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복씨의 ‘온 몸이 길이다’ 판화전이 지난 11일 오후2시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




기다리던 전시라 만사를 제쳐두고 갔다.
다시는 전시장 돌아다니며 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한지가 오래지 않건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북한산을 거닐다2, 2013, 1,38X165cm,소멸다색목판

류연복씨의 작품을 띄엄띄엄 보았지만, 36년 동안의 전 작업을 한꺼번에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풍악산 일만이천봉,2009, 1,23X180cm다판다색목판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민주화투쟁을 형상화한 끝내 이루리라 이루어 내리라’였다.
민중적이고 투쟁적인 판화에 매료되어 그의 이름은 각인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뭇 선동적인 작품이었다.



끝내 이루리라 이루어 내리라1,1989,37X37cm,채색목판


그 이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90년대 후반 동강 댐 건설을 막으려는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높을 때, 다시 류연복이란 이름을 찾아냈다.
초창기 보았던 투쟁적인 작품과는 달랐다.
국토에 대한 애정과 자연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있었다.


동강전도, 1999, 180X110cm, 다판다색목판


그 당시는 동강을 찍기 위해 정선 귤암리에서 일할 때다.
백운산에 올라가 동강 물줄기를 부감으로 찍기도 했는데, 그 장면을 사진처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동강(고성산성에서)1999, 57X107cm, 단색목판


바세와 연포마을을 굽이굽이 휘감는 강줄기 사이로 박혀있는 집들은
동강사람들의 삶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고 역동적이기도 했다.



바로, 현장 답사에 의한 실경산수였다.
“아! 민중미술가 류연복씨 작품이 실경산수로 바뀌었구나. 역시 대단한 작가다!”며 다시 흠모했다.
주제만 바뀌었지 민중정서를 반영하는 태도는 똑 같았다.


외암골 전도, 2002, 120X84cm, 다판다색


풍경을 이루는 산과 강의 흐름은 강력하고 마을의 경계는 선명했다.
넓고 탁 트인 시선에서 부터 작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는 섬세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명료했다.
국토에 대한 형상성은 두드러지고, 부분적인 독자성은 분명했다.


서운산-겨울, 2003, 65X123cm, 다판다색목판


그러고는 또 잊고 있었는데, 6년 전 인사동 ‘부산식당’에서 그를 처음 만난 것이다.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는데, 첫 인상이 소탈하고 겸손했다.
그 이후 광화문광장‘의 ’광화문미술행동‘팀에 함께하며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는데, 사람이 진국이었다.


꽃 한송이 2018, 97X72cm, 소멸다색목판


허허실실 웃으며 바람처럼 살지만, 늘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잔머리 굴리지 않았다.


나는 온몸이 길이다-봄, 2012, 91X91cm, 다판다색목판.


류연복씨는 사람과 작품이 똑 같았다.
대개 작품을 먼저 알고 나중에 작가를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실망스러운 경우를 종종 접한다.
작품은 좋으나 인간성이 형편없는 작가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 만드는 기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 나고 작품도 있는 것이다.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지난11일 오후3시 무렵, 정영신씨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은 처음 가보았는데, 시골에 이렇게 좋은 전시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개성없는 비슷비슷한 전시장이야 가는 곳마다 늘려있지만, 판화만 보여주는 전문미술관을 어찌 시골에서 볼 수 있겠는가?
아마 진천에 사는 판화가 김준권씨의 노력에 의한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그 멀리까지 많은 사람들이 왔더라.
류연복씨의 작품성이나 인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대목이다.
아는 분으로는 평창에서 온 화가 권용택씨 내외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김진하, 이태호씨,
화가 변정섭, 박불똥, 박진화, 김 억, 송용민, 김 구, 임정희, 김건희, 김가영씨가 참석했다.

판화가 이윤엽씨는 아들 땅을 데리고 왔는데, 뒤늦게는 김준권씨도 나타났다.




개막식은 끝나고 작가와의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류연복씨는 마치 장터 약장사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예요”라며 흩어진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류연복씨의 목판화에는 힘이 흘러넘쳤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를 토해냈다.
저항적이고 비판적으로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때로는 서정적으로 다독였다.
국토를 온 몸으로 누비며 체득한 산하지만, 풍경 에너지와 사람의 삶을 응결시키려는 속내가 엿보였다.


도피안사 전도,2003,110x80cm,다판다색

류연복씨의 근작은 국토풍경을 담은 목판화다.
분단풍경인 DMZ에서 부터 독도,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 무등산, 북한산 등
방방곡곡을 누비며 국토의 아름다움 속에 민중의 비애를 버무렸다.
여러 번의 칼질이 아니라 단칼의 칼질이 빚은 선명한 골격이 돋보였다.
풍경조차 서민적이고 민중적이라 풍경의 수려함 속에 비극적 슬픔이 깔려 있었다.


갈라치며 나아가자,1989,28X49cm, 채색판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류연복의 목판화는 일도양단의 칼질로 그 이미지가 선명하다.
구사된 칼은 주저하거나 돌아가거나 에둘러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전통적인 목판화의 원초적인 칼 맛의 연장선상에서 대상의 특징을 포착해내면서
그 내용의 핵심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명료하다. 강하다. 그래서 류연복스럽다”


가난한 사랑 노래,1998, 37X27cm, 채색목판


이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열리니 진천을 지나치는 걸음에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두번째 작가와의 대화가 열리는 11월22일(금) 오후3시에 가면 금상첨화다.
작가의 말처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모자,1992, 27X18cm, 소멸다색


붓을 들어 육천만 가슴에, 1989,30X30cm,채색목판.


백골단과 전사,1991,37X25cm, 다색목판

빈들 생명-딛고 선 땅, 2004, 45X124cm, 소멸다색목판

해방춤1,1986, 45,5X53cm,채색판화

숲2, 2017, 92X92cm, 소멸다색목판.

전각판화(책표지),2016-2018, 16X16cm X54

달밤-금강산외 열두폭 평풍, 2007, 61 X30,5cm X12



[전시 개막식날 작가와의 대화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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