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사진부문 두 번째 사진가인 한정식선생의 ‘고요’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6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4월14일 개막되어 8월6일 막을 내리는 전시인데, 4개월에 가까운 긴 전시라 미루다보면 놓치기 십상이다.

나 역시 첫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여 전시도 보고 취재를 했지만, 미루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무더운 쪽방에서 멍 때리다, 우연히 눈에 띈 한정식선생의 사진집을 보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아이쿠! 전시 끝난 것 아이가?”싶었는데, 아직 10여일 남아 부랴부랴 서두르게 되었다.






한정식선생하면 사진가는 물론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다 아는 사진가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행여 모르는 간첩이라도 있을까하여 몇 자 적는다.

한 선생은 70년대 ‘나무’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의 ‘고요’ 연작에 이르기까지 오 십 여년을 사진의 추상성을 물고 늘어지신 분이다.

물론 초창기의 ‘북촌’이나 ‘흔적’등의 사실적인 기록 작업도 있으나 그건 선생이 가고자했던 명상의 세계를 향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초창기에는 임응식선생이 주도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쏠려 다니기도 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선생은 사진가 이전에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자이고 이론가였기에, 한국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켜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그래서 뜬 구름 잡는 것 같아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던 순수사진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에 열거한 이유보다 작가의 인간적 심성이나 종교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생의 이름자에도 고요할 정“靜”자가 들어 있지만, 가히 스님 못지않게 불가와의 인연도 깊다.

시적 감수성과 불가의 초월적인 명상세계가 합일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사진세계를 이룩한 것이다.

이게 한국적 사진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일세기 전에 한국을 방문한 베버신부가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렀겠는가.






오래전부터 미국의 형식주의 작가들인 ‘폴 스트렌드’, ‘아론 스시킨드’, ‘에드워드 웨스턴, ‘마이너 화이트’로 이어지는

추상사진의 계보가  이어져왔지만, 한정식 선생의 ‘고요’연작은 철학적인 작가의 사색이 집약된 형식주의라

가장 한국적이며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한정식선생의 작품세계는 무엇보다도 한국적 색깔을 찾아내어 한정식선생 고유의 시각언어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사물이 부유하는 느낌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돌아간다는 무위의 사상을 일 깨우게도 했다.

생성이 소멸을 부르고, 소멸은 또 다시 생성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 속에 살아가는 자연의 엄정한 법칙을 말이다.

욕망으로 뒤 덮인 세상을 치유하려면 ‘고요’ 즉 적정 적멸로 치닫는 명상뿐일 게다.






작가가 ‘풍경’ 사진집에 적은 서문 한 자락에서 선생의 속내를 읽어 보자.

‘나는 대상을 한 번도 대상 자체의 실체로 파악해 본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나무는 대나무가 아니었고,

발은 발이 아니었고, 풍경은 풍경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물의 형상성이 아닌 묵언이며 진리라는 것이다.

또 ‘사진 산책’에서는 경주의 무덤을 두고 “스치던 바람결은 여기 묻힌 선인들의 숨결이 아닐까.

경주는 허무이자 초현실이다”고 적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들은 1980년대부터 작업해 온 ‘나무’, ‘발’, ‘풍경론’을 비롯하여

‘고요’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작 100여점이 전시된다.

한국 고유의 미와 동양철학에 기인한 ‘한국적 형식주의 사진의 기틀을 다진 작품들이다.

선생께서 본 사물과 풍경들은 사진의 특성인 구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느낌만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난, 이렇게 느꼈다. “아! 이게 선(禪)의 경지로구나”

아무런 말이 없는 사물에게서 받는 깨달음은 마치 스님의 죽비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시간도 빛도 소리도 멈춘 채 오로지 고요의 세계로 안내하는 한정식선생의 사진에서 진리를 깨우치고,

이 지긋지긋한 무더위를 말끔히 날리기 바란다.






