기득권의 교묘한 방어술로 악용되는지 모르겠다. 조영남씨 경우는 대작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적 도리나 양심에서 구제받을 수 없다.

그리고 지난달 미술의 공공적 가치를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관광 명소인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의 통로계단 그림들이 주민들에 의해 말끔히 지워 진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료들의 생각과 주민들의 생활상에 많은 괴리가 있다는 게 확연하게 드러났다. 공공예산이 들어간 계단그림을 일방적으로 지운 것도 문제이지만, 충분한 교감 없이 시행한 주관 처는 물론, 사업에 참여한 미술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국내에 벽화나 조형물이 들어선 마을 프로젝트는 전국적으로 200여 곳에 이른다. 10년 전부터 지자체별로 여러 가지 공공미술 사업들이 추진되어 왔지만, 주민의 삶과 어우러지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작가들이 공무원들과 타협해 관광 위주의 볼거리나 환경미화에 머무르는 작업들을 내놓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사업이 끝나면 작가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흉물이 된 사례도 곳곳에 늘려있다. 작가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책임지고 이끌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 세운다면, 이처럼 소홀이 다루겠는가? 작가는 진정성을 가지고 주민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예술적 아우라를 마음 것 쏟아 부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절실하다. 머리보다 마음을 앞세워 마을 프로젝트에 임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문화예술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강남의 디올 빽 사진이 여성비하라며 강제로 내려지는 등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가 하면, 예술을 우습게 보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하기야 정치인들이 예술을 하찮게 여기니, 국민들만 나무랄 처지도 아닌 것 같다.

엊그제 가난한 다큐사진가 권철이 충무로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일본에서 모든 지위 다 버리고 귀국한지가 몇 년째지만, 그 결정이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풀빵장사를 하며 작업은 이어가지만, 한국에서 당하는 굴욕에 대한 그의 절규가 영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 이상 악밖에 남지 않은 예술가들을 벼랑으로 내 몰지마라.

예술가들이 쓰러지면 문화예술이 쓰러지고, 문화예술이 무너지면 정신도 경제도 나라도 모두 무너진다.


-서울문화투데이-





기계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한 삶을 안겨 준 대신, 인간성상실과 자연환경파괴 등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는, 인간과 기계문명이 완전히 변하는 예측불가능시대가 온다고 말한다.
인간의 두뇌를 로봇에 다운로드 받고, 인간에 가까운 로봇의 신체를 만들 수 있는 해가 2045년이라 했다.


그 때가 되면 인간이 만든 새로운 인간과 닮은 종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의 몸은 사라져도 나의 두뇌가 사이보그에 다운로드 받아져서 나는 영생을 한다는 이야기는 소름끼치는 일이다.


밑에 사진은 내가 사진을 처음 시작한 1979년도에 겉 멋들어 촬영한 사진들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최민식선생의 휴먼사진집에 맛이 가, 사진을 했지만,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성상실을 말하고 싶었다.

청계천과 사상공단 주변을 다니며 기계문명에 대한 문제점을 찾는 작업을 일 년여 했으나, 두 차례의 단체전을 끝으로 접어야 했다.
기계의 잔존물을 통해 인간성상실을 말하는 반대어법의 예술이란 허구보다, 사람다운 사진을 찍고 싶어 접은 것이다.

세월이 30여년이 지나 보니, 그 일도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그 때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집에서는 컴퓨터고, 밖에 나오면 핸드폰을 끼고 산다.
가족까지도 서로간의 소통을 문자로 전할 정도로 인간적인 교류가 없어진 것이다. 사는 것도 기계처럼 산다.
그러니 30년 후의 세상은 레이몬드 키즈와일의 주장보다 그 속도가 더 빠를지도 모른다.


