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운 빛이 가장 자연스러운 벗입니다’

 

예술가의 초상을 담아주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사진 스튜디오 슬로건이다.

https://www.portraitofartist.net

 

“사진은 당신의 숨어있는 진실을 끌어냅니다.

사진은 당신의 무의식을 해방시킵니다.

당신의 삶을 사진으로 응축시켜 드립니다.“

 

사진가 정영신씨가 사진모델로 나섰다.

촬영은 박건주 (010-5471-0416) 감독이 맡았다.

의상과 메이크업은 본인이 준비했고, 소요시간은 한 시간 걸렸다.

 

촬영 비용은 25만원이지만, 지금은 활인한 10만원에 제공한다.

촬영 후 보정한 사진 원본 4장을 보내 주었다.

사진가가 만족한, 신뢰할 수 있는 스튜디오였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에서는 다양한 일들을 한다.

 촬영 스튜디오와 사진작품 출력실 외에도

미술평론가를 앞세운 ‘도슨트와 미술관 산책’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조합원들에게 700w상당의 음향기기를 대여해 주기도 한다.

 

현판은 판화가 류연복씨가 만들었다

지금은 음악인을 위한 공연 연습장까지 준비 중이다.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만들어 갈 계획이란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을 대행하여 도움을 준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내일키움일자리사업’을 스마트협동조합에서 맡아

두 달에 걸쳐 전시와 공연을 해주는 조건으로

가난한 예술가 500명에게 매월 18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6개월간 진행했다.

 

한국스마트조합(이사장 서인형)은 창립 일 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현재 조합원은 300여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모든 예술가들이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니까.

 

사무실 위치는 지하철3호선 녹번역 4번 출구에서 눈앞이다.

‘녹번119안전센터’ 건물 3층 ‘은평구사회적허브센터’(은평로 245번지)에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예술가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사무국장 황경하 (02-764-3114)

 

사진, 글 / 조문호

술친구에게 발목 잡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주말을 녹번동에서 보내고 동자동으로 복귀할 무렵,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요즘 들어 사람들 만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꺼두었더니

정영신씨 편으로 쓰리 쿠숀을 친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온 다는 전활철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배낭을 짊어지고 나타났는데, 손님이 없어 이틀 동안 가게 문을 닫았단다.

어디를 쏘다니다 왔는지 술안주로 사 온 육회는 이미 상해 버렸다.

정영신씨가 임기응변으로 마련한 야채 안주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요즘 화가 장모씨가 돈이 생겨 사람들 불러모아 흥청망청 술값 낸다는 말도 듣고,

옛 친구였다는 대선주자 윤모씨의 인간적인 면모도 들었다.

'유목민'과 관련된 책을 만들 준비를 한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 듣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창밖이 서서히 어두워질 무렵, 정영신씨 핸드폰으로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조해인 시인이었다.

“형 전화가 꺼져 무슨 일 생겼냐?”지만, 그 날이 칠순 되는 생일이란다.

연락이 안 되어 여지 것 김수길씨와 마시다 헤어졌단다.

이미 취한 목소리지만, 고희 맞는 이 좋은 날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올려면 빨리나 올 것이지 양과점에서 케익 사오느라 한 참 걸렸다.

 

생일 케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롤 케익을 사온 것이다.

그 때까지 안주가 신통찮아 손가락만 빨았는데, 이게 왠 떡이냐?

담콤한 안주가 깔아주니 독한 대마불사주가 술술 들어갔다.

 

나야 칠순 지난지가 오래지만, 고희연을 이렇게 초라하게 보내서야 되겠는가?

코로나 시국만 아니라면 인사동에서 잔치라도 한 바탕 벌어야할텐데...

 

고희란 두보 ‘곡강시’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인데,

옛날에는 70살 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싯귀 중에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脣"이란 말도 있다.

"지는 꽃 보고 어른거림 잠깐 사이니, 서글픔 많다 말고 술이나 마시자"

덤으로 사는 인생, 어찌 빨지 않을소냐?

쌍팔년도 케케묵은 사연을 안주삼아 “부어라 마시어라” 잘도 들어갔다.

축배에 축배를 거듭하고, 술이 술을 마셔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활철씨는 아랫집 문은 왜 두드렸는지, 난 왜 차안에 들어가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자동 가려고 차를 탔으나 차마 시동을 걸지 못한 것 같았다.

