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중순 전기 작가 이충렬씨가 펴낸 '아, 김수환 추기경'책을 받았다.

김 추기경의 7주기를 맞아 출간된 전기였는데, 훑어보니 작가의 공력이 대단했다.
추기경의 일기와 강론은 물론, 각종 신문, 잡지에서 찾아 낸 수많은 자료와 360여장의 사진들이

촘촘히 정리되어 있었다. 김 추기경 주변에 계셨던 신부들은 물론 지인들의 증언까지 생생했다.

마치 탐정같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샅샅이 찾아낸 것이다.

그 많은 일을 미국 사시는 분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성실하고 치열한 그의 작가정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실, 책 읽기보다 인터넷을 즐겨, 두터운 두 권을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라 여겼는데,

읽어보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성직자의 전기라 다소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싹 날려버린 것이다.

그의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소설 이상의 재미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 출생에서 박정희 정권 때까지를 담은 ‘신을 향하여’와 그 이후를 담은 ‘인간을 향하여’는

1100여 쪽에 걸쳐서, 87년동안의 김수환추기경 일대기를 샅샅이 풀어내었다.

이제까지 몇 편의 김 추기경 평전과 어록이 간행된 적은 있으나,

객관적 자료들을 토대로 그의 삶 전체를 이처럼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전기물은 처음이었다.

청빈한 삶을 살다 가신 김수환추기경의 위업이야 잘 알지만,

작가는 김 추기경을 영웅으로 격상시키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낮은 자세로 사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추기경의 따뜻한 인간애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불쑥 성매매 여성 쉼터에 찾아가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그녀들과 함께 밥도 먹으며,

막 살아 온 그녀들의 술주정도 다 받아 주었단다.

어떤 여인이 추기경의 무릎에 드러누워도 그냥 웃기만 하셨다는 것이다.

뒷이야기지만, 윷놀이를 하다 추기경께서 일부러 판을 좀 속였더니 “믿을 놈, 한 놈도 없다”는

막말까지 나와 추기경께서 ”나도 좀 따야지“라며 맞받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힘 있는 자에게는 목소리를 높이고, 약자에겐 한없이 자세를 낮췄다.
어두운 시대와 함께했던, 정치, 사회면의 보도사진들과 뒷이야기까지 상세히 풀어,

한 개인의 전기에 앞서,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역사였다.

전기작가 이충렬씨를 직접 만나 뵌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샘이 깊은 물”, “한겨레”, “국민일보”, “경향신문” 등에 쓴 단편이나 르포, 칼럼에서

그 분의 유려한 글들을 읽어 성함은 일찍 알았지만, 직접 만난 건 지난 해 ‘6인의 사무또라이’전 뒤풀이었다.

인사동 ‘유목민’에서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화백과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너무 점잖으셨다.

그 이후 페친이 되어, 그 분의 출판 소식과 근황을 알게 된 것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은 전기문학가 이충렬씨의 네 번째 전기다.

그는 ‘실천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전기 장르에 꾸준히 작업 해왔다.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등 여러 권을 썼다.

이번에 펴낸 ”아! 김수환추기경“은 전기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기가 출판되자 전 언론이 일제히 대서특필하였고, 심지어는 교보문고 입구 한 벽을 광고판으로

도배할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생각보다 책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그 원인이겠지만, 두 권으로 나뉜 두툼한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추기경께서 말년에 스스로를 바보라며 그림까지 그렸다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말 바보인 것 같다.


이틀 전, 작가 이충렬씨가 마련한 안국동 .묵호회집‘의 만찬에 초대 받았다.
박재동화백과 박불똥화백, 중앙일보 정재숙기자 등 반가운 분들을 만났으나, 처음 보는 분도 더러 있었다.

작가의 친구이며 광주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이원복씨, 영화사를 운영하는 조원장씨,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에 있는 이희연씨도 오셨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소식도 들었다.
이세돌 알파고 바둑대결을 지켜보느라 좀 늦게 나타난 정재숙기자는 사뭇 흥분되어 있었다.

앞으로 통계자료에 의해 모든 걸 로봇이 해결하는 시대가 되면 기자는 물론 대개의 직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술 부분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 가닥 희망을 주었는데,

그럴수록 인간적인 삶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웹툰에 만화 연재할 준비를 하는 박재동화백께서 그 내용을 살짝 귀띔했는데, 너무 재미있겠더라.

연재가 시작되면 대박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경기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꿈의 학교’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틀에 박힌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멋진 학교라는 것이다.