그리고 같은 날 개막된 건축가 윤승중씨의 ’문장을 그리다‘전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데,
두 전시 모두 8월6일 막을 내린다. 관람료 2,000원으로 마음의 피서를 즐겨보자.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들은 4월14일 정오무렵 가진 기자회견장 모습이다-






















앙드레 케르테츠展 / André Kertész / photography
2017_0609 ▶ 2017_0903 / 월요일 휴관



앙드레 케르테츠_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Mondrian's Glasses and Pip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6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성곡미술관

협력 / 프랑스문화부_주드폼 국립미술관_디크로마 포토그라피


도슨트 / 02:00pm, 04:00pm / '문화가 있는 날'은 07:00pm 추가 진행


관람료

성인(만 19~64세) 10,000원 / 청소년(만 13~18세) 8,000원

어린이(만 4~12세),국가유공자,장애인,만 65세 이상 6,000원

단체 20인 이상 20% 할인 / 만 4세 미만 어린이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주 수요일)_10:00am~08:00pm*

전시종료 30분전 매표 및 입장 마감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성곡미술관은 여름특별전으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1894-1985)의 사진전을 개최한다. 케르테츠는 70여 년의 오랜 활동 기간 동안 부다페스트, 파리, 뉴욕을 옮겨다니며 작품 세계를 펼쳤다. 그는 사조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을 통해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솔직한 감성을 자유롭게 담아냈다. ● 독학으로 사진을 익힌 케르테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자신의 작업원칙에 충실했으며, 나아가 사진매체의 잠재적 표현 가능성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속, 정확한 카메라를 통해 일상의 풍경을 치밀한 화면 구성과 흑백의 농담으로 더 깊고, 세밀하게 담아내었다. 케르테츠는 어떤 사조나 그룹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같은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때로는 그들을 앞서나가는 혁신적인 작업을 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우리가 해온 것들은 모두 그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라는 말로 칭송했던 케르테츠는 브라사이Brassaï,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등 사진의 거장들을 리드하며, 향년 91세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다. ● 이번 전시는 그가 일생에 걸쳐 작업한 189점의 작품들을 헝가리(1912-1925), 파리(1925-1936), 뉴욕 시기(1936-1985)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4년 필생의 작품들을 보존하겠다는 열망으로 10만 점의 원판 필름과 1만5천 점의 컬러 슬라이드 소장본을 프랑스 문화부에 기증했다. 본 전시는 그 원판으로 프린트한 모던 프린트로 구성되었다. ● "나는 빛으로 글을 쓴다." /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해석할 따름이다." / "좋은 사진은 우리 눈에만 뭔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두 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시각은 항상 이미지와 영혼 사이를 오간다." / "나는 오직 파리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파리에 갔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생활할 수 있는 약간의 돈이 있었고, 그리고 내겐 창조적 힘과 꿈이 있었다." (앙드레 케르테츠)


시기별 작품세계 - Ⅰ. 헝가리 시기(1912-1925) ● 1894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앙드레 케르테츠는 1912년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입한 후 마치 일기를 쓰듯 전원의 목가적 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특히 남동생 예뇌Jenö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은 작가의 모델로서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으로 징집된 그는 전장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는데, 드마라틱한 전투 장면보다는 군인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 이 시기부터 케르테츠 사진에는 휴머니즘적 감수성과 아방가르드적 실험성의 전조가 동시에 드러난다. 사진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자유로운 사고와 감성에서부터 발원하는 영감을 기반으로, 자신이 애정을 두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 풍경들을 시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다양한 방식을 모색했다.


앙드레 케르테츠_수영하는 사람 Swimmer Under Water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17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Ⅱ. 파리 시기(1925-1936) ● 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파리의 몽파르나스 구역에 자리를 잡은 케르테츠는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선구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한다. 특히, 만 레이Man Ray, 몬드리안Mondrian, 브랑쿠시Brancusi, 샤갈Chagall, 그리고 콜레트Colette와 짜라Tzara와 같은 예술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 케르테츠는 파리의 수많은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출판하였고, 주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필름과 포토Film und Foto』(1929) 국제전에 만 레이와 함께 파리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한다. 1933년 여성의 누드를 뒤틀리게 표현한 「왜곡」 시리즈를 내놓아 보다 전위적인 시각적 실험을 전개했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케르테츠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예술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모더니즘의 실험적 조형 언어인 '거울 유희', '반사', '그림자와 복제', '전면 구성', 혹은 '야경과 명암의 대비' 등을 자신의 표현기법으로 소화하여 작업에 반영함으로써, 자유로운 정신과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는 사진적 아방가르드의 주역이 된다.