차에 앉아 술 깰 때까지 기다리다 잠든 것 같은데. 내려보니 술 취한 늙은이들은 오간데 없었다.

마침 지하철이 끊기지 않아 지하철 타고 서울역까지 갈 수 있었다.

쪽방까지는 어떻게 올라왔는지, 선풍기도 틀지 않고 잠들어있었다.

 

눈을 뜬 시간이 새벽 네 시 무렵인데, 더워서 땀 범벅이 된 몸이야 차지하고,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거짓말 좀 보태 냉수를 한 말은 족히 마셨을 것이다.

정신 차려 엊저녁 기억을 되돌리려 카메라를 열어보니 귀가 막혔다.

그 날은 정동지가 내 카메라로 찍었는데, 가기 싫어 비좁은 문 앞에 버티고 누운 모습까지 있었다.

치매 환자가 제 나이를 잊은 듯 했다.

 

죄 없는 김용만씨의 ‘술이 원수다.’노래나 불렀다.

“술술 술이 원수다.

다음 날 아침에 술병이 났네.

때늦은 후회들 소용이 있나.

맞다 맞다 맞았다. 술이 원수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무더운 날씨에 술을 마셔 그런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은 편이지만 도저히 못 견뎌 물을 덮어썼는데,

몸만 식히지 죄 없는 머리는 왜 밀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토요일 술 한 잔하자는 김명성씨 연락을 받았다.

일전에 최옥영씨 대지미술 보러가자며 연락해도 몸이 아파 못 간다더니 이제 좀 살만한 모양이었다.

 

그날은 전화기를 꺼 두어 정영신씨를 통해 연락을 받았으나, 약속된 ‘마포나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화기가 없어 무작정 기다렸더니, 조해인시인과 뒤늦게 나타났다.

뭔가 엇갈려 여지 것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모처럼 소라 멍게 등 해산물을 안주로 한 잔 마셨는데, 그동안 몰랐던 소식을 많이 듣게 되었다.

자기가 무슨 명탐정이라고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위장한 친일파 찾는다고 독립운동사 뒤져가며 살더니 몸이 못 버텨낸 것 같았다.

오십견에 버금가는 곤욕을 치루며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동안 별일도 많았더라.

어느 날 갑자기 에어컨 호스가 터져 온방에 물벼락을 맞았는데, 억대가 넘는 병풍이 젖어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요즘은 표구기술이 좋아 감쪽같이 원상복구는 되었으나 표구 값이 칠백만원이나 나와 겨우 오백만원으로 깎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표구 값을 친동생인 김효성씨가 냈다고 한다.

여지 것 동생한테 도움 받아 본지가 없어 그런지, 그 날은 동생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기야! 요즘 효성씨가 신단수란 필명으로 신문에 운세를 연재하며 정치인 운세로 뜬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잘 나가는 상업 출판사와 10만부를 예상하는 출판계약을 맺었는데, 표구 값을 낸 것도 그 계약금 받은 돈이라고 했다.

 

동생은 한 번도 화내는 일이 없다는데, 맞는 말이었다.

자기가 어려울 때도 남 도와주기를 꺼리지 않았는데, 그 복을 이제사 받는 것 같았다.

그보다 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은 누워 있는동안 엄청난 생각을 해낸 것이다.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라 말은 못하지만 미술시장을 뒤집을 기획안이었다.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김명성씨만의 사업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취해 버렸다.

술집에서 나와 커피 집으로 옮겼으나, 여섯시가 넘어 두 사람 이상은 안 된단다.

커피를 사들고 무더운 햇살아래 마셨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다는 소리도 않고 도망쳐 나와 더위 먹은 개처럼 헉헉거렸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실에 들어가 물부터 뒤집어썼는데,

무슨 병이 도졌는지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가위로 자른 후 신통찮은 면도기로 밀었는데, 위험천만의 일이었다.

나이가 많아 절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텐데 땡초가 되고 싶었을까?

 

간신히 치워놓고 나니 그때서야 집 주인이 나타났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사정없이 총을 갈겨 본색을 들키고 말았다.

바람 넣은 볼작을 똑똑 두드리며 선처를 바랬다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포토마가 주최하는 제2FNK PHOTOGRAPHY AWARD 순수부문 수상자 초대전인

손은영의 밤의 집2’가 지난 12일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오후 여섯시에 시상식이 있다기에 사람들을 피해 한 시간이나 빨리 갔는데,

일찍부터 사진가들이 여럿 와 있었다.

