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6시, ‘리얼 포토’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준비모임이

인사동 ‘푸른별 이야기‘에서 있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옛 사우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더구나 대전에 은둔하는 이석필씨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 날은 쪽방 관리인 정씨가 같이 갈 때가 있다며 저녁식사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어 방문을 열어보니 파리똥이 미끄러질 정도로 내 구두를 빤짝 빤짝 닦아 놓았다.

정씨가 빙그레 웃으며 ‘옛 친구 만나는데 구두가 더러워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난, 빤짝거리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아 여지 것 아무리 더러워도 구두 닦는 일은 없었는데,

닦아놓으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마 정씨는 군대 내무반시절 선임들 구두깨나 닦아준 것 같았다.

 

초라한 행색에 구두만 반짝거렸으나, 서둘러 나갔다.

 인사동에서 약속 있을 때마다 늦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라 늦장부리다 매번 시간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10분이나 빨랐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도 없어 약속장소가 바뀐 줄 알고 술집에서 나와버렸다.

김문호씨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뭔가 잘 못된 것 같아 돌아서려는데,

좁은 벽치기 골목에서 김문호씨와 이석필씨가 등장했다.

 

김문호씨야 전시장에서 가끔 만나지만, 이석필씨는 만난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술집에 먼저 자리 잡았는데, 이석필씨는 비슷한 연배지만 아들처럼 젊어보였다.

이 친구의 건강비결은 술을 마시지 않고 밥을 잘 먹는데 있지만, 본래 야생의 체질이다.

야생화 찍으려 산을 숱하게 돌아다녔는데,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며

물을 더럽힌다고 비누는 물론 세수도 잘하지 않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질이 생겨 그런지 비누를 사용한다고 했다.

 

막걸리와 소주에다 김치찌게를 시켜 한 잔하고 있으니 안해룡씨가 나타났다.

김봉규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일이 있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네 사람이 만나 한 잔하는 자리가 오붓하기는 했으나, 왠지 씁쓸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는데,

기념전을 어떤 식으로 치룰 건지 의논하는 자리였으나,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작업을 소환하느냐 아니면 지금 작업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압축되었는데,

그야 당연히 지금의 작업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떤 공동주제를 내세워 짧은 시일이지만 집중적으로 작업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왜 중요한 모임에 다들 참석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면 모를까 별로 관심 없는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결론도 얻지 못한 체 케케묵은 이야기나 근간의 사진계 이야기를 안주로 술만 마시다

대전까지 가야 할 이석필씨가 먼저 일어났다.

 

술값 품앗이로 돈을 냈더니, 안해룡씨가 슬쩍 돌려주었다. 고맙긴 하나 마음은 편치 않더라.

소주 한 병이면 주량보다 좀 과하게 마셨으나, 그냥 집에 가기는 싫었다.

지척에 있는 ‘유목민’에 들렸더니, 전활철씨가 반겨주더라.

술보다는 시원한 콜라 한 잔 얻어 마시고 녹번동 가는 3호선을 탔다.

언제나 술이 취하면 동자동으로 가지 않고 녹번동 가는 이유는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서다.

다만 마스크 쓰고 지하철 타는 시간이 길어 곤욕스럽기는 하나 정영신씨 만나는 기쁨도 크다.

 

난,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지고, 쪽팔리는 것도 잘 모른다.

술 값 돌려받은 돈으로 꽃집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산 것이다.

정영신씨에게 알랑방귀 뀌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가 너무 섹시해서다.

초라한 늙은이가 꽃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문을 들어서니 세수하던 정영신씨 표정에 미소가 감도는 걸 보니, 쪽팔렸지만 잘 했다싶다.

 

오늘의 결론은 안 하고 입 닦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고,

하려면 의미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촛불이 광장을 뒤덮을 때마다 앞장서서 축제의 마당으로 이끄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된 ‘광화문미술행동’이다.



