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2

지난 18일 오후는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 전시 디피하는 날이었다.

 

사진 액자는 진즉 ‘나무아트’ 전시장에 올려놓은 터라 인사동 거리부터 돌아보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따라 거리공연에 나선 뮤지션이 세 명이나 되었다.

다양한 음악으로 거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유독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러시아 소녀를 경찰관이 제지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주변에 있는 가게 주인이 신고를 했단다.

 

"에라이~ 돈밖에 모르는 썩을 놈의 인간들..."

바이얼린 연주가 무슨 영업 방해가 되며,

비록 방해가 된다 해도 어떻게 자식 같은 외국 소녀에게 상처를 주는가?

 

연주하던 소녀가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걸 보고서야 ‘나무아트’에 올라가니,

이미 김진하관장이 액자를 배치하고 있었다.

전문가가 하는 일에 나설 수 없어 포장 해체하는 정도만 도왔다.

 

마침 거리미술가로 알려진 이태호 교수가 오셨다.

고 김수영시인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판화 두 점을 출품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주최하는 행사인지 궁금해 했다.

 

정영신씨가 기획자 소개도 할 겸, 그 일을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불렀는데,

김수영시인의 대형 시비도 만들어 둔 게 있다며, 전시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그런데, 김진하관장께서 토론토 Tai Kim씨가 보내왔다는 예쁜 엽서를 전해 주었다.

페친으로서 정선에 불난 소식을 전해듣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행운의 크로바까지 붙여 보내 와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김진하관장의 전시 디피 솜씨는 일사불란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배치했는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한 후 이태호 선생과 함께 ‘툇마루’로 식사하러 갔지만,

차 때문에 술 한잔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을 설치할 ‘유목민’ 골목에도 잠시 들렸다.

골목 테이블에는 이인섭, 유근오, 노현덕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고,

‘유목민’ 안 쪽에는 김수길씨도 있었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나 술 한 잔 나누지 못하니 무슨 재미랴.

전시 기간 내내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다녀야 할 텐데,

참아야 할 술 고문은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집과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포토 에세이집이

출판되어 아래와 같이 판매합니다

 

증정 엽서8매

전시와 함께 정영신 사진집과 조문호의 포토에세이집도 출판됐습니다. 거리두기로 외출을 삼가하시는 분이나 지방에 계신 분들을 위해 작가가 서명한 책을 보내드리며 두권 함께 구입하시는 분께는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엽서 8매를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과 구매를 부탁드립니다.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사진집 / 눈빛출판사 /가격 35,000원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포토에세이집 / 이숲출판사 / 가격 25,000원 

구입하실 분은 아래 구좌로 계좌이체 하시고, 문자로 주소를 남겨주시면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계좌이체 : (하나은행) 593-810222-39907 정영신

정영신 연락처 : 010-2955-8926

2021.9.18

어머니의 땅

정영신展 / JUNGYOUNGSHIN / 鄭暎信 / photography

 

2021_0923 ▶ 2021_1004

정영신_대지에서 일하는 어머니(영암)_198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땅마다 어머니가 다르다 -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을 위하여 ● "인간의 영혼이란 희생과 용기와 인내가 가능한 정신이다." (윌리엄 포크너) 정영신의 사진은 포크너의 이 아포리즘을 이렇게 번안한다. - 땅의 영혼이란 어머니의 희생과 용기와 인내가 낳은 정신이다. 이어 그의 사진은 내게 말한다. 땅마다 어머니가 다르다. 어머니마다 땅이 다르다. 땅마다 어머니 희생과 용기와 인내의 서사가 다르다. 어머니마다 땅의 노래가 다르다 그리하여 정영신은 땅마다/어머니마다 다른 사랑을 시대의 운명으로 보여준다.