 

작가 손은영을 비롯하여 주최측인 '포토마' 하춘근대표,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관장,

사진가 엄상빈, 정영신, 김영호, 곽명우씨 정도는 알겠는데,

다들 마스크 때문에 잘 모르겠더라.

 

빨리 빠져 나오려고 사진부터 돌아보았는데,

지난 번 보여 준 밤의 집보다 좀 더 정형화 된 것 같았다.

 

어둠이 깃든 집의 구조가 마치 집들의 초상사진처럼 존재를 드러냈다.

이전에는 어렴풋이나마 집에서 인적, 즉 사람의 체취가 감지되었으나,

이번에는 자로 잰 듯 수평과 수직으로 그려 진 구조물이

독특한 저마다의 색깔에 의해 마치 무대세트처럼 다가왔다.

 

의도된 작위였다.

점점 각박해지고 규격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촬영할 때부터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었다.

마땅한 집을 찾아내어 화면 구성에서 색조에 이르기까지...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은 손은영씨, (손은영씨 페북에서 옮겼다)

촬영 후 후보정을 통해 또 다른 분위기의 집으로 바꾼 것이다.

사진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다시 말해 기록의 예술에서 표현의 예술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번에 발행된 손은영의 '밤 의집2' 사진집 표지 (손은영씨 페북에서 옮겼다)

우리전통가옥은 초가 능선처럼 어딘가 곡선이 있으나

서구의 건축들은 대개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령 같은 수직의 아파트가 점령한 현실에서 본 집의 형태는

옛날 달동네 집이나 마찬가지다.

 

포근한 인간의 정서가 풍기는 달동네를 대신하여

경제성장으로 발전한 삭막한 오늘의 달동네인 것이다.

시대성이 담긴 주택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적인 기록의 가치보다

작가의 주관에 따라 예술사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예술사진 또한 시대적 달동네를 조명하는 기록의 한 축이기도 하겠다.

 

작가는 오랜 나날을 밤에는 찍고 낯에는 후보정하며 올빼미처럼 작업했다.

다시 말해 밤에는 사진 찍고 낯에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색의 조화는 물론 창에 백열등 불빛을 삽입하는 등 미적 요소까지 끌어들였다.

 

사진들은 도식적이면서도 서정적이었다.

도식적인 형태가 정형화되긴 했으나

포근한 색감과 직선의 미가 어울려 관능적으로 다가왔다.

 

사진 속은 잠잠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과 조형감각이 돋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듯, 21일까지 열리니 구경 한 번 하시라.

 

사진, / 조문호

 

정주영은 정영신동지의 친동생이고, 한 때 나에게는 처제이기도 했다.

지난 토요일 둘째 딸 현아 결혼식이 마포에서 열린다는 기별에 집안 식구들이 다 모였다.

작년에 치룬 첫딸 소현이 결혼식에 이은 두 번째 경사였다.

 

둘 다 사랑이 얼마나 고팠으면 사람을 많이 모울 수 없는 코로나 시국에 날을 잡았겠나?

제 애미가 어려운 살림살이에 자식들 혼례 치루려고

남의 집 길융사마다 적금 들어 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철부지 딸에게 듬직한 사위를 짝지어 주는 기쁨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죽하면 정동지 말에 의하면 "돌아가신 엄마가 말썽꾸러기 두 딸 시집보냈다는 이야기 들었으면

너무 좋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 말하겠는가?

 

작년에 환갑을 맞은 정주영씨의 삶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운명의 드라마다.

나이 삼십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병아리 같은 두 딸과 아들을 혼자 키워냈으니,

그 고생이야 보나마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름까지 바꾸었겠는가?

친일파 김활란이가 싫었겠지만, 활란이란 이름을 돈 많은 정주영으로 개명한 것이다.