심각한 현실을 모두들 알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도 TV와 핸드폰은 버렸으나 연장인 카메라와 컴퓨터 없이는 아무일도 못하는 기계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이십여 년 전부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로 작업을 바꾸었다.
지푸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간의 알몸을 자연 속에 두는 작업인데, 언제 마무리될지 몰랐는데,
올 7월15일 춘천문화회관에 일차로 여덟점만 내 놓기로 했다.
비이칼에서 마무리한 작업도 작업이지만, 좀 더 진지하게 인간성을 잃어가는 걸,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완의 사진이지만, 그 때 생각이나 들처 내 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 20일~30일까지

'사진인을 찾아서' 여섯 번 째 사진가 ‘권철 론’이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6시30분에 개막된 사진전에서 이광수교수의 작가론과 사진가 권철의 결연한 작업 이야기를 들으니, 가라앉은 분노가 또 다시 치밀어 올랐다. 한 동안 정치와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와 사진판 비리에 목소리를 높여 왔던 것도 권철 같은 고통 받는 다큐멘터리사진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권철,뎃짱1



최민식 사진상이 끼리끼리 해 처먹는 것도 모르고, 작년에 권철씨가 들러리를 선적도 있었다. 사진을 모르는 어린애가 보아도 수상작보다는 권철의 사진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 안다. 그리고 사진도 사진이지만, 권철은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의 사진가가 아니던가?

'브레송'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사진인을 찾아서’란 이 기획전은, 사진은 좋지만, 속칭 진골 성골에 가려있는 진정한 사진가를 찾아 내어 작가의 전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라, 한 가지 주제로  보여주는 일반 전시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보아왔던 회고전 형식의 원로전과도 다른 것은 이건 종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생각이나 형식들이 변해가는, 작가들의 주제와 접근방식, 그리고 진전하는 과정들을  한 눈에서 본다는 것은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안성마춤인 것이다.


이번에 초대된 다큐사진가 권철은 못 말리는 '독고다이'다. 이십대 중반에 사진 공부하러 일본 들어가 환락가 신주쿠 가부기초를 촬영했다. 보통 깡다구가 아닌 것이다. 자칫하면 야쿠자 한테 맞아 죽는다. 18년 동안 기록한 그 사진으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도 수상했다. 그렇다고 주먹들의 세계만 보여주는 소재주의에 빠진 사람도 아니다.



▲권철,가부키초2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한센병회복자의 삶은 담은 ‘텟짱’으로 데뷔한 인간미 넘치는 사진가다. '텟짱'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이 진실을 찾아내서 밝히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텟짱’은 소외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에서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일본 한센병회복자 요양원에서 찾았는데, 주인공은 요양소에 살았던 시인이자 한센병 회복자인 텟짱이었다. 권철은 텟짱이 사망하기 까지, 14년 동안 그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권철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헌신적인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결정적인 사진 한 두 장만 찍으면 사는 데 지장 없는, 안정된 기자 자리를 사진을 위해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권철,야스쿠니, 국국주의의 망령1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취재하다 무너진 건물에 끼여 양 다리를 절단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한계를 느낀 것이다. 사람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밥벌이라는데, 어찌 회의감이 들지 않았겠는가?


저널리즘의 사진기자는 뉴스를 찾아가지만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권철은 조직이나 배경보다 세상과 독대하며 찍어 왔다. 그러면서도 외양이나 현상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그리고 구조와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자신의 주제로 삼았는데, 가부키초, 야스쿠니, 오오쿠보 코리안타운, 우토로 등 모두가 일제 식민 경험과 연결된 사건들이다.




권철-야스쿠니,군국주의의 망령3


그 이후, 그의 자식이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가족을 위해 안정된 생활권을 모두 버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귀국하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 사진계의 현실을 주위에서 알려주었으나,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제주 거리에서 풀빵 장사를 하며 어려운 작업을 어어 가고 있는 것이다.



▲권철, 야스쿠니,군국주의의망령4



제주에 정착하며 시작한 ‘이호테우’작업은 중국 자본 침탈의 역사를, 한 해녀를 통해 풀어 간 것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평생을 살아 온 해녀 할망의 집념과 쓸쓸함이 사진에 묻어있다.


그리고 신자유경제 물결로 인해 서서히 중국인들이 점령해가는 제주의 모습을, 바다 멀리 중국인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어마어마한 크루즈선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권철은 작년 여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사진으로 고발하기 위해 제주시 제주목관아 안에서 사진전을 열겠다고 요청하자 제주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가 해줬다.