정영신_대지에서 일하는 어머니(영암)_1987
정영신_대지에서 일하는 어머니(진안)_1988

1980년대 후반부터 시골 오일장에서 운명의 표정을 읽어왔던 작가는 이제 장터 풍경의 내적 본질인 '어머니의 땅'으로 카메라시선을 옮겨 놓았다. 어머니들의 희생과 용기와 인내가 우리땅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는 곳이 장터이던 시대가 있었다. 이 땅의 땅마다 다른 영혼을 어머니마다 다른 꽃으로 피우던 시골 오일장, 그 장터가 시대의 운명을 다하도록 30여년 줄기차게 사진 작업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는 시대 운명에게 선택받았다 하겠다. ● 오일장이 시대적 활기와 탄력을 그런대로 유지했던 1980년대, 우리 어머니들은 닷새마다 다가오는 장날이 있어 그 궁핍의 시대에도 살맛났다. 그가 온 나라 600여 곳의 오일장 운명의 표정을 포착하는 사이, 시골 오일장은 도시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몇해 전 그가 연 사진전 「장날」에 나는 시 한수 올렸었지. ●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눈은 나리는데/ 여기 얼마나 많은 도서관들이 장보따리 들고 줄지어 섰는가/ 도서관들의 눈빛이 도다리처럼 한쪽으로 쏠렸다/ 도서관들은 뭘 보고 있을까/ 뭘 기다리고 있을까/ 세상 구할 메시아? 다음 생애? 버스에 앉을 자리?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먼 섬으로 가는 통통배? 안방 아랫목? 두고 온 손주들? 떠나온 북쪽 고향?/ 눈이 나아리네♪ 깐소네 리듬타고/ 눈은 내리며 날리는데/ 춤추며 내리는데/ 희망버스는 아무래도 이 늙은 장터 버스정류장으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냥 눈은 내리는데/ 장터 하나 사라지면/ 수십 수백 도서관이 사라지고 마는데

정영신_어머니의 안뜰(강진)_1988

모든 사진은 모든 운명이 그러하듯 시대의 산물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아쉬워한 것은 하루가 다르게 퇴색하는 오일장 자체가 아니라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의 운명이다. 농업은 기업화되더라도 지속되겠지만, 농촌공동체는 이미 소멸했다. 작가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넌 농촌공동체의 본명이 '고향'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는 장이 있는 유년의 풍경을 고향으로 향한 원초적 그리움으로 선명하게 글로 묘사하고 있다. ● ...... 집에 있는 소를 들로 끌고 나온 어머니, 내가 어렸을 적에는 소꼴을 먹이기 위해 소를 끌고 들로 나왔다. 소가 풀을 뜯어 먹는 시간에 구름과 이야기하고, 뒷산에 있는 아버지 무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마을 앞 개울가 옆으로 가면 온갖 풀이 무성해 소 끈을 멀리 잡고, 소가 풀을 먹는 동안 땅위에 아버지 얼굴을 그리고, 한복을 곱게 입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해가 땅에 떨어졌다. 그때 소가 음메! 하며 아는 척하면 소를 끌고가 외양간에 넣었다 .......나락을 베고 난 논에 이삭 하나라도 떨어져 있는지 달이 환하게 뜨는 날은 온 식구가 논에 가서 벼 이삭을 주웠다. 난 검정고무신을 신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부르며 살포시 밟아가며 달빛에 비치는 논바닥을 훑으면 손 안에는 제법 나락이 쥐어져 있었다. 망태기에 가득 담겨진 이삭을 보며 온 식구의 웃음소리에 놀란 달빛은 우리동네 끝집 당골네 집을 건너 우리집 싸리문 앞에 데려다주고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 한폭의 수채화 같은 고향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에 작가는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의 실향민에게 고향을 되찾게 해줄 방도를 끊임없이 열망했을 것이다. 불가능을 향한 열망만큼 작가혼을 불태우는 것은 다시없기에. 이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장터사진을 스스로 재발견한다. 그간 발표한 사진은 장터풍물/풍경이 주류였는데, 이런 장터 사진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근원적 사진미학의 겉모습의 현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걸까. 장터를 찍으면서 부차적으로 찍었다고 생각했던 장꾼들이 장으로 나오기까지 이 땅과 한몸 되어 어울려 사는 일상의 풍경들이 근원적 사진미학의 눈을 작가의 내면 안쪽으로 열어젖힌 것이다. 그 안쪽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땅'이라는 오래된 미래가 눈을 새롭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땅'을 기록한 사진들은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본질의 문을 열어젖혔다.