 

청상과부의 불타는 가슴도 생존의 절박함 앞에는 눈 녹듯 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 살 파먹는 보험회사 외판원에서부터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악착같이 살았는데,

이제 아들 딸 대학 졸업시켜 시집까지 보냈으니, 그 뿌듯함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이게 평범한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마음이고, 이름 없는 소시민의 성공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좋은 잔칫날, 코로나 역풍에 축배대신 눈물을 훔쳤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간 남편 김영덕씨는 전기공학과를 나와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꿈을 키우며 자동차정비소로 생계를 끌어갔는데, 

어느 날 감기증세로 입원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얼마나 살 길이 막막했으면 백일도 되지 않은 아들을 안고 6개월 동안 울었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듯 시집 간 현아는 강북삼성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코로나와 싸우는 방역의 전사로 나섰고,

첫째 딸 소현이는 시집살이도 없이 편하게 잘 살고 있다.

막내아들 희중이는 스스로 나라 지키는 직업군인을 택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게 된 것이다.

 

김현아양의 결혼과 정주영씨의 헌신적인 삶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그 날은 신부대기실 들리는 틈에 순서를 놓쳐 식장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50명까지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식당으로 가야했다.

친지 결혼식장 와서 예식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지난 해 소현이 시집 갈 때는 식사 대신 기념품을 주더니, 장사가 안 된다며 다시 뷔페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사육장 먹이처럼 칸칸이 갇혀 먹어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르겠고,

뒤통수에는 결혼식 스크린이 왕왕거리는데다 사람까지 많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 없었다.

이승 풍경인지 저승 풍경인지 헷갈렸다.

 

그런데, 뒤늦게 특혜 아닌 징벌의 보너스까지 받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 온지 사흘 만에 방역당국에서 자가 격리라는 통보가 왔는데,

결혼식장에 확진자가 생긴 바람에 집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청천벽력이었다.

결혼식장 CCTV를 샅샅이 뒤져 확진자 동선 따라 마스크를 벗은 사람만 찾아냈다는데,

하필이면 커피 마시는 모습이 찍혀버렸다.

앉으나 서나 마스크만 쓰면 살아 남는다는 교훈이다.

 

격리가 끝나는 7월 4일까지 집에서 징역 아닌 징역살이를 해야한다.

세상에! 쓰레기까지 내 오지 말라는데, 화장실 없는 쪽방에서 똥은 어디다 쌀까?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오래 산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며칠 전 조준영시인으로 부터 인사동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는 정기적인 인사동 모임이 있었으나, 코로나 광풍에 밀려 사라진터라 반가운 기별이 아닐 수 없었다.

 

 

 

조준영씨를 만난 지가 일 년을 훌쩍 넘겼으나 인원수 제한에 걸려  다른 분은 연락도 못했다.

아마 정선 집에 불난 소문을 듣고 무리하게 자리 만든 것 같았다.

 

 

 

정영신씨와 함께 약속보다 일찍 나가 마루아트에서 열리는 노무현 추모전 사람 사는 세상’부터 보러갔다.

 

 

 

전시장에서 박재동 화백과 유준 화백을 만나기도 했다.

 

 

 

99명의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들이 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세삼 울컥하게 만든 작품은 노무현대통령 전속 사진가로 일한 장철영씨 사진이었다소탈한 바보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에 어찌 옛날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나온 인사동 거리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문 닫았던 몇몇 가게들이 옷 가게나 악세서리 가게로 다시 문을 열었는데, 전통 노리개를 팔던 아원공방자리는 화려한 색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사동 길가의 신축건물 일층에 더 스타갤러리가 문을 열었더라.

일 년만 숨어 지내다 오면 인사동의 모든 게 다 바뀔 것 같았다.

 

 

 

약속시간이 되어 툇마루로 갔더니, 김 발렌티노가 반갑게 맞았다.

요즘 청소부로 돈 번다며 밥 한 그릇 사겠다고 우겼으나 약속이 있어 사양했다.

 

 

 

'툇마루에서 조준영씨를 만나 된장 비빔밥에 막걸리 한 잔 했다.

요즘 술만 마시면 힘들어 아껴 마실 수 밖에 없었는데, 입은 땡기고 머리는 말리니 어느 장단에 춤 출지 모르겠더라.

 

 

 

다들 지난한 나날들 하소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조준영씨가 화재 후원금을 건네주었다.

함께 공유할 예술창고를 만들려면, 돈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필요해 고맙게 받아 들였다.

 

 

 

대기손님들이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어 오래 버틸 재간이 없었다.

 

 

 

툇마루에서 나와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유목민도 손님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소식 끊겨 죽은 줄만 알았던 장춘씨가 나타난 것이다.