▲권철,야스쿠니,군국주의의 망령2


그런데 광복회 회원 몇 명이 나타나 일장기가 드러난 사진을 '감히' 광복 70주년에 걸려 하느냐고 제주시에 항의하자, 제주시는 그 항의를 받아들여 사진전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일장기가 있으면 친일이라는 그 단순 무지한 문맹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어찌해야 좋은가?,


그래서 야스쿠니 사진들을 이호테우 해변 길거리에서 전시 한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였지만,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항거의 뜻도 담겨있다. 그는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 한 후, 그 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사진가다.




▲권철,이호테우1



그는 야스쿠니 사진을 불 태웠던 이호테우 매립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주 전 지역을 순회 전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서 행동하는 사진가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권철이 세상을 독대한다는 것은 곧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역사에 대해서만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고, 예술이라 이름 붙여 노닥거리는 한국 사진판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있다. 

권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권철, 이호테우2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진판 자체가,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가 20년간 살아온 일본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쁘고, 무식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제국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해 판을 깨고 욕을 먹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돈이 없거나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접을 해 준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철면피의 세계다.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판은 더욱 심하다. 권력 있는 기득권자는 자기 패 끼리 판을 짜고, 어중간한 사진가는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온갖 추파를 보낸다.



  

▲사진가 권철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 기자/사진가



권철이 좌절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한국 사진계의 연줄과 인맥이었다. 실력은 뒷전이고, 줄서기를 잘 해야 하는 이 썩어 문드러진 사진판에 어찌 구역질이 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그의 작업은 중단되지 않는다. 2011년 일본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와 후쿠시마 원전을 취재한 후 국내 노후 핵발전소를 찍는 중이다. 두 나라의 핵발전소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메시지 전달은 분명하다. 그의 다음 작업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에서 땅을 침탈하는 중국인들이라고 한다.


비평가 이광수교수는 권철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서  문학적으로 약간의 표현 방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개 두 마리가 서성거리는 이미지에서 세상이 망해 인류가 사라진 후의 지구를 암시하고, 새끼줄에 묶인 죽은 굴비의 쭈그러진 모습에서 인간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래를 말한다는 것이다. 


‘갤러리 브레송’ (02-2269-2613)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6월30일까지 이어진다.






가부키초

가부키초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여섯 번 째 작가로 ‘권철 론’이 전시되고 있다. 6월20일 오후6시30분에 개막된 권철의 사진전은 오래 전부터 기다려 온 전시였다.

개막시간을 맞추려고 기다리는 중에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미스터 브레인워시전' 기자회견이 열리는데, 왜 오지 않냐는 것이다. ‘브레송’가는 길에 들릴 생각으로 서둘러 나갔으나, 전시장은 기자들로 만원이었다. 그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는데, 나 까지 끼어들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인사동에서 열리는 대형전시라 사진만 찍고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로 가는 중에 아내로부터 독촉이 왔다. 개막식을 못하고 기다리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사진판의 기록자 곽명우씨가 늦어, 대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데, 사진도 사진이지만, 시간이 늦어 마음이 바빴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주인공 권 철을 비롯하여 ‘브레송’ 김남진 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사진가 김문호, 성남훈, 강제욱, 신동필, 마동욱, 양시영, 이한구, 이일우, 김 원, 정영신, 김지연, 이정용, 이주영, 김진석, 송주원, 나떠구, 홍윤하, 김영호, 박영환, 마기철, 김주혁씨 등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중에는 하재은, 구자호, 곽명우씨도 나타났다.

개막식에서 이광수교수의 작가론과 작가 권철의 힘들게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라앉았던 분노가 또 다시 치밀어 올랐다. 한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와 사진판 비리에 목소리를 높여 왔던 것도 권철 같은 고통 받는 다큐멘터리사진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민식 사진상이 끼리끼리 해 처먹는 것도 모르고, 작년에 권철씨가 들러리를 선 적도 있었다. 사진을 모르는 어린애가 보아도 수상작보다는 권철의 사진이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사진도 사진이지만, 권철은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의 사진가가 아니던가?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브레송'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사진인을 찾아서’란 이 기획전은, 사진은 좋지만, 속칭 진골 성골에 가려있는 진정한 사진가를 찾아 내어 작가의 전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라, 한 가지 주제로  보여주는 일반 전시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보아왔던 회고전 형식의 원로전과도 다른 것은 이건 종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생각이나 형식들이 변해가는, 작가들의 주제와 접근방식, 그리고 진전하는 과정들을  한 눈에서 본다는 것은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안성마춤인 것이다.


