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사진부문 두 번째 사진가인 한정식선생의 ‘고요’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6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4월14일 개막되어 8월6일 막을 내리는 전시인데, 4개월에 가까운 긴 전시라 미루다보면 놓치기 십상이다.

나 역시 첫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여 전시도 보고 취재를 했지만, 미루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무더운 쪽방에서 멍 때리다, 우연히 눈에 띈 한정식선생의 사진집을 보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아이쿠! 전시 끝난 것 아이가?”싶었는데, 아직 10여일 남아 부랴부랴 서두르게 되었다.






한정식선생하면 사진가는 물론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다 아는 사진가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행여 모르는 간첩이라도 있을까하여 몇 자 적는다.

한 선생은 70년대 ‘나무’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의 ‘고요’ 연작에 이르기까지 오 십 여년을 사진의 추상성을 물고 늘어지신 분이다.

물론 초창기의 ‘북촌’이나 ‘흔적’등의 사실적인 기록 작업도 있으나 그건 선생이 가고자했던 명상의 세계를 향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초창기에는 임응식선생이 주도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쏠려 다니기도 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선생은 사진가 이전에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자이고 이론가였기에, 한국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켜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그래서 뜬 구름 잡는 것 같아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던 순수사진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에 열거한 이유보다 작가의 인간적 심성이나 종교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생의 이름자에도 고요할 정“靜”자가 들어 있지만, 가히 스님 못지않게 불가와의 인연도 깊다.

시적 감수성과 불가의 초월적인 명상세계가 합일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사진세계를 이룩한 것이다.

이게 한국적 사진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일세기 전에 한국을 방문한 베버신부가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렀겠는가.






오래전부터 미국의 형식주의 작가들인 ‘폴 스트렌드’, ‘아론 스시킨드’, ‘에드워드 웨스턴, ‘마이너 화이트’로 이어지는

추상사진의 계보가  이어져왔지만, 한정식 선생의 ‘고요’연작은 철학적인 작가의 사색이 집약된 형식주의라

가장 한국적이며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한정식선생의 작품세계는 무엇보다도 한국적 색깔을 찾아내어 한정식선생 고유의 시각언어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사물이 부유하는 느낌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돌아간다는 무위의 사상을 일 깨우게도 했다.

생성이 소멸을 부르고, 소멸은 또 다시 생성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 속에 살아가는 자연의 엄정한 법칙을 말이다.

욕망으로 뒤 덮인 세상을 치유하려면 ‘고요’ 즉 적정 적멸로 치닫는 명상뿐일 게다.






작가가 ‘풍경’ 사진집에 적은 서문 한 자락에서 선생의 속내를 읽어 보자.

‘나는 대상을 한 번도 대상 자체의 실체로 파악해 본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나무는 대나무가 아니었고,

발은 발이 아니었고, 풍경은 풍경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물의 형상성이 아닌 묵언이며 진리라는 것이다.

또 ‘사진 산책’에서는 경주의 무덤을 두고 “스치던 바람결은 여기 묻힌 선인들의 숨결이 아닐까.

경주는 허무이자 초현실이다”고 적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들은 1980년대부터 작업해 온 ‘나무’, ‘발’, ‘풍경론’을 비롯하여

‘고요’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작 100여점이 전시된다.

한국 고유의 미와 동양철학에 기인한 ‘한국적 형식주의 사진의 기틀을 다진 작품들이다.

선생께서 본 사물과 풍경들은 사진의 특성인 구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느낌만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난, 이렇게 느꼈다. “아! 이게 선(禪)의 경지로구나”

아무런 말이 없는 사물에게서 받는 깨달음은 마치 스님의 죽비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시간도 빛도 소리도 멈춘 채 오로지 고요의 세계로 안내하는 한정식선생의 사진에서 진리를 깨우치고,

이 지긋지긋한 무더위를 말끔히 날리기 바란다.






그리고 같은 날 개막된 건축가 윤승중씨의 ’문장을 그리다‘전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데,
두 전시 모두 8월6일 막을 내린다. 관람료 2,000원으로 마음의 피서를 즐겨보자.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들은 4월14일 정오무렵 가진 기자회견장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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