정영신_어머니의 안뜰(진도)_1988

오일장은 우리 땅 고유의 고향사람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삶의 연극무대다. 그 연극을 영상화한 작가의 작품에서 남녀 출연자들은 세상살이 그대로 적절히 조화를 이뤄 맡은 역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고향 일상의 연극무대에 오른 출연자는 거의 여성 그러니까 어머니들이나 그의 사진에서 남자는 겉모습의 '현상'이었고, 여자는 내면에 감추어진 '본질'이었다. 이 '어머니의 땅' 사진작업 시기는 1987년에서 1990년까지다. 그때 이미 근력 있는 남정네들은 대처의 노동시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오일장에 등장하는 젊은 남자는 땅 파먹고 사는 그 땅의 농꾼들이 아니라 거의 직업적인 장꾼인 타지 사람이다. 작가가 장꾼들의 일상에 눈을 뜬 1980년 후반만해도 우리의 고향들은 젊었건 늙었건 어머니들이 지아비와 다 큰 자식들은 '돈 벌러' 대처로 떠나보내고 남은 어린 자식을 먹이던 '어머니의 땅'이었다. 그리운 김광석노래 그대로 작가의 나이 서른즈음인데, 거기서 자신의 성장기와 일체화 되었던 고향 전남 함평의 젊은 어머니를 자신의 자화상으로 재회하는 순간, 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간 평형세계의 마법에 전율하지 않았을까..... 그 타임머신 체험은 '어머니의 땅'을 이 땅의 모든 실향민들에게 되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어머니의 땅'을 제시하자는 작가적 열망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 또한 디지털시대의 실향민. 작가의 그 그리운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에 바로 빙의되고 만다. ●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여, 여기로 오라! '어머니의 땅'으로 오라! 당신들의 고향을 되찾아 드리리다. ● 이 사진들은 제아무리 AI가 주도하는 디지털세상이 온다 해도, 어머니들이 있는 한 인간은 인간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이 사진들이 소환하는 추억은 인간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으므로. ● 나는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 놓는 예술/기술이 사진이라는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정불변한다고 믿는 사진도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진은 보는 시선이 흐르는 시간을 따라 변하기에 변하는 시선을 따라 사진도 변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멀리 갈것 없이 당신의 옛 기념사진을 보라. 당신 나이 먹은 만큼 사진속의 당신은 세월을 거슬러 한해 한해 한 살씩 더 어려지고 있지 않던가. 사진미학의 진정한 가치는 불변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의 시선을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 '변화'시키는 그 흐르는 시간에 따라 사진도 변화한다는 나의 사진 상대성이론에서 찾아야 한다. ● 그의 카메라 시선은 꾸밈이 없다. 어머니의 땅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브레송이 강조하는 소위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는다. 그런 자연스러운 자세/태도가 피사체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 가장 자연스런 사진이 그의 카메라 시선에서 나오게 한다. 그 '무기교의 기교'가 제대로 발휘된 정영신의 사진을 먼저 본 뒤, 애송하는 김종삼 시인의 「묵화」을 다시 소환한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 「묵화」의 풍경은 버릇이 된 내 오랜 질문도 소환한다. ● 오늘 하루를 함께 지낸 소 잔등이 더 부었을까? 할머니가 된 어머니의 하루가 더 적막했을까? 또 묻는다. 발잔등 부은 소의 적막은 어머니가 위로해 주는데, 발잔등 부은 어머니의 적막은 누가 위로해주는가? 그때 나는 듣는다. 그 오랜 질문에 정영신 사진의 답을.

