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20대 국회에 문화예술 전문가가 아무도 없다.
비례대표로 뽑힌 국회의원도 없지만, 비례대표에서 지역구를 갈아탄 문화계 출신 후보들까지 모조리 낙마해 버렸다. 지금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 기조로 삼아 정권의 성패를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단 말인가.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 문화예술을 대한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 도 없겠지만, 나온다 해도 헛다리짚을 게 뻔하다.


지역구 의원 중에는 자칭 ‘문화 전문가’라는 분들이 더러 있다. 제발 좀 웃기지 마라. 문화 예술에 대한 철학이나 전문지식도 없이 보좌관 도움으로 관련법 몇 개 발의하고, 어설픈 글로 책 한 권 냈다고 문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문화예술 전문가가 없는 국회로 문화융성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지만, 앞으로 가난한 예술가들 살 길이 막막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즘 예술인들이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유명 연예인의 그림이 경매에서 고가에 팔린다는 소식으로, 평생 그림에만 매달렸던 전업작가들이 심한 박탈감을 느껴 왔는데, 이젠 조영남의 대작논란으로 사기꾼 취급까지 받게 됐다.

조영남 씨는 평소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을 즐겨 인용했다. 그 말 자체는 재미있게 풀어가려는 말이었지,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자기가 사기를 쳤으니 사기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예술을 사기’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상식을 깨는 시도를 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나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이 진정 깨 부시고자 했던 것은 기존의 예술가들이 갖고 있던 권위이자 기존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던 선입견이지 창작 행위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기득권에 도전하던 예술가들의 창조 정신이 왜 기득권의 교묘한 방어술로 악용되는지 모르겠다. 조영남씨 경우는 대작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적 도리나 양심에서 구제받을 수 없다.

그리고 지난달 미술의 공공적 가치를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관광 명소인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의 통로계단 그림들이 주민들에 의해 말끔히 지워 진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료들의 생각과 주민들의 생활상에 많은 괴리가 있다는 게 확연하게 드러났다. 공공예산이 들어간 계단그림을 일방적으로 지운 것도 문제이지만, 충분한 교감 없이 시행한 주관 처는 물론, 사업에 참여한 미술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국내에 벽화나 조형물이 들어선 마을 프로젝트는 전국적으로 200여 곳에 이른다. 10년 전부터 지자체별로 여러 가지 공공미술 사업들이 추진되어 왔지만, 주민의 삶과 어우러지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작가들이 공무원들과 타협해 관광 위주의 볼거리나 환경미화에 머무르는 작업들을 내놓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사업이 끝나면 작가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흉물이 된 사례도 곳곳에 늘려있다. 작가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책임지고 이끌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 세운다면, 이처럼 소홀이 다루겠는가? 작가는 진정성을 가지고 주민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예술적 아우라를 마음 것 쏟아 부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절실하다. 머리보다 마음을 앞세워 마을 프로젝트에 임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문화예술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강남의 디올 빽 사진이 여성비하라며 강제로 내려지는 등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가 하면, 예술을 우습게 보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하기야 정치인들이 예술을 하찮게 여기니, 국민들만 나무랄 처지도 아닌 것 같다.

엊그제 가난한 다큐사진가 권철이 충무로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일본에서 모든 지위 다 버리고 귀국한지가 몇 년째지만, 그 결정이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풀빵장사를 하며 작업은 이어가지만, 한국에서 당하는 굴욕에 대한 그의 절규가 영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 이상 악밖에 남지 않은 예술가들을 벼랑으로 내 몰지마라.

예술가들이 쓰러지면 문화예술이 쓰러지고, 문화예술이 무너지면 정신도 경제도 나라도 모두 무너진다.


-서울문화투데이-




소설가 강기희씨의 장편 우화소설 원숭이 그림자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되었다.


 

지난 8일 오후5, 정선문화회관 3층 공연장에서 원숭이 그림자출간을 기념하는 문학콘서트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으나 제초작업을 하다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땀을 흘려 안경을 잠시 벗어두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문학콘서트가 임박해 안경도 없이 출발해야했는데, 시야가 불투명한 몽환적인 상태에 빠져야 했다.

정선문화회관에 도착하니 강기희씨는 책에 서명하느라 바빴고, ‘도서출판 작가의 편집인인 이승철시인의 모습도 보였다.

