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인사동 ‘양반댁’에서 이명동선생님을 모시는 사진가들의 오찬 모임이 있었다.

이명동 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황규태, 이완교, 구자호, 전민조, 유병용,

이기명씨 등 열명이 모여 정겨운 환담을 나누며 또 한 해를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달랬다.

그 날은 돌아가며 차례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육명심선생의 제안으로

사진에 관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대구사진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구자호선생으로 부터 여러 가지

그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이완교씨는 파리비엔날레에 초대되었던 당시의 보람과

애로를 말했다. 그리고 육명심선생은 몇일 후에 티벳 작업을 정리한 사진집이 나온다는

말씀을, 한정식 선생은 지병에서 해방되어 사진촬영을 다녀 온 말씀을 하셨고,

이기명씨는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제주 해녀’ 프로젝트 대한 뒷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민조씨는 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작가들을 초대한 심포지움에 대한 이야기를,

유병용씨는 내년 5월에 있을 개인전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내 정영신과 600여개 오일장 순례를 마감하고, 그 보고서 형식의 전시를

올 연말에 하기로 했으나, 출판이 지연되어 내년 1월20일로 연기되었다는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황규태 선생 차례가 되자 황선생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나는 할 말도 없고, 조형! 그 팔팔이나 하나 줘요”


사진,글 / 조문호

 

 

 

 

 

 

 

 

 

 

 

 

 

 

 

 

 

 

 

 

 

 

 

 

 

 

 

 

 

 

 

 

 

 

 

 

 




우울증까지 겹쳐 오랫동안 고생하신 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완쾌되셨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인사동 ‘월평’에서 오찬 모임을 갖는다는 반가운 연락에 아내와 함께 서둘렀다.

그 자리에는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안미숙씨 내외,
김기찬선생의 미망인 최경자씨도 함께 오셨다.
이규상씨 내외는 10권의 사진집 만드는 일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지만, 어렵게 참석하셨다.

건강을 되찾은 밝은 모습의 한선생님께서는 못다한 이야기로 일사천리 바쁘신데,
최경자씨의 수다까지 더해 듣는 귀는 마냥 즐거웠다.

반가운 소식에 반가운 분들 만나, 술과 음식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하랴!
늘 오늘 만 같아라. ㅎㅎ

 

 

 

 

 

 





토요일부터 사흘간의 연 이은 외출로 하던 일의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월요일인 지난 15일, 사진가 한정식선생과의 약속으로 아내와 함께 인사동 ‘여자만’에 갔다,
뜻밖에 그 곳에는 시인 강 민선생과 신경림선생 등 문인 몇 분이 자리하고 계셨다.
반가웠지만 함께 할 처지는 아니었는데, 오후4시 ‘유목민’에서 이명희씨를 만나기로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식사를 끝낸 후 한정식선생과 ‘장은선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이창남씨의 사진을 보러 갔다.
장시간 노출에 의한 바다 풍경이 마치 회화 같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요즘은 회화와 사진의 경계가 사라졌다.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는가하면 그림 같은 사진을 찍는 사진가도 있는데,

단지 붓과 카메라라는 표현도구만 다를 뿐인 것이다.

시간이 되어 ‘유목민’으로 가는 길가에서 이명희씨를 만났다.
반가워하는 말괄량이 여배우의 수다는 여전했다.
술집골목으로 접어드니 강 민선생과 심우성선생께서 노상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술집 문 열기만 기다리고 계셨다.

강 민선생은 “문학의 집. 서울” 9월호에 게재된 “전쟁과 미로‘로 보여주셨는데,

옛 양평 집 에서 떠나올 때 마지막으로 찍었다는 기념사진을 보며 그리움과 아쉬움을 같이 했다.

심우성선생께서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화색이 만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는 10월 초순경 광화문광장에서 이애주씨와 공연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할 일이 생기면 신바람 나는 것이다.
그 느릿한 지팡이 굿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조상의 가보로 물려받았다는 향통까지 가져와 보여주었는데,
심씨 가문의 기록들이 꼼꼼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아내가 “선생님께서 제일 좋아 하는 건 무엇입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망설임 없이 “난 여자를 제일 좋아 합니다”고 대답해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솔직한 대답이었고, 노익장의 끼를 느낄 수 있는 말씀이셨다.

