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사진상 부정 심사 등 권력놀음에 빠진 사진계 보란 듯…
ㆍ12인의 작가론 담은 책 출간

 

일본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를 기록한 ‘가부키초’. 알렙 제공 ⓒ권철



이광수(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는 2015년 갤러리 브레송 관장 김남진에게 의뢰를 받는다. “사진을 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 50대 이상의 사진가로 장르를 불문하고, 아무런 연줄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작업하지만 수준이 높은 사진가를 찾아내자”는 것이다. 김남진은 자신은 갤러리 공간을 내어줄 테니, 이광수에게는 작가론을 쓰라고 했다. 이광수는 2016년 1월부터 매달 200자 원고지 50장짜리 작가론을 써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그 결과물을 <카메라는 칼이다>(알렙)에 실었다.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는 2015년 제2회 최민식상 심사 부정 사건과도 이어진다. 이광수는 부정 심사 의혹을 앞장서 제기한 인물이다. 이광수는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어 출품하고, 그것을 심사하고, 상을 주고받고 하는 따위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임을 넘어 예술을 해치고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다. 그것은 다만 권력을 만드는 일일 뿐, 예술의 속성과 하등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꼭 그것을 전쟁 치르듯 생산해 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고, 라벨을 붙여야 하고, 등급을 매겨야 하는가”라고도 했다.

 

노숙자103-1_1’ 알렙 제공 ⓒ조문호

 

 

이광수가 보기에 한국 사진계는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남을 재단하고, 군림하고 나눠 주고 나눠 먹는 꼴”을 보이는 곳이다. ‘사진인을 찾아서’는 사진계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취지였다. 라벨과 등급을 뛰어넘으려는 이 프로젝트는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애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멋지게 놀고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라고 이광수는 말한다.

이런 취지와 정의에 따라 뽑은 사진작가는 12명이다. 이광수는 기록성을 중시하는 작가로 권철·신동필·최영진·강정효를, 예술성을 중시하는 작가로 고정남·이수철을 꼽는다. 그 사이, 즉 기록하되 예술적 표현력을 상당히 고려하는 작가로 조문호·김보섭·문진우·이재갑·이영욱을 들었다.

 
 


권철은 프로젝트 취지에 걸맞은 작가다. 일본 도쿄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를 18년 동안 기록한 <가부키초>로 명성을 얻은 그는 느닷없이 귀국한 뒤 제주에 정착했다. “세상을 겪고, 기록하고, 전시하고, 행위하는” 사진가다. 권철은 트럭으로 풀빵 장사를 한다. 거리가 전시장이다. 이호테우 해변과 해녀를 담은 ‘이호테우’전을 해녀 탈의장에서 열었다. 일본에서 촬영한 야스쿠니 사진들은 길거리 전시를 한 후 모두 불태웠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다. 이광수는 “그는 이제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사진가”라고 말한다.

두메산골 사람, 노숙인, 성매매 종사자 등 여러 인물 사진을 찍은 조문호는 “오로지 사진과 대상과 소통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는 작가이고, 그의 작업은 “사람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의 실존적 행위”라고 평한다. 이수철은 “사실의 재현이든, 허구의 표현이든 예술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하여 전할 것인가”를 잣대로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다.

이광수는 ‘카메라는 칼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칼은 조폭의 칼이기도, 조각가의 칼이기도 하다. 칼은 실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광수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사진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품기도 하고, 어떤 사진가는 예술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한다.”

한국 최초의 사진 작가론을 표방하는 책은 사진가가 자신의 칼을 어떤 예술 철학으로,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2018.3.5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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