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가 무색한 날이었다.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에는 광화문광장 시위에 일장기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일본 놈들 손아귀에서 벗어 난지 75년이 지났건만,

친일 청산은 커녕, 오히려 일제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리는 ‘독립이 맞습니까?’란 전시 제목이 실감났다.

 

다시 한 번 미치광이 전광훈 개독집단과 꼴통 보수 세력이 친일 잔재라는 걸 입증했다.

그 뿐이던가?  맞장구치며 부추기는 보수언론이 더 문제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를 씹는 보수언론 논리에 귀가 막혔다.

 

독재자 이승만의 일제 계승과 무고한 민중 학살을 몰라서 하는 말이던가?

그렇게 일제 치하가 그리우면 국적을 바꾸던지, 차라리 일본으로 이민가라.

언론이란 가면을 쓰고 국민을 이간질 시키는 무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위급한 때가 아닌가?

도저히 쪽방 구석에 처박혀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어디서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인사동으로 갔다.

시위를 끝내고 지하철로 몰려드는 늙은이들의 행렬이 측은해 보였다.

무엇이 저들을 거리로 내 몰았을까? 역병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요즘 떠도는 유행어처럼 독립운동은 못해도 꼬장은 부리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원칙도 가치관도 없이, 젊은이들로 부터 지탄 받고 살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인사동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비에 젖어 가라앉은 거리엔 발길만 분주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거리 사진부터 찍었겠지만, 바로 술집을 찾아갔다.

 

벽치기 골목을 들어서니 ‘유목민’ 앞에 연출가 기국서씨와 김명성씨 모습이 보였다.

김명성씨가 추진한 독립 자료전을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개막식이 있던 날은 작업 때문에 밀양에 있었단다.

 

모처럼 소주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기국서씨가 고충을 털어 놓았다.

아무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일에 답답해했다

결과에 돈이 걸려 있다는 대목에서는 미칠 것 같단다.

 

비록 기국서씨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주변과 얽히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며, 돈에서 자유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도 권력이나 돈에 치우치면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나 친일시인 서정주와 다를 게 무엇인가?

차라리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이 나을 것이다.

 

한 쪽 자리에는 ‘뮤아트’ 김상현씨가 후배 가수들과 어울려 노래를 불렀고,

유진오씨는 분주히 ‘유목민’ 일손을 돕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출연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인 이승철씨, 박재웅씨 일행에 이어 단청장 이인섭씨가 나타났다.

좀 있으니, 시인 정희성씨와 소설가 현기영, 산악인 박기성씨가 왔다.

 

이 우울한 날 어찌 술 한 잔 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때와 달리, 기국서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시국처럼, 술자리마저 흩어져 사분오열이었다.

‘유진커피숍’에서 팥빙수에 더운 속을 식히고 자리를 떴다.

 

아무리 코로나가 설쳐도 꼭 찾아갈 곳이 있다.

바로 구로구민회관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리는 ‘독립이 맞습니까?’전이다.

그 전시를 보며, 독립을 위하여 몸 바쳐 싸운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되새기자.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7월 첫 날  인사동 풍경입니다.
징그럽던 메리야스는 정상을 찾은 것 같으나,

여름 비수기라 그런지 전시장들이 많이 비었습니다.
그 자리를 신바람나게 팡팡 돌릴 수 없을까요?

 

통인에서 오픈한 Mutlu Baskaya도예전에서 한 잔 하고,

'무다헌'에서 장경호, 정희성선생과 어울려 좀 마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학철선생을 만났으나 일행들이 있었습니다.

취해 집에 들어가는 장경호씨의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그 놈의 성질머리 좀 죽여야하는데...

뒷 손에 잡은, 그 우유팩이 안 스럽습니다.

 

사진,글 / 조문호

 

 

 

 

 

 

 

 

 

 

 

 

 

 

 

 

 

 

 

 

 

 

 

 

 

 

 

 

 

 

 

 

 

 

 

육이구 선언한 날, 속 시원한 선언이라도 없을까 기대하는 중에 술 마시러 오라는 기별이 왔다.

 

인사동 ‘무다헌’에는 몸이 불편한 이계익 전 장관을 비롯하여 서양화가 신학철, 장경호, 시인 정희성,

김명지, 강고운씨가 모여앉아 술판을 벌여놓았다.

 

신학철선생은 두 달 전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 술자리를 자제해 오다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온 것이다.

