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날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작가갤러리에서 지난 16일 개막되었으나

전염병 때문에 별도의 개막식은 생략되었다.

 

조해인, 김수길, 백승호, 장경호, 곽명우, 최석태, 손귀현씨 등

몇몇 지인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전시를 축하했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오붓한 뒤풀이를 마련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열린다.

 

 

 

지난 주말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전날 밤 인사동 이야기원고도 마무리해 넘겼고,

노숙인, 길 위에 살다현수막 전에 사용할 사진도 골라

정영신씨께 넘겨주려 녹번동으로 찾아갔다.

 

주말 쫑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와인이나 한잔할 생각인데,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니, 이게 왠 난리냐?

그날이 생일이라며 여기저기서 꽃바구니가 날아오고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페북 창을 도배했다.

본인도 몰랐던 생일인지라 깜짝 놀랬다.

 

사실, 나는 태어난 자체가 부끄러워 생일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으나 정영신씨를 만나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제일 싫어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부담스러운 선물도 받아야 했다.

 

요즘은 페이스북까지 나팔 불어 동네방네 소문 다 내버린다.

그 수많은 축하 인사에 일일이 답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다.

조용히 살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소통하기 위해 페북에 가입한 자업자득인 것을 어쩌겠는가?

 

미끌미끌한 미역국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어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이태원의 김상현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사 온 빵과 식혜를 술안주로 한 잔하고 있는데,

이번엔 조해인 시인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생일 케잌까지 사 와서는 촌스럽게 촛불까지 켰다.

정영신씨는 이제부터 나이가 한 살이라며 초를 하나만 켜네

한 살짜리 어린애로 취급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아무 일도 안 해도 되고 젖도 빨려주겠네.

그나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도대체 몇 살인가?

며칠 전 김발렌티노가 같은 띠 동갑이라며

꿀꿀이 행님이라고 했으나 계산이 잘 안 된다.

 

낮술에 취해 뻗어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날 새버렸네.

우왕~ 생일이 가버렸잖아.

정영신씨 하고 오붓하게 쫑 파티 하려던 것도 물 건너갔고

기념으로 하려던 한 살짜리 퍼포먼스도 불발로 끝났네.

뒤늦게 한 말로 요즘은 육 개월 지나면 젖 안 물린다네.

 

, 한 살짜리 개구쟁이가 분명한데, 몸은 자꾸 늙어가니 이 일을 어떻하나?

이제 내 나이 철없는 한 살로 돌아왔으니,

행여 어리광을 부리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누가 늙은이들을 인생의 도서관이라 말했던가?

인사동 추억의 파편을 건져 올리려 늙은이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인사동에서 시인학교10여 년 운영하다 말아먹은 정동용 시인,

구름에 달 가듯이를 운영하다 달 가듯 떠도는 사진가 김수길씨,

인사동에서 태어난 만담가 장소팔씨의 아들 장광혁씨,

인사동을 번질나게 드나들며 인사동의 추억을 쌓아 온 안동해씨,

천상병시인을 지독히도 따랐다던 허태수목사 등 여러 명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지난 24일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제는 오래된 인사동 사진 자료 찾느라 잠 못 이루다 아침에서야 잠에 빠졌는데,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방문을 열어보니 교회 젊은이들이 도시락을 가져왔는데, 벌써 점심때가 되어버렸다.

세수라도 해야 할 텐데, 화장실 들어 간 사람은 알을 까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않았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도시락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 부랴부랴 인사동에 나간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추억할 장소부터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추억하려는 장소는 흔적도 없이 다 바뀌어 버렸다.

빗길을 헤집고 다니는 나그네들의 발길만 분주했다.

 

약속한 인사아트프라자전시장에 갔더니,

일을 주선한 노광래씨가 먼저 도착해 장광혁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 사진 찍기가 불편했지만, 당사자들이 추억하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짜증스러웠다.

 

인사동에서 40여 년 손수레를 끌고 다닌 분을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정동용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난한 자는 여전히 가난할 뿐이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조해인 시인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축축한 비가 술 생각을 재촉했지만, 허기가 져 더 다닐 수도 없었다.

술안주 삼아 도시락을 까먹으니, 김수길씨와 정동용씨가 차례로 등장했다.

 

분명 술이 약은 약이었다.

배고픔과 짜증스러운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기억에서 불러낸 인사동 벗들을 안주 삼아 옛이야기로 위안했다.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인사동의 하루였다.

 

사진, / 조문호

 

 

 

김신용 시인이 인사동에 뜬다는 연락을 받았다.

유목민에 출몰하는 디데이는 7일 오후 네 시로 잡혔다는데, 아마 손님 없는 낮 시간을 택한 것 같았다. 