정영신_어머니의 안뜰(해남군 옥천면)_1988 ​

어머니의 땅! ● 그의 사진은 어머니와 땅과 사랑이 동의어라고 알려준다. 모든 목숨이 사랑으로 한몸된 어머니와 땅에서 나왔다고 증언한다. 어머니 사랑을 기억하듯 땅의 사랑을 기억하라 되새긴다. 그의 사진은 다른 게 아니다. 땅과 한몸된 어머니의 영혼을 감촉하게 만든다. 그 어머니 영혼의 육신인 땅을 맨발로 밟아보게 한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누구든 어머니의 자식이니, 이 사진들은 '어머니의 땅'에 그려진 우리들의 근원적인 자화상일 수 밖에. ● 1980년대 후반 해남 강진 영암 등지에서 찍었지만 1950년대 후반 경북 청도의 내 고향 마을을 보여주는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남들은 곤히 잠든 한밤중에 이름 없는 어느 혹성에 패인 행성 충돌구덩이를 세고 있는 어떤 천문학자의 무용한 열정이 떠오른다. 도대체 그는 그 충돌구덩이 숫자를 세서 뭘 하겠다는걸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천문학자가 있듯, 사라져가는 장터와 그 장터 어머니들의 귀가길을 따라가 그 어머니의 땅을 줄곧 찍어온 사진가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직 구원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믿음까지 안긴다. ● 암묵지暗黙知라는 말이 있다. 경험으로 체화되었다지만 겉으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한다. 이 땅 어머니들이 그 암묵지의 표상이라고 정영신의 사진은 알려준다. 결코 드러나지 않는 이 땅 어머니의 암묵지를 시간의 흐름에 덧씌워 보여주므로. 이 시점에서 정영신 사진은 꽃으로 피어난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꽃을 피우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 어디엔들 꽃이 피지 않으랴 어느 땅인들 자식을 꽃 피우지 않은 어머니가 있으랴 세상은 땅과 어머니와 자식 꽃이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돌아가며 꽃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정영신_어머니의 외출(구례)_1988

아니마Anima(칼융이 정립한 개념으로 자식 마음속에 남긴 어머니의 지대한 영향)으로서의 그의 사진이 내제 들려준 내밀한 고백이다. ● 어머니와 땅이 한 몸으로 어울려 아니마의 꽃을 피우던 그 아름다운 시간도 흘러갔다. 지금도 흘러간다.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흐른다 해도 시간에는 목적지가 없다. 시간은 목적지 없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흘러가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왜 흐르는 걸까. 정영신의 사진은 이유 없이 목적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사유다. 그가 파악한 '어머니의 땅'의 시간은 의미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반反 역사로서 자연 그 자체이므로. 소멸운명으로 오히려 아름다와지는 우연이 아니라 (이해나 인식을 초월한) 필연이므로. '어머니의 땅'의 시간은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사진의 기억으로 전환시킬 창조의 대상이 되므로. 그리하여 그는 유년시절 고향에서 체험한 '어머니의 땅'의 시간을 그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1980년대 후반에 이 남녘땅에서 다시 체험하며 그 시간을 누구나 되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갈망으로 길러낼 수 있었다. 사람이 자연과 하나 되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필연인 '어머니의 땅'의 시간! 거기가 언제 어디든 유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필연 또한 소멸운명에 아름다움을 더해간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 흘러가버린 시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불멸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 모든 사진가들이 품은 예술의 열망과 마찬가지로 사진가 정영신의 소명의식이 닻을 내린다. '어머니의 땅'도 모든 존재의 소멸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정영신의 사진이 있어 그 추억의 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이 흐른 만큼 오히려 더 가까이 가까이 '어머니의 땅'을 잊지 않는 가슴속으로 다가가게 되므로. ● 잘 알려진대로 이상향의 라틴어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은 이상향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차원의 언어인 때문이다. 돌아갈 수 있는 공간과는 달리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이상향이다. 정영신의 사진은 동심으로 뿌리내렸던 그 '어머니의 땅'의 시간이 사실은 유토피아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그 '어머니의 땅'의 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향의 절대에 가까워지며 꿈에라도 돌아가고 싶은 유토피아로 자라난다고 말해준다. 더불어 그의 사진은 놀랍게도 그 유토피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도리까지 알려준다. ●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전에 '어머니의 땅'을 기억하라고. 죽음까지 그 '어머니의 땅'에서 나왔다고. 거기가 어디든 '어머니의 땅' 유년의 기억을 놓지 않는한 당신만의 유토피아를 당신만은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그 유토피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기억장치/메모리 칩이 바로 이 '어머니의 땅'이라고. ■ 박인식

Vol.20210923b | 정영신展 / JUNGYOUNGSHIN / 鄭暎信 / photography

2021.9.15

추석을 며칠 앞둔 엊그제, 정동지가 용인 천주교 성당묘지에 계신 어머니 뵈러 가잔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시작될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전시 때문에 미리 다녀올 심사인 것 같았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고구마와 옥수수부터 장만했다.

정영신, 정주영 자매와 함께 떠난 용인 가는 길은 갈 때마다 소풍 가는 것처럼 즐겁다.

