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정식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동안 사람 만나기를 피하셨는데, 준비한 사진 산문집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오찬 약속으로 정영신씨와 함께 서초동 자택을 방문했다.

함께 투병하고 계신 사모님의 건강은 확연히 좋아졌지만,

선생님의 모습도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단지, 불면증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로 지탱한다는 거다.

그건 소심한 성격에 의한 마음의 병이었다.

 

주변에서 용하다고 추천하는 병원도 다녀보셨지만, 아무 소용없다고 했다.

내가 볼 때는 의사가 고칠 병이 아니라 선생께서 다스려야 할 병인 것 같았다.

 

선생님 댁에 여러 차례 와 보았지만, 언제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장성한 자식과 귀여운 손자들이 함께한 유복한 모습이 부러웠다.

한 평생 사진을 위해 살아왔지만, 작품사진보다 가족사진이 먼저였다.

하기야!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날은 새로 나온 사진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를 한 권 받았는데,

주옥같은 선생의 사진과 산문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투병하기 전에 인사동 작업실을 오가며 기록한 사진들도 보여 주었다.

암울한 도시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기존의 작품과는 또 다른 울림이었다.

컴펙트 카메라라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마무리 했으면 좋으련만,

이제 안 된다는 체념에 가까운 말씀에 가슴이 아팠다.

 

정영신씨도 이번에 출판한 ‘장에 가자’를 한 권 드렸는데,

까다로운 선생의 눈에 찰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오찬은 외식을 하며, 동네 산책도 빠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날은 생선구이 집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나보다 더 잘 드셨다.

그 정도면 자동차로 가고 싶은 곳을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차마저 처분하셨단다.

여기저기 다니신다면 왜 잠이 오지 않겠는가?

 

부디 마음의 병을 고쳐 편안한 여생이 되도록 간절히 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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