이 날은 송구스럽게도 심우성 선생께서 찻값에다 술값까지 다 내셨다.

 

 








 

 

 

 

 

 

 

호주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의 자연풍광과 삶을 담은 호주 아웃백 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8월27일 오후6시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렸다.

이 날 개막식에는 월리엄 패터슨 주한 호주대사를 비롯하여 사진가 한정식, 김광수, 조문호, 김가중, 이순심 관장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의 붉은 심장부 ‘노던 테리토리’ 지역의 자연과 삶을 담은 전시작 28점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작가 11명이 촬영한 작품들이다.

일명 호주의 붉은 중심부라고 불리는 ‘노던 테리토리’ 지역의 Outback과 그 지역에 거주하는 호주 원주민 문화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호주 북부 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 험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기존에 가졌던 호주에 대한 인상과는 달리 새로운 호주에 대한 탐험 심리를 불러일으킨다.

젊은 원주민 사진작가들이 삶의 환경을 세밀하고 진정성 있게 기록해, 그들의 문화와 삶의 모습에 한결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전시는 오는 9월2일까지 개최되오니 많은 관람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7월12일 오찬 약속으로 아내와 함께 일찍부터 인사동에 나갔다.
대상포진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이젠 우울증까지 생긴 사진가 한정식선생을 만났는데,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와는 동병상련의 심정일게다.
‘여자만’에서 식사하고, 선생의 오피스텔에서 차 마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건강이야기, 사진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등등..

아내가 ‘허리우드’에서 조경석선생을 만나는 사이 인사동거리를 쏘다녔다.
관광객들로 번잡한 인사동 거리에서 송상욱시인과 고창수시인을 만났다.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송상욱선생의 손에 끌려 ‘인사동사람들’에서 차도 한 잔했다. 
헤어진 후  심우성선생을 만났고, 통인가게 김완규회장과 세계일보 편완식기자도 만났다.

저녁 무렵에는  김명성시인과 사업가 정기범씨를 거리에서 만났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오랜만에 나온 김신용시인을 만났다.
“새를 아세요”(가칭)란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왔다는데,
긴 작업을 마무리한 후련함이야 짐작할 만 했다.
'황야의 무법자'를 연상케 하는 그의 휘바람소리가 말해주었다.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흰소리라도 지껄이고 노래를 불러가며 마셨기에

긴 시간 술을 마실 수 있었으나, 요즘은 조용히 마셔서인지 금새 취해 버린다.
조경석, 공윤희, 전은미, 김영길, 유진오, 노광래, 김상현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으나
몸이 견디지 못해 먼저 줄행랑쳤다.

 

그 이틑 날은 마산에서 서양화가 이강용씨가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울만 오면 하는 일 없이 인사동에서 사람 만나느라 바쁘다.
‘서울순대’에 미술평론가 유근오씨와 패션디자이너 손성근씨와

함께 있었으나, 끌고 나간 자동차 핑게로 일찍 들어왔다.

 

정선은 정선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가는 곳마다 할 일이 밀려있다.

당장 출판사 넘길 사진원고 찾는 일이 급하지만 인사동이 가만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떠도는 유목민마저 사라진다면 인사동이 얼마나 삭막해 질까...

 

 

 

 

 

 

 

 

 

 

 

 

 

 

 

 

 

 

 

 

 

 

 

 

 

 

 

 

 






그동안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회를 인사동에서 정기적으로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이명동선생의 전시가 열리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있는 ‘어양’ 중식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졌다.

