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는 날이었다.
요즘 몸이 편치 않아 움직이기 싫으나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가면 얼마나 더 나갈 것이며, 만나면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조급증에서다.






인사동은 훤하게 불 밝힌 관광상품 매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전시장을 다녀오는 화가들의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인사16길' 골목은 술시가 이른지 조용했으나,
코너에 있던 전시장 ‘보고사’가 골동품 매장으로 바뀌었더라.






그 곳은 여러 차례 전업을 거듭하는데,
아무래도 골목 모서리라 술집이나 음심점으로 바꾸는게 나을 것 같았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반가운 분들이 많이 와 있었다.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서길헌, 김영국, 김상윤, 김각환,
신상철, 이미례, 이승철, 박완규, 전활철씨 등 여럿 모여 있었다.






그 날 이야기는 ‘광복회 3,1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실시하는 독립선언문 이어쓰기에 이성 구로구청장이 지명 받아서다.
이성씨는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구 김영종 구청장과 항일 유적이 많은 완주군의 박성일군수,
그리고 만 여 점 넘게 독립운동 사료를 모은 김명성씨 등 세 사람을 지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김명성씨는 하는 방법을 몰라 못했다는데, 인터넷하는 젊은 직원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받은지 48시간 안에 독립선언서 한글본과 한 문장 필사 사진을 첨부한 게시물을 업 로드해야 한다,. 

필사한 후, 다음 문장을 이어 필사할 3명을 지목하면 된다.






독립운동가의 비장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독립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뜻 깊은 일이다.
많은 분들이 3·1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에 동참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이야기로 침을 튀길 때가 종종있다.
다들 미식가기도 하지만, 사는 재미가 별 없으니, 할 이야기가 뭐 있겠는가?
맛 보다 끼니 때우는 게 급급한 나로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만...






김명성씨는 홍어 애탕 이야기를 꺼냈다. 

‘애간장 끓인다’는 옛말도 애탕이 너무 맛있어 나왔다는 것이다.
황복이 맛있느니, 돔이 맛있느니, 온갖 생선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난, 조개가 맛있다고 맛장구 쳤더니, 김용국씨는 한 술 더 떴다.
“전복이 더 맛있어! 살아있는 전복에 참기름 치면 꿈틀꿈틀하는 맛이 죽인다”나...






씰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나 동참하자.
다 같이 3.1운동 100주년의 독립운동 정신을 되 세기며, 진정한 통일을 염원하자.






그리고 3.1절 백주년 행사로 열리는 줄 댕기기와 신명천지 열두마당도 참여하자.

이래는 2월 26부터 3월1일까지 청계천광장에서 펼쳐지는 일정이다.


26일: 4시 줄비나리
27일: 오전 9시~ 진도북놀이와 풍물
28일: 오전 10시부터 줄 말기 / 1시30부터 줄고사, 청수 의례춤 /

        오후 2시부터 신독립선언문 낭독 /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전야제- 시대상황극 12마당 -

3월1일: 4시부터 줄이 나가지만, 미리 오셔서 함께 줄을 짊어지자.
 


사진, 글 / 조문호


















뮤지션 김상현씨가 중병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아는 분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로 걱정 해왔는데,
뜻밖에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5일 인사동 ‘유목민’의 실내 공사를 한다기에 찾아 간 것이다.
외장에 사용할 오래된 인사동 풍경사진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강남의 송재엽씨 기공식에 갔다가 ‘통인가게’ 관우선생 차에 편승해 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분을 만난 것이다.






한 때 인사동에서 ‘북스’란 책 갤러리를 운영한 김호근씨 였다.
제주도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마치 인사동 유령이 나타난 것 같았다.






일단 볼 일부터 본 후,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먼저 임하룡씨가 전시를 한다는 ‘토포하우스’로 갔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른 채 이야기만 듣고 갔는데,
개인전이 아니고, ‘제5회 오늘전’이란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2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임하룡씨 외에도 정승재, 심영숙, 이경근,
박춘우, 이유림, 김은숙, 백순진, 한정혜, 권혁철, 샤샤정, 장용주, 이혜영,
유준희, 이준섭, 최재영, 오현금씨 등 열 일곱명의 화가가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임하룡씨 외에도 정승재씨를 만난 것이다.
전시 보러 오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참여 작가라 했다.