객석에는 서덕웅, 김정숙, 유진아, 전상현씨 등 반가운 분들도 보였다.

 

배우 맹봉학씨를 비롯하여 아리랑 소리꾼 이현수, 명상음악가 신기용, 섹스폰 연주자 최병용씨 등 여러 분이 출연하여 토크쇼와 다양한 음악으로 무대를 꾸몄으나 객석엔 빈자리가 더 많았다. 서울의 박희호시인, 구례의 김해화 시인, 대전의 신기용씨, 양구의 유명선 시인, 산청의 이시랑 시인, 주문진의 이윤길, 윤병주 시인, 동해의 박금란시인 등 타 지역에서 참석한 문인들이 그나마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배우 맹봉학씨와의 대담에서 작가 강기희씨는 소설 제목인 원숭이는 일본을 말하고, 그림자는 친일파를 뜻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 출신의 강기희씨는 1998문학21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도둑고양이’,

개 같은 인생들’, ‘연산등을 펴낸 중진작가다.

강기희씨의 일곱번째 장편소설인 이 우화소설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연재 당시 박근혜 정권의 출범에 얽힌 세간의 비밀과 이후 소통 부재의 통치 행태에 대해 신랄한 풍자로 일관하여 작가에게 필화사건이 염려될 정도로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다.

 

소설가 이순원씨는 원숭이 그림자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을 다시 한 번 정독하였던 것은 4·13 총선이 끝나고 전국적으로 그 결과가 개표 방송되던 날 밤의 일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그것이 아무리 풍자라 하여도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지형과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시민혁명과도 같은 그날 밤의 개표방송을 보며 나는 이 소설이야말로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집어낸 강기희 방식의 풍자이며 강기희 방식의 패러독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강기희는 이렇게나 정확히, 소설가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예언가처럼 오늘 날의 정치현실을, 그리고 그런 소통부재 방식의 세상 지배가 어떤 역풍을 맞을 것인지 이 한 편의 소설로 소름이 돋도록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읽고 나면 모두들 나처럼 강기희의 예언적 풍자에 전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숲의 평화를 기원하게 될 것이다.”

 

작가 강기희씨는 순정의 절규를 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카롭게 현실을 꿰뚫어 보는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다.

 

문학콘서트가 끝난 후, ‘가마골순대집으로 자리를 옮겨 뒤풀이를 가졌다. 많은 분들과 어울린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군청에 근무하는 전상현씨로 부터 오늘 밤 정선지역에 음주단속이 진행 중이니, 모두들 차를 두고 가라는 전갈이 있었다.

내가 사는 만지산골짜기까지는 대리운전이 불가능해 부득이 강기희씨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정선에서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단임골로 많은 분들이 자리를 옮겼다.

 

단임골 집은, 한 때 박성범, 신은경 커플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꿈의 궁전이었다. 강기희씨는 오래 전 누전에 의한 화재로 자신의 집을 몽땅 불태워 버린 적이 있다. 집뿐 아니라 책이며 옷이며 살림 전부를 불 태워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한 빈털터리가

되었으나, 다행히 남의 집이긴 하지만 단임골의 아름다운 저택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오래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탓에그의 작업실로 장기간 빌려 쓰게 된 것이다.

 

그 깊은 산골의 별장에서 벌어진 주연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신기용씨의 기타연주와 최병용씨의 섹스폰 연주를 비롯한

노래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렸는데, 술이 취해 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내가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노동가 인천 성냥공장을 불러 분위기를 깬 것이다. 얼마나 술이 취했던지, 카메라 렌즈에 막걸리가 튀어도 모르고 있었다. 안경이 없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림짐작으로 찍었는데, 그 이튿날 사진을 보니 마치 연초점 필터를 낀 것처럼 뿌연 사진이 많았다.

아무튼 강기희씨의 출판기념회 덕에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숭이 그림자출간 기념 문학콘서트는 정선과 제주에 이어 서울에서도 열린다.

오는 16(목요일) 오후6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다목적 홀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많은 참석을 바란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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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떠나는 기분이지만, 정선 가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집 주변을 온통 뒤덮고 있을 잡초와의 전쟁에서부터 텃밭 일거리가 널려 있다.