앙드레 케르테츠_포크 The Fork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8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앙드레 케르테츠_깨진 원판 Broken Plat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9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왜곡 Distortions」(1933) 시리즈 ● 1930년 『뷔VU』 잡지가 카를로 림Carlo Rim 신임 편집장의 초상화를 앙드레 케르테츠에게 주문하자, 그는 편집장을 놀이동산의 '뒤틀린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촬영하여 괴물처럼 변형된 놀라운 이미지를 제작한다. 이어서 케르테츠는 1933년 도색 잡지 『미소Le Sourire』의 주문을 받아 한층 더 왜곡된 여성 누드 사진을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실험을 한발 더 전진시킨다. 이렇게 탄생한 「왜곡」 시리즈를 케르테츠는 '파리 시기'에 본격적으로 작업하였다. 하지만 이 실험적 작업은 이미 '헝가리 시기'부터 일종의 '광학적 변형' 또는 '그림자의 투영'에 관심을 두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하학적 구도가 돋보이며 빛을 효과적으로 다룬 「수영하는 사람」(1917)과 「포크」(1928)는 「왜곡」시리즈의 전조를 알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기이함과 기괴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성신체의 신비로움을 깊게 탐닉한 「왜곡」 시리즈는 이미지에 대한 케르테츠의 반 사실적, 반 묘사적 개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축 쳐진 목과 늘어난 발, 기괴하게 뒤틀린 이미지들은 곡선으로 이뤄진 루벤스Rubens의 풍만한 여성의 몸이나 앵그르Ingres의 지나치게 긴 척추를 가진 여인의 메아리로 보이기도 하고, 또는 벨머Bellmer의 절단되고 불구가 된 인형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도는 초현실주의가 추적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실험과도 맞닿아 있는데, 당시 케르테츠를 비롯해 만 레이, 브라사이, 카르티에 브레송과 같은 작가들 역시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실을 변형, 왜곡시키는 실험적 이미지들을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왜곡」 시리즈는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한참 뒤에 재조명되었는데, 뉴욕 시기의 후반부인 1976년에 이르러서야 12컷의 왜곡 이미지로 구성된 책이 출판되었다


앙드레 케르테츠_샹젤리제 Champs-Elysé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9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Ⅲ. 뉴욕 시기(1936-1985) ● 1936년 케르테츠는 사진 대행사 키스톤Keystone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계약은 1년 남짓 지속된 후 파기되었다.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 등 다수의 잡지사들이 케르테츠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사진은 대중적 이미지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37년 뉴욕의 PM갤러리와 1946년 시카고미술관에서의 전시회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의 그의 생활은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적은 수익, 연이은 실패, 「왜곡」 시리즈에 대한 몰이해와 외국인으로서의 장벽 등이 결국 그에게 우울증을 안겨주었다.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케르테츠는 1947년 『하우스 앤 가든House & Garden』지와의 작업을 위해 콘데 나스트Condé Nast 그룹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지만, 주로 인테리어 사진을 제공해주던 그는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할 수는 있었으나 상업적 작업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1961년 은퇴를 한다. ● 아울러 워싱턴 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5번가 12층 아파트에 정착한 1952년 이후 다시 작업의 열정을 되찾기 시작하는데, 아파트의 테라스에 머물며 망원렌즈의 줌을 이용하여 주변의 생활을 포착하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그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처럼 거리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시대적, 사회적 장면에 몰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광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특이한 행태와 풍경을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마치 '발견된 오브제'처럼 찾아내었다. 케르테츠에게 뉴욕은 자신의 다양한 생각들의 공명상자와도 같아서, 그 생각들을 사진이라는 메아리로 돌려주는 것뿐이었다. 직관적이고 암시적인 그의 스타일은 뉴욕의 황폐한 벽돌 담, 그림자나 철근, 외부 계단의 얽힘 속에 자신의 멜랑콜리를 주입하기에 충분했다. ● 케르테츠의 예술성은 삶의 후반에 들어서며 높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1959년 『인피니티Infinity』지가 게재한 케르테츠에 관한 기사는 그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이 전시를 계기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이 이어졌다. 또한 이즈음 그는 뉴욕으로 건너오기 전 파리에 남겨 두었던 원판 필름 상자를 찾아왔다.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자신의 작품들을 다시 접하게 된 케르테츠는 생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어서 발행한 두 권의 책 『나는 파리를 사랑한다J'aime Paris』(1974)와 『뉴욕에 대하여Of New York』(1976)는 케르테츠가 파리와 뉴욕의 서로 다른 문화 환경 속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준다. 1977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케르테츠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부인 엘리자벳이 전시 개막 직전에 사망한다. 이후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난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다수 제작한다. 그에 따르면 폴라로이드는 "작품의 내재적 요소를 보다 더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케츠테츠는 1985년 9월 28일 뉴욕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 케르테츠_길 잃은 구름 Lost Cloud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37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앙드레 케르테츠_우울한 튤립 Melancholic Tulip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39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라이프Life』지 편집장은 1937년 케르테츠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의 작품을 게재하기를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그의 이미지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케르테츠의 사진들은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고 문자 그대로의 뜻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중)성곡미술관