 

 

 

정말, 안보면 보고 싶고 보면 징그러운 여인이다.

'죽어도 고.”라는 작심으로 마시기 시작했는데, 소주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녀의 언어 법은 귀신들이 나누는 말투라 다소 난해하다.

 

 

 

우린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으로 흘리니 문제될 게 없으나, 옆 좌석에 던지는 실 없는 소리에 신경 쓰였다

다행스럽게 귀신 말귀를 알아챘는지, 맞장구를 쳐 주어 분위기가 무러익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홀짝 홀짝 마신 술에 취해 버렸다.

그렇지만, 이 얼마만이더냐? 마음대로 이야기하며 기분 좋게 마신 적이...

 

 

 

같은 방향이라 녹번동으로 함께 갔는데, 장춘씨가 떠난 생각이 나지않는 걸 보니, 아마 먼저 뻗은 것 같았.

벌 받아 그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누워 낑낑거렸으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놀면 날마다 노나?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 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좋더라.

앵헤야~ 엥헤야~ 앵헤야~ 앵헤야~“

 

사진, / 조문호

 

 

'예술의 전당' 명배우 헌정공연으로 선정된 유진규의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가

지난 22일에 이어 오늘 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으나 전 좌석이 매진되었다.

 

 

 

이 공연은 한국 마임의 살아있는 역사 유진규 마임인생 50년을 결산하는 공연이다.

반세기 동안 독보적인 몸짓으로 울림을 준 유진규에게 바치는 경애인 동시에 한국 마임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다.

 

 

 

유진규씨는 공연에 앞서 한국마임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고 했다.

 

 

 

여지 것 국립극장이나 문예회관이 마임 공연을 거부해 왔는데, 이제야 대한민국 최고의 극장 ‘예술의 전당’에서 마임을 초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마임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며 공연사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공연은 한국적 마임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빈손’이었다.

신칼, 한지, 향, 빈손 등 4부작으로 이루어진 ‘빈손’은 인간의 본질과 영혼을 노래한 걸작이었다.

 

 

 

숨 막힐 듯 펼쳐 진 격정의 몸짓에 본능적으로 카메라에 손이 갔으나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공연 중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는가? 부득이 공연이 끝난 후 휴게실에서 방영된 영상을 촬영하여 소개한다.

 

 

 

지난 토요일 정영신, 서정란, 최명철씨와 함께 공연을 보기로 약속했다.

서정란씨는 일찍 도착해 점심식사까지 같이 했지만, 딸 보라와 함께 늦게 온 최명철씨는 휴게실에서 공연 영상을 보았다고 한다.

 

 

 

공연이 끝난 후 기국서씨와 박준석씨도 만났고, 서정란, 최명철씨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일요일은 오후 2시와 6시 두 차례에 걸쳐 공연이 있다.

이미 전 좌석이 예매되어 입장할 수는 없으나 오후1시와 4시30분 '예술의 전당' 야외에서 공연되는 찬조공연은 볼 수 있다.

 

 

 

유진규 마임 인생을 결산한 성공적인 공연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빈 손] 공연시간 60분

 

<신칼> 신칼과 몸이 하나되면서 드러나는 신칼도 아니고 몸도 아닌 혼령의 이미지.

<한지> 한지의 색감과 질감, 빛과 그림자와 어우러지는 몸,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

<향> 사물의 무속 음악속에 사람과 귀신을 대비시키면서 어둠속에 보여주는 혼불.

<빈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빈손일 때 비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

 

• 출연 : 유진규, 변유정, 빈손프로젝트풍물패 빈손굿 (윤매고동, 이필천, 오선주, 최미선)

 

 

친환경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안애경 예술감독을 만나러 오산 놀이공간 '나무처럼' 작업장을 찾았다.

 

 

 

오랫동안 핀란드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북유럽과 한국 문화를 접목해 온 그로서는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았는데, 몇 달 전 오산에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가보지 못했다.

 

 

 

마침 정선 집에 불난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13일 정오 무렵 정동지와 찾아가기로 약속한 것이다. 갑자기 서둔 것은 만들어 놓은 놀이공간도 궁금했지만, 정선에 집을 지으려면 환경친화적으로 작업해 온 안감독의 자문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안감독을 지켜본 바로는 예술이 별난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었다. 무슨 일이던 그 대상에 푹 빠져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그 대상에 대한 친화력이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을 숱하게 보여주었다. 어린이 공간을 만들 때는 어린이가 되어 동화되었고, 자연의 공간은 원초적 미로 되돌렸다.