물론 장경호씨의 전화에 비롯되었지만, 작업이 풀리지 않아 붓을 내던지고 왔단다.

 

시위현장의 야전사령관격인 신학철선생께서 술잔을 기울이며 오래 전 이야기를 꺼냈다.

격렬한 시위현장에서 돌멩이를 잡았으나 차마 던지지 못하겠더란다.

그 돌멩이에 누군가 맞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연약한 양반이 아직까지 시위현장을 맴돌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경호씨는 '무다헌'에서 팔지도 않는 막걸리를 공수해 마시며, 통풍 때문에 맥주 못 먹는 날 위해 시바스리갈을 시켜주었다. 

너무 감격스러워 박통처럼 총 맞아 죽어도 좋다싶었다.

 

모처럼 다들 즐거워하는 모습에 기분 좋아, 어린애로 돌변하는 주벽까지 슬며시 도졌다.

모든 걸 내려놓고 놀았으나 다행히 총 맞지 않고 살아남았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일 오후7시 무렵의 인사동은 주변 도로가 통제된 채,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벌인 민노총 조합원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 이천오백 여명의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려 안국동 방향으로 진입해 인사동 일대가 경찰과의 대치장소가 된 것이다.

‘무다헌’에서 장경호씨를 만나기로 하였으나 골목까지 봉쇄되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경찰저지선을 뚫고 들어갔는데, 강고운, 정희성시인, 장경호화백 등 몇 명이 앉아

바깥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술자리에 퍼져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급하게 소주 반병을 마시고 카메라만 챙겨 나갔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장 구조개악 폐기,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시위대는 경찰차에 밧줄을 매달고

경찰저지선을 흔들어 댔고, 경찰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는 등, 인사동 일대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오후 9시 40분 경 경찰은 1차 해산명령을 발표한 뒤 대열 맨 앞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붙들린 참가자 한명은 머리가 땅에 떨어져 부상을 입어 실려 가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해산하지 않자 경찰은 살수차에서 물포를 시험 발사한 후,  연거푸 다량의 최루액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물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이 섞여 호흡곤란과 피부 고통을 유발했다. 

밤 11시 10분 경부터 약 40-50분 동안 경찰은 훨씬 강한 농도의 캡사이신이 섞긴 물포를 줄기차게 발사했다.

사람들은 물포의 물에 약간만 닿아도 “불에 데인 듯 쓰라렸다”면서,

군사독재 시절 거리에 쏟아진 최루탄 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최루탄은 바람이 불면 날라가지만 이번 최루액 물포는 물 방울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코와 입을 계속 공격하고 피부에 흡수돼 직격으로 맞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통증을 초래했다.

마지막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나서 물포 발사 중단을 호소했지만, 그들에게도 물포를 쏘아댔다.

 

정말 오래 만에 맡아보는 지독한 최루 냄새였다. 87년도 민주항쟁 시절 당한 후 처음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한 건 없었다. 단지 최류탄에서 최류액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저지방법은 더 치밀해져 시위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87민주항쟁으로 그 지긋지긋한 군인정치에서 벗어났지만, 그 뒤의 정권들도 별 수 없었다. 

오히려 빈부격차만 높아져 가난한 사람만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정치판은 재벌들과 협잡하느라, 민생은 뒷전이다.

더럽다고 내 버려둘 일도 아니니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물대포 한방 맞고 콜록대며 ‘무다헌’으로 기어들었지만, 술 취한 장경호씨 말대포에 또 한방 얻어 맞았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0일은 김준권, 박불똥씨의 전시가 동시에 열려
옛 민주투사들이 인사동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전시가 파한 후 ‘부산식당’에서 ‘영빈가든’을 거쳐
밤늦게는 ‘소담’에서 ‘무다헌’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무다헌’에는 박불똥씨를 비롯하여 이인철, 장경호, 최석태, 김정대, 
이명지씨 등 10여명의 장정들이 마지막고지를 사수하고 있었고,
안쪽에는 신경림, 정희성, 신학철선생 등 고참들이 죽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학철사령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 안돼요”
참모총장격인 신경림선생께 삿대질로 힐책을 한 것이다.
유리한 고지만 쫓는 우유부단함에 분노가 폭발했던 것 같다.

그 수행관 격인 김태서장교가 신학철사령관을 나무라자
장경호장교가 김태서를 제지했다.
결국 참모총장께서 퇴청하여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자칫했으면 12,12사태가 아니라 12,10사태가 날 뻔했다.