마치 간첩 접선 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구신들 모이 챙기느라 좀 늦었는데, 한 낮의 술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신용, 김명성, 조해인, 장경호, 김원명, 노현덕, 김수길 씨가

두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있었는데, 마치 이산가족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뒤늦게는 김상현씨와 안원규씨도 왔고, 딸 같이 예쁜 소녀 조은영, 박지수양 까지 합류했다.

김신용씨는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며 잠적했으니 근 이년이 가까워 온다.

 

그동안 월북한 게 아니라 시작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사도 두차례나 했다는데, 다음 달엔 다시 홍제동으로 온다고 했다.

돈 벌려고 이사를 자주하는 복부인과는 달리 빈자의 설움이다.

한 편으론 사는 환경에 따라 시적 대상도 새로워 질 수 있겠더라.

 

이 얼마만의 인사동 유민들의 만남이며 얼마만의 술판이던가?

그동안 수행하듯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다니, 몸은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김신용씨가 몸만 온 게 아니라 새로 낳은 시집 .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를 챙겨왔다

 시가 전과는 달리 짧아졌는데, 시처럼 시집도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앙증맞았다.

 

 

김신용의 아홉 번째 시집에는 90여편의 짧은 시가 실려 있었다.

시의 대상이 자연적인 사물과의 대화에 집중되고 있었는데,

서사적 구조에 중점을 둔 종전과는 달리 함축된 미학적 탐미가 두드러졌다.

'백조출판사'에서 펴낸 시집 가격은 9,000원인데, 갖고 다니며 읽기 딱 좋았다.

 

김신용 시인은 1988년 무크지 현대시사상양동시편-뼉다귀집6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밑바닥 인생인 지게꾼으로 살며 버려진 사람’, ‘개 같은 날들의 기록등을 발표한 대표적 노동자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기며 시도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하잘 것 없는 사물과 대화를 나눈 도장골 시편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몸으로 부딪힌 시에서 감성으로 부딪힌 시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장편 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를 비롯하여

산문집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떨어져 있네등을 발표한바 있다.

문단의 주목을 받아 온 김시인은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도 수상했다.

 

김신용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더 이상 입 아픈 소리는 그만두고

시집에 실린 시 안개’나 맛보기로 소개하련다.

 

안개 자욱한 봄의 들녘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안개의 심장이 뛰는 소리 같다.

이제 곧 햇살의 작은 새 떼들이

안개의 심장 속을 날아올라

아침을 깨우리라

 

박형준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맑게 빛나는 사물의 영혼과 손을 맞잡은 느낌이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이런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숨결 같기도 하고 이슬 같기도 한 이 아련한 따뜻함이 정겹다.

김신용의 시는 작고 여린 사물이 서로 맞잡은 손에 가만히 쥐어준 손수건 같다.

옹이, 풀잎, 이슬, , 수박, 목화씨 등 쓸모없고 하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해준

위로의 힘 덕분으로 나는 그대와 처음 손잡고 걷던 그 길을 다시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에 그때의 벤치가 남아 있다면, 사물들의 영혼이 건네준 손수건을 깔고 함께 앉아

그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대의 살아온 숨 냄새를 맡고 싶다.“

 

다른 때 같았으면 출판을 기념하는 잔치가 떠들썩했을 텐데,

이 미친놈의 코로나가 무서워 간첩 접선하듯 만난 것이다.

시집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로 위안한다.

 

김상현씨와 전활철씨가 불러주는 축가에 술이 술술 넘어갔다.

조용히 살자고 명세에 명세를 하였건만, 술만 들어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막힌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건, 노래가 아니라 피 토하는 각혈환자의 절규였다.

 

술과 안주는 또 얼마나 푸짐했으면, 아무리 먹고 마셔도 계속 나왔다.

그 술값은 긴 세월 인사동 유민들을 챙겨온 김명성씨가 냈다.

그 역시 형편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제 버릇 개주지 못한다.

 

헤어질 때도 하나하나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졌는데,

은밀한 접선이라 은밀하게 헤어졌다.

 

지하철을 탔으나,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에 미쳐 있었다.

시집을 꺼내 보고 싶어도 꼰대로 보일까바 참았다.

 

머리에 박힌 고드름시 한 편을 되뇌어 보았다.

물이 되어 흘러내리다 문득 걸어 온 길 되돌아보는,

저 서늘한 눈빛

 

사진, 글 / 조문호

 

 

 

술친구에게 발목 잡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주말을 녹번동에서 보내고 동자동으로 복귀할 무렵,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요즘 들어 사람들 만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꺼두었더니

정영신씨 편으로 쓰리 쿠숀을 친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온 다는 전활철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배낭을 짊어지고 나타났는데, 손님이 없어 이틀 동안 가게 문을 닫았단다.