그 부지런함에 존경감이 일었다.
학교 강의하랴 소설 쓰라, 이젠 그림까지 그리니, 식구들 얼굴 볼 틈은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제 작업에 물이 올랐나보다.






전시를 돌아본 후 ‘유목민’으로 갔다.
‘유목민’ 안방을 터, 통유리로 밖이 보이게 하는 모양인데. 화가 양서욱씨가 열심히 돕고 있었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반가운 사람이 줄줄이 나타났다.
‘유담’커피숍 앞에 김명성씨가 서 있었고, 안에는 정기범씨가 계셨다.






좀 있으니, 김호근씨가 찾아 와 ‘유목민’에 자리잡고 막걸리를 시켰다.
이어 김완기, 최종선, 김영국, 김상윤씨가 줄줄이 등장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김상현씨가 나타나, 죽은 사람 살아온 듯 반가웠다.
김명성씨가 연락했다는데, 좀 수척해 보이기는 하나 생각 외로 좋아 보였다.






그동안의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그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회상’과 ‘떠날 때는 말없이’ 두 곡을 불렀는데, 너무 절절했다.
감정에 몰입되어 터져 나오는 노래 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김상현씨의 노래 소리가 오랜만에 인사동을 울렸다.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사진, 글 / 조문호





'제5회 오늘전' 전시작


임하룡작

임하룡작

이준섭작

장용주작

샤샤정작

정승재작

정승재작


























 




시인 김명성씨가 ‘아라아트’를 개관한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6년이 되었다.
재벌도 그 정도 건물을 짖게 되면 이리저리 재느라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데,
그는 초지일관 생각대로 밀어붙였다.





인사동 메카로 만든다며 건평 100평이 넘는 지상5층, 지하4층에
다른 매장 하나 들이지 않고 갤러리만 고집한 것이다.
결국 못 버텨 중국 업자한테 넘어갈 때는, 인사동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 했다.





그동안 삼십여 년 동안 그에게 신세 진 예술가들이 너무 많다.
더 이상 도움 못 받아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인사동 예술가들의 꿈이 좌절되었기에 더 슬프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던 그를 믿기 때문이다.





지난 9일은 김명성씨 생일이었다.
둘도 없는 사람의 생일과 하루 차이라 잊을 수가 없다.
여지 것 생일 때마다 잔치를 같이 했는데, 이번엔 동지가 일이 생겨 갈수 없단다.





하필이면 잘 모르는 ‘송추 가마골’이라, 식당 찾느라 좀 헤맸다.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서길헌, 전인미, 박성식씨가 와 있었다.





김명성씨로 부터 오랫동안 신세졌지만, 그동안 밥 한번 산 적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손님이 많아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이번에는 밥 값이라도 내고 싶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더구나, 그때처럼 잘 나가지 않을 때라 기회다 싶었다.






그런데, 그 집 음식 값을 살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꼬불쳐둔 신사임당 두 장으론 어림없었다.






마침, 박성식씨가 산다기에 단번에 꼬리 내렸지만, 거지가 밥 산다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돈도 돈이지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좌우지간 원님 덕에 나팔 불며 잘 먹었으나, 양쪽으로 한 알뿐인 이빨로 고기 먹느라 바빴다.
부디 생일 복으로 소원성취하길 빈다.


김명성씨가 살아야, 인사동도 살고, 작가들도 산다.

사진, 글 / 조문호













오늘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 대포 한 잔하는 셋째 수요일이다.

정영신씨 더러 인사동에서 밥 한 그릇 사달라는 전화를 했다.
어디서 만날 것이냐기에 대뜸 ‘인덱스갤러리’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지만, 밥값에 버금가는 찻집에서 만날 수는 없잖아.






낙엽이 뒹구는 인사동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또 겨울이 찾아오고 실없이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황량해 졌다. 사치스럽게도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이군열 사진전이 열리는 ‘나우갤러리’부터 들렸는데, 오프닝 준비로 바빴다.
‘자연의 성’이라 이름붙인 흑백 풍경이지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쓸쓸한 늦가을 분위기와 어울릴 것 같은 임춘희씨 '나무그림자'를 보러 ‘통인’으로 갔다.
변화무쌍한 감정을 마치 자서전처럼 화폭에 풀어놓았는데,
혼란스럽기도 하고 황량한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앙상한 겨울나무가 연상되었고, 아련한 향수도 밀려왔다.






