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정희성의 '그리운 나무'...진혼과 저항, 한거의 뿌리

 

 

최근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 정희성(사진)이 여섯번 째 시집 '그리운 나무'(창비시선)를 내놓았다. 정 시인은 1970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해 '답청(踏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돌아다보면 문득' 등을 펴낸 시단의 기둥이다. 시 제목인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전국 곳곳에 주막 혹은 한식당 이름으로 걸려 있을 정도로 대중 친화적인 애송시다.

정 시인은 구두점 하나까지 완벽한 퇴고 없이는 한편의 시도 내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등단 40여년만에 여섯번째의 시집을 내놓을 정도로 과작인 이유다. 끊임없이 언어를 조탁해 우리 말의 깊이를 더욱 풍요롭게 한 것도 시인의 미덕이다.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고갯마루에서 “바람처럼 살아온 나날”(바람 부는 날)을 겸허하게 되돌아보며 결 고운 “좋은 시 한편 쓰는 일 말고/무엇이 나에게 더 남아 있겠는가”(가을 엽서)라고 말하는 시인의 나지막한 음성은 여전히 세상에 대한 애정, 불의에 대한 저항성을 내포한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는 참세상을 위해 애쓰다가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시가 눈길을 끈다. 김근태(그대를 잊지 못하리), 리영희(눈 밝은 사람), 김대중(건봉사 불이문 앞에서 그대 부음을 듣고), 노무현(봉화산) 등 시대의 숭고한 넋들을 진혼한다. 이는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기약이다. “이 맥 빠진 불임의 시대”(우리들은 꽃인가)에 “오래전에 죽은 이들을 생각하”며 “더는 슬픈 기념일을 만들지 말자”(2010년)는 울림이기도 하다.

"한 시대가 이렇게 가는구나/나더러는 조시나 쓰라 하고/김근태가 또 먼저 갔다/고문 끝에 온 민주주의가/견디다 못해 몸이 굳어져갈 즈음/그 모진 고통의 기억/잊어버리고 싶기도 했겠지//우리들의 정신적인 대통령/그대를 잊지 못하리/그대가 몸 바쳐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와/민주주의를 향한 눈물겨운 꿈의 세포는/살아서 이 시대를 견디고 있는/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2012년 새해 아침을 탈환하리"('그대를 잊지 못하리' 전문)

이어 시인은 “좀비들만 지상에 남”은 “죽은 시인의 사회”(부끄러워라)에서 “다 내려놓고/단순하게 살고 싶”(한거(寒居))다는 소망마저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그러나 시인은 한거가 단순한 현실 도피는 아니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폭탄이야 어디에 떨어지든 누가 죽든” " 아랑곳없이 무참하고 “무자비하게 응징하라 다그”(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쳐야 하는 시대의 언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시인은 한라산 바람의 목소리를 빌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노래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바람의 노래)며 폭력 앞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을/도심 속의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있다/(…)/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 이상한 나라의/황혼이 짙어지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기 시작하고/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죄를 지어/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촛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으로 가리라/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이기에"('물구나무서서 보다' 부분)

그의 주제는 '평화'다. 시인은 “풀잎보다 더 낮게/허리를 굽히”고 한껏 “자세를 낮추”(두문동)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원리,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노래한다.

"음지식물이 처음부터 음지식물은 아니었을 것이다/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보기 어려워지자/몸을 낮추어 스스로 광량(光量)을 조절하고/그늘을 견디는 연습을 오래 해왔을 것이다/나는 인간의 거처에도 그런 현상이 있음을 안다/인간도 별수 없이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므로"('음지식물' 전문)

이번 시집에 대해 구중서(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의식은 비판이나 주장이 아니고 진지한 성찰에 있다"면서도 "그리운 나무에서는 시적 안목이 확장돼 뉴욕 9.11테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대까지 이르러 인간 중시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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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리움’에 사무친 시인의 독백, 정갈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무쇠솥 같은 거나/ 마음속에 걸어두고/ 괄은 장작불 석달 열흘은/ 지펴야 하리/ 마음 좀체 뜨거워지지 않으니/ 세상 오래 달궈야 하리/ 무쇠솥 같은 거나/ 세상에 걸어두고/ 석달 열흘은 식은 마음/ 달궈야 하리”(‘무쇠솥 같은 거나’)

