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민선생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글을 페북에서 읽었다.

깜짝 놀라 입원하신 분당 서울대학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안내에서 필명으로 병실을 못 찾아 부득이 환자분에게 전화를 드려야했다.
어렵사리 병실을 찾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병세는 호전되고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3일전 의식을 놓은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 오셨단다.
검진결과 폐혈증에 의한 쇼크로 체장에 커다란 담석이 생겨 심한 통증을 일으켰다고 한다.
담석은 간단하게 제거했으나, 폐혈증에 따른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몇일 동안 병원신세를 더 져야할 것 같았다.

두 달 전에는 버스에서 내리다 달려드는 개구쟁이에게 부딪혀 넘어진 것이 팔이 부러지는 사고로 이어졌는데,
아직까지 팔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이은 우환이 생긴 것이다.

아마 건강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신호인 것 같은데, 앞으로는 그 좋아하시는 복분자 술도 삼가야 될 것 같다.

부디 건강을 지키시어 기어이 인사동의 봄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간병하는 두 아드님과 며느리가 옆에 있으니, 복 받은 분입니다.

사진,글 / 조문호

 

 

 

 

 

 

 

 

오늘은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하는 터줏대감들 만나러 가는 날이다.
그 분이 바로 시인 강 민선생과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이시다.
강민 선생께서는 시로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하고, 심우성선생은 몸으로 인사동 아리랑을 추신다.

두 분 다 인사동을 너무 짝사랑해, 인사동 아리랑고개로 넘어 가시겠단다.

지난 17일 오후3시 무렵, 두 분을 만나러 인사동 ‘예당’으로 갔다.
그 곳에는 강 민 선생을 비롯하여 소설가 김승환, 유금호선생, 그리고 시인 이애정씨가 계셨다.
좀 있으니 옷상자를 챙겨든 심우성선생께서 싱글 벙글 들어오신다.
대학로에 공연이 있어 상복 한벌 지어 오셨는데, 삼일동안의 출연료 대신 옷 한 벌 지어 달랬단다.

‘유목민’으로 술 마시러 가자는 강민선생의 말씀에 심우성선생께서 손사래를 치신다.
'오늘은 여자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며 서둘러 일어나신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복분자에다 민어회를 시켰는데,
그 술값을 유금호선생께서 다 내 주시어, 한시름 놓게 했다.

 

뒤 늦게 심우성선생께서 재 등장하시어, 복분자 한 병 추가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8월10일 오후의 번잡한 인사동 풍경이다.

 

더위가 한 풀 꺾였다지만, 여전히 더웠다.

수제 옷핀을 파거나 재활용품을 줏는 할머니들의 모습들이 안스럽다.

관광상품가게를 기웃거리는 외국관광객들에게는 인사동이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했다.

거리에서 화가 장경호씨를 만나 'M갤러리'의 '피서전'을 비롯한 여러 전시장을 돌아보았다.

인사동사거리 구석에 버틴 목공소 하나가 급변하는 상권에 밀려나지 않는 것도 참 용타 싶다.

목공소 담벼락에 묻은 삶의 손때에 더 무게가 느껴진다.

 

나와 인사동의 인연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그 곳에서 많은 벗들을 만났고, 예술과 낭만을 만났다.

그러나 지금의 인사동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풍정과 인심은 물론, 그 때 그 사람들 조차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더러는 운명을 달리하기도 했지만, 대개 삭막한 인사동 출입을 자재한다.

 

인사동이 도떼기시장이 아니라 전통예술의 메카가 아니던가.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나지만, 그 많은 전시장들은 텅텅 비어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그 많은 사람들을 전시장으로 이끌 수는 없을까?

군것질거리나 잡동사니를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만의 고품격 문화를 팔수는 없을까?

 

인사동을 관할하는 지자체 관계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인사동 소재 갤러리의 큐레이트와 연계해, 주 단위의 인사동 전시 안내는 물론

좋은 전시를 행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전시별로 작업 내용이나 작가 의도를  간략하게 소개해 관심있는 전시로 행인들의 발길을 유도하자. 

이제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미술관에 자주 들려, 어릴 때부터 예술과 친숙해지도록 만들어야한다.