오늘부터 열리는 ‘강릉단오제’에도 들려야 한다.
20년 전에 찍은 만신들을 만나, 그들을 다시 찍을 작정인데, 몇 분이나 살아 계신지 모르겠다.

정선 읍내에서 열릴 강기희 출판기념회에 들려 술 마실 일에서부터 만날 사람도 많은데,

‘교육방송’까지 처 들어 온다니 그 것도 걱정이다. 또 얼마나 귀찮게 할지...

이번 주말까지 마무리하고, 울 아부지 제삿날인 주말에나 돌아 올 작정인데,

정선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페북 질도 못하게 되었다.
갔다 올 동안, 운영위원회가 열려 인사동사진축제 기획안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인사동사람들’ 블로그도 당분간 불이 꺼진다.




14일까지 갤러리 나우

사진가 박진호씨의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전이 오는 6월1일부터 14일까지 인사동‘갤러리 나우’에서 열리고 있다.

박진호씨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예전에서 사진을 배웠다.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한 후, 1992년‘아노미’전을 시작으로 아홉 차례의 개인전과 한국사진의 수평전 등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강하게 인식된 작업은 첫 전시‘아노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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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자신의 신체를 복사기로 형상화해 존재 자체를 확인한 작업이었다. 기계적 복제나 다름없는 인간적 고뇌를 표출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외에도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같은 시적 이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달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움직인 사진이다.


이사진들은 70-200mm 망원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은 사진인데, 촬영 기법과 노출 데이터를 찾기까지 7년이 걸렸고, 촬영기간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생각을 숙성시켜 온 것은 자유로움을 꿈꾸었다는 것, 좀 더 경쾌한 삶을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50대 중반의 나이가 주는 주체적 사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그는 작업노트에서 달은 신(神)이라며, 자신도 모르는 신을 표현하려는 자체가 헛된 노력일 것이나, 신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었다고 적었다. 자연법칙을 벗어나고 우주원리를 이탈한 자유, 그런 인생을 바라지만, 너무 슬프다고 했다.


예술은 결코 감각만의 영역이 아니다. 끊임없는 생각과 회의 그리고 탐구에 감각이 더해져야 한다. 그 추운 겨울바람에 떨고, 여름 날 모기에 뜯겨가며 사진을 찍은 것은 오랜 기간의 생각과 회의에 따른 사유의 결과라고 한다. 그의 친구인 한양대교수 정재찬씨는 이렇게 전해왔다.


“그는 도도한 외로움, 고고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저 제목은 교만도 유희도 아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 응석을 부리고 싶거나, 눈물로 간구하고 싶지만 인간의 자존심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를 이해하랴. 다만 거룩하진 않아도, 거짓되고 위선에 찬 신앙보다는 네가 참 되도다, 신이 말해 줄 것이다, 라고 믿을 뿐이다.”


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지 사진평론가는 아니다. 그래서 박진호의 사진을 보며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단상들을 이야기할까 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12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보통 달을 찍으려면 장시간 노출을 주어 달의 궤적이 한 줄로 이어지는데, 이 사진들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해, 마치 춤추는 달처럼 넘실댄다. 달을 소재로 택했다는 것 자체가 사진으로 시를 쓰겠다는 이야기다.


달을 생각하니, 죽은 울 엄마가 제일먼저 떠오르고, 둘째는 이백선생이 생각나더라. 왜? 울 엄마가 생각났냐면, 살아생전 즐겨 부른 노래에 달이 나오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노래가사들이 잊혀 지지 않더라.


첫 소절이 “구름 속에 달빛만 엉큼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당신의 마음도 검구려”로 시작된다. 자연에 빗댄 사랑의 마음을 어찌나 은근하게 풀었는지, 노래가사가 바로 시였다,

즉 박진호의 사진 메시지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시였다. 자연과의 사랑 노래, 아니 달과의 아주 에로틱한 사랑 그 자체였다.


두 번째 떠 오른 이백 선생도 달과 인연이 너무 깊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백선생께서도 자연을 신이라 했다.


'독작(獨酌)'이란 시를 한 번 읽어보라.