정영신씨와의 약속 시간이 되어 ‘갤러리 인덱스’로 자리를 옮겼다.
김종성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거리는 한산해도 전시장은 북적였다.
아는 분이라고는 최건수관장을 비롯한 한 두사람 뿐이었다.






사람 틈을 비집고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사진이 왔다 갔다 했다.
정영신씨를 데리고 나와 버렸다.






정영신씨와 저녁식사를 한 후 ‘유목민’으로 갔다.
그 곳에는 유진오씨와 김완기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완기씨가 너무 오랜만이라 근황을 물어보았는데,

피맛골 가게를 처분하고, 삼개월 동안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좀 있으니, 이인섭선생이 나타났고 김재홍씨는 박기자라는 친구 분을 데리고 왔더라.
김명성, 서길헌, 김각환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왔으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자리를 비켜주고, 옆집 커피숍으로 옮겼다.
연신내 연서시장으로 가자는 김명성씨 따라 지하철을 탔지만, 더 이상 술 생각은 없었다.
그날따라 혼자 있고 싶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계절을 타는 건지, 갈 때가 된 건지, 마음이 찹찹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에 대한 경의”, 연남동 공간41’에서 9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전인경씨는 만다라(Mandala) 안에서는 인간과 우주가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풀어간다.  수많은 핵으로 형성된 윤회적 표현들은 순환과 회귀로 이어지며, 해와 달의 시간성을 나타내기도 한.


그녀는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수행자가 된다. 자신의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마음의 중심을 찾아나서는 내면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 무의식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명상적 기도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에서 부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향해 덧칠해 가며 만다라의 원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는 성신여자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만봉 스님으로 부터 4년 동안 불화를 사사받아, 불화와 단청 학습으로 자신만의 사유 세계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작업해 온 만다라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원으로 표현해 놓아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오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일가를 이루어 펼쳐 온 만다라 작업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뇌과학자의 신경세포 드로잉과 만다라를 결합한 뉴로 만다라연작이었는데, 부제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에 대한 경의라 붙여 놓았다.



 

 

뉴로 만다라전은 100년 전 노벨상을 받은 신경과학의 선구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의 드로잉을 자신의 포스트만다라와 결합하여 새로운 과학예술의 장을 열고자 시도했다. 최초로 신경세포를 관찰하고 기록한 드로잉을 토대로 8점의 오마주 작업을 했으며, 현대 뇌 과학이 밝혀낸 신경세포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 4점도 발표했다.



 

 

이번 뉴로 만다라전에는 신작 12점과 함께 6점의 포스트만다라연작을 소개했는데, 5미터가 넘는 대작 슈퍼노바는 탄소의 탄생을 형상화한 것으로 만다라 연작의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었다. 함께 선보인 작품들도 만다라의 우주적 세계관과 천문학을 결합한 것으로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과학예술로 진화하는 전인경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인경씨의 작업은 세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이후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만다라를 통해 우주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인간 생명의 감추어진 구심점을 찾는 여정을 거쳐 온 것이다. 작년에 가진 두 번의 개인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이나 보여줄 정도로 부지런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성급한 전시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따랐다.



 

 

미학의 뇌를 번역한 심희정 미학박사는 전인경의 작업 뉴로만다라는 예술적 상상으로 그려진 신경 체계에 대한 어떤 상이다. 거대한 은하계, 자연 세계의 어떤 단면을 연상시키며, 신경체들이 이루어내는 화면은 우주 기원, 생성과 소멸, 접촉과 변형을 연상시키며 글자 그대로 수많은 차원과 관계를 말한다고 말했다.



 

 

전인경씨는 시냅스는 시냅스작용이 일어나는 것들끼리 강해지고 굵어지며, 신경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도 관계에서 의해서 일어나고, 우리의 인간사도 만나면 헤어지는 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생로병사의 인간 세계는 신경 세포의 생장과 정지, 연결과 단절은 우주에 있는 별들의 생성과 소멸과 같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 14, 연남동에 있는 갤러리 공간41’를 찾았다.

마침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작가 전인경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심희정, 이준기씨,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 시인 조준영씨, 화가 서길헌씨 등 여러 명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성 구청장과 만봉스님 자제 이인섭선생, 큐레이터 전인미씨 김용국, 김상윤씨가 차례대로

나타나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신작들과 함께 눈에 익은 작품도 더러 보였으나,

5미터가 넘는 대작 앞에서는 입이 벌어졌다.