‘시민나팔부대’가 나팔과 풍물로 신명을 끌어 낸다면,
‘광화문미술행동’은 예술 행위로 집회의 격을 높이며 시민 행동에 자긍심을 심어준다.



시민들에게 찍어 주는 판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역사적 사료로 자리 할 것이고,

예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다.




3년 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시작된 ‘광화문미술행동’은 참가 작가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정치적 논쟁만 터지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 사태가 마무리되면 흩어진다.

회비도 회칙도 없는 자생조직이다.



핵심적인 일은 판화가 김준권씨와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맡지만.
80년대 민주항쟁 시절부터 온 몸으로 싸워 온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었다.




1980년대 미술을 통해 현실에 저항해 온 노력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괘를 같이한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민중미술은 역동적이라 온 몸에 피가 솟구친다.
삶의 현실과 직결된 그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심미적 작품과는 격이 다르다.




지난 12일 열린 제9차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평소보다 빨리 나갔다.
광화문과는 달리 장소가 협소하여 군중 속에 파묻히면 찿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전1시 무렵 서초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가는데, 뜻 밖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우리들의 영원한 우상 방동규선생께서 사모님과 계셨는데, 첫 일진이 좋았다.

며칠 전 과도한 중량의 역도를 하다 근육이 파열되었다는 걱정스러운 말씀도 하셨다.


정영신 사진


방동규선생은 팔순을 넘긴 연세에도 아직까지 일하러 다니며 근육운동까지 하는 강골이시다.

백기환, 황석영씨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구라로 꼽히는 협객이다.
존경하는 선생을 촛불현장에서 만났는데, 어찌 인증 샷이 없을소냐.




서초 사거리 중앙에는 ‘광화문미술행동’ 팀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붓글 퍼포먼스를 벌일 대형 현수막 외에도 많은 깃발과 그림 현수막까지 준비해 두었다.

김준권, 김진하, 김 구, 김 억, 이광군, 송용민, 김영배씨가 이른 시간 부터 나와 있었고,

뒤이어 정복수, 김진열, 이흥덕, 김건희씨 등 많은 분들이 나타났다.



여지것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류연복씨는 진천에서 열린 개인전 때문에 나오지 못했지만,

장경호씨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살기에 다들 아파 누웠을까 걱정하더라.



참여 작가들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검찰개혁을 향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후통첩’, ‘악질검사 대청소’, ‘다음은 없다’ 등 다양한 글귀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독수리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경주 정비파씨의 판화를 바탕으로

김 구, 김진하, 송용민씨가 덧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림막 뒤편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니라 김진열 대학총장이 판화를 찍어주었다.

그 판화 작품들은 역사적 무게까지 더하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판화를 얻으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이 날 사진가들도 여럿 참여하였다.

정영신, 하형우, 양시영, 박윤호, 권 홍, 성유나, 임헌수, 김대희씨가 차례대로 나왔고,

뒤늦게는 전민조, 박옥수, 김문호씨도 나왔다. 다들 서초대첩의 종군기자들이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준비한 김밥 한 줄 얻어 먹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구씨 따라 갔더니, 다들 생맥주 집으로 들어갔다.

통풍에는 맥주가 쥐약이라 콜라나 마셨는데, 마침 김문호씨 연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가 김문호, 박윤호, 정영신, 하형우씨와 어울려 지난 주 식사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막걸리를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는데, 밥 값을 하형우씨가 계산해 버렸다.



덕분에 다른 분이 사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나니, 촛불광장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떨어져버렸다.

보조 건전지가 깡통이라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무기 없는 병사는 시체나 마찬가지다.

다음에는 기관총을 가져 올 각오였지만, 이 날이 최후통첩 보내는 마지막 집회가 아니던가?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함께한 동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눈도 어두운데다 귀 까지 어두워 핸드폰도 무용지물이었다.

인파를 헤집고 다니며 얼마나 헤맸는지, 진이 빠져 버렸다.

자리잡고 앉아 검찰개혁이나 외쳤으면 좋으련만, 돌아다니는 찍사의 팔자 아닌 습관을 어쩌랴!