꽃 사이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
달도 그림자도 술은 못 마시지만
그들과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자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지니
담담한 우리의 우정, 다음엔 은하 저쪽에서 만날까


이 정도면 가히 신선이다. 스스로 귀양 온 신선이라고 하였지만, 현실은 못내 답답하고 아팠을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술로 한을 달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작가의 마음이 어렴풋이 읽혀지더라. 뒤틀린 현실에 가슴이 미어져, 자신이 몸 담아 온 사진판부터 바로세우고 싶었을 게다. 지난해에는‘최민식사진상’대상수상작 문제점을 제기하며, 친구였던 수혜자를 강력하게 비판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신이나 다름없는 달을 마음대로 움직여,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 표출도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그리고 세상을 자유롭게, 재미있게 살라는 말 같았다. 바로 갑이 없고 을이 없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신선처럼 함께 놀자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의:‘갤러리 나우’(02-725-2930)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기자



  




5월30일 녹번동 사랑방에서



요즘 술만 취하면 그 날 마지막 사진으로 내 꼴을 셀프로 찍습니다.
술자리를 떠나는 아쉬움에 세상을 떠날 것 처럼, 지랄 발광을 합니다.
일주일 동안 찍은 걸 모아보니, 그 꼴들이 진짜 과관입니다.

어떨 때는 돼지 목 따듯, 노래 부르다 찍었고,
어떨 때는 맛이 가, 정신이 나가 있고,
어떨 때는 너무 슬퍼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오늘은 애편내가 있어 즐겁게 끌려갑니다.



5월 24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5월25일 인사동 '푸른별이야기'에서...



5월 28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5월 29일 인사동 '포도나무집'에서



6월 2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오늘도 힘든 육신 끌고 인사동을 떠돈다.
행여 반가운 쌍다구 만날까 하지만,
늘 빈주머니처럼 배만 고프다.

다 떠난 인사동이 어제 오늘 일이던가?
떠돌다 지치면 정선으로 도망쳤으나,
이젠 그마저 못하게 되었구나.

몸 팔러 다니는 애편네도 눈에 밟히고,
개업한 ‘문화알림방’도 발목 잡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속만 터진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돈 만들었노?
누가, 부귀영화 누리러하냐?
기계 같은 놈들, 밑 구중이나 핥는 세상."

다음 주엔 휴가 내, 정선 가야지.
삼신 할매 신당 만들어 빌어볼란다.
똑 같이 잘 사는 대동세상 달라고...

2016. 6. 1 오후의 인사동
사진, 글 / 조문호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내는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은 대부분 흑백사진이다.

흑백이 깊고, 고즈넉한 맛은 있지만, 사실은 컬러사진이 더 사실적이다.

그런데,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에 화려한 컬러사진도 있었다.

 

두 번째 골목안 풍경사진집으로 열화당에서 펴냈는데,

좀, 촌스럽게 보이면서도 또 다른 맛이 있다.

색깔들이 전체적으로는 질박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우리의 일상과 잘 맞아 떨어진다.

아마 흑백사진이었다면, 숨어버렸을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울긋불긋한 골목의 정겨움이 생각나 책을 찾았더니 서재에 없었다.

정선에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마침 도서관에 갈 일이 있어 찾아보았지만, 도서관에도 없었다.

사료적 가치는 물론, 대중 인지도까지 높은 골목안 풍경이 없다면,

다른 사진집은 보나 마나다.

 

글보다 더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집이 공립도서관에 없다니, 기가 막혔다.

이건 분명 도서구입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일은 사진인 들이 뜻을 모아 시급히 시정해야 할 문제다.

 

도서관에서는 필요한 사진집을 신청하면 비치하겠다니,

사진인들은 수시로 도서관에 들려 사진집을 신청해,

비치하게 만들자. 그건 우리 사진인의 권리니까... 

 

간신히 이십년 전, 편집장으로 있을 때 만든, ‘삼성카메라클럽회보에 실린 작품3점을 찾아냈다.

이 사진들은 삼성포토패밀리’ 96년 가을호에 게제 된 김기찬 작품선에서 옮겼다.

 

/ 조문호

 

  





지난 28일의 인사동거리는 울긋불긋, 마치 꽃밭 같았다.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거리는 한복 물결로 넘쳐났다.

 

요즘은 평일에도 한복차림의 젊은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뛴다.

색깔도 화려해졌고 치마가 짧아지는 등, 옷맵시도 바뀌었다.

 

인사동에 실망하는 외국인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전통의상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고맙고 예쁘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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