사진,글/ 조문호

 

 

 

 




지난 23일 늦은 오후,  정희성선생의 '그리운 나무' 시집출판을 축하하는 자리가 '무다헌'에서 있었다.

뒤늦은 소식으로 찾아 갔더니,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이명지, 강고운씨 등 가까운 지인 몇 명이 

오붓하게 축하연을 갖고 있었다. 

 

이명지씨의 '그리운 나무'시 낭송도, 아코디언 소리도, 모두를 슬프게 만들었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시에 취했는지, 위스키 한 잔에 비틀거렸다.

 

 

'그리운 나무'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정희성 作’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슬퍼 본 사람이 슬픔을 더 잘 이해하고, 그리워해 본 사람이 그리움이 무엇인지 잘 아는 법이다.

이 시는 바로 그 이야기를 읊조린다.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슬픔을 모른다. 그래서 슬플 때 위로가 되는 사람은 기쁜 사람이 아니라 슬픈 사람이다.

슬픈 사람만이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있으니까.
그리움도 그렇다. 지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그리움에 지친 사람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

그리워해 보지 않은 자가 어찌 그리움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세상은 가난하고 슬프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지치고 힘들어도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줄 수 있는 삶. 그것이 살 만한 세상 아닐까.

 

매일경제 [허연 문화부장(시인)]


[아시아경제 /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정희성의 '그리운 나무'...진혼과 저항, 한거의 뿌리

 

 

최근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 정희성(사진)이 여섯번 째 시집 '그리운 나무'(창비시선)를 내놓았다. 정 시인은 1970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해 '답청(踏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돌아다보면 문득' 등을 펴낸 시단의 기둥이다. 시 제목인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전국 곳곳에 주막 혹은 한식당 이름으로 걸려 있을 정도로 대중 친화적인 애송시다.

정 시인은 구두점 하나까지 완벽한 퇴고 없이는 한편의 시도 내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등단 40여년만에 여섯번째의 시집을 내놓을 정도로 과작인 이유다. 끊임없이 언어를 조탁해 우리 말의 깊이를 더욱 풍요롭게 한 것도 시인의 미덕이다.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고갯마루에서 “바람처럼 살아온 나날”(바람 부는 날)을 겸허하게 되돌아보며 결 고운 “좋은 시 한편 쓰는 일 말고/무엇이 나에게 더 남아 있겠는가”(가을 엽서)라고 말하는 시인의 나지막한 음성은 여전히 세상에 대한 애정, 불의에 대한 저항성을 내포한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는 참세상을 위해 애쓰다가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시가 눈길을 끈다. 김근태(그대를 잊지 못하리), 리영희(눈 밝은 사람), 김대중(건봉사 불이문 앞에서 그대 부음을 듣고), 노무현(봉화산) 등 시대의 숭고한 넋들을 진혼한다. 이는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기약이다. “이 맥 빠진 불임의 시대”(우리들은 꽃인가)에 “오래전에 죽은 이들을 생각하”며 “더는 슬픈 기념일을 만들지 말자”(2010년)는 울림이기도 하다.

"한 시대가 이렇게 가는구나/나더러는 조시나 쓰라 하고/김근태가 또 먼저 갔다/고문 끝에 온 민주주의가/견디다 못해 몸이 굳어져갈 즈음/그 모진 고통의 기억/잊어버리고 싶기도 했겠지//우리들의 정신적인 대통령/그대를 잊지 못하리/그대가 몸 바쳐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와/민주주의를 향한 눈물겨운 꿈의 세포는/살아서 이 시대를 견디고 있는/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2012년 새해 아침을 탈환하리"('그대를 잊지 못하리' 전문)

이어 시인은 “좀비들만 지상에 남”은 “죽은 시인의 사회”(부끄러워라)에서 “다 내려놓고/단순하게 살고 싶”(한거(寒居))다는 소망마저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그러나 시인은 한거가 단순한 현실 도피는 아니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폭탄이야 어디에 떨어지든 누가 죽든” " 아랑곳없이 무참하고 “무자비하게 응징하라 다그”(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쳐야 하는 시대의 언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시인은 한라산 바람의 목소리를 빌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노래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바람의 노래)며 폭력 앞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을/도심 속의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있다/(…)/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 이상한 나라의/황혼이 짙어지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기 시작하고/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죄를 지어/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촛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으로 가리라/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이기에"('물구나무서서 보다' 부분)

그의 주제는 '평화'다. 시인은 “풀잎보다 더 낮게/허리를 굽히”고 한껏 “자세를 낮추”(두문동)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원리,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노래한다.