전인경씨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뒤풀이 장소에는 무세중선생을 비롯하여 김명성, 이광군씨등 많은 분들이 먼저 와 있었다

 

사진, / 조문호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옛날 유행가 자락이다.
술꾼들은 예수님 말씀을 너무 잘 듣는다.
원수라는 술을 그토록 사랑하니까...






술 때문에 먼저 간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닌데다,
더 마시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뿌리치질 못한다.
사랑이 아무리 진하다지만, 목숨 바치는 사람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은 술자리를 피해 인사동도 한 낮에 가지만, 며칠 가질 못한다.
저녁 먹자는 김명성씨의 뻔한 전화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봐야 할 전시도 있어, 서둘러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인사동 벽치기 골목 깊숙이 박혀있는 유담 커피집에는
김명성, 김용국씨와 함께, 제주에 사는 이용철씨도 와 있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술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요즘 김명성씨 패거리는 술도 인사동에서 마시지 않고, 연신내에서 마신다.
그 곳은 불러 낼 술꾼도 많은데다, 음식이 맛있고 싸기 때문이다.
연서시장 안에 있는 ‘똑순내’집이 단골인데, 주모의 넉살도 죽인다.
여럿이 간장게장에 병어 찜을 안주로 실 컨 마셔도, 오만원이면 떡을 친다.





삼청동 '이노갤러리'에 들려, 전시장 지키던 강찬모화백 까지 데리고 갔다.
데모대 막는 경찰에 막혀, 택시 안에서 돈만 버리다, 결국 지하철을 타야 했다.
먼저 간 김병국씨가 술상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술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해인, 이만주. 서길헌씨가 왔고, 늦게는 최벽호씨 영화 찍는데 갔던 오세필씨도 등장했다.






그 날의 화제는, 오래전 인사동 ‘실비집’이나 '시인통신'에서 퍼 마시던 이야기였다.
추접 떨기로는 사진기자 김종구를 당할 자가 없었는데, 

막걸리 주전자에다 여름철 꼬랑내 나는 양말을 휘휘저어 짤아 마시지를 않나,
어떤 놈은 한 술 더 떠, 똥딱지 묻은 빤스까지 벗어, 술에 짤아 쳐 마셨다.
벌주로나, 기 싸움으로 마시는 호기도 천태만상이었다.






그 지긋 지긋하던 일들도, 이제 아련한 전설이 되었는데,
강찬모씨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 주었다.
지금에야 술을 멀리하여 부처같이 살지만, 그도 예전엔 꼴통이었다.





어느 놈이 커다란 막걸리 주전자에다, 남자변기에 붙은 누런 찌꺼기를 끌어 넣었다고 한다.
한 참을 마시다 주전자에 덜거덕 덜거덕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변기 찌꺼기를 걸러주는 마게였다고 한다.






아무리 더러워도 모르고 마시면 약이겠으나, 알고 나면 속이 뒤집힐 것 아닌가?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위생을 따지는 요즘 잣대라면, 다들 병 걸려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 목숨이 생각보다 질긴 것이다.






서울역에 사는 노숙자들을 보면 알 수있다.
그들은 물을 겁내는 족속이라, 목욕은 커녕 손도 씻는 일이 없다.
항상 더러운 손으로 상한 음식을 먹어도 배탈도 나지 않는다.
몸은 길들이기 따라 내성이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술자리의 객기는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꼬맹이 시절에 아버지 친구들이 어울려 벌이는 기행을 엿 본적도 있다.
소리꾼 정상수씨가 운영하는 기방에, 울 엄마 정탐꾼으로 아버지를 찾아 갔는데,
기녀 고무신에다 술을 따라 마시고 계셨다.
다들 알만한 점잖은 분들이라, 기가 막혔다.






그 후 어른이 되어, 그 때의 기행이 풍류로 느껴지며 나도 서서히 물든 것 같다.
술이 취하면 객기를 부리는 것이 다 그 때 영향이 아닐까?
아니면 부전자전이던지...






그 다음에는 죽은 술꾼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쪽방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가는 사람은 다 술꾼이다.

진짜 술이 원수다.