지난 7월 28일 정오에 가진 오찬회에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 전민조, 조문호, 구자호, 김영수, 유병용, 이기명, 고 김기찬씨 미망인 최경자씨등 모두 열 한 명이 참석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사진사를 정리해 오신 육명심선생께서 우리나라 근대사진사에서 이명동선생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 초창기 사진은 대부분 사진관 인물사진이었지요. 그 때의 사진관은 상류층들이 주로 활용하는 곳으로 대개 연미복을 입고 찍었어요.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들도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로 국내작가로는 이해선, 서순삼, 현일영, 박필호씨 등이 주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명동선생께서 당시로는 아마추어 사진가에 불과한 임응식씨를 내 세워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며 사진계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거지요.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명동 선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진협회 창설이나 '동아사진콘테스트'로 사진판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명동선생의 숙적이나 마찬가지였던 사진가 이종화선생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더니, 문상 오신 이명동선생께서 달구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례가 끝 날 동안 지키고 계셨어요. 결국 이명동선생의 인간적인 면모에 끌려 생각을 바꾸게 된거지요. 그동안 사진계에서 이명동선생의 도움을 받지않은 분이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임응식선생과 임선생의 직계였던 홍순태교수가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끝까지 도와주는 그런 분이예요. 모든 공적과 실리를 임응식선생께 돌리고 뒤에만 계시던 이명동선생께서 임응식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니, 그 아들 임범택씨를 위해 팔방으로 애쓰셨어요. 분명한 가치관과 인간적인 의리로 똘똘 뭉친 분이지요.”

올해로 이명동선생의 연세가 아흔다섯에 이르지만 건강상태는 물론 기억력까지 너무 좋아 팔순 정도의 연세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백수는 물론 아직도 십년 정도는 건강하게 사실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진계의 최고 원로이자 산증인이지만, 병석에 계신 사모님 간병으로 만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계신다. 사진인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나오셔서 사진계 비사들을 들려주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다. 유병용교수가 인터뷰를 가져 많은 사료들을 기록해 놓았다니, 머지않아 한국사진사의 볼만한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는 이명동선생 이야기 외에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얼마전 사진가 전민조씨와 고 김기찬선생의 미망인 최경자씨가 독일 사진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다녀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울시가 일억 오천만원 상당의 전민조씨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동안 순수사진에 밀려 뒷전에 머물던 기록사진의 가치가 늦게나마 인정받았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사진을 하는 입장에서 엄청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좌로부터 사진가 육명심, 전민조, 이기명, 한정식씨, 한미수석큐레이트 손영주씨,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 고 김기찬

      미망인 최경자씨, 사진가 이완교, 김영수, 구자호, 유병용씨와 앞 줄은 필자 조문호




이명동선생님을 모시는 자리가 지난 21일 정오, 인사동 '양반댁'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는 이명동선생님을 비롯하여 한정식, 육명심, 이완교, 김녕만, 구자호, 최재영, 유병용, 이기명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김기찬씨의 미망인 최경자씨 등 모두 열 한분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회를 가졌다.
올 해로 95세인 이명동선생님께서는 아직까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지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모두들 선생님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축배도 들었다. 독일에서 곧 열리게 될 비엔날레에 한국작가로 참여하게 된 이완교씨와 대구사진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맡은 구자호씨로 부터 외국과 국내와의 비엔날레 운영에 대한 차이점을 듣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진계 문제점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거론되었으나, 주요 화제는 사진협회에서 주관해 온 사진공모전의 오래된 비리였다.

사협 공모전 비리가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0년에는 '한사전' 심사비리가 발각되어 사무처장 김모씨가 사전 구속되고 이사장을 비롯한 심사위원, 출품자 등 42명은 불구속 입건하는 등 사진계 초유의 비리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그 당시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씨는 2008년 4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대상수상을 부탁하는 진모씨로부터 3,000만원을 받는 등 2007년년부터 2010년까지 출품자 42명으로부터 총4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그는 보통 대상작에는 3,000만원, 그 외는 300만원에서 1,500만원을 챙겼다고 한다. 김씨는 심사위원들을 협회 이사장실이나 모텔로 불러 미리 출품작의 샘플사진을 보여주며 '눈도장'을 찍게 하거나 심사장에 여직원을 들어오게 해 해당작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서는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 특정 사진을 수장작으로 만들었는데, 김씨가 기획부터 심사위원 선정까지 협회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의 모든 과정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8.000여명이나 되는 사단법인 단체에서 일개 사무처장에 의해 심사위원들이 좌지우지하는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공모전 비리 문제는 '사협'이란 단체가 결성될 때부터 이어져 온 구악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러한 비리물증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 물증을 근거로 출품자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다 고소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부탁한 사람들의 샘플사진 이면에 공모전명, 제공한 금액, 결과 등이 상세히 기록된 협박용 물증의 분량이 라면박스에 가득하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론적으로 사협이란 단체에 작품사진을 심사할 능력 있는 분들이 없다는데 문제가 더 크다. 20여 년 전, 만연한 비리에 식상한 대학교수와 프로사진가들이 모두 탈퇴하였기 때문이다.