"음지식물이 처음부터 음지식물은 아니었을 것이다/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보기 어려워지자/몸을 낮추어 스스로 광량(光量)을 조절하고/그늘을 견디는 연습을 오래 해왔을 것이다/나는 인간의 거처에도 그런 현상이 있음을 안다/인간도 별수 없이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므로"('음지식물' 전문)

이번 시집에 대해 구중서(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의식은 비판이나 주장이 아니고 진지한 성찰에 있다"면서도 "그리운 나무에서는 시적 안목이 확장돼 뉴욕 9.11테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대까지 이르러 인간 중시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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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리움’에 사무친 시인의 독백, 정갈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무쇠솥 같은 거나/ 마음속에 걸어두고/ 괄은 장작불 석달 열흘은/ 지펴야 하리/ 마음 좀체 뜨거워지지 않으니/ 세상 오래 달궈야 하리/ 무쇠솥 같은 거나/ 세상에 걸어두고/ 석달 열흘은 식은 마음/ 달궈야 하리”(‘무쇠솥 같은 거나’)

그리움이 사라졌다는 건 마음이 식었다는 징표다. 무쇠솥이 장작불을 만나지 못하고 싸늘하게 방치돼 있다는 얘기다. 그 식은 마음에 시가 깃들 리 만무하다. 하물며 평생 ‘그리움’을 붙들고 살아온 시인이라면 그 절망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저문 강에 삽을 씻으며 슬픔도 퍼다 버렸던 정희성(68·사진) 시인이 새 시집 ‘그리운 나무’(창작과비평)를 냈다. 정갈하면서도 깊은 시심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시인의 단아한 시들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는 ‘그리움’에 대한 그리움이 유독 눈에 띈다. 시인은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느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시인’)고 솔직하게 고백 한다. 그는 심지어 “나 죽은 뒤에도 끝없이 흐를/ 여울진 그리움의 시간”(‘선물’)까지 그리워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그리움은 시의 원자로이다. 시를 생산하는 뜨거운 에너지가 시인에겐 그리움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그리움을 질료로 이런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아리고 쓰린 상처/ 소금에 절여두고/ 슬픔 몰래/ 곰삭은 젓갈 같은/ 시나 한수 지었으면/ 짭짤하고 쌉싸름한/ 황석어나 멸치 젓갈/ 노여움 몰래/ 가시도 삭아내린/ 시나 한수 지었으면”(‘곰삭은 젓갈 같은’)

그가 단지 그리움에만 의존하는 시인은 아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을 역임하고 1980년대 문화운동을 펼쳤던 민요연구회 자문위원을 지낸 경력을 보아도 그렇다. 그는 명백한 잘못을 보고도 분노할 수 없다면 영혼이 죽은 것이라고 결연히 질타한다.

“부끄러워라/ 더 이상 분노할 수 없다면/ 내 영혼 죽어 있는 것 아니냐/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저항도 못한 채/ 뭘 더 바랄 게 있어 눈치를 보고/ 비굴한 웃음 흘리는 것이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제 그만/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차라리 파락호처럼 떠나버리자/ 아아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 좀비들만 지상에 남아 있구나”(‘부끄러워라’)

분노할 수 없다면 시도 아플 수밖에 없다. 시인은 분노를 숨기고 “창호지에 들이치는/ 싸락눈 소리”(‘寒居’)를 들으며 “시가 어디 아픈지/ 이마에 열이 나서/ 백담사나 어디/ 마음 서늘해질/ 계곡물 소리로 식혀볼까 하고”(‘시가 어디 아픈지’) 마음을 다스린다. 현실이 아무리 서늘하고 아파도 역시 시인에겐, 서럽게도, 그리움이 따스한 담요다.

“이것은 가슴을 여는 소리/ 설레는 내 마음 들었느냐/ 오직 너만을 그리워하는/ 골 깊은 이 가슴 보았느냐”(‘나의 아코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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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백나리기자]

                                

 

 '담백한 시어가 불러오는 더 깊은 그리움'

 

                                                                                    

 정희성 여섯 번째 시집 '그리운 나무' 출간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시 '그리운 나무' 전문)

정희성(68)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그리운 나무'를 출간했다. 표제작에서 보듯 담백하고 잔잔한 시어로 더 깊은 그리움과 아득한 감정을 길어올린다.

