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10년 만에 구도소설집 ‘별밭공원’ 출간

작가 송기원씨(66)가 소설집 <별밭공원>(실천문학사)(사진)을 내놓았다. 소설집으로는 <사람의 향기> 이후 10년 만이다. 표제작 ‘별밭공원’과 연작 형태를 띠고 있는 ‘무문관’ ‘탁발’ ‘객사’를 포함한 단편 7편이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은 작가의 실제 경험에 밀착해 있다. 그런데 그 경험이 대체로 구도의 과정이다.

작가의 구도 행각은 이미 호가 나 있다.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육군교도소에서 복역할 무렵 고 문익환 목사에게 요가를 배운 그는 1990년에는 국악인 김영동씨의 권유로 국선도에 입문했다. 1997년에는 인도로 떠나 요가의 호흡법을 배우고 히말라야 산기슭을 헤매고 다녔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룡산 언저리에서 탁발 수행을 했다. <별밭공원>에는 이 같은 구도 과정에서 그가 겪었음직한 일들이 소설의 몸을 입고 나타난다.

작가는 1974년 시와 소설이 신춘문예에 모두 당선해 등단함으로써 예사롭지 않은 문학적 재능을 뽐냈으나 1980년대에 시국사건에 연루돼 4차례나 옥고를 치르면서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다. 1993년 단편 ‘아름다운 얼굴’로 작품활동을 재개한 이후 유년기와 청년기의 방황과 편력을 탐미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써냈는데 2003년 나온 연작소설집 <사람의 향기>는 이 10년간의 문학적 이력을 갈무리하는 성격의 책이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작가 송기원씨가 10년 만의 소설집 출간을 맞아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1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작가는 “<사람의 향기>에서 쓰지 못했던, 그래서 마음에 찜찜하게 남아 있던 이야기를 썼다”며 “<별밭공원>은 최종적으로 내 삶을 정리해보는 책”이라고 말했다.

표제작 ‘별밭공원’은 노년의 길목에 서 있는 작가가 방황과 투옥과 구도에 이르기까지 신산했던 지난 삶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고 그 여정의 의미를 길어낸, 자기 삶의 이력서 같은 작품이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이 단편에서 주인공 ‘나’는 자신이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고 회고한다. 시국사건으로 투옥 중일 때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한동안 폭음에 빠져 사는데, 폭음 후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절대 평온의 경지를 발견한다.

“아아, 내 안에 이런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니! 한없이 깊고 아득하고 그윽하고 포근한 공간! 그 공간을 나는 무슨 은총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명정(酩酊) 상태에서 화자가 발견한 이 “포근한 공간”은 죽음과 연결돼 있다. “다만 나는 당연한 것처럼 그 공간을 어머니가 먼저 가 있는 저승 쪽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뒤 주인공은 이 공간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계룡산의 적막한 고요와 히말라야의 찬바람 속으로 들어가 구도를 시작한다. 구도 과정에서 그가 얻는 것은 자신의 끔찍하고 추악한 모습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존재의 고갱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추한 모습을 부정하려는 마음조차 또 다른 집착과 허상이기 때문이다. “야차야말로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생명이지 않을까?” 이 지점에 이르러 삶과 죽음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로 만난다. “나에게 죽음은 여전히 황홀한 축복이다. 나는 살아있으면서도 저 깊고 가없이 넓은 세상을 얼마든지 듣고 만지는 것이다.”

 

젊은 수행승 석우와 석전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 단편 ‘무문관’ ‘탁발’ ‘객사’와 주인공이 히말라야 오지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 ‘육식’은 ‘별밭공원’에서 그 편린이 드러나 있는 구도행의 확장판이다. 이들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은 구도의 의미가 세속의 삶을 초월해버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카피의 세계, 이분법의 허구가 만들어낸 세계”로 돌아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생생한 모습과 정면 대결”하는 데 있다는 인식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도(수행)에 빠지면 거기서 나오지 않으려 한다”며 “도에 빠지지 말고 나가서 ‘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삶 속으로 들어가 삶의 비루함을 끌어안으며 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은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단편 ‘동백섬’에 잘 드러나 있다. “무릇 삶이라는 것이 어디를 둘러보아도 추악함 자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느닷없이 서울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출분해 동백섬에 이른다. 그는 만발한 동백꽃의 황홀한 붉은빛에서 전율적 아름다움을 느끼고는 그 속에서 죽기를 꿈꾸는데,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아줌마의 질펀하고 거침없는 수다가 그를 다시 삶 쪽으로 돌려세운다.

[경향신문]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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