최후통첩 날린 검찰개혁은 이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후통첩도 종료가 아니라 잠정중단으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납득할 만큼의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검찰이 저항하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에 이르기 까지 적폐청산의 길은 아직 멀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때까지 ‘광화문미술행동’은 함께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자리에 누워 뒤척인 긴 시간의 피로를 걷어내려 촛불 아닌 카메라를 잡았다.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지난 5일 오후3시 무렵, 지하철 서초역에 도착했다.




혼잡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으나,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태극기부대가 남용해 혐오감을 느껴 온 태극기를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로터리를 중앙으로 사방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전체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되지만,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어야하지만 협력할 ‘광화문미술행동’ 팀도 찿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밀려다니느라 자리 옮기기가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판화를 찍고 있는 김구씨를 찾았다.
판화 찍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신없었다.
한 쪽에 보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따라 들어가니, 서예 퍼포먼스는 이미 끝난 후였다.

강병인, 정고암선생께서 글을 쓴 모양인데, 주위에선 풍물패가 신명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글 써놓은 현수막에 드러누워 악을 써는 여자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손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난번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여기자 성추행 비판을 염두에 둔 해프닝인 것 같았다.
경찰도 손댈 수 없어 결국 여경들을 불러와 끌어냈다.




그 곳에서 반가운 분들을 줄줄이 만났다.
김진하씨를 비롯하여, 김진열. 류연복, 박윤호, 정영신, 이재민, 장경호씨를 현장에서 만났고,
또 다른 곳을 지나다 김재홍씨와 손기환씨를 만났다. 뒤늦게는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도 만났다.
페북에서 만나자고 한 기국서씨와 신윤택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곳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사진가 하형우씨를 만나 김문호씨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수철, 정영신, 박윤호씨 등 사진가 여럿명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



나오다보니 편의점 앞 탁자에 반가운 분이 앉아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정덕수시인이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류연복, 김이하, 김진열씨도 찾아왔다.



시골에서 온 정덕수씨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오기에
“오늘 집회서 받은 일당 받은 것 다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일당은 커녕, 일 제쳐두고 찿아 오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오로지 개검들 조지고 싶은 충정 하나로 돈 써가며 몰려 온 사람들이니까...




검찰개혁을 외치는 함성이 서초동 일대를 뒤 덮었다.
그 함성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며,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은 기라도 보태려 나왔으나, 오히려 기를 받아 힘이 흘러 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세가 하늘을 찌르니, 어찌 힘이 솟지 않겠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조국장관 수호에는 이견도 있다.
그분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정치검찰로 목숨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조국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 때를 떠 올린 것이다. 
군중들의 손에 잡힌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가 잘 말해주었다.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대표적인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로 두 사안은 붙어 다녔다.
무대에는 소설가 이외수씨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했다.

신나는 공연도 이어졌는데, 그 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탈 없이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준 대단한 국민이었다.




지난 10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국기 집회와, 5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수도 서초동이 더 많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자유한국당에서 동원한 집회와 자발적인 집회라는 차이점이 분명하고,
정당이 표면에 나선 것과 시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달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폭력에 의한 분노가 일었고, 한 쪽은 평화로운 놀이마당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세우는 논리나 어휘의 차원이 달랐다.
태극기부대에서 내세운 구호이긴 하지만 “문재인을 단두대로, 박근혜를 청와대로”란 현수막도 있었다.
이런 저질의 구호는 자유한국당 얼굴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태극기부대와는 거리를 두지만...
허구한 날 빨갱이 타령으로 덕 보더니, 저들 하는 짓이 빨갱이와 다를 게 뭐 있는가?
괜히 맛 불 놓는다고 돈만 쏟아 붙지만 헛짓 그만해라. “국 쏟고 뭐 디이는 격이다“




이제 보수정당과 연대한 정치검찰과 부패언론의 더러운 권력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긴 세월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다, 그 이후는 양놈에 달라붙어 죄 없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제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라. 꼴통보수 정치인이건, 부패 검찰이건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의 ‘Another City 2’ 사진전이 열렸다.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개인주의로 치닫는 심각성을 비판하며 고발하고 있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때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마저 혼란스럽다.