그리움이 사라졌다는 건 마음이 식었다는 징표다. 무쇠솥이 장작불을 만나지 못하고 싸늘하게 방치돼 있다는 얘기다. 그 식은 마음에 시가 깃들 리 만무하다. 하물며 평생 ‘그리움’을 붙들고 살아온 시인이라면 그 절망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저문 강에 삽을 씻으며 슬픔도 퍼다 버렸던 정희성(68·사진) 시인이 새 시집 ‘그리운 나무’(창작과비평)를 냈다. 정갈하면서도 깊은 시심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시인의 단아한 시들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는 ‘그리움’에 대한 그리움이 유독 눈에 띈다. 시인은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느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시인’)고 솔직하게 고백 한다. 그는 심지어 “나 죽은 뒤에도 끝없이 흐를/ 여울진 그리움의 시간”(‘선물’)까지 그리워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그리움은 시의 원자로이다. 시를 생산하는 뜨거운 에너지가 시인에겐 그리움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그리움을 질료로 이런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아리고 쓰린 상처/ 소금에 절여두고/ 슬픔 몰래/ 곰삭은 젓갈 같은/ 시나 한수 지었으면/ 짭짤하고 쌉싸름한/ 황석어나 멸치 젓갈/ 노여움 몰래/ 가시도 삭아내린/ 시나 한수 지었으면”(‘곰삭은 젓갈 같은’)

그가 단지 그리움에만 의존하는 시인은 아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을 역임하고 1980년대 문화운동을 펼쳤던 민요연구회 자문위원을 지낸 경력을 보아도 그렇다. 그는 명백한 잘못을 보고도 분노할 수 없다면 영혼이 죽은 것이라고 결연히 질타한다.

“부끄러워라/ 더 이상 분노할 수 없다면/ 내 영혼 죽어 있는 것 아니냐/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저항도 못한 채/ 뭘 더 바랄 게 있어 눈치를 보고/ 비굴한 웃음 흘리는 것이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제 그만/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차라리 파락호처럼 떠나버리자/ 아아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 좀비들만 지상에 남아 있구나”(‘부끄러워라’)

분노할 수 없다면 시도 아플 수밖에 없다. 시인은 분노를 숨기고 “창호지에 들이치는/ 싸락눈 소리”(‘寒居’)를 들으며 “시가 어디 아픈지/ 이마에 열이 나서/ 백담사나 어디/ 마음 서늘해질/ 계곡물 소리로 식혀볼까 하고”(‘시가 어디 아픈지’) 마음을 다스린다. 현실이 아무리 서늘하고 아파도 역시 시인에겐, 서럽게도, 그리움이 따스한 담요다.

“이것은 가슴을 여는 소리/ 설레는 내 마음 들었느냐/ 오직 너만을 그리워하는/ 골 깊은 이 가슴 보았느냐”(‘나의 아코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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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백나리기자]

                                

 

 '담백한 시어가 불러오는 더 깊은 그리움'

 

                                                                                    

 정희성 여섯 번째 시집 '그리운 나무' 출간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시 '그리운 나무' 전문)

정희성(68)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그리운 나무'를 출간했다. 표제작에서 보듯 담백하고 잔잔한 시어로 더 깊은 그리움과 아득한 감정을 길어올린다.