어디를 쏘다니다 왔는지 술안주로 사 온 육회는 이미 상해 버렸다.

정영신씨가 임기응변으로 마련한 야채 안주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요즘 화가 장모씨가 돈이 생겨 사람들 불러모아 흥청망청 술값 낸다는 말도 듣고,

옛 친구였다는 대선주자 윤모씨의 인간적인 면모도 들었다.

'유목민'과 관련된 책을 만들 준비를 한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 듣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창밖이 서서히 어두워질 무렵, 정영신씨 핸드폰으로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조해인 시인이었다.

“형 전화가 꺼져 무슨 일 생겼냐?”지만, 그 날이 칠순 되는 생일이란다.

연락이 안 되어 여지 것 김수길씨와 마시다 헤어졌단다.

이미 취한 목소리지만, 고희 맞는 이 좋은 날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올려면 빨리나 올 것이지 양과점에서 케익 사오느라 한 참 걸렸다.

 

생일 케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롤 케익을 사온 것이다.

그 때까지 안주가 신통찮아 손가락만 빨았는데, 이게 왠 떡이냐?

담콤한 안주가 깔아주니 독한 대마불사주가 술술 들어갔다.

 

나야 칠순 지난지가 오래지만, 고희연을 이렇게 초라하게 보내서야 되겠는가?

코로나 시국만 아니라면 인사동에서 잔치라도 한 바탕 벌어야할텐데...

 

고희란 두보 ‘곡강시’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인데,

옛날에는 70살 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싯귀 중에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脣"이란 말도 있다.

"지는 꽃 보고 어른거림 잠깐 사이니, 서글픔 많다 말고 술이나 마시자"

덤으로 사는 인생, 어찌 빨지 않을소냐?

쌍팔년도 케케묵은 사연을 안주삼아 “부어라 마시어라” 잘도 들어갔다.

축배에 축배를 거듭하고, 술이 술을 마셔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활철씨는 아랫집 문은 왜 두드렸는지, 난 왜 차안에 들어가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자동 가려고 차를 탔으나 차마 시동을 걸지 못한 것 같았다.

차에 앉아 술 깰 때까지 기다리다 잠든 것 같은데. 내려보니 술 취한 늙은이들은 오간데 없었다.

마침 지하철이 끊기지 않아 지하철 타고 서울역까지 갈 수 있었다.

쪽방까지는 어떻게 올라왔는지, 선풍기도 틀지 않고 잠들어있었다.

 

눈을 뜬 시간이 새벽 네 시 무렵인데, 더워서 땀 범벅이 된 몸이야 차지하고,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거짓말 좀 보태 냉수를 한 말은 족히 마셨을 것이다.

정신 차려 엊저녁 기억을 되돌리려 카메라를 열어보니 귀가 막혔다.

그 날은 정동지가 내 카메라로 찍었는데, 가기 싫어 비좁은 문 앞에 버티고 누운 모습까지 있었다.

치매 환자가 제 나이를 잊은 듯 했다.

 

죄 없는 김용만씨의 ‘술이 원수다.’노래나 불렀다.

“술술 술이 원수다.

다음 날 아침에 술병이 났네.

때늦은 후회들 소용이 있나.

맞다 맞다 맞았다. 술이 원수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무더운 날씨에 술을 마셔 그런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은 편이지만 도저히 못 견뎌 물을 덮어썼는데,

몸만 식히지 죄 없는 머리는 왜 밀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토요일 술 한 잔하자는 김명성씨 연락을 받았다.

일전에 최옥영씨 대지미술 보러가자며 연락해도 몸이 아파 못 간다더니 이제 좀 살만한 모양이었다.

 

그날은 전화기를 꺼 두어 정영신씨를 통해 연락을 받았으나, 약속된 ‘마포나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화기가 없어 무작정 기다렸더니, 조해인시인과 뒤늦게 나타났다.

뭔가 엇갈려 여지 것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모처럼 소라 멍게 등 해산물을 안주로 한 잔 마셨는데, 그동안 몰랐던 소식을 많이 듣게 되었다.

자기가 무슨 명탐정이라고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위장한 친일파 찾는다고 독립운동사 뒤져가며 살더니 몸이 못 버텨낸 것 같았다.

오십견에 버금가는 곤욕을 치루며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동안 별일도 많았더라.

어느 날 갑자기 에어컨 호스가 터져 온방에 물벼락을 맞았는데, 억대가 넘는 병풍이 젖어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요즘은 표구기술이 좋아 감쪽같이 원상복구는 되었으나 표구 값이 칠백만원이나 나와 겨우 오백만원으로 깎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표구 값을 친동생인 김효성씨가 냈다고 한다.