전시작가들도 텅 빈 전시장만 지킬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옛날 영화관 광대처럼 등짐 북을 메고 돌며 전시를 알리는 퍼포먼서는 안될까?

 

그리고 인사동 문화를 통괄하려면, 전문지식이 없는 행정 공무원으로는 안 된다.

문화기획자를 영입하여 각계 문화 인사들과의 연결망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 구청 문화과에 제안한 적도 있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작은 이득에 눈이 어두워 큰 것을 놓치는 상인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말 빨 없는 예술가들의 넋두리만 인사동 술집으로 흘러다닐 뿐이다.

인사동 터줏대감 격인 강민 시인이나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의 한숨 소리만 더 높아 간다.

 

행여 반가운 인사동사람들을 만날까봐 오늘도 하릴없이 인사동 거리를 방황한다.

변해가는 인사동 거리와 오가는 사람들을 기록하지만, 늦은 밤 술 취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더 즐긴다.

같이 동화되려면,  카메라가 늘 막걸리에 얼룩져야 했다.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지만, 취중 분위기 그대로가 좋은 것이다.

 

나는 사진으로 인사동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기처럼 기록할 뿐이다.

아무리 디지털카메라에 의한 이미지홍수시대에 산다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는 그 사진들이 보석처럼 빛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역사 아니던가.

 

사진,글 / 조문호

 

 

 

 

 

 

 

 

 

 

 

 

 

 

 

 

 

 

 

 

 

 

 

 

 

 

 

 

지난 5일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개막식에 가려고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평소와는 달리 한산한 지하철이었는데, 취기 있는 나그네의 대금 소리가 처량했다.

구성지게 부는 ‘동백아가씨’가 매끄럽지는 않았으나 덜커덩 그리는 지하철 소리보다는 나았다.

박수까지 쳐 주며 분위기를 돋구는데, 광화문역에서 팔을 깁스한 강 민선생께서 타셨다.

 

반갑기도 놀랍기도 해 자초지종을 여쭈었더니 두 달 전, 발을 헛디뎌 오른 팔목이 골절되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을 뵌 지가 엇 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게 부끄러웠다.

뭐 대단한 일한다고 인사동 소식도 접하지 못한 채, 그리 바삐 다녔는지 모르겠다.

 

이 무더운 날씨에 깁스하고 지내려면 얼마나 힘들까?

이 날도 인사동에 나왔다가 들어 가시는 길이라지만,

내일은 양산 계시는 방동규선생이 오셔서 또 나오신다는 것이다.

 

강 민선생은 몇 안 되는 인사동 터줏대감이시다.

변해가는 인사동에 가슴조리며 하루를 마다하고 인사동에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얼마나 인사동을 사랑했는지는 선생의 시 ‘인사동 아리랑’연작에서 알 수 있다.

 

또 한 분은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이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인사동 여관에 장기투숙하신지가 어느 듯 일 년이 가까워 온다.

싸게 파는 식권으로 끼니 해결하며 후배가 운영하는 술집 모퉁이를 사무실 삼아

인사동의 마지막 낭만을 즐기시는 분이다.

 

강 민선생이나 심우성선생 같이 인사동을 사랑하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음 주 초에 서울로 돌아오면 만사 제켜 놓고, 두 선생님 모시고 식사 한 끼하고 싶다.

 


사진,글 / 조문호

 

 

 

 



 

 

수요일만 되면 별 볼일 없어도 인사동에 나가고 싶어진다.

전시장들은 새로운 작품들로 교체되고, 거리에선 반가운 인사동 사람들을 쉬 만날 수 있어

모처럼 인사동 기운이 충천하기 때문이다.

지난 27일엔 사진가 변홍섭씨와의 오찬약속을 수요일로 잡아두어, 일찍부터 작정하고 나올 수 있었다.
변홍섭씨는 정선같이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자문을 구해왔으나

내가 사는 곳은 이미 관광지화 되어 추천할 수가 없었다.

‘툇마루’에 식사하러 가서는 음유시인 송상욱선생을 만났고,

‘귀천’에 차 마시러 가서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을 만났는데, '귀천'엔 빈 자리가 없었다

인사동거리에서는 사진가 이갑철, 육명심씨, 시인 강 민, 이행자, 서정춘씨, 소설가 구중관씨,

서양화가 안창홍, 이종송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사진평론가 최건수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평소 인사동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고작 한 두 사람에 불과한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대박수준이다.