한적한 외곽으로 들어서니 농작물에 새가 달라들지 못하도록

망을 덮어 두었는데, 마치 농부들의 설치미술처럼 보였다.

용인 천주교 성당묘지는 찾아 온 성묘객이 없어 한적했다.

그 곳에 정영신씨의 어머니 고 김덕순씨와

언니 고 정정숙씨 유골함이 아래위로 나란히 모셔져 있다.

챙겨간 국화와 음식을 영전에 놓고 모두의 안녕을 빌었다.

이번에 열릴 정영신씨의 전시작품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절절해 관람자들의 호응을 받아 낼 것으로 생각되지만,

길가에 펼쳐질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전은 거부감을 일으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하잘것없는 전시지만, 그들의 아픔이 모든 이에게 공감되었으면 좋겠다.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의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빌고 빌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지난 주말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전날 밤 인사동 이야기원고도 마무리해 넘겼고,

노숙인, 길 위에 살다현수막 전에 사용할 사진도 골라

정영신씨께 넘겨주려 녹번동으로 찾아갔다.

 

주말 쫑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와인이나 한잔할 생각인데,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니, 이게 왠 난리냐?

그날이 생일이라며 여기저기서 꽃바구니가 날아오고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페북 창을 도배했다.

본인도 몰랐던 생일인지라 깜짝 놀랬다.

 

사실, 나는 태어난 자체가 부끄러워 생일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으나 정영신씨를 만나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제일 싫어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부담스러운 선물도 받아야 했다.

 

요즘은 페이스북까지 나팔 불어 동네방네 소문 다 내버린다.

그 수많은 축하 인사에 일일이 답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다.

조용히 살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소통하기 위해 페북에 가입한 자업자득인 것을 어쩌겠는가?

 

미끌미끌한 미역국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어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이태원의 김상현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사 온 빵과 식혜를 술안주로 한 잔하고 있는데,

이번엔 조해인 시인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생일 케잌까지 사 와서는 촌스럽게 촛불까지 켰다.

정영신씨는 이제부터 나이가 한 살이라며 초를 하나만 켜네

한 살짜리 어린애로 취급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아무 일도 안 해도 되고 젖도 빨려주겠네.

그나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도대체 몇 살인가?

며칠 전 김발렌티노가 같은 띠 동갑이라며

꿀꿀이 행님이라고 했으나 계산이 잘 안 된다.

 

낮술에 취해 뻗어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날 새버렸네.

우왕~ 생일이 가버렸잖아.

정영신씨 하고 오붓하게 쫑 파티 하려던 것도 물 건너갔고

기념으로 하려던 한 살짜리 퍼포먼스도 불발로 끝났네.

뒤늦게 한 말로 요즘은 육 개월 지나면 젖 안 물린다네.

 

, 한 살짜리 개구쟁이가 분명한데, 몸은 자꾸 늙어가니 이 일을 어떻하나?

이제 내 나이 철없는 한 살로 돌아왔으니,

행여 어리광을 부리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이숲’에서 발간한 조문호의 ‘노숙인, 길 위에 살다 죽다’[부제: 쪽방촌에서 보낸 5년의 기록]이 오는 9월 중순경 동시에 출판됩니다.

 

그 사진집 출판과 함께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전시는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조문호의 ‘노숙인, 길 위에 살다 죽다’는 인사동 벽치기 골목 담벼락과 ‘유목민’에서  9월23일부터 10월4일까지 열리오니 많은 관람과 성원을 바랍니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100일 앞둔 지난 20일 정오, 보신각에서 열 두번의 종이 울렸다.

 

김발렌티노가 준비한 이 행사는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100일 동안 김수영시인을 기리는 다양한 일을 벌인다고 한다.

 

인사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 하는 김발렌티노의 문화사랑은 남다르다.

‘인생은 아름다와라’ 대표라는 직함을 내걸고 지구별청소부로 나선 것이다.

 

얼마 전 생계에 어려움에 처한 그가 종로구청 환경미화원 공채에 응했다고 한다.

면접시험에서 “종로구를 반질거리는 자기 머리처럼 깨끗하게 하겠다”고 말했다기에 한바탕 웃은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의 열성이 인정받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데,

그가 하는 일은 청소에 국한되지 않았다. 청소 업무 외에도 의미 있는 일들을 계속 찾아 나선다.