삶의 구조가 비정상으로 치닫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인간이 규정해 길들어 온 것이겠지만, 그 기준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일 것이다. 




소외와 박탈, 욕망, 갈등 등 현대인들의 심리적 불안상태와 비정한 도시의 단면을 형상화하여,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개막식에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문호, 이수철, 이윤기,

김영호, 정영신, 함인선, 하춘근, 이세연씨 등 20여명이 참석했지만,

같은 시간대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된 중국사진가 왕칭송 전시에는 200여명이 참석하였단다.

너무 대조적이다. 그 전시는 3개월이나 열린다는데...




이수철, 이광수, 김문호, 김남진씨가 차례대로 나와 사진에 대한 감상평과 격려의 말을 전해 주었고,

작가 김동진씨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서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전시작이 작년에 전시된 사진보다 더 좋아진 것은 틀림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 평을 해 주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진비평가 이광수씨의 표현으로는 사진이 더 독해졌다고 말했고, 김문호씨는 사진이 진득하게 찰지다고 표현했다.


 

난, 김동진씨가 주제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되었다.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인지라 모든 게 찍을 대상이 아니겠는가?

사진가 김문호씨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업도 비틀어진 사회상의 기록이지만, 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주제는 비슷하나 김문호씨의 사진이 동적인 편이라면 김동진씨 사진은 정적이다.




개막식이 끝난 후, 다들 충무 해물탕 집에 몰려 가 뒤풀이를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도 부산사람이지만, 이광수씨도 부산서 올라 와 더 반가웠는데,

이광수교수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기로 한 이규상씨가 빠져 다들 아쉬워했다.

바쁜 분이 후배들 사진전을 위해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는데, 다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김남진관장이 이차로 안내한 곳은 후미진 골목 안쪽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골목인데, 분위기가 오붓해 좋았다.

더구나 술 마시며 담배까지 피울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고정남씨도 찾아 왔는데, 술 마시다 사진 촬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초상권 문제로 사람은 물론 거리스냅도 어려운 실정이 아니던가?

김문호씨는 카메라 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는 노 파인더 기법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이젠 숙련되어 대부분 의도한 화각을 얻어낼 수 있단다.




가로등이 조는 어두컴컴한 골목 풍경도 김문호씨가 놓칠 리 없었지만,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사랑 놀음하는 남녀가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 날 김동진씨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자리했었는데, 결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남편 될 김동진씨의 사진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니, 찰떡궁합인 것 같았다.

다들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김남진관장과 김동진씨가 나란히 앉았는데, 찬찬이 살펴보니 너무 닮았더라.

이름까지 비슷한데, 혹시 숨겨 논 아들이나 동생은 아닐까?




다들 술이 취했으나 삼차로 호프집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이 앞으로 추진할 사진기획을 말했는데, 이광수교수도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계속 마시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 전철이 끊어 질 시간이었다.

부산사람들은 여관을 잡아 놓았으나, 멀리 가야할 김문호씨가 걱정이었다.

택시비로 주머니 좀 털렸을 거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안 보면 손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4일 오후6시 무렵,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과 홈페이지 제작에 따른 의논할 일이 생겼는데,
마침 이윤기씨의 ‘시간을 담다’ 사진전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얼마 전, 김남진관장이 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게 잘 못이었다.
김남진관장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결국 바쁜사람 고생만 시킨 셈이다.






나 역시 사진전 했던 서문과 작업노트 등 여러가지 기록들을 다시 쳐야 했는데,
돋보기를 치켜세워 독수리 타법으로 토닥거리려니 예삿 일이 아니었다.






15년 전에 홈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으나 2-3년 운영하다 그만 둔적도 있다.
효용성이 없는데다 매년 도메인 사용료만 들어가 ‘창예헌’ 카페로 대체한 것이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명칭을 바꾸어 인사동 사람들의 소통공간으로 만들었으나 불협화음에 문 닫았다.