전시연계 특별강연회 (장소 / 성곡미술관)

1. 앙드레 케르테츠와 모더니즘 예술운동 | 6월 24일 (토) 2-4PM   -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2. 앙드레 케르테츠의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사진 | 7월 8일 (토) 2-4PM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3. 미국 현대사진에 대한 앙드레 케르테츠 | 7월 15일 (토) 2-4PM   -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4. 앙드레 케르테츠의 뉴욕시기의 사진 | 7월 29일 (토) 2-4PM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5. 포토저널리즘과 앙드레 케르테츠 | 8월 12일 (토) 2-4PM   - 이기명 (『사진예술』 발행인)

6. 스냅사진과 그 대가들 | 8월 19일 (토) 2-4PM   - 최연하 (사진평론가, 독립큐레이터)


* 당일 전시 입장권 소지자 강연회 무료 참석

* 이메일 info@sungkokmuseum.org 로 사전 신청가능

케르테츠 패스 30,000원 



Vol.20170610e | 앙드레 케르테츠展 / André Kertész / photography





지난 7일 정오 무렵, 박노철씨의 “폐광, 그 흔적을 묻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류가헌‘을 찾았다.
폐탄광의 환경오염을 오년 동안 기록한 전시였는데, 여지 것 붉은색의 황변현상은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하얀색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은 처음 보았다.

마치 물감을 뿌린 듯 아름답게 채색되어, 환경오염이 아름답게 보이는 아이러니도 엿보았다.

비록 폐광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만이 아니라 이미 환경오염은 지구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폐광의 환경오염을 안타까워하며 현장을 누비고 다닌 작가의 집념어린 노고가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태백은 산업 고도화에 발맞춰 수십 년 동안 자원개발을 통해 국민들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으나,

광부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주변 환경의 수질 및 토양에 심각한 오염현상을 유발하였다.

‘청정지역을 오염시키는 폐탄광 중금속 오염원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며 작가의 문제의식을 표출하기도 했다.

카드뮴, 비소 등 중금속에 오염된 폐탄광의 폐수는 물에 녹아 있는 탄산칼슘이 고체 상태로 석출되어

흰색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과, 엽록소 생성에 필요한 원소의 결핍으로 황변화현상이 발생한다는데,

흐르는 하천만이 아니라 지하수의 오염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작가는 환경오염을 고발하거나 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기록했으며,

이번 사진집 출판과 사진전도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환경오염을 개선하는 학술적 자료로서의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 했다.

박노철씨를 처음 만난 지는 20여 년 전 ‘동아국제사진전’ 태백 순회전 때, 이석필씨를 통해서다.

그 뒤 정선에서도 만난 적이 있으나, 세월의 흘러 그를 잊어버렸는데, 아직도 젊은 그대로였다.

지금은 ‘사협’ 태백지부장을 맡아, 자기 작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대개 공모전 위주의 사진을 선호하는 ‘사협’회원들을 제대로 된 사진가로 여기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작업에 열성인 작가가 있다는 것도 박노철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태백에는 탄광전문 사진가가 여럿 나왔다. 오래전에 찍은 주동호, 이석필씨를 비롯하여 김재영, 박종호씨,

그리고 이번에 전시를 연 박노철씨,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유명세를 떨친 박병문씨,

현역광부로서 탄광을 찍고 있는 전제훈씨 등 많은 탄광 전문가를 배출했다.

오래전에는 태백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모여 탄광에 대한 기획전도 열었다는데, 그 전시도 궁금했다.

태백은 작은 소도시지만, 사진 열기만은 뜨거운 지역이다.