일례로 수학에 천재적인 재질을 가진 학생이 외국 유학을 갔는데, 수학에 대한 교육은 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강의만 했다고 한다. 실망해 그만두려는데, 수학을 아름답게 푸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었단다.

아무튼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학교가 될 것 같았다.


이충렬씨는 역작을 펴내기가 무섭게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평생 교회 종만 치며 살아 온 종지기의 일생을 다룬 전기를 집필할 것이라고 했다.

유명인에 국한된 전기에서 나아가, 평범하게 살아 온 서민의 삶에 초점에 맞춘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이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애 아니겠는가?























그 날 함께 하기로 한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판화가 류연복씨가 사정으로 참석 못해 아쉬웠지만, 즐거운 자리였다.

환담이 오가는 와중에도 박재동화백은 참석한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캐리커쳐해 선물로 주셨는데,

내 몰골 하나는 웹툰에 액스트라로 사용하려는지 챙겨 두셨다. 괜히 기분 좋아지데...



사진,글 / 조문호



정재숙씨


조원장씨


이희연씨


박불똥씨


거지왕 김춘삼씨가 생각납디다.


지명수배자 / 혹 웹툰에서 이런 몰골 만나면 신고하세요.


 



2014, 화성군 조암면



장년 층이라면 누구나 다방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한 자락씩 깔고있다. 

최백호의 노래낭만에 대하여펄시스터의 커피 한 잔같은 노래는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방은 대중들과 아주 친숙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시골 변두리에 한 둘 남았을 뿐, 커피체인점에 밀려 난지 오래다.

 

예전에는 아침에는 '모닝커피'라며 계란 노란자를 그냥 주기도 하고,

'위티'라며 도라지 위스키도 한 잔 씩 팔았다.

다방마담의 눈웃음에 가슴 설랜 적이 엊그젠데, 이젠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네.

 

청년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의 농협에 잠간 근무한 적이 있는데, 산수다방이란 곳을 자주 들렸다.

가다보니 다방마담과 눈이 맞았고, 나중에는 아버지와 직장상사인 농협의 전무까지

그 마담에 눈독들인다는 걸 알아 난감했다.

 

어느 날 퇴근 후, 다방에서 마담과 앉아 있는데, 느닷없이 아버지가 나타나신 것이다.

얼마나 민망한지 얼른 자리 피했지만, 아찔했다.

아무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는 얼마나 서먹하셨을까?

전자전이라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것까지 빼 닮았었다.

 

그 뒤로 음악다방이란 게 유행해 뮤직박스와 디스크쟈키가 등장했고,

또 한참 후에는 티켓다방이란 것이 성행하기도 했다.

커피배달시켜, 같이 노는 시간만큼 돈 내는 티켓다방이 아직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으나,

시골에는 더러 남아있다.

 

지금은 커피를 일터인 논까지 배달해 주는데, 다방은 장가 못간 노총각들의 아지터다

아가씨들이 차 한 잔에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사내들이 적은 돈으로 아가씨와 노닥거릴 수 있는 유일한 유흥 공간이다.

흐르는 세월따라, 마저 기적소리처럼 사라질 것이다.


모두들 사는 게 너무 바쁘다.  그깟 낭만이 무슨 밥먹여주냐...


  사진, 글 / 조문호 



2011, 제천


2008, 제천


2009, 정선, 남면





봄바람 부는 지난 4일 오후5시 무렵, 경복궁 옆 ‘학고재’로 민중작가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 날은 그림판 낭만선생 주재환씨의 회고전 “어둠속의 변신”이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기괴한 형색으로 나온 사람들은 대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민중예술의 핵심이었다.

끼면 끼, 쌈이면 쌈, 술이면 술, 다방면에 달관한 동지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봄 사건 나부렀다.

 





아는 사람들을 즐겨 찍는 나로서는, 완전 물 만난 것이다.
전시를 연 주재환선생, 그리고 손장섭, 신학철, 강요배, 민정기, 임옥상, 김정헌, 성완경, 장경호,

박불똥, 류연복, 최석태, 박진화, 박 건, 이인철, 이태호, 이강군, 박흥순씨 등 '민미협' 작가들을 비롯하여,

백기완, 신경림, 강 민, 구중서, 채현국, 방동규, 무세중, 이수호, 김종규, 우찬규, 김승환, 박현수, 민충근,

김양동, 박영숙, 심정수, 박시교, 정희성, 정동석, 임진택, 무나미, 윤범모, 곽대원, 김준기, 박 철, 김영재,

두시영,  박대부, 지미정, 장유정, 이도윤, 신학림, 김종철, 성기준, 양원모, 김태서, 정정엽, 정필주, 노형석,

조경연, 채원희, 김영중, 마기철씨 등 문화예술 각계에서 한 가닥 하는 분들이 다 모여들어, 사진 찍느라 바빴다.