이명동선생님께서는 옛날에 있었던 비리의 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어느 출품자가 심사위원들에게 같은 양복기지(원단)를 뇌물로 돌렸는데, 출품자가 의뢰했던 양복점에서 심사위원들이 똑같이 양복을 만들어 입고 심사장에 나와 서로가 놀랐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배꼽을 잡았다.

오찬 모임이 끝난 후 육명심선생과 함께 '갤러리 나우'에 들려 이순심관장과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사진평론하는 진동선씨와 김영태씨가 등장하여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지난 2월 21일 인사동 오찬 모임으로 나섰는데, 인사동은 나설 때마다 마음이 늘 바쁘다.
갈 곳도 할 일도 많다는 생각이 앞서나 막상 당도하고 나면 새로운 전시를 찾거나 길거리를 돌며

사진 찍는 일이 전부다. 수시로 드나드는 인사동에 무슨 사진찍을 것이 그렇게 많으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사진은 만남의 예술이고, 발견의 예술"이기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는게 상책이다.


거리는 전통과 무관한 별의 별 장사들도 많지만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인사동이다.
세상의 중심인 사람보다 더 좋은 사진 소재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을 함부로 찍을 수도 없는 시대다.

작년에는 인사동과 장터에서 사진찍다 문제가 생겨 종로경찰서와 안동경찰서에서 각 각 조서를

받은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평생의 주제가 사람인데, 이제 와서 사진 작업을 접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오래 전 부터 허락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를 기록해 두고, 정면 입상사진을 찍어왔으나

스냅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가끔은 카메라를 휘 둘 때도 더러 있다.
찍을 때 사전 양해부터 구해야 되지만 순간적인 감정 표현이나 동작을 포착하려면 순서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바뀌기 전에 찍은 후  인사도 하고 양해를 구하는 식이었는데, 본인이 거부하면 즉석에서 지워줘

말썽의 소지를 없애면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을 찍지 않았는데, 찍었다고 우겨 가끔 문제가 생긴다.

정오무렵, 안국역 6번출구로 나오니 한 아주머니가 조각천을 이용한 밥상보등을 만들어갖고 나와

손바닥만한 노점상을 펼쳐놓고 있었다. 인사동에 어울리는 노점상이란 생각에 카메라를 들었더니

대뜸 손사레를 치며 “초상권 침해야~”라고 쏘아붙였다. 카메라는 내렸으나 뒷 맛이 씁쓸했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외국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면 오히려 포즈를 취해 난감할 정도로 적극적인데 비해, 

나이가 지긋 할수록 거부하는 분들이 많은 건 무언가 피해의식이 있는 듯했다.
초상권이란 얼굴모습을 분별할 수 있는 사진이 상업용으로 활용되었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정면사진이 아니거나 군중 속에 뒤 섞여 있는 조그만 모습까지 시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리에는 중국관광객들이 몰려다니기도 하고, 패션쇼를 홍보하는 모델들이 줄지어 다니기도 했다.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님을 만났고, 음유시인 송상욱선생과 박찬성씨,사진가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선생

그리고 현장스님도 만났다. 그래도 인사동 나들이의 묘미는 우연히 인사동 터줏대감이나 인사동을

사랑하는 유목민들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

'노마드'에 도착한 현장스님에게 카메라를 겨냥하자 쓸데없는 기념사진은 왜 만날 때마다 찍느냐고 반문하였다.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정식선생의 말씀처럼 "사진예술의 첫머리에 기념사진이 존재하고, 기념사진의 밑바닥에 초상사진이 존재한다"

는 것을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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