이번에 초대된 다큐사진가 권철은 못 말리는 독고다이다. 이십대 중반에 사진 공부하러 일본 들어가 환락가 신주쿠 가부기초를 촬영했다. 보통 깡다구가 아닌 것이다. 자칫하면 야쿠자 한데 맞아 죽는다. 18년 동안 기록한 그 사진으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도 수상했다. 그렇다고 주먹들의 세계만 보여주는 소재주의에 빠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한센병회복자의 삶은 담은 ‘텟짱’으로 데뷔한 인간미 넘치는 사진가다. '텟짱'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이 진실을 찾아내어 밝히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텟짱’은 소외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에서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일본 한센병회복자 요양원에서 찾았는데, 주인공은 요양소에 살았던 시인이자 한센병 회복자인 텟짱이었다. 권철은 텟짱이 사망하기 까지, 14년 동안 그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권철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헌신적인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결정적인 사진 한 두 장만 찍으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안정된 기자 자리를 사진을 위해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취재하다, 무너진 건물에 끼여 양 다리를 절단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한계를 느낀 것이다. 사람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밥벌이라는데, 어찌 회의감이 들지 않았겠는가?

 


이호테우

이호테우

이호테우




저널리즘 사진기자는 뉴스를 찾아가지만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권철은 조직이나 배경보다 세상과 독대하며 세상을 찍어 왔다. 그러면서도 외양이나 현상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그리고 구조와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자신의 주제로 삼았는데, 가부키초, 야스쿠니, 오오쿠보 코리안타운, 우토로 등 모두가 일제 식민 경험과 연결된 사건들이다.

그 이후, 그의 자식이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가족을 위해 안정된 생활권을 모두 버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귀국하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와 사진계의 현실을 주위에서 알려주었으나,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제주 거리에서 풀빵 장사로 연명하며 어려운 작업을 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 정착하며 시작한 ‘이호테우’작업은 중국 자본 침탈의 역사를 한 해녀를 통해 풀어 간 것이다, 돈이 얽히면서 뺏고 빼앗기는 추악한 인간 세계를 들춰내는 작업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평생을 살아 온 해녀 할망의 집념과 쓸쓸함이 사진에 묻어있다.

그리고 신 자유경제 물결로 인해 서서히 중국인들이 점령해가는 제주의 모습을, 바다 멀리 중국인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어마어마한 크루즈선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권철은 작년 여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사진으로 고발하기 위해 제주시 제주목관아 안에서 사진전을 열겠다고 요청하자 제주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가 해줬다. 그런데 광복회 회원 몇 명이 나타나 일장기가 드러난 사진을  광복 70주년에 걸려 하느냐고 항의하자, 제주시는 그 항의를 받아들여 사진전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일장기가 있으면 친일이라는 그 단순 무지한 문맹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어찌해야 좋은가?,

그래서 야스쿠니 사진들을 이호테우 해변 길거리에서 전시 한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였지만,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항거의 뜻도 담겨있다. 그는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 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사진가다.


그는 야스쿠니 사진을 불 태웠던 곳 이호테우 매립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주 전 지역을 순회 전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서 행동하는 사진가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권철이 세상을 독대한다는 것은 곧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역사에 대해서만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고, 예술이라 이름붙여 노닥거리는 한국 사진판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있다. 




텟짱

텟짱



권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진판 자체가,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가 20년간 살아온 일본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쁘고, 무식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제국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해 판을 깨고 욕을 먹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돈이 없거나 힘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접을 해 준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철면피의 세계다.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판은 더욱 심하다. 권력 있는 기득권자는 자기 패 끼리 판을 짜고, 어중간한 사진가는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온갖 추파를 보낸다. 권철이 좌절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한국 사진계의 연줄과 인맥이었다. 실력은 뒷전이고, 줄서기를 잘 해야 하는 이 썩어 문드러진 사진판에 어찌 구역질이 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작업은 중단되지 않는다. 2011년 일본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와 후쿠시마 원전을 취재한 후 국내 노후 핵발전소도 찍는 중이다. 두 나라의 핵발전소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메시지 전달은 분명하다. 그의 다음 작업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에서 땅을 침탈하는 중국인들이라고 한다.