여지 것 동생한테 도움 받아 본지가 없어 그런지, 그 날은 동생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기야! 요즘 효성씨가 신단수란 필명으로 신문에 운세를 연재하며 정치인 운세로 뜬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잘 나가는 상업 출판사와 10만부를 예상하는 출판계약을 맺었는데, 표구 값을 낸 것도 그 계약금 받은 돈이라고 했다.

 

동생은 한 번도 화내는 일이 없다는데, 맞는 말이었다.

자기가 어려울 때도 남 도와주기를 꺼리지 않았는데, 그 복을 이제사 받는 것 같았다.

그보다 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은 누워 있는동안 엄청난 생각을 해낸 것이다.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라 말은 못하지만 미술시장을 뒤집을 기획안이었다.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김명성씨만의 사업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취해 버렸다.

술집에서 나와 커피 집으로 옮겼으나, 여섯시가 넘어 두 사람 이상은 안 된단다.

커피를 사들고 무더운 햇살아래 마셨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다는 소리도 않고 도망쳐 나와 더위 먹은 개처럼 헉헉거렸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실에 들어가 물부터 뒤집어썼는데,

무슨 병이 도졌는지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가위로 자른 후 신통찮은 면도기로 밀었는데, 위험천만의 일이었다.

나이가 많아 절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텐데 땡초가 되고 싶었을까?

 

간신히 치워놓고 나니 그때서야 집 주인이 나타났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사정없이 총을 갈겨 본색을 들키고 말았다.

바람 넣은 볼작을 똑똑 두드리며 선처를 바랬다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요즘 술 마실 일이 잦다.

연이은 전시 오프닝에다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줄 줄이다.

문제는 술이 땅기는데다 술을 마셔도 별 이상이 없는 게 탈이었다.

 

지난 토요일엔 조해인선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연이어 삼일동안 술독에 빠진 터라 망설여졌으나, 안 갈 수 없었다.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왔으나 일 때문에 못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에 전라도 촬영 가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래! 술은 마시지 말고 얼굴만 보자”며 나간 게 탈이었다.

 

약속한 응암동 ‘푸른 언덕’으로 갔더니 길가 테라스에 자리 잡았는데. 술안주로 족발까지 시켜놓았더라,

좀 있으니 김수길씨도 불려 나왔는데, 그의 안색 역시 술에 쩔은 상이었다.

술 마시지 않을 작정에 콜라를 시켰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술이다.

콜라에 타서 한 잔만 마신다는 게 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소콜이 달아 그런지 술술 잘도 넘어 갔다.

 

조해인씨가 풀기 시작한 불교와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20여 년 전 조해인씨가 선물한 돌부처가 생각났다.

정선 집 책장 위에 올려놓고 가끔 기도를 올렸는데,

이번 화재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돌은 불에 타지 않을 텐데 왜 부처가 보이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고 사는 문제야 부처도 모를 텐데, 내가 어찌 알겠는가?

홀짝 홀짝 마신 술이 두꺼비를 여섯 병이나 까 버렸다.

술이 취하면 자빠져 자면 그만이겠으나, 내일 전라도 갈 일이 난감했다.

 

낮술에 젖어 허우적거리며 녹번동으로 들어갔는데,

김수길씨가 찔러 준 후원금을 전달하고는 그대로 뻗어 버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여섯시가 가까웠다.

전라도 여산장터로 차를 몰았지만,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죄 많은 나야 가도 그만이겠지만, 옆에 탄 정동지가 무슨 죄냐?

 

죄 없는 껌만 입이 아프도록 씹고, 차만 세우면 자기 바빴다.

그러나 신의 가호가 있었는지, 무사히 마치고 잘 돌아왔다.

모진 목숨 명줄 하나는 정말 찔기다.

 

사진, 글 / 조문호

 

일요일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날이다.

만사를 재처 두고 이불 속에 딩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친구도 싫고 꽃놀이도 싫은 걸 보니 갈 때가 된 것 같다.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 먹을 것을 찾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조해인 시인이 응암동에서 소주 한 잔 하잖다.

꾀죄죄한 몰골로 나갔는데, 봄바람이 제법 쌀쌀하더라.

 

‘호주방’이란 술집인데, 새로 생긴 술집 같았다.

소주방도 색시방도 아닌 호주방은 또 뭔가?

 

조그만 술집에서 오뎅탕을 안주로 소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해인씨는 애늙은이된 박한웅씨 아들 장가 가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김수길씨는 4월9일부터 인사동 ‘마루’에서 개인전을 한다고 했다.

 

그 날의 화두는 젊은시절 놀았던 신촌 방석집 이야기였다.

주머니 탈탈 털렸던 그 때의 끈적한 추억을 건져 올렸다.

빈속에 들이키는 짜리리한 소주 맛에 춘정을 녹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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