 

3ㆍ1운동 100주년기념 100일 순례를 비롯하여 윤동주탄생 100주년 기념 100일 시음악제도 열었고,

올해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김대건 신부를 위해 그가 걸어간 스물다섯 짧은 생애를 묵상하며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발렌티노의 문화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남다른 시 사랑에 대한 글을 한 번 들어보라.

 

“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한다. 특히 윤동주 시인과 김수영 시인을 사랑한다.

윤동주를 읽으면 더러운 피가 맑아지고, 김수영을 읽으면 식은 피가 뜨거워진다.“

 

지난 20일은 김수영 시인(1921. 11.27~1968. 6.16)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100일 기도 첫 날이었다.

이 날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정오에 맞추어 보신각 타종 행사를 벌인 것이다.

 

시인 류미야, 사진 찍는 소설가 정영신, 문화기획자 김석준, 경제학자 백영현, 현대무용가 김남식, 배우 이윤정,

문화기획자 전은진, ‘인사아트플라자’ 대표 박복신, ‘르프랑’ 대표 강현숙, 김발렌티노 등 10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김수영시인 100주년을 알리는 홍보용 동영상은 김병천 감독이 찍었고, 스틸사진은 내가 찍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없어 조용히 치러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타종도 세 사람씩 세 차례에 나누어 열 두번을 쳐야 했다.

 

울려 퍼진 보신각 종소리는 분명 저승까지 날아가 김수영 시인께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다.

지난 8월1일 밤 10시경 청와대 앞을 지나갈 때, 김수영시인의 시가 빗속을 뚫고 노래로 완성되어 들려 왔다고 한다.

그 노래를 핸드폰으로 녹음하여 기타리스트 김광석씨에게 보내 악보로 옮겨 와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킨 것이다.

100일 동안 그 노래 가 담긴 엽서를 만나는 사람마다 전달하며 김수영 시인을 기리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전도사인 그를 도와주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숲’ 대표가 엽서 만장과 현수막 제작비를 부담해 주었고, 행사에 참가한 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인사동 ‘르프랑’ 강현숙대표 등

몸으로 마음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는 한 김발렌티노의 문화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지구별 청소부 김발렌티노의 문화활동을 응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지난 18일 '인사동 이야기' 사냥 길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인사동 민중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해 온 김진하관장 만나러 가는 길에발렌티노를 만났는데,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축하 대잔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휴관 중에도 불구하고 김진하관장과 화가 박 건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모처럼 반가운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중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 온 것이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일 정오무렵, 종각 타종 행사를 시작으로 100일 동안 축하대잔치를 연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는데,

기타리스트 김광석씨가 곡으로 옮겨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도 뒤늦게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며칠 사이 새로운 점포가 여럿 들어섰다.

'나무화랑' 건물 일층에 있던 ‘보물창고’가 사라지고 무엇을 파는지는 알수 없으나

‘블랙다이아’라는 간판을 단 새로운 매장이 마무리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보갤러리'가 있던 건물이 재건축되어 건물 전체가 ‘더스타갤러리’란 간판을 달고

개관전으로 서달원씨의 ‘面’이 열리고 있었다.

 

버스킹에 나선 젊은이들의 연주 솜씨들도 날이 갈수록 세련되어 거리가 한층 젊어졌다.

 

두 분 시간 뺏은게 너무 미안해 모처럼 술 한 잔 대접하기 위해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된장비빔밥에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김진하씨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옛날 인사동 다방에서 이루어졌던 나까마들의 그림 거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귀가 번쩍 뜨이는 인사동 사료라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불화가 장춘씨가 나타났다.

네명 인원 초과로 떨어져 앉아 자리 파하기만 기다리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세 사람이 막걸리 두 주전자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달짝한 툇마루 막걸리는 술술 넘어가는 대신, 뒤늦게 취기가 오르는 위용을 알아 더 마실 수도 없었다.

 

정영신사진

반가운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마신 술자리라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 두 화가 사이에 늙은 개 한 마리 끼인 꼴이었다.

 

술이 취해 준비해야 할 골목전시 현장 확인 하느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술만 취하면 개로 돌변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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