비평가 이광수교수는 권철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서  문학적으로 약간의 표현 방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개 두 마리가 서성거리는 이미지에서 세상이 망해 인류가 사라진 후의 지구를 암시하고, 새끼줄에 묶인 죽은 굴비의 쭈그러진 모습에서 인간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래를 말한다는 것이다. 


갤러리 브레송’ (02-2269-2613)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630일까지 이어진다.

 


글 : 조문호 / 아래사진 : 정영신, 조문호




-권 철 사진전 개막식과 뒤풀이 사진이다-






























































































































마동욱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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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21일 ‘토포하우스




다큐 사진가 마동욱의 '고향의 사계'사진전이 지난 15일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이었으나, 전시장엔 축하객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장흥에서 올라 온 고향 분들이었다. 대단한 고향사랑에, 대단한 인정이었다.


여지 것 전시장 개막식에 그리 많이 돌아다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동내 이장에서부터 방귀깨나 뀌는 분들은 다 왔더라.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귀남씨를 비롯하여 정동영, 이종걸, 윤호중, 황주홍의원 등 국회의원만 네 명이고, 장흥문화원장 등 내노라하는 분들이 줄줄이 나와 전시를 축하했다.


작가가 재벌이나 권력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개뿔도 없는 일개의 사진가에 불과하다. 이 건 고향사랑도 사랑이지만, 마동욱의 헌신적인 인간성에 매료된 것 같았다.


사진가 마동욱의 고향을 사랑하는 사진작업은 30여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그는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에서 태어나 교도관과 소방관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아예 고향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찍는 사진은 돈벌이와 전혀 거리가 먼 사진이다. 안정된 직장 버리고, 돈 안 되는 사진가의 길을 택한 배짱이 도대체 뭘까? 그를 ‘돈키호테’라 칭한 어느 기자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마동욱,장흥군 유치면 신풍리


누군들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여지 것 시골을 찍어 ‘고향’이란 주제로 책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한 사진가는 더러 있지만, 자신의 고향에 30 여 년 동안 메 달려 온 사진가는 처음이다, 마동욱의 작업이 높게 평가받는 것도 일회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지속성에 있는 것이다. 그게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치다. 장흥댐 건설로 수몰될 수밖에 없었던 유치면 일대도 샅샅이 기록해 두었다.


▲마동욱,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여다지 한승원문학산책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의 한이 응축된 사진들이다. 그 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나,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기록해 왔다. 그의 사진 자체가 장흥의 역사나 다름없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묵묵히 해 온 것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고향으로, 시골 들판이나 정겨운 마을들이 마치 도면처럼 펼쳐져 있다. 드론(Drone) 을 이용해 찍은 300여개 마을 사진을 이어 붙인다면, 한 편의 ‘장흥여지도’나 다름없다. 그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동욱, 장흥읍 원도리


전경을 담으려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새처럼 날아 조감도를 찍고 싶었을 것이다.그래서 드론장비가 나오자 바로 실행에 옮겼는데, 가난한 사진가의 형편으론 버거웠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조종이 쉽지 않아 바다 속으로 빠지거나 추락해 파손된 드론만 네 대나 된다고 했으니, 그 경제적 어려움이야 보나마나다.


전시된 마동욱 사진은 많은 사진인 들에게 사진하는 의미를 되묻게 했다. 사실적인 현실이 배제된 채,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사진들이 판치고 있다. 예술이란 이름에 포장되어 허구의 이미지만 양산하는 세태라, 작가는 많지만 정작 사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마동욱, 정남진  물축제 탐진강 2015


그러나 본질에 대한 사실적 관찰을 중시하는 마동욱의 사진은 정직하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의 사진들은 연출이나 트릭이라고는 전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직관과 정확한 기록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작가적 권위나 개인의 주장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작가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진도 사진이지만, 마동욱의 남을 배려하는 인간성이다. 작품에 앞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선배들로 부터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싸늘한 가슴으로 머리만 굴리는 작가들이 득실대는 현실이라, 따뜻한 심성을 가진 마동욱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일례로, 장흥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어딘데, 전시마다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며 알아차렸다. 이건 단지 돈과 시간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마동욱, 장흥군 장흥읍 사안리


