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없는 축제들이 우후죽순처럼 열리는 시월을 맞아 모처럼 지역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 축제다운 축제를 보았다.
순천시가 주최하고 ‘낙안읍성보존회’가 주관한 '제26회 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다.
지난 18일부터 3일간 낙안읍성에서 열린 이 축제는 '어서 와! 살아있는 조선은 처음이지?'란 물음의 주제를 내세우고,
관광객들에게 조선시대의 삶을 체험시키기 위해 읍성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추진하였다.
강형구 낙안읍성민속문화축제추진위원장은 "이번 행사는 관청에서 주도하는 축제와 달리
낙안읍성 주민들이 직접 치루는 축제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순천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해미읍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3대 읍성 중의 하나다.
낙안읍성은 사적302호로 실제로 성내에 120세대가 거주하고 있어 그 보존가치가 더 높다.
낙안읍성이 문화유적지로서 각광을 받아왔지만, 올해 축제는 옛 것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이른바 ‘살아 있는 조선’을 등장시켰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문화와 함께 600년 동안 전승, 보존되어 온 낙안읍성만의 놀이문화를 복원하여 보여준 것이다.
전통재현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축제에는 김빈길장군 부임행렬 재현(기마장군, 수문장, 대취타, 농악대 등으로 구성)을 비롯해
백중놀이(음력 7월 백중날 낙안지방에서 전해지는 민속놀이), 성곽 쌓기(낙안읍성 축성 이야기와 김빈길 장군 업적 기념)
기마장군 순라의식 및 수문장 교대식(낙안읍성 수위 및 순라의식 재현) 등이 열렸다.
낙안읍성 민속놀이는 농경문화와 함께 왜적방어와도 관련이 깊다.
‘낙안읍성 백중놀이’, ‘낙안읍성 큰 줄다리기’가 대표적인 농사와 관련된 놀이고, ‘낙안읍성 성곽 쌓기’,
‘낙안읍성 수문장교대식’, ‘낙안읍성 기마장군 순라의식’, ‘김빈길 장군 부임행렬’ 등은 왜적 방어와 연결된 행사다.
상설행사로 열리는 체험 놀이도 다양하다.
현악기 통 깍기 체험, 미니 북과 미니장구 만들기, 대금불기 체험, 단소 만들기, 염색체험, 인절미 만들기,
두부 만들기 체험, 서예체험, 한복체험, 전통무예체험, 전통무기체험, 매듭체험, 석궁체험, 마차체험 등을 비롯하여
‘낙안읍성 위인들 이야기와 낙안읍성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연계 행사로 펼쳐진 제6회 전통‧향토음식 축제를 비롯하여 순천시 농 특산물 장터 운영,
떡 매치기 등은 남도 음식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드셨던 여덟 가지 진귀한 맛 ‘팔진미’ 비빔밥 만들기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또한 읍성 내 민가에서 숙식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으로 생생한 조선시대 문화를 맛볼 수 있는데,
대형 퍼포먼스인 ‘낙안읍성의 기상’과 퓨전풍물창극 ‘낙안마을 경사났네!’란 기획공연도 열린다.
즐거울 ‘락’ 편안할 ‘안’의 낙안(樂安)이란 이름처럼,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사방을 성곽이 막고 있는 지역 특성상, 복잡한 현실과 동떨어져 오롯이 조선시대 생활로 돌아 간 느낌이었다.
남정숙 축제 감독은 “낙안읍성민속문화축제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축제 참가와 함께 ‘읍성 스테이’를 하면서 도시에서의 거친 삶을 내려놓는 치유의 경험을 해 볼 것을” 제안했다.
낙안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도 민요에서 부터 농악이나 가야금병창을 가르쳐 국악과 함께 발전해 왔다.
낙안초교 농악군악대, 가야금병창, 낙안읍성 판소리보존회에서도 축제에 볼거리를 더해준다.
이장단과 부녀회는 물론 36개 마을 주민들이 똘똘 뭉쳐 축제에 힘을 보태었다.
개막을 앞둔 전야 행사가 열린 18일은 ‘낙안읍성 수문장교대식’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둘레가 16m나 되는 팽나무인 이순신 장군목 아래서 ‘이순신장군 나무신목제’도 열렸다.
이순신장군이 정유재란 때 전라좌수영으로 복직하여 각 고을을 순회 방문했다고 한다.
마침 이순신장군이 왜구들에 의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성내를 돌아보고 백성을 위로하며
전쟁은 사람이 하지만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며 당시 10년쯤 된 팽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라를 구할 기원제를 이순신장군이 직접 낙안읍성에서 올렸다는 전설은 낙안읍성주민들의 자랑거리다.
그 날은 송갑득선생의 축문으로 제례가 진행되었는데, 뒤이어 무용가 조은진씨가 나와 살풀이를 추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원혼을 달래는 춤사위는 사뿐사뿐 내딛는 걸음마다 한(恨)이 담겨 있었다.
애절한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다 살짝 치맛자락을 치켜 올리는 모습에서 여인의 교태미도 느꼈다.
슬픔의 육정이라고나 할까...
이어 풍물패의 상모돌리기와 줄타기공연 등 흥겨운 놀이들이 신바람을 일으켰다.
이 날 보여준 ‘낙안읍성백중놀이’는 모심기부터 시작하여 논매기 등 농경생활을 재현했다.
마지막논매기를 마치자 풍물로 한바탕 신바람을 일으키며, 일꾼 중 한사람을 소에 태우는 길 굿이 펼쳐졌다.
‘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의 전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고, 첫 날만 참여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숱한 축제에 다녀보았지만, 이처럼 우리전통문화에 푹 빠지게 하는 축제는 보지 못했다.
돈만 쏟아 붙는 다른 지역 축제도 이처럼 지역 정체성으로 차별화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순창장류축제’처럼 거액을 들여 인기가수 한 사람 모셔오는 따위의 돈 놓고 돈 먹기 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내년 축제를 위해 몇 가지 시정할 점을 제안해야겠다.
첫째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식기들은 가급적 자제해 주기 바란다.
그릇도 그릇이지만, 프라스틱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벼먹기도 불편하지만, 음식 맛 떨어지게 한다.
큰 가마솥에 불 지펴 장터국밥을 끓이는 등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지역 전통음식만 팔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행사를 안내하는 현수막도 가로 보다는 세로로 세우고, 엿장사등 전통 먹거리 행상도 길거리에 배치하자.
식당에서 판매하는 술도 지역주민들이 담은 농주로 한정시키는 등 낙안읍성 축제만큼은 우리 문화만 즐기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먹고 자고 즐기는 등 문화 전체가 조선시대로 돌아가게 하여 우리 문화에 흠뻑 빠지는 축제로 만들어 가자.
가능하면 참가객들도 한복을 입고 오도록 유도하여, 한복을 입고오는 관광객들에게 조그만 혜택이라도 주자.
읍성 내에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적 한계를 고려하여 일찍부터 참가 신청을 받는 일도 고려해 볼만 하다.
낙안읍성에 가야만 볼 수 있다는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한다면 지역축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거의 시간을 불러 즐기는 조선시대의 여유스러운 멋에 흠뻑 빠지는 낙안읍성만의 ‘민속문화축제’를 기대한다.
사진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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