전시를 관람하며 반가운 분들도 만났다. 작가를 인터뷰하러 온 ‘서울문화투데이’기자 정영신씨와

대전의 김은환씨, 그리고 90년도 초반 ‘사진집단 사실’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인들도 여럿 만났다.

이석필씨와 김문호씨,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김봉규씨를 한꺼번에 만났다.


이석필씨는 그동안 찍은 수많은 필름들을 모조리 불태웠다는데, 왜 그랬을까?

그렇다고 사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풍수지리에 관한 사진에 전념한단다.

좌우지간 그의 삶은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지만, 깨우칠 점도 많은 사람이다.

지붕 위에 깃대만 꽂으면 영락없는 도사인데, 상대방의 사주팔자까지 꽤고있다. 


다들, 흐르는 세월 따라 늙어가고 있지만,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진가들이다.

늦은 오찬을 함께 하고 나오는 길에 사진가 엄상빈씨도 만나는 반가운 하루였다.






이 전시는 서울 ‘류가헌’ 전시에 이어 7월15일부터 18일까지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도 열린다.

또한 ‘눈빛출판사’에서 오늘의 다큐5집’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 박노철 사진집(25,000원)도 펴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사진가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신이 오는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 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개인전 ‘Last paradise-Adam & Eve (라스트 파라다이스 –아담과 이브)’를 개최한다.

이상신의 ‘라스트 파라다이스-아담과 이브’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자연 훼손과 환경오염 등이 인간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경각심 어린 눈으로 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야기하고 싶은 이미지를 설치작업으로 구성한 이상신의 ‘라스트 파라다이스 – 아담과 이브’는 원시 자연 그대로인 장소에 ‘아담과 이브’로 명명된 마네킹 오브제를 설치해 우리에게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지구의 ‘어머니 산’인 히말라야에서 시작하여 필리핀, 일본, 한국 등에서 5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사진가 이상신은 8년간의 신문사 사진기자 생활을 비롯 지난 25년 동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몰입하며 순수사진과 광고사진 작업에 주력해 왔다.  


국내외 유명 작품전에서 명망을 떨치며, 현재 다수의 기업들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웃도어 사진 작품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중견 작가이다. 
아웃도어 광고 작가 활동을 통해 오랜 기간 자연과 벗하면서 느낀 경외감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이번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났다.  
또한 이상신 작가는 훤칠한 키와 지성미 넘치는 용모로 아웃도어 모델로 활동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있다.

지난 2014년 이상신은 ‘AFoCo Photography Exhibition/아시아 산림재해와 희망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로 참가했다.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라면 동시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메시지를 사진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진가이다.  






다음은 사진가 이상신의 ‘Last Paradise-Adam & Eve’ 에 대한 작업 노트.

아담과 이브는 현대 문명권에서 인류의 시조로 통한다. 작가는 아담과 이브를 인류 최초의 인물로 인식한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논쟁을 넘어선 작가의 직관에서 비롯한 인식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인 아담과 이브는, 그래서 지금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 즉 우리 자신을 대변한다.  나의 작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창세기 아담과 이브가 태어나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 수십억 명이 아름다운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과학과 문명의 빠른 성장을 이루었으며, 현재 지구의 최상위 지배자가 되었다. 인간은 인류의 필요와 욕망을 위해 자연을 종속시켰고, 이러한 행위의 지속은 미래에 자연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명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다.

지구 !
(아직까지는) 은하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로 알려져 있다.
이 별은 영원할 것인가? 우리들은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무분별한 개발을 묵인해도 괜찮은가? 시간이 지나면 상처 입은 지구는 자연치유가 될 것인가?

인간 !
생선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이 21세기, 거대 도시라는 문명의 꽃을 피워냈다. 메트로폴리탄은 인간 진화의 결정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넓어질수록 그만큼 자연이 훼손된 다는 것을 지구 환경은 보여주고 있다.

1987년 유엔의 브룬트란트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지속 가능한 발전’은 인류문명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게 된다는 인간의 신념에 도전을 받게 된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체크해야 할 키워드다.