이번에 펴낸 ”하늘에서 본 고향마을“과 ”고향“사진집 두 권을 비롯하여 “아! 물에 잠긴 내고향”,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그리운 추억의 고향마을”, “탐진강의 속살“ 등 아홉 권의 사진집을 펴냈다. 가난한 살림에 잘 팔리지도 않는 사진집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순한 애향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명감이었다. 그래서 2012년 ‘전남문화상’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시골마을의 공동화는 가속화 되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고 변해가는 시골마을을 되살려야 하는 사회적 운동이 절실한 때다. 만약 사진인 들이 힘을 모아 각자의 고향을 찍는다면, 신판 ‘대동여지도’도 가능할 것이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전을 계기로 모든 국민들의 애향심에 불이 붙었으면 좋겠다.



▲마동욱, 사진집 '하늘에서본장흥'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에서 '고향의 사계‘ -드론으로 본 내 고향 장흥-과 '하늘에서 본 장흥’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두 권의 사진집도 나왔다.'고향의 사계'는 256쪽, 6만원. '하늘에서 본 장흥'은 448쪽 4만원이다.


전시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기자


마동욱 사진전
"고향의 사계"
드론으로 본 내 고향 장흥

 

FOUR SEASONS IN CHANGHEUNG COUNTY
Photographs by Ma Dong-Wook



 

 

전시일시
2016년 6월15일(수)-21일까지
초대일시 6월15일 오후 5시
장소 :서울 인사동 11길 6 (관훈동) 토포하우스 갤러리 (02)734-7555

 

 

 

 

 

 

 

남도 고향의 사진전이 개최된다.

오는 6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포토하우스 갤러리에서 사진작가 마동욱(59)의 사진전이 열린다.

 

이 전시에서 마동욱은 고향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고향의 수려한 풍광과 정서를 담아낸 사진 60여점을 전시한다.

 

사진작가 마동욱이 자신의 고향인 장흥의 정서와 마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온 지 29. 그는 이러한 고향마을 사진들은

지난 1997, 장흥댐으로 수몰된 유치면 일대를 담은 <! 물에 잠길 내 고향>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권에 담아 펴낸 바 있고,

20여 차례의 고향마을 사진전을 열기도 했던 국내 대표적인 고향마을 사진작가이다.

 

그가 이번에 펴낸 <하늘에서 본 고향마을>은 그동안 평면으로만 담아냈던 사진집과 달리,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각으로

담아낸 사진들이어서 그의 고향마을 사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장흥에서 나고 자란 마동욱은 30여년 간 고향을 지키며 고향 마을 사진을 비롯하여 고향 사람들, 고향의 정서와 수려한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왔으며 고향을 주제로 한 사진들을 지난 1997, 장흥댐으로 수몰된 유치면 일대를 담은 사진집 <! 물에 잠길 내 고향>에 담아낸 이후 모두 네 권의 사진집에 담아낸 바 있고, 20여 차례의 고향마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마동욱은 이번에 고향 사진의 결정판으로 도서출판 눈빛에서 <하늘에서 본 장흥><고향의 사계>이라는 사진집 2권을 펴냈다. <하늘에서 본 장흥>(450/250*190mm*올 칼라*40,000)은 장흥의 300여 마을을 드론사진으로 담은 고향마을 사진집으로 국내에선 최초의 본격적인 드론 사진집이고, 최초 드론사진의 마을사진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하늘에서 본 장흥>과 동시에 펴낸 사진집 <고향의 사계>(255/240*290mm*올칼라*60,000)은 마동욱 작가의 고향인 장흥의 수려한 산수와 풍광의 사계, 고향사람들의 표정을 담아낸 사진집이다.