 6년 전 ‘인사동 사람들’이란 블로그를 만들어 개인정보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라 사진동지 정영신씨와 ‘브레송’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홈페이지 접속방법이나 활용방법을 알아보려면, 정영신씨 도움이 필요해서다.






김남진관장은 5박6일의 필리핀 촬영 여행에서 어제 돌아왔다고 했다.

정영신씨가 관장실에 들어가 설명 듣는 동안 전시장에서 김윤기씨 작품을 다시 보았는데, 
보리 흉년에 빨간 딱지가 무려 열 여섯 점이나 붙어 있었다. 완전 봄 사건이었다.






좀 있으니, 사진가 김문호씨와 이수철, 이주영씨 등 반가운 분들이 여럿 들어왔다.
아마 전시 쫑파티를 겸해 연락한 것 같았다.






어울려 술 한잔하러 갔으나 갈 때마다 어디 갈까? 망설인다.
그토록 음식점이 많지만, 딱 이거다 하는 음식점이 없어서다.
재고 재다 결국 ‘김삼보’로 들어갔는데, 만만한 게 돼지고기였다.






작품이 많이 팔려, 얻어먹는데 부담이 없어 좋았다.
김문호씨는 작가가 덕을 쌓아 작품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나도 덕 좀 쌓으면 좋으련만, 요놈의 주둥이 때문에 되질 않는다.

덕은 커녕 원수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팔리지 않을 사진, 전시를 안 하니 팔 걱정은 없다.






한 때는 비싸지 말 것(가격 합리화), 보기 쉬울 것(작품의 대중화), 덕을 쌓을 것(고객 관리)등
삼대 고수레로 침을 튀긴 적도 있으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욕심을 내려놓아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니 팔자가 늘어졌다.
거지 팔자 상팔자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충무로 상권이 을지로를 비롯한 주변지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와 사진을 대표한 충무로였지만, 요즘은 밤만 되면 한산하단다.



 


지난 11일 충무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남진씨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술 한잔하자며 630분까지 갤러리로 오라기에, 전시 오프닝이 있는 줄 알았다.



 


전시장에 들렸더니, 박승만, 송석우, 정휘동씨 삼인전이 열렸는데, 작가들은 보이지 않고 반가운 분만 여럿 있었다.

오늘 오프닝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어제였다며 오늘은 술 한 잔 하기 위해 모였단다.




 

먼저 전시된 사진부터 돌아보았다.

박승만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사물에 대한 존재 이유를 나름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송석우씨는 살면서 겪는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정체성의 키워드로 풀어갔다.

바다를 찍어 화면을 분할시킨 정휘동씨는 삶의 공허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 보였다.

젊은이들의 아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공통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진 작업에 고민이 많은 분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사진가들은 꼭 한번 볼만한 전시였다.




 

이 날 전시장에 모인 분은 브레송김남진 관장을 비롯하여 비움갤러리김상균씨, ‘꽃피다갤러리 김유리관장 등

충무로에서 사진갤러리를 운영하는 세 분이 모여, 의외로 생각되었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이규상씨와 사진가 김문호, 김영호, 이수철씨도 와 있었다.



 


다들 충무로에 있는 중국집 서동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동관은 오랜만에 갔지만, 20여 년 전에는 자주 들린 단골집이다.

삼성카메라클럽에서 현대사진가회로 바뀌며서 옮겼던 사무실이

지금의 해물탕집인 조방낙지 맞은편에 있었기에 종종 들린 것이다.



 


주인도 그대로였지만, 오래된 집기까지 눈에 익었다. 골동품에 가까운 금성에어컨이 아직까지 붙어 있었다.

모든 게 수시로 바뀌는 세태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오래된 것들은 가게나 물건이나 모두 정겨웠다.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니 정영신씨도 왔는데, 충무로에서 50여년을 살았다는 손필수씨가 나타났다.