전시장에 모여든 분들은 삼삼오오 와인 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으나,

잘 모르는 관람객들도 한 둘 끼어 있었다.

초대된 분들이야 주재환선생의 작품들을 훤히 알고 있지만,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해 주위를 서성거렸는데,

녹슨 못을 액자에 달아 놓은 ‘악보’라는 작품을 보며 누가 한마디 했다.


“이건 나도 만들 수 있겠네! 근데 재밋다.”








달관자가 내 뿜는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을 알아본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비꼬는 선생의 작품에는 곳곳에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다른 민중작가들의 결연함이나 비장함 같은 것과는 다르다.

오브제로 활용하는 못 쓰는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일용품에서 영감을 얻는 풍자적 비판들은,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하면서도, 그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발랄함이 탁월하다.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난해한 현대미술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하다.

80년도부터 2015년까지 제작한 50여점의 전시작들은 자본주의 비판에서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실업 등

어두운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시니컬한 위트가 찰라의 성찰을 꾀하게도 했다.

서문을 쓴 유혜종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밤은 주재환의 유화에서 중요한 주제이자 배경, 그리고 세계다. (중략)
그 밤의 풍경은 다른 한편으로 주재환의 유년 시절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중략)
주재환은 일상의 사물들과 현상들을 자신의 미학적 공간인 밤의 세계에 옮겨와

그것들을 새로운 감각적 환경에서 재 구성한다.“





올해로 일흔 여섯인 주재환선생은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일 세대다.
홍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 끝내고 그만 두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먹고 살기위해 야경꾼에서부터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일찍 체득하지 않았나 싶다. 그게 바로 작품세계로 연결되어,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인 그의 유회적 비판정신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80년도 ‘현실과 발언’ 창립전 참여를 계기로, 90년도에는 ‘민미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래 본선에 초청 받는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가 했지만,

개인전은 환갑이 되어서야 시작해, 그 동안 몇 차례 초대전을 가졌다.

이번 기획전은 작가가 그동안 무엇을 보았으며, 왜 싸웠으며,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 만나러, ‘학고재’에 봄나들이 한번 가자.
이 전시는 내달 6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일 오후6,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박신흥씨의 해피 데이즈전에 갔.

 

사진가 박신흥씨는 지난 해 1, ‘예스터데이사진집이 소개된 신문을 보고 처음 알았다.

엄마 대신 가게를 지키며 공부하는 어린이의 사진은 아련한 향수를 일깨우게 했다.

작가가 70년대에 사진을 찍었으면 사진계 원로나 중진 일 텐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알아보았더니, 고려대학의 사진동아리인 호영회에서 시작해 8년 동안 찍었으나,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사진을 접었단다.



 

그 당시는 대개의 사진인들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찍을 때인데,

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꾸준히 활동 했더라면, 우리나라 내노라하는 사진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들었으나,

개인적으론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으로 밥 먹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안양과 남양주시 부시장, 경기도청 기획행정실장 등을 거쳐, 킨텍스 상임이사로 일해 오다,

2년 전 부터 카메라를 다시 잡았다는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후배 한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재능이 탁월했으나,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 설계업에 투신했다.

모두들 의아해했으나 경제적인 여건을 만들어 놓은 후, 뒤늦게 그림에 전념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예술가로 살려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어려운 현실을 모두들 일찍부터 알아차린 것이다.

사진에 빠져 한 평생을 허덕이는 스스로를 뒤돌아 볼 때, 현명한 생각이라 판단되었다.

 

박신흥씨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일 년 전, 인사동에서 가진 나의 청량리588’전시 때였다.

그 이후 다른 전람회장에서도 두 차례 만났으나, 생각보다 젊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사진의 주제도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최고의 대상이라는 내 생각과 같아, 더 호감이 갔다.

지난 주 이상엽 사진전에서 만나, 전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오프닝에 초대 받아 함께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은 지난 해 찍은 사진들인데, 대부분 여행 중에 포착한 작품이었다.

대부분 '알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연상케 하는 사진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상이었지만, 시간을 초월해 극적인 조화에 달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우연일 것 같지만, 그건 필연일 수밖에 없다,

어떤 대상을 찍으려면, 작가는 여러 가지를 예견하며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일상들을 담은 그의 사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적 사유도 담겨 있었다.