 

 

 

오후2시 무렵 ‘오산 보육 타운’에 도착해 마당에 차를 주차하니, 안감독이 달려 나와 다른 곳에 주차하란다.  바닥에 주차 구역이 그려져 있어 괜찮은 줄 알았으나, 안애경씨가 주차를 못하도록 바꾼 것 같았다.

 

 

 

 

아예 바닥에 그려진 선은 지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워진다는 논리다. 인위적인 것이나 관습적인 것을 싫어하는 안 감독의 진면목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산보육타운’이란 간판과 빛바랜 건물외벽을 보며, 역시 안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공사를 하면 외부부터 치장하여 돋보이게 하는데, 그는 가식적인 면보다 실리적인 면에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정문을 들어가는 계단과 바닥에 모자이크된 오밀조밀한 바닥재들이 어린이들의 소꿉놀이터 처럼 정겹게 깔려 있었다.

 

 

 

본관에 들어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답답하게 막아 둔 천장을 뜯어내어 앙상한 골재와 배관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막힌 벽에 유리를 넣어 자연 풍경을 그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가리고 숨기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관습을 깨는 그만의 장점이다.

 

 

 

오로지 역랑을 집중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놀며 창의력을 일깨우는데 있었다.

 

 

 

여지 것 '서서울호수공원'에서 열린 ‘어린이 아트 캠프’나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늘 푸른 예술로 공원 워크숍' 등을 통해 생각이 깨어 있음을 잘 알지만,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거나 폐목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등 본보기가 될만한 좋은 작업을 많이 보여주었다.

 

 

 

오래 전에는 월드컵공원의 폐목으로 낙엽 함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하고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그가 작업하는 방식인데, 미술과 디자인은 우리일상에 뭔가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다.

 

 

 

 

일반적인 실내장식이라면 설계도면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안애경씨가 맡은 이상 대충 넘어가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매번 일 할 때마다 부딪히는 점이 공무원들의 틀에 박힌 관념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 공사 역시 현장소장으로 파견된 분과의 이견이 장애가 되어 현장 소장직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만들어야 하니 공사기일이 길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만 한 눈 팔면 일률적으로 마감되고, 기존 방식으로 처리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인부들을 관리하는 감독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근길의 정체를 피해 새벽부터 출근하였으니, 현장에서 살았던 거나 마찬가지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집에 있는 식기를 비롯한 일용품까지 현장에 옮겨 놓았더라.

 

 

 

꾸며진 어린이 놀이 공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아 욕심까지 생겼다. 손녀 하랑이가 이 어린이집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꼰대의 이기심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하나 놓인 소품들도 예쁘고 흥미롭지만, 창의적인 공간들이 너무 많아 앞으로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이 줄을 이을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직접 종이로 동물 형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그림자놀이도 재미있지만, 손 씻는 수도꼭지까지 청개구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감독은 공간을 만드는데 끝나지 않았다. 그 곳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당분간 눌러 앉았다고 한다.

 

 

 

 

안애경 감독은 일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몇 년 전에는 방바닥에 오래 앉아 허리를 다쳤다는 페북 소식을 접하고 핀란드 목공예가 헬레나와 미디어작가 유하, 소피아 등 세 사람을 데리고 쪽방을 찾아와 침대를 만들어 주고 책상까지 들여 준적도 있었다. 자재를 챙겨 와 공간에 짜 맞추어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필요하면 무슨 일이던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심성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야기 중에 정선 집 문제도 나왔는데, 직접 현장을 보지 않고 거론 할 사정은 아니었다. 불난 현장이 정리되고 작업이 시작되면 자문해 주겠지만, 가급적 현장에 있는 자연적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다. 불 탄 쇠토막까지 적절하게 활용하여 지난한 세월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을 했다.

 

 

 

다른 미팅 약속이 잡혀 손님들이 찾아와 먼저 일어났는데,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만들어 둔 복숭아 통조림을 챙겨주었다.

 

 

 

돌아오는 내내 집 지을 생각에 빠졌었는데, 하루에도 집을 몇 채나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내 평생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지어보는 집인데, 제대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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