‘선배’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후배들에게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의무가 있다.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경제 발전이나 더 멋진 메트로폴리탄을 남겨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 없이 남겨주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마냥 훼손하고 소진하고 있다. 이 아파하는 지구에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시점인 것 같아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은 인공 구조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장소를 찾아 ‘아담과 이브’로 명명된 오브제인 마네킹을 그 현장에 설치하고 촬영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네킹 뒤의 흰색 천은 태어나 살다 보면 최소한의 자연훼손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최대한 적게 훼손시키자는 의미로 1평 가까운 천을 설치하였다.

이 작업의 시작은 지구의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히말라야에서 시작하였으며, 일본, 필리핀 등지의 산과 바다,계곡 등에서 작업을 진행하였고, 작업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이루어졌다.


[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이동식이 살해하여 찍은사진, 당시 보도된 일간지에서 스크랩했다




▲조문호 사진가



사진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 아마추어 사진 인들이 전체 사진가들 얼굴에 똥칠시킨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공모전에만 집착하여 상장 쪼가리 몇 장 받고나면 자기도취에 빠져 안하무인이 되어버린다. 취미로 즐기며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야 나무랄 일은 못된다. 그러나 자연을 훼손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등 온갖 부도덕한 짓거리로 말썽을 일으켜 문제다,

반세기 동안 공모전 수상 경력을, 한 사진단체의 입회 자격으로 삼은 것이 원인인데, 그 폐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공모전 입회점수제를 폐지하라며 목청을 높여왔으나, 여지 것 반복되고 있으니, 어쩌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부정부패나 불협화음이 공모전에서 비롯되지만, 돈과 모든 이권이 공모전에 걸려 있으니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 폐해는 사람을 죽여 사진을 찍는 이동식 같은 살인마도 탄생시켰다.

이동식이 죽음에 집착한 동기도 공모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차례 공모전에 출품하여 고배를 마셔오다 우연히 죽어가는 비참한 닭을 촬영해 출품했는데, 그게 은상을 받은 게 사건의 발단이다. 그래서 끔찍하고 자극적인 사진이 예술사진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이 굳으며 엽기적인 살인마로 변한 것이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한 단체가 구성되려면 구성원의 인성이나 자질은 물론, 교육이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그 살인 사건도 창피하다고 쉬쉬할 것이라, 입회규정에 명시된 공모전 수상경력을 폐지하여 회원들의 자질이나 사진교육에 치중했더라면, 오늘처럼 작가 없는 작가단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작가란 허울 좋은 이름에 순수한 아마추어 사진 인들이 공모전을 추종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조직의 규모가 공룡집단처럼 비대해졌다, 이젠 한 술 더 떠 예비회원이란 이름으로 선모집도 한단다. 이게 작가증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전국에 깔린 조직들의 지역 이기주의 또한 보통문제가 아니다.

몇 일 전 속초 청호동에 ‘아트 플렛폼 갯배’란 갤러리가 개관되어 엄상빈씨의 ‘아바이 마을 사람들’ 초대전이 열렸는데, 지역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항의성 민원이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지역 사진가를 두고 왜 외부 사진가를 끌어들여 개관전을 하느냐?, 지원액도 지역 사진인들과 차별하느냐?‘는 내용이라는데, 사진이면 다 같은 사진이냐?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심보인지 모르지만, 제발 주제 파악 좀 하라. 이런 일들이 지방마다 비일비재하다.

앞서 이동식사건을 새삼 언급한 것도 그 희대의 살인마가 그 사진단체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동식씨는 서울 가락동에서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모델촬영대회를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주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목 맨 모습이나, 밧줄에 묶여 칼에 찔려 죽는 모습 등 비참하게 죽어가는 잔인한 사진을 연출해 찍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실감나는 사진을 얻기 위해 마침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이동식은 이발관 면도사였던 김경희(24)양을 모델 시켜 주겠다며 산으로 유인해, 청산가리를 담은 캡슐을 감기약으로 속여 먹였다고 한다. 당시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한 그가 찍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진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귀가 막히는 것은, 그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올림픽을 앞 둔 시점이라 나라 망신시킨다며 수사를 중단시킨 채, 그냥 덮어 버렸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담당 수사관이 뒤늦게 밝힌 바에 따르면 전처를 비롯하여 21명이나 되는 또 다른 여성 실종자에 대한 살해자백도 받아 냈다고 한다. 전처의 시신이 묻힌 자리를 파는 순간, 수사를 종결하라는 지시에 막을 내렸다니, 이제 죽은 자에게 더 물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86년도 사형이 집행되며 그 살인사건은 모두에게 잊혀 졌지만, 난 부끄러워 잊을 수가 없었다. 정부에서 입을 막았고, 사진 계에서도 입을 닫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사진계 원로학자를 만난 사석에서 그 이야기도 사진사에 남겨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치 없는 그런 일은 입에 담지도 말라는 것이다. 치욕의 사진사는 역사가 아니던가? 꼭 남겨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 그 것은 예술이다. 나는 예술사진을 찍은 것이다.“라는 한 사이코의 괘변이 아직도 머리를 짓누른다.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지, 어중간하게 미치면 사람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이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압수된 사진들과 증거자료를 설명하는 이동식.