 

마동욱 작가는 이번 2권의 고향 사진집에서 드론사진을 통해 고향을 간직한 우리 모두에게 그리움이 기억되고 그리움이 눈에 밟히는 그림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마동욱 작가는 내게 장흥이라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내 삶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면서 변해가는 고향, 마을의 이름이 길이라는 새 주소로 바뀌면서 고향마을의 옛 이름들이 마을의 붕괴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고향마을에서 만난 구릿빛 주름살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러나 그 얼굴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카메라를 들고 고향마을을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 돌아다니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장흥출신 김선욱 시인은 마동욱의 고향 사진은 그리움이 듬성듬성 기억되고 때로 진득한 그리움이 눈에 밟힌다. 그의 사진들을 보노라면 때로 눈물이 맺힌다고향 사람들에서는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을 사진에서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수려한 풍광은 그 자연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읽힌다. 수많은 의미와 메시지를 전해주는 고향의 사진들이다. 그 고향들이 이번 <고향>에 담겨 있다.”면서 마동욱의 고향 사진들이 더욱 소중한 것은, 그 전통의 마을이 사라질 지도 모르는 현대사의 전환점에서 남도의 고향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 훗날 전설처럼 회자될 우리의 고향이 사진작가 마동욱에 의해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마동욱 프로필>

마동욱은 1958년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에서 출생했다.

20-30대에는 교도관, 소방관으로 공직에 있었으며 퇴직 후 한때 서울에서 사진스튜디오를 하기도 하였으나

낙향하여 30여 년간 고향 마을 장흥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을 이용하는가 하면 동영상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생애사를 담고 있다.

 

 

 

 

 

 

그리움이 기억되고 눈에 밟히는 고향

김선욱 (시인 장흥신문 편집인)


마동욱의 고향은 전라남도 장흥군이다. 장흥군은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일직선으로 선을 그으면 대한반도에서 마지막으로 닿는 남해안 포구라 하여 붙여진, ‘정남진(正南津)’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고을이다.

장흥은 지정학적으로 전남도에서도 광주, 목포, 순천·여수라는 3대 도시권역에서 가장 원거리에 위치, 산업화·도시화의 물결에서 비껴나며 전통의 기반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남도에서 전통의 고향을 가장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을이다.

특히 장흥은 청정해역인 남해 득량만을 품고 있으며, 호남의 3대 강인 탐진강이 장흥의 중심부를 관류하고 있고, 장흥댐으로 축조된 장흥호가 있으며, 해발 500M의 높은 산 14개가 곳곳에 산재하여 생태자원이 타 지역에 우월한, 산수수려(山水秀麗)한 고을이기도 하다.

이곳 장흥에서 나고 자란 마동욱은 30여년 간 고향을 지키며 고향 마을 사진을 비롯하여 고향 사람들, 고향의 정서와 수려한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마동욱은 ‘고향’을 주제로 한 사진들을 지난 1997년, 장흥댐으로 수몰된 유치면 일대를 담은 사진집 <아! 물에 잠길 내 고향>에 담아낸 이후 모두 네 권의 사진집에 담아낸 바 있고, 20여 차례의 ‘고향마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고향 사진의 결정판으로 ‘도서출판 눈빛’에서 <하늘에서 본 장흥>과 <고향의 사계>이라는 사진집 2권을 펴냈다.

<하늘에서 본 장흥>(448쪽/248*160mm*올 칼라*값40,000원)은, 장흥의 300여 마을을 드론사진으로 담은 고향마을 사진집으로 국내에선 최초의 본격적인 드론 사진집이고, 최초 드론사진의 마을사진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하늘에서 본 장흥>과 동시에 펴낸 사진집 <고향의 사계>(255쪽/210*297mm*올칼라*값 60,000원)은 마동욱 작가의 출신지 장흥군의 고향을 주제로, 고향의 미려한 산수와 풍광의 사계,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낸 사진집이다.

이번 사진전에 선보이는 사진들은 바로 2권의 사진집에서 추려낸 ‘고향’ 의 사진들이다.


■사진작가 마동욱은-

20여년 전 어디선가 마동욱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나는 마동욱을 보며 돈키호테를 떠 울린다. …그의 기사도 정신의 광기와 몽상은 그로 하여금 늘 동떨어진 현실세계에서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그런 가혹한 패배를 격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마동욱이 전적으로 돈키호테를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가였지만 마동욱은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긴 해도 결코 공상주의자이거나 비현실적인 몽상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보며 가끔씩 돈키호테를 떠올린다.