인사동에서 갤러리하던 김용철씨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그 날 처음 들었고,
배불둑이 박진관씨도 몇일 전 혼자 객사했다.

그저께는, 술 취해 가던 김수길씨가 쓰러져 119에 실려 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조해인씨가 ‘인사동 유목민’이란 소설을 쓰며, 그동안 죽은 술꾼을 헤아려보니, 40명이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 술 마시던 김명성씨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먼저 일어나야겠다는 것이다.

놀란 오세필씨가 데려다 주었는데, 지금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수 십 년을 같이 마셨지만, 그런 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지켰던, 그마저 간다면 이제 끝나는 것인가?

다들 술 때문에 죽을 판이지만, 그래도 악을 쓰며 마신다.


“그래 죽자.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얼마만인가? 게임의 승부사 황배추가 연락이 되었단다.
지난 21일 밤, 김명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와 황배추와 술 한 잔 하자는데,
인사동이 아니라 연신내란다.
일요일은 연신내와 가까운 녹번동에서 죽치는 날인지라 총알같이 달려갔다.






연서시장의 장터국밥으로 출동했는데, 그곳에는 김명성씨와 김영국, 김상윤씨가 먼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이만주씨가 나타났고, 마지막에야 우리나라 삼대 구라 중 한 분인 방배추가 아닌, 황배추가 나타난 것이다.






그를 본적이 아마 칠 팔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한 때 인사동주변을 누볐으나, 김명성씨가 인사동에 ‘아라아트’를 세울 무렵 홀연히 사라졌다.
이 친구는 최고의 오르가슴은 게임의 승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40여 년 동안 도박이란 도박은 손대지 않은 게 없는 도박 승부사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그의 지갑은 50만원에서 더하지도 빠지지도 않았다.






한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명동의 한 파친코 업소에서 한 달 동안 틀어박혀 돈을 털어 넣었다고 한다.
전 기계의 특징과 성능을 한 달 만에 완전히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잃은 돈만 찾아내고는,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 매일같이 파친코장을 살피며 손님들과 인맥을 쌓아갔는데,
벼랑에 선 손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위급할 때 한 번씩 도와주었으니, 그때부터 손님들의 불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님이 늘어나자 업소 주인이 더 좋아해, 그를 고용하려 했단다.






그가 돈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황부자로 불릴 만큼 재산이 많기도 했지만,
욕심이 결국은 화를 부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동내 도박판을 기울여 투전꾼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등 그 끼는 타고났다고 한다.
심지어 경마장에서도 백전백승의 승부사였는데, 딴 돈으로 잃은 사람을 도와 주기도 하고,
잃은 사람들과 어울려 한 잔 술로 시름을 풀어주어, 경마장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게임에 모든 시간을 바치느냐고 물었더니,
게임에 적중할 때의 오르가슴은 섹스의 오르가슴보다 더 황홀하고 오래 간다는 것이다.






그 말에 김명성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김명성씨는 도박에는 손대지 않지만, 컬렉터로서 좋은 작품을 낙찰 받거나
자기 손에 넣었을 때의 오르가슴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두 사람 다 한 길에 올인 하는 승부사 기질이나 배짱도 비슷한 것 같았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소설 한 권은 족히 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만주 시인이 두번째 시집이 나왔다며 책을 한 권 가져왔는데, 제목이 ‘삽결살 애가’였다.
시집이 한 권 뿐이라 표지를 찍고 황배추를 주었으나, 누가 디자인 했는지 표지 디자인이 엉성했다.
시집은 시만 좋으면 그만이겠지만, 독자들로부터 읽고 싶은 충동을 끌어 들여야 할 것 아니겠는가?





재미있는 실화를 듣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장터국밥’의 불고기도 맛있었으나,
연신내 부근을 훤히 알고 있는 황배추가 싸고 맛있는 집이 있다며 따라오라 했다.
연서시장 안으로 들어가 “똑순네‘란 이름의 코너에 자리 잡았는데, 간장게장이 짱이었다.
그리고 주인아줌마의 서비스나 손님 기분 맞추는 넉살도 보통은 아니었다.





황배추는 주인을 잘 알았지만, 다들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가기 바빴다.
김영국씨가 간장게장 국물로 밥을 비벼 먹는데, 한 술 얻어 먹어보니 기가 막혔다.
이 국물만 있으면 쪽방에서도 끼니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손님들이 먹다 남은 국물까지 모두 싸 달라고 했고, 김영국씨도 별도의 간장게장을 싸두었다.