어제는 샤진가 하재은씨에 이어 엄상빈씨가 병문안을 오셨다,
하재은씨는 세계 시장을 기록하는 잦은 해외 나들이와 국내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으로 바쁘고,
엄상빈씨는 6월15부터 7월31일까지 속초 청호동의 ‘아트 플렛폼 갯배’의 ‘아바이 마을 사람들’ 초대전 준비로 바쁘다,
더 이상 바쁜 분들에게 민폐 ‘끼치는 병원생활을 빨리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엄상빈, 정영신씨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밥 먹다 어이없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속초시에서 실향민들이 사는 청호동에 갤러리를 만들어, 개관전으로 엄상빈씨를 초대했는데,
속초에 거주하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속초시에 민원을 넣어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속초시 담당자의 표현으로는 '지역 사진인들의 반란'이란다.  

지역 사진가를 두고 왜 외부 사진가를 끌어들여 개관전을 하느냐?, 지원액도 지역 사진인들과 차별하느냐?‘는
내용이라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왜 주제 파악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이면 다 같은 사진이냐?

지역 아마추어 동아리 전시와 프로 사진가의 기획전도 구분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다. 

 

갤러리를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놀이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가 기획을 하던, 실향민 지역 개관전이라면 청호동의 역사적 기록사진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엄상빈씨 만큼 긴 세월동안 실향민을 기록한 사람이 있는가?

사진이라고는, 고작 옛날 이발관 그림 비슷한 공모전 사진이나 찍어오는 주제에... 


몇 년 전, 정선에서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무식하니 뻔뻔스러운 것도 몰랐다.
아직까지 지역 이기주의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들이 있다는 현실이 사진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산다지만, 쪽 팔리지도 않냐? 제발 사진 망신 그만 시켜라.



'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금요일은 단오제’ 촬영하러 강릉 가야했다.
사진가 성남훈씨가 기획한 ‘100개의 카메라, 100개의 시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국관광공사' 프로젝트로 일 년 동안 계절별로 20명씩, 80명의 사진가가 투입되고,
동영상 20명 등 10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강원도 홍보기록’이다.
난, 포토그래퍼 10팀으로 이규철씨와 조가 되어 ‘강릉단오제’를 찍어야 했다.
단오제는 토요일부터 시작되지만, 하루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3시경 낙원동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느긋하게 어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무의도를 예술 섬으로 만들려고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와
경기민요 전수자인 예당문화원 조수빈원장이 찾아오신 것이다.
어제는 김도이씨가 오더니, 요즘 밥 사주겠다는 분이 많아 즐겁다. 

 





시원한 대구탕으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사창가에 올라가 한 잔하자는 것이다.
팔년도 없는데 사창가는 무슨 사창가냐고 했더니,
사진을 창작하는 집이란다. 꿈보다 해몽이 그럴듯했다.
그러면서 가게에 들려 믹스커피 한 박스를 사왔다.
“우메! 내가 믹스커피 중독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좁은 방에서 커피마시며,
시시껄렁한 한담을 나누었다. 좀 애로틱한...
듣기가 좀 거시기한지 조수빈씨는 가곡 ‘비목’을
민요로 편곡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아 난감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차피 사창가에서 일 치룰 것 아니면 빨리 일어나야 했다.
강릉 갈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낙원동에서 이규철씨 차로 서너 시간 달려 강릉에 도착했다.
현장 부근에 근사한 여관 잡아두고, 근사한 식당에서 한 잔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이규철씨가 홀 애비로 지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독거의 편한 점도 있지만, 그 외로운 밤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촬영스케줄이 잘 못 짜여 있었다.
우린 정해진 일정 따라 움직였지만,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볼거리가
대부분 다음 날부터 잡혀 있었다.
강릉단오와는 무관한 ‘동래야유’ 탈춤과 초등생들의 ‘강릉관노가면극’이 고작이었다.
하루 더 머물면 되겠으나, 일요일 정오에 약속이 있어 밤늦게 돌아와야 했다.
정해진 소재가 없어 보이는 대로 찍었는데. 마음이 조급하니 보이지도 않았다.