중부거북상조회회장이라 적힌 명함을 돌렸는데, 충무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애쓰시는 분이었다.



 


아마, 김남진씨에게 충무로 사진축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자리를 주선한 것 같았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사진갤러리 운영하는 분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사진 인들이 힘을 뭉쳐 충무로에 사진바람을 다시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때는 충무로가 사진인들의 메카가 아니었던가?

필름현상에서부터 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이 충무로에서 이루어졌는데, 사진이 디지털화되며 사진인들 발길이 점차 줄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반가운 사진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나, 요즘은 가뭄에 콩나기 수준이다.



201512월 이해선사진상을 수상한 구와바라 시세이선생과 함께한 김한용선생, 오른쪽은 윤주영선생

 


충무로 사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돌아가신 김한용선생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누구인가?

한 평생을 충무로에서 광고사진을 위해 몸 바친 분이다.

선생께서 사용하신 연구소 자체가 우리나라 광고사진의 역사며, 충무로 역사다.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김한용, 정범태, 이명동선생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집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으시던 선생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건물이 매각된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는데,

김남진씨 말에 의하면, 45억에 팔려 철거되었고, 이미 신축건물 완공이 목전에 있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으나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최봉림, 김한용, 강운구, 이명동, 한정식선생

 


그런데 서동관식사비를 손필수씨가 모두 계산해 버려 부담스러웠다.

그 밥 값을 위해서가 아니라, 충무로 사진축제를 비롯하여 충무로가 다시 사진의 메카로 발돋움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리가 파하여 김남진씨가 생맥주 한 잔씩만 더 하자지만 사양했다.

통풍으로 맥주는 못 마시지만, 과음하면 숨이 가빠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집에 돌아왔으나, 사라진 김한용선생 스튜디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일찍 서울시에 청원을 넣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살펴보려, 이튿날 아침 다시 충무로에 나갔다.





큰 길 가의 건축물은 마무리 중이었고, 선생의 스튜디오가 있던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꿈의 공장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 곳에 있던 집기나 장식물은 다 어디 갔는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김한용선생께서 임종할 무렵에 스튜디오가 있었던 골목길


 

그 곳은 광고사진의 대부이신 김한용 선생께서 60여 년 동안 희망을 키워온 꿈의 공장이며,

우리나라 광고사진의 요람이었다.

선생의 사진 속에는 추억의 스타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고, 우리나라 산업 발전사가 담겨있다.

사실, 그 건물은 서울시에서 구입해 광고사진 박물관으로 영구 보존해야 했다.



 


돈 앞에는 역사고 인륜이고 모두 무너지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이제부터라도 사진 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사진가들의 권익을 찾는 것은 물론, 우리 사진의 역사는 우리가 지키자.

 

사진, / 조문호

    

















김한용 선생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을 찿아 보았다.


2016년 5월29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김한용선생께서 운명하신 해 겨울, 충무로 스튜디오를 찾았다.

굳게 닫긴 정문 앞에는 낙엽만 딩굴었는데, 김남진,이규상, 엄상빈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정영신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장사익씨와 환담을 나누는 김한용선생

20133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홍순태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주명덕,강운구,이완교,황규태,홍순태.김한용,구본창,한정식선생

20133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홍순태선생 개인전에서..

김녕만씨가 찍은 사진으로  왼쪽부터 윤세영, 권태균, 김남신, 이완교, 조문호, 강운구,

황규태, 송영숙. 민병헌, 홍순태, 김한용, 주명덕, 한정식, 구본창, 박영숙, 최봉림씨



 




지구 나이가 45억년이다. 그 영겁의 시간 동안 지구의 환경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변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인류의 문명은 지구의 종말을 재촉할 뿐이다.

지질학자들은 빙하기가 도래한 후에는 지구도 화성처럼 죽을 것이라고 했다.