마동욱의 성격도 무모하리만큼 곧고 사고도 곧다. 언행도 투명하다.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집념이 강하다. 때로 지나칠 만큼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이며 비현실적이다. …그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좌절을, 자기 일과 소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회의를 경험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현실이 주는 가혹한 좌절, 늘 죄업처럼 짊어진 궁핍이라는 무게를 끝까지 버티며 결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마치 자기의 몽산적인 이상이 현실에 부딪쳐 처절한 실패를 겪어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던 돈키호테처럼… 그의 삶에서 트릭은 없다 누구에게도 마지막 카드를 감추지도 않는 다. 그와 통하는 사람에게는 제 속내를 알알이 보여준다. 보통 사람에게선 볼 수 없는 일이다….”

이는 필자가 마동욱을 10여년 남짓 그의 성격과 일(사진작업)을 지켜보며 느꼈던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의 일부분이다.
이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 대한 내 표현은 유효하다. 지금도 여전히 마동욱은 내게 돈키호테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30여년전의 그 소신으로 오늘도 자기 사진 작업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자기 사진에서 팩트만을 고집한다. 트릭을 용납하지 않는 팩트 사진만을 고집하는 것은 트릭이 없는 그의 삶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여전히 자기 일에 대한 확고한 자부와 긍지로서 현실의 수난을 이겨낸다는 것이다.

그 팩트 사진에서 나름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일종의 현실 도피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필자의 눈에 비치는 마동욱은 여전히 톤키호테적이다.


■마동욱의 다큐사진


마동욱은 다큐 사진가이다. 그는 사진의 미적·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며 이른바 작품 사진을 만들어내는 사진작가는 아니다. 사진의 대상체가 되는 물상의 사실상의 정수를 표현해 내는 다큐멘타리 사진가인 것이다.

물상의 본질에 대한 직관적인 관찰을 중시하는 다큐 사진가인 마동욱은 자신의 다큐 사진 정신에 아주 충실하다. 그의 사진은 스트레이트 사진의 정수를 보여준다. 단 한 사진도 연출이나 트릭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물상에 대한 직관과 정확한 묘사만 있을 뿐이다.

사진가는 존재물의 정지된 현상을 사진으로 담는다. 사진가는 이러한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전해주는 그림처럼 아름다움이나 독특한 의미를 표출하여 작품사진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동욱은 일 년 365일 하루도 걸리지 않고 고향 장흥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이며 강이며 바다며 마을이며 사람들을 이른바 ‘장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세월이 29년이다. 한두 번, 아니 몇십 번도 찍었으니 지나칠 만도 하지만 마동욱은 어제도 그제도, 아니 수백 번도 찍었을 그 풍물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그에게 모든 물상은 매순간 변화되고 달라진다.

마동욱에게 사진의 주체가 되는 그 어떤 대상체도 고정적인 존재는 없다. 늘 달라지고 늘 새롭다. 그리고 사진은 기록이고 진실한 기록은 늘 변화되는 그 대상의 진면목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관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카메라를 메고 고향 장흥의 마을을, 장흥의 산하를, 장흥 사람들을 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동욱의 사진이 사진의 미학을 넘어 그 존재의 미학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은 역사이다

우리의 고향마을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1백호, 200호가 되고도 남았던 마을들이 20여호 남짓의 과소화 마을로 변해가고 …아니 10년 후면 우리나라 고향마을 절반은 영원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 한때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골목골목에서 뛰어놀고, 공동우물가엔 자지러지는 아낙들의 웃음판이 펼쳐지고, 사랑방에서 어른들이 새끼 꼬고, 명절마다 신명난 풍물판이 벌어지며 활기가 넘쳐났던 우리 고향의 마을. 이 고향 마을이 이제는 크게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아이들 울음소리도 멎어가고, 마을이라는 그 공동체의 얼굴도 점점 닳아지고 있으며 정(情)도 사라지고 기운도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점점 사라져가고 변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고향마을. 이 고향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 마동욱이 추구하는 사진이다.


하여 마동욱의 고향 사진은 역사가 되고 있다. 흘러가는 그러나 영원히 기억될 우리들 고향의 역사이다. 고향을 가진 이들에게 추억이 되고 아픔이 되고 그리움이 역사가 되고 있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이 더욱 소중한 것은, 그 전통의 마을이 사라질 지도 모르는 현대사의 전환점에서 남도의 고향마을의 30여년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 훗날 전설처럼 회자될 우리의 ‘고향’이 사진가 마동욱에 의해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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