어린이와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그의 사진들은 아이러니컬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이라, 앞으로가 더 기대되었다.

행복을 찾아 나서는 그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전시장에서 반가운 사람들도 만났다.

박신흥 내외를 비롯하여, 김남진 브레송관장,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 ‘스페이스22’ 정진호대표, 구자호,

곽명우, 정영신, 남 준, 윤원진, 한재수, 최창숙, 백승민, 박영환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나 자리를 옮겨가며 축배를 들었다.

    
























 


요즘 감기몸살로 곤욕을 치루고 있으나, 반가운 사람들 만나 술 마시니 힘이 다시 솟았다. 역시 술이 약이었다.

술자리 대화에서 부부가 20년만 살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짧은 인생살이에 서로 변화로운 체험기회도 줘야하기 때문이란다. 술이 취해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아내와 만난 지가 13년 밖에 되지 않아, 다시 체험하려면 7년이나 남아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구! 선생님은 이미 두 번 체험 했잖아요라며 다들 웃는다. 참 꿈도 야무지지...

 

술 취한 김에, 공격적 마케팅을 해야 한다며, 박신흥씨가 있는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올 해부터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문화알림방고객이라며 10만원을 내 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지 것 취재하여 소개해 주었으나, 안 주는 사람이 더 많아 노골적으로 본 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박신흥씨가 개막식에 오라했지, 취재를 부탁하진 않은 것이다.

또 허탕이다 싶었다.





















 

옆 자리로 옮겨, 이 방면의 선배 곽명우씨에게 물었다. “ 어떻게 살아가냐?”...

그도 전시회마다 쫓아다니며 사진 찍어 주는 일을 오랜 세월 했지만, 여지 것 장가도 못간 홀애비로 살고 있다.

대가를 안 주는 사람이 많지만, 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가난한 사진가들이 힘들게 마련한 전시회라 손 벌리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다들 힘들지만, 사정에 따라 하면 되기 때문이다.

몇일 전, 가난한 이상엽씨 전시 때도 그랬다. 촬영하고 취재하는 품삯으로 사진집 한 권 달라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그 날은 좋은 사진에다 반가운 사람만나 젖었으니 기분 좋았다.

개털인 걸 눈치 챈 정진호씨가 내 술값까지 내 줬으니, “필승을 외치며 줄행랑쳤다.

행복한 박신홍씨의 사진처럼 행복한 밤이었다.

 

사진, / 조문호



















 

 

 

 




힘들었던 올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웠던 것 같다.
빨리 추스려, 정선으로 떠나고싶다.
꽁꽁 언 마음, 봄 꽃에 녹이려..


진달래꽃을 안은 여학생을보니,
아련한 고향의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 꿈 많던 소녀들은 다 어디갔을까?

유수같은 세월을 탓할 순 없지만,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1975년 김운기씨가 찍은 사진으로
‘삼성포토패밀리’ 96가을호에서 옮겼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사진가 / 조문호



지금 세계에서 대마초합법화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미 대선까지 대마초가 이슈다.

미국은 27개 주에서 의료용 대마초와 여가용 대마초를 허용하였고, 심지어 수도 워싱턴 D.C와 콜로라도 주에서도 주민투표를 통해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오래전부터 관광용으로 대마초를 허용해 온 네델란드는 물론, 우루과이, 칠레, 카나다 등 세계가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지난 해 ‘뉴욕타임스’에서는 논설위원 전체 명의로 된 사설을 통해 “연방차원의 대마초 합법화 운동”을 선언했다. 미국 CNN에서는 “요즘은 마리화나를 ‘만약 합법화한다면’이 아니라 ‘어떻게 합법화할까’로 쟁점이 옮겨졌다고 했다. 그동안 대마초를 합법화한 콜로라도주에서 살인사건이 절반이상 줄어드는 등 강력범이 많이 감소하였고, 단속에 따른 예산액 절감과 대마 사업에 의한 세수확대, 그리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긍정적인통계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여야 정치인까지 대마초 합법화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는 대마초 성분이 제약업계의 신약물질로 산업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통계에 따르면 대마와 관련이 있는 606건의 특허출원 중 309건이 중국기업이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대마의 효능에 주목해 지속적으로 연구 해 왔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대마초를 다양하게 활용해 왔다. 50년대 후반만 해도 시골에는 대마초가 흔해 모기를 쫓는 모깃불로도 활용했다.

지금은 길삼 삼는 일부지방에서만 관리재배 되지만, 옛날에는 없어서는 안 될 작물이었다. 입맛이 돋아 식욕이 생기고 천식이나 이뇨, 간질, 진통 등의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서도 유용했다.