이 날은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기분도 좋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맛있는 음식까지 포식했으니, 기분 째지는 날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싸두었던 간장게장 봉지를 들고 일어서야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김영국씨의 봉지와 뒤 바뀐 것이다.
난 이가 신통찮아 국물이 필요했으나, 봉지 안에는 통 게가 들어 있었다.
먹을 복이 없는 건지, 있는 건지, 결국 간장게장은 정영신씨 몫이 되어 버렸다.






난 평생 스스로 도박에 승부 걸어 본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 게임의 오르가슴을 잘 모른다.
그러나 사진에 미쳐 한 길을 걷고 있으니, 이것 또한 도박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결혼하여 직업을 선택해 사는 세상살이 자체가 도박이겠더라.

그래 “인생은 도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지만, 자식 하나 장가보내는 일이 힘들긴 힘들었나보다.
몇 날을 실성한 듯 방황하다, 경상도로 강원도로 떠돌다 오니 좀 나아진 것 같다.





원인은 개인적인 일을 페이스북에 나발불어 떠벌인데 대한 부담감과,
블로그에 올린 글을 내리라는 압박에 대한 거부감이었던 것 같았다.






신세진 분들께 인사도 드리지 못했지만, 도와주신 분의 목록은 무덤까지 안고 갈 것이다.
사진이든 글이든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차례 차례 보답할 작정이다.





그리고 블로그에 올린 내용은 오보가 있을 때만 수정하지, 전체 내용을 내린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명예훼손으로 소송까지 걸려도 내리지 않는 것은 시정을 위한,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기된 사안은 새로이 맞은 사돈과 친동생 같이 지내는 김명성씨 요구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치관의 차이나 지레 겁먹은 것이지 하등에 문제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명성씨는 블로그 아이디를 알고있는 정영신씨에게 쓰리쿠숀을 쳐 더 열 받게 했다.
그 이후 비밀번호를 바꾸어 아무도 모르게 했지만, 그 날 기록은 기억조차 할 수 없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동자동으로 복귀하여 일상으로 돌아왔다.

허튼 일에 끌려 다니지도 않을 것이며, 성가신 생각일랑 말끔히 지워버렸다.

비록 쪽방이지만 내집이 편하다는 걸 실감한다.

배고프면 끼니 때울 걱정은 있으나,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은 빵 타러 공원에 내려갔더니, 긴 행렬이 양쪽에 줄지어 있었다.
한 쪽에는 추석선물을 나누어 주었는데, 알아보니 삼성에서 돈 내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가 마련한 선물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난, 추석선물보다 주린 배를 채울 빵이 더 필요했다.
빵을 탄 후에도 선물 주는 줄이 끝나지 않아 어렵사리 선물박스도 받았는데, 뭔가 무거웠다.
황금덩이는 아닐 테지만, 잔뜩 기대감에 4층까지 낑낑대며 들고 올라간 것이다.
열어보니 한 살림이 나왔다.





밀가루, 설탕, 부침가루, 국수, 당면, 간장, 고추장, 된장, 식용유, 참기름, 소금 등
주방에서 필요한 물건은 다 들어 있었다.






공간이 좁아 밥을 해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좁은 방에 그 많은 물건을 둘 곳도 마땅찮을 것이다.
물론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필요 없는 것은 비좁은 방에 그냥 쌓아둘 수밖에 없다.





얻어먹는 거지 주제에 주는 대로 받지, 웬 말이 그리 많으냐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가난한 쪽방주민들을 위한다면 좀 더 합리적으로 도왔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한 사람에게 줄 액수만큼 상품권으로 나누어 주어, 필요한 것만 구입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품구입에 따른 리베이트를 챙길 수 없는데다, 나누어 줄 때 광고 효과가 없어 그러는 것 아닌가?
이런 이야기가 여러차례 나왔으나, 계속 줄 세우며 밀어붙이는 것은 좆 까는 소리 하지 말라는 건가?





더 이상 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만들지 마라.

다른 지역에 없는 '쪽방상담소'는 당장 해체하고, 모든 일은 동사무소에서 전담하게 하라.

이런 일로 청와대에 민원 넣기를 바라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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