시인의 시는 대체로 길지 않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건네는 짧은 말이지만 시인이 마음에 두었던 정경으로 읽는 이를 단번에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 "내려와아, 위험해애"』(시 '교감' 전문)

『암 수술 받고 병원 문을 나서다보니/ 골목 한켠으로 영안실이 눈에 들어오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인쇄소는 새해 달력을 찍느라 분주하다/ 생각느니, 죽음과 삶의 경계는 무엇인가/ 후미진 세월 모퉁이에서 몰래 만나/ 입 맞추듯 서로 피를 빠는 이 황홀경!』(시 '근황 - 2009년12월15일의 기록' 전문)

시집엔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저항도 못하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분노(시 '부끄러워라')와 함께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나 리영희 선생처럼 먼저 세상을 뜬 이들을 그리며 시대를 탄식하는 시들도 여럿 실렸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시인을 몰아치기도 하지만 시집 전반에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마음이 휘는 시인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겼다. 시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를 보면 꽃 피는 시절을 차마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시인의 표정과 그런 시인에게 면박을 주는 아내의 표정이 겹쳐 애틋한 웃음을 준다.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 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 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생태학교에 간다고/ 생태는 무슨 생태?/ 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앉아 있는 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고/ 봄이 영영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는 못하고』

창비. 104쪽. 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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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최재봉기자]

 

10월 14일 출판 잠깐독서

 

 

 

서정적인 시, 그리고 현실적인 시

 

그리운 나무
정희성 지음
창비·8000원

 

 

과작의 시인 정희성이 신작 시집 <그리운 나무>를 묶어 냈다. 1970년 등단 이후 43년 만에 여섯 번째이며 지난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으로부터는 5년 만이다. 시집과 시집 사이가 동뜨면 그동안 하고픈 말이 섬으로 쌓일 법도 하건만, 그마저도 깎고 털어내 시 한 편 한 편은 매우 단출하고 정갈하다. 시를 향한 그리움의 밀도가 그 길이와 반비례한다고 믿기라도 하는 듯.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느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시인> 전문)

 

이토록 단아하고 과묵한 시인도 “집 잃은 시민들이 시위하다 불타 죽은” “거꾸로 된 세상”을 보면서는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도 높아진다. 서정성과 현실적 발언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정희성 시의 큰 미덕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죄를 지어/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촛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으로 가리라/ 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이기에”(<물구나무서서 보다> 부분)

 

지난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에 시인은 암 수술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다. ‘2009년 12월15일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시 <근황>은 그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린 사유를 담고 있다.

 

“생각느니, 죽음과 삶의 경계는 무엇인가/ 후미진 세월 모퉁이에서 몰래 만나/ 입 맞추듯 서로 피를 빠는 이 황홀경!”(<근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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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김영번기자]

 

                               아이의 눈으로 간결하게 그려낸 세상

 

                                                     정희성 시집 ‘그리운 나무’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

“내려와아, 위험해애”

- 시 ‘교감’ 전문

1970년 등단 이후 40여 년간 결곡한 시 정신을 보여온 정희성(68) 시인이 신작 시집 ‘그리운 나무’(창비)를 펴냈다. 정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으로, 전작 ‘돌아다보면 문득’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앞서 인용한 시 ‘교감’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전깃줄 위에 앉아 있는 새에게 ‘위험하다’며 ‘내려오라’고 말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시집에선 절제된 언어와 단아한 형식에 스민 여백의 미가 물씬 풍겨난다. 따라서 시인의 언어는 더욱 간결해지고 명확해진다.

예컨대 시 ‘두문동’에서 시인은 이렇게 읊는다. “자세를 낮추시라/ 이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여기는 풀꽃들의 보금자리/ 그대 만약 이 신성한 숲에서/ 어린 처자처럼 숨어 있는/ 족두리풀의 수줍은 꽃술을 보려거든/ 풀잎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히시라”(시 ‘두문동’ 전문).

이제 고희를 눈앞에 둔 시인은 마냥 끓이던 속을 내려놓고, 더욱 낮은 자세로 풀꽃처럼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시 ‘한거(寒居)’에서 시인은 “이제 다 내려놓고/ 단순하게 살고 싶네/ 콩댐을 한 장판방/ 머리맡엔 목침 하나/ 몸 이긴 마음이/ 어디 있을까/ 창호지에 들이치는/ 싸락눈 소리”라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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