시인의 시는 대체로 길지 않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건네는 짧은 말이지만 시인이 마음에 두었던 정경으로 읽는 이를 단번에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 "내려와아, 위험해애"』(시 '교감' 전문)

『암 수술 받고 병원 문을 나서다보니/ 골목 한켠으로 영안실이 눈에 들어오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인쇄소는 새해 달력을 찍느라 분주하다/ 생각느니, 죽음과 삶의 경계는 무엇인가/ 후미진 세월 모퉁이에서 몰래 만나/ 입 맞추듯 서로 피를 빠는 이 황홀경!』(시 '근황 - 2009년12월15일의 기록' 전문)

시집엔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저항도 못하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분노(시 '부끄러워라')와 함께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나 리영희 선생처럼 먼저 세상을 뜬 이들을 그리며 시대를 탄식하는 시들도 여럿 실렸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시인을 몰아치기도 하지만 시집 전반에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마음이 휘는 시인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겼다. 시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를 보면 꽃 피는 시절을 차마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시인의 표정과 그런 시인에게 면박을 주는 아내의 표정이 겹쳐 애틋한 웃음을 준다.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 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 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생태학교에 간다고/ 생태는 무슨 생태?/ 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앉아 있는 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고/ 봄이 영영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는 못하고』

창비. 104쪽. 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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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최재봉기자]

 

10월 14일 출판 잠깐독서

 

 

 

서정적인 시, 그리고 현실적인 시

 

그리운 나무
정희성 지음
창비·8000원

 

 

과작의 시인 정희성이 신작 시집 <그리운 나무>를 묶어 냈다. 1970년 등단 이후 43년 만에 여섯 번째이며 지난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으로부터는 5년 만이다. 시집과 시집 사이가 동뜨면 그동안 하고픈 말이 섬으로 쌓일 법도 하건만, 그마저도 깎고 털어내 시 한 편 한 편은 매우 단출하고 정갈하다. 시를 향한 그리움의 밀도가 그 길이와 반비례한다고 믿기라도 하는 듯.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느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시인> 전문)

 

이토록 단아하고 과묵한 시인도 “집 잃은 시민들이 시위하다 불타 죽은” “거꾸로 된 세상”을 보면서는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도 높아진다. 서정성과 현실적 발언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정희성 시의 큰 미덕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죄를 지어/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촛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으로 가리라/ 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이기에”(<물구나무서서 보다> 부분)

 

지난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에 시인은 암 수술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다. ‘2009년 12월15일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시 <근황>은 그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린 사유를 담고 있다.

 

“생각느니, 죽음과 삶의 경계는 무엇인가/ 후미진 세월 모퉁이에서 몰래 만나/ 입 맞추듯 서로 피를 빠는 이 황홀경!”(<근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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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김영번기자]

 

                               아이의 눈으로 간결하게 그려낸 세상

 

                                                     정희성 시집 ‘그리운 나무’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

“내려와아, 위험해애”

- 시 ‘교감’ 전문

1970년 등단 이후 40여 년간 결곡한 시 정신을 보여온 정희성(68) 시인이 신작 시집 ‘그리운 나무’(창비)를 펴냈다. 정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으로, 전작 ‘돌아다보면 문득’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앞서 인용한 시 ‘교감’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전깃줄 위에 앉아 있는 새에게 ‘위험하다’며 ‘내려오라’고 말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시집에선 절제된 언어와 단아한 형식에 스민 여백의 미가 물씬 풍겨난다. 따라서 시인의 언어는 더욱 간결해지고 명확해진다.

예컨대 시 ‘두문동’에서 시인은 이렇게 읊는다. “자세를 낮추시라/ 이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여기는 풀꽃들의 보금자리/ 그대 만약 이 신성한 숲에서/ 어린 처자처럼 숨어 있는/ 족두리풀의 수줍은 꽃술을 보려거든/ 풀잎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히시라”(시 ‘두문동’ 전문).

이제 고희를 눈앞에 둔 시인은 마냥 끓이던 속을 내려놓고, 더욱 낮은 자세로 풀꽃처럼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시 ‘한거(寒居)’에서 시인은 “이제 다 내려놓고/ 단순하게 살고 싶네/ 콩댐을 한 장판방/ 머리맡엔 목침 하나/ 몸 이긴 마음이/ 어디 있을까/ 창호지에 들이치는/ 싸락눈 소리”라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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