그런데 왜 인류에 유용한 약물을 마약으로 분류해 강력한 단속을 했을까?
대마초는 종이, 알콜, 담배 등 미국의 거대 재벌들 음모에 놀아나 마약으로 둔갑한 역사를 갖고 있다. 만약 대마가 여러가지 산업 용도로 활용되었다면 엄청난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득권자들이 그냥 둘리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 놀음에 등 떠밀려 70년도부터 습관성의약품관리법으로 규제한 것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갤럽의 여론 조사 결과도 대마초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58%가 됐는데, 1969년 여론조사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고치다. 그 전에는 18세에서 35세까지의 젊은 층 지지율이 높았지만, 지금은 다른 연령대에서도 고르게 지지를 얻은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리고 대마의 중독성이 담배의 니코틴보다 약하다는 것이 정설이 되면서 대마초를 금지하는 이유도 설득력을 잃었다. 대마초보다 훨씬 위험한 것으로 확인된 담배와 술은 버젓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현실에서 볼 때, 대마초는 보건과 관련된 문제지, 범죄로 다루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도 70년대 중반 무렵, 부산 에덴공원에서 음악실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 미군들이 자주 들락거려 대마초를 얻어 피울 수 있었다. 당시 히피문화의 유입으로 대마가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었으며, 음악 감상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78년도 교사들의 대마초 흡연사건에 엮여 곤욕을 치루적도 있었다. 부산 대연동의 ‘마약중독자진료소’라 써 붙인, 수용소인지 고문실인지 분간 안 되는 음습한데 끌려 가, 흡연한 친구를 불라며 쇠파이프로 두들겨 패고, 심지어 코에다 물까지 부어재꼈다. 그렇게 짐승처럼 주물다 결국 구속시켰는데, 그들 말처럼 마약중독자라면 병원에 보내 치료 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단속한 경찰 공무원들이 대마초를 피워대는 아이러니도 엿보았다. 완전 개판이었다.

지난 해 JTBC방송의 ‘비정상회담’에 나온 강용석의원이 대마초이야기에 대화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 그의 영어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인터뷰였지만, ‘타일러’가 대마초합법화에 대해 질문하자 “여기까지만 하죠”라며 즉답을 회피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못한다는 자체가, 그동안 얼마나 마약이라는 무거운 족쇄에 채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였다.

'금기'는 깨기 어렵다. 일단 금기의 반열에 오르면 이미 근거를 상실한 규정이라도, 맹목적으로 지키려는 일종의 관습이 따르기 때문이다. 제약의 근거가 사라지고 나서도 금기로 남은 규정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미적거릴 일은 아니다. 국가나 법 자체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잘 못된 법은 빨리 고쳐져야 한다. 지금도 수많은 대마흡연자들이 마약중독자란 중범죄자로 내 몰리고 있다.

이제 안락사에서부터 대마초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행복할 권리를 국가가 통제해서는 안 된다.우린 잘 못된 법을 바꿀 권리도 있고, 행복을 누릴 권리도 있다.








지난 13일, ‘인사아트’의 ‘리얼리즘 복권’장에 신학철선생 만나러 갔다.
신학철선생을 만나 입구에서 담배피우다 반가운 사람들도 만났다.
‘나무화랑’의 김진하관장과 광주의 목판화가 강행복씨였다.
강행복씨가 3월 초부터 ‘나무화랑’에서 전시를 한다는데, 술 마실 건 수 하나 생겼다.

‘하늘풍경’의 정치판에서 한 잔 하고 ‘유목민’에 들렸더니,
강행복씨가 독작하고 앉았고, 뒤늦게는 유진오씨가 나타나더라.
그 날 신학철선생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하며 잘 마셨는데,
먼저 간 강행복씨가 우리 술값까지 내 버렸네.

좌우지간 강행복씨는 만나기만 하면 행복해진다니까ㅎㅎㅎ

2016. 2, 13 / 사진,글 : 조문호

















겨울 빈지, 봄 빈지는 알바 없지만, 축축해 술 생각나더라.
‘마루’에는 미녀들의 치맛자락이 봄을 오라하고,
‘상광루’는 가는 겨울을 막걸리로 적시더라.

인사동거리에 또 다른 괴물도 들어섰더라.
그 옆에는 전쟁 준비하는지, 천막치고 땅굴 파더라.
그래도 비에 젖은 사람들은 분주하더라.

애라!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자.



2016. 2, 13 /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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