찍힌 사람들에게 동의서를 받기 위해 ‘관광공사’직원이 따라다녔으나,
그가 무료할 정도였다.






돌아다니다 공연준비 중인 아리마당에 들려 반가운 분도 만났다.
삼척엠비시 황지웅 피디가 취재 나와 있었다.
동자동에 한 번 가겠다고 벼루다 아직 못 갔다며,
오래 전 서울역과 영등포 홈리스를 취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의 촬영모습이나 프로필사진도 몇 장씩 찍어야해,
이규철씨의 촬영모습을 관찰하였는데,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삼각대는 물론 드론까지 챙겨왔더라.
다행히 이규철씨가 하루 더 체류하여 보충하겠다기에 한 시름 놓고 돌아왔다.






작년에는 20년 전에 찍은 무당들을 만나 사진을 전해 주지 않았던가.
굿 보러 일부러 찾아 갔었는데, 이번엔 목전에 두고도 그냥 와야 했다.
세상만사 다 연이 있는 것 같았다.
강원도 홍보기록을 위해 소지라도 한 장 올려야하는데...

사진, 글 / 조문호

단오제 사진은 의뢰 받은 사진이라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광부로 살았던 아버지의 흔적을 20여 년 간 기록해 온 사진가 박병문씨의 ‘선탄부’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지하 갱도에서 일하는 광부가아니라, 늘 주인공에 가려왔던 ‘선탄부’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인명사고로 부정 탄다며, 여성을 금기시했던 탄광이었지만, 

남편 잃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탄을 고르는 ‘선탄부’였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다.
입을 가린 분진 마스크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그들만의 검은 공간은 마치 지옥도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침울하게 했다.

꿀맛의 휴식시간을 즐기며 잠자거나 나른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부터

벨트 따라 굴러가는 탄을 고르는 손길이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는 등,

삶의 진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진들이 오래된 흑백영화 돌아가듯 전시장에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분진마스크를 쓴 채 정면으로 바라 본 선탄부의 강한 눈빛이 시선을 묶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사는 게 이런 것이야. 집에 가면 자식들이 기다려!‘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메라로 그녀의 얼굴을 잘라내었다.


아마 힘든 순간순간마다 아른거리는 자식들 생각에 모든 것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역사는 어머니의 역사다.

표 나지 않는 집안일을 다 안으시며, 묵묵히 버텨 온 어머니들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이 가능했을까.

그 숭고한 진리를 선탄부의 눈길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난, 장막에 가려진 삶이나 소외된 삶의 기록이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생각한다.

박병문의 사진은 아버지의 흔적에서 비롯되어 다큐멘터리 사진 최고의 덕목을 건져 올린 셈이다.






지난 20일 정오 무렵 들렸는데, 전시장에는 사진가 박병문씨와 아내 손정애씨가 손님을 맞았고,

사무실에는 김난진 관장이 일하고 있었다. 마침 점심때라 밥 먹으러가자는데 좀 난감했다.

집에서 빵을 먹고 나왔기 때문이다. 김관장이 ‘송죽 죽집‘을 소개해 이야기나 들을까하고 따라 나섰다.






박병문씨 말로는 어제 원로 사진가 윤주영선생께서 오셨는데,

사진을 둘러보다, 선탄부들이 사진 보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 사진은 선생께서 찍은 사진이라 말씀하셨단다.

아마 박병문씨가 아버지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을 무렵, 윤주영 선생께서도 다녀가셨던 모양이었다.

죽 집에 가서는 전복죽을 시켜주었다. 그것도 짜장면 세 그릇 값에 해당하는 죽을...
너무 황송해 “이 보약거튼 죽 묵고 거시기 근들거리마 우짜지 예” 그랬더니,

손여사의 눈빛은 “그건 니 사정이야”하는 것 같았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눈빛출판사'에서 박병문 네 번째 사진집 선탄부가 나왔다.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