이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명의 첨단화로 편리하게 사는 대신 환경오염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 사는 것 또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 상실로 몰아가는 문명의 첨단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기계처럼 살아가는 비정한 현실을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중독성에 어쩔 방도가 없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욕망은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에 있다.



    

 

지난 15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는 김남진씨의 ‘Time Landscape’는 자연의 준엄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광활한 자연 배경에 끌어들인 조그만 인간의 형상으로, 자연회귀를 바라는 그만의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전시 작가인 김남진씨는 사진가이지만,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팔방미인이다.

기획자이자 갤러리 관장으로 사진 전반에 관한 일을 하지만, 돈 벌이 와는 거리가 멀다.

월말이면 갤러리 임대료 마련하느라 허우적거리지만, 결코 가난의 늪인 사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사진기획자 답게 사진의 경계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태원의 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보였으나.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기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의 사진이다.

사진이라기보다 자연과 인간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융합시킨 개념미술에 가깝다.



    




배경을 이루는 장면들은 미국 서부의 사막과 협곡을 지나치며 바라본 풍경이라고 한다.

데스밸리를 시작으로 유타 주의 에스컬란티, 브라이스, 캐니언랜즈, 모아브, 아치스와 지온 국립공원에서 만난 지구의 모습은

적게는 수백 만 년 전에서, 수십 억 년 전에 형성된 지구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형형색색의 암석이 빚어 낸 경관과 여러 겹의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진 협곡지대에서

지구의 깊은 속살을 본다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 풍경을 끌어들여 자연 속에 존재하는 미미한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시간의 지층 속에서 과거의 단초를 찾는 고고학자의 상상력처럼, 태고에 존재했을 것 같은 자연의 생명 이미지를 찾아내고자 했다.

광활한 자연을 담은 디지털 사진을 바탕으로, 20여 년 전에 찍은 알몸의 아날로그 필름 이미지를 디지털 스캔 작업을 통해 합성시킨 것이다.

시간과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만의 이미지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찍은 자연 풍경 속에는 작은 프레임에 갇혀, 오므리거나 뛰쳐나갈 것 같은 다양한 자세의 알몸이 중첩되어 있는데,

태초로 돌아가려는 부질없는 인간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원초적인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사진에는 자연 생명 이미지가 세월의 시공을 넘나들며 꿈틀대고 있다.

야성의 자연 속에서 벌이는 인간의 몸짓이 또 다른 시간 풍경을 연출했다.

결국 거대한 자연 속의 인간이란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작가 김남진씨는 “Time Landscape’을 통해 자연에 동화되고 화합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자연적 삶을 나타내면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엄준한 힘을 드러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오프닝은 지난 15일 오후630분에 있었다.

별도의 오프닝 행사도 없이 양재문씨와 김영호씨가 사진전을 갖게 된 동기와

작품성향을 이야기했고, 김남진씨도 마지못해 나와 작가의 변을 풀어놓았다.


전시는 갤러리브레송’(02-2269-2613)에서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평일은 오전 1030분부터 오후 630분까지이고, 공휴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남의 전시에는 사방팔방으로 연락해 불러 모우는 양반이,

정작, 자신의 전시는 연락을 안 해, 페북 보고 찾아 온 사람뿐이었다.

하기야! 스스로 자기 광고하기도 껄거롭겠지만, 사진가들이 작품 살 형편도 되지 않잖은가?

주위에 사진 좋아하는 컬렉터들에게 작품 추천이나 좀 해주길 바란다.

유명도가 있는 중진작가의 작품(95cm x 140cm 규격) 가격이 300만원이라면 싼 편이다.





그 날 참석한 분은 사진가 김문호, 양재문, 김영호, 이수철, 정영신, 박춘화, 박신흥,

이주영, 권 홍씨 등 2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냥 헤어질 수는 없잖아...