그러나 대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거나, 금주령이 내려 진 분들이 많아 술 한 잔 하자는사람이 없었다.

무더운 날씨의 낮 술에 취하면 힘들 것 같아 점심식사 때부터 사양했지만,
막상 그냥 지나치려니 맹숭하고 허전했다.
그래도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 여한은 없었다.

사진,글 / 조문호

 

 

 

 

 

 

 

 

 

 

 

 

 

 

 

 

 

 

 

 

 

 

 

 

 

 

 

 

 

 

 

 

 

 

 

 


 

오랜만에 시인 강 민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21일 오후1시경 ’하누소‘에서 만나 이행자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했다.
강민 선생께서는 한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했으나, 이젠 한결 나아졌다고 하셨다.
그날은 가난한 이행자 시인께서 밥값 술값을 계산했는데, 신발마저 예뻤다.

오후6시에는 조준영시인과의 만찬약속이 있었다.
정영신과 함께 한 ‘유목민’ 옆자리에는 노현덕, 정기영씨의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는 뜻밖에도 조해인시인 내외가 나타나 함께 어울렸다.

조해인씨는 명상에 관한 글을 탈고해 ‘해냄출판사’대표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천상병시인의 근거지를 빨리 인사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천상병문학상'의 선정기준도 작품의 우월성에만 한정하지 말고,
천선생의 시 색깔에 맞는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인의 친구 분들은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등 돌린 의정부행사보다는
생전 선생의 삶과 창작의 근거지였던 인사동에서 주관할 것을 모두들 바라고 있다.
천상병시인을 내세워서라도 인사동문화와 풍류를 되살렸으면 좋겠다.

사진,글 / 조문호

 

 

 

 

 

 

 

 

 

 

 

따뜻한 햇살에서 따가운 햇살로 바뀌었던 지난 5월 21일은
오찬약속에다 만찬약속까지 겹쳐 온종일 인사동을 맴돌아야 했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아는 곳을 방문했으나

낯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 민선생님과 이행자시인을 만나 오찬을 함께 하였고,

인사동 거리에서는 만화가 박재동선생을 만났다.

 

도화가 오만철씨를 비롯하여 김 민씨, 김비아씨, 송정순씨의

전람회장에 들렸고, ‘갤러리 나우’와 ‘공아트’, ‘아라아트’ 사무실에

들려 이순심관장과 공창호씨, 전인미 감독을 각 각 만났다.

‘허리우드’에서는 김명성, 이상훈, 공윤희씨를 만나기도 했다.

인사동거리는 유랑 악사들과 초상화 그리는 이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렇게 바쁘지 않은 나들이객들의 발길을 잡지는 못했다.
파리만 날리는 인사동 전시장과는 대조적으로, 그 많은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이나 찍으며 관광상품가게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게 일상적인 인사동의 풍경이니 머지않아 관광객도 줄어들게다.

그 관광객들이 물러나야 인사동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7일,  강민선생을 뵙기위해 인사동으로 나갔다.
일에 빠져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늦어 송구스러웠다.

 

강 민, 김승환선생과 ‘포도나무집’에서 식사하며 딸기 술도 마셨다.

 

이차로 간 ‘유목민’에서는 이행자시인과 심우성선생,

장경호씨를 만났고, 늦게는 정기영, 허미자씨도 왔다.

 

해삼과 굴에다 밑반찬으로 더럽 까지 나와 술상이 그득했다.

낯 술에 약한데다 막걸리를 데워 먹었더니, 금세 올랐다.
술 취하면 돌아다니는 버릇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김주대시인의 문인화전과 조성제씨의 ‘우포늪’전에 들렸다.
인사동거리에서 김명성, 김주대 시인과 박진화 화백도 만났다.

늦게 간 ‘무다헌’에서는 너무 취해 모두 잊어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눈을 떠 보니 배성일씨가 와 있었고, 장경호씨는 취해 있었다.
주인장 강고운시인을 갑질 행세한다며 나무라고 있었다.

요즘은 갑의 수난시대다.
독수리도 까마귀 무리에 쫓기는 시대란다.
집에서도 갑보다 을이 더 편하던데, 왠 갑질 논쟁일까?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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