충무로 명문 해물탕집에서 호프집으로 전전하며, 축하주 핑계 삼아 퍼 마셨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김문호씨의 ‘성시점경’전이 지난 30일 충무로 ‘반도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전시된 김문호 사진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병든 영혼의 실체를 보았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돈에 중독된 자들은 병든 자체도 모르고 살지만,
덜 중독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냥 세상 돌아가는 데로 관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가 김문호씨가 병들어 가는 그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 모순과 왜곡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 김문호만의 독보적인 사진세계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방황하는 군상들을 그만의 어법으로 하나하나 채집한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끝장이다”며 날선 비판을 해댄다.
사회를 비판하고 문명을 비판하지만, 결국은 돈에 끌려가는 인간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살풍경이 펼쳐진 도회지로 나왔다. 하지만 번쩍이는 것들만 많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최악의 지표들,

청년실업, 최저임금, 노인빈곤, 살인적 노동, 가계부채, 자살률, 무엇보다 일상화된 부패와 갑질....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내내 ‘헬조선’, ‘이생망’ 같은 몹쓸 단어들이 떠나지 않았다.”

고 그가 말한다.





그동안 ‘온 더 로더’(2009)와 '새도우'(2013)를 지나

이제 '성시점경'으로 한 차원 높은 다큐멘터리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전시장에는 30점이 걸렸지만, 그간의 작업들을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눈빛출판사’에 발행한 성시점경(盛示點景) IN THE CITY 김문호 사진집엔

80점 (168쪽 양장, 33,000원)이 실려 있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강렬한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9월 5일까지라 서둘러야 볼 수 있다.





세상은 돈 맛에 눈먼 영악한 자들이 장악한, 가짜가 판친다.

사진판도 마찬가지다. 그는 원로에 가까운 베테랑 사진가지만, 아웃사이더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다.
줄 서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는데다, 바른 말까지 해대니 미운 털 박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가가 그 흔해 빠진 상한 번 받지 못하고,
대표적인 기획전에서도 항상 밀려났다.
끼리끼리 해 먹던 예전에는 눈이 어두워 못 본 것인지,
학연이나 인맥이 없어 의도적으로 따돌렸는지 모르지만,
판이 바뀐 요즘에도 관습에 젖어 못 본채 지나친다.






이번 전시가 김문호씨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정점인 것 같다.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 아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손바닥만 한 국내보다 세계 사진시장이 먼저 알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오래 전부터 기다렸던 전시다.
전시 내용은 대략 알았지만, 사진을 비평한 이광수씨나 사진집 출판을 추진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확신 찬 자신감에 나마져 들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전시 개막식엔 늦어 버렸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지만, 매사 하는 일이 그렇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파장이라 와인도 한 잔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술 마시랴, 반가운 사람 인사하랴, 작품 보랴, 똥 오줌 못 가렸다.





곧바로 뒤풀이 집으로 정해진 ‘명문해물탕’집으로 옮겼다.


그런데 술 맛이 귀가 막혔다.
안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좋아 하는 사람들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거들먹거리는 똥파리들이 없어 기분이 좋으니, 술술 넘어갔다.






부산에서 올라 온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이규상, 이주용, 이규철, 김남진, 성남훈, 양재문, 정영신,

김영호, 석재현, 임종선, 이동준. 국수용, 임성호, 권병준, 강제훈, 이수철, 마동욱, 남 준, 곽명우,

윤길중, 이주영, 김은환, 정장식, 송주원, 권 홍, 박춘화, 성윤미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모였다.





특히 김문호씨와 초창기 함께 했던 ‘사진집단 사실’ 멤버들도 여럿 보였다.
안해룡, 김봉규, 이석필씨가 왔는데, 갑자기 추연공씨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화가였으나 외국통신사 사진기자로도 일했었는데,
그를 못 본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다. 마침 술자리에 있던 김봉규씨에게 이야기했더니,
가까운 시일에 자리 한 번 만들겠다고 했다.






골목 맥주 집으로 옮길 때는 이미 많이 취했다.
맞은 편에 앉은,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 주책을 떨기도 했는데, 언제 철들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술이나 처 마시지,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놨네.





“좀 지루하더라도 술 취한  찍사들, 표정이나 한 번 봐 주이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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