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7

사진 찍는 일보다 사진을 떠벌리는 일이 더 힘들다.

두 번 다시 전시는 안 하겠다고 맹세를 했건만,

어렵사리 책 만들어 준 출판사를 어찌 나 몰라라 하겠는가?

전시를 해야 책이라도 한 권 팔 것 아니겠는가?

 

며칠동안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이 열리는 인사동 ‘나무아트’와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 전을 하는 ‘유목민’ 담벼락을 오가느라 곤죽이 되었다.

허리 협착증이 도져 4층까지 오르내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직 전시가 열흘이나 남았는데 벌써 빌빌거려 걱정이 태산 같다.

 

술 마시기 딱 좋은 술집 앞에 전을 펼쳐 놓았으니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못 본 척하겠는가?

전시가 시작된 첫날부터 고주망태가 되었으니 그다음 날은 보나 마나다.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지만 어쩌랴!

 

골목 전시장엔 퍼져 앉기만 하면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난, 알콜 중독자는 아니라고 큰소리치지만

남이 마시는 술을 못 본채하지 못하니 장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당장은 좋아도 그다음 날은 더 죽어나지만 어짜겠는가?

 

지난 24일도 서둘러 나갔으나 손님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 하신 신신자씨는 ‘나무 아트’에서 기다리고,

이강산씨는 ‘유목민’ 골목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다들 멀리서 오신 분들인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 날은 이강산씨를 비롯하여 신신자, 권 홍, 김이하,

장우원, 이영숙, 박옥수, 한공주, 안현수, 정성진, 오진향,

음현정, 이현정, 정재원, 임춘희씨가 찾아 주셨다.

양쪽을 오가느라 길이 엇갈려 이민씨와 김창주씨는 보지도 못했다.

 

다들 마스크를 써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페이스북 친구들은 내가 누구라고 밝히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어떤 분은 적어 놓은 방명록을 보고 뒤늦게 결례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둘째 날은 첫 날 마신 후유증으로 아예 골목 전시장엔 앉지를 않았다.

김이하씨 일행은 일찍부터 ‘유목민’에 자리 잡은 걸 알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앉기만 하면 술잔에 손이 갈 것이고, 한 잔만 마셔도 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잘 참아냈으나, 다음 날은 온종일 마셔야 했다.

토요일은 ‘노숙인, 길에서 살다’ 사인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이숲’출판사 김문영대표와 이나무씨가 책을 가져오셨다.

 

그날은 양산에서 올라 온 공윤희씨를 비롯하여 박찬원, 강경구, 김남진, 김영호,

양재문, 노광래, 김명성, 이 성, 오현경, 이한복, 나매례, 이재민, 유순영, 온새미,

정세학, 김상배, 이오연, 홍현구, 박상문, 홍유경씨 등 많은 분이 찾아 주셨고,

부산에서 상경한 정남준씨를 비롯하여 손은영, 최인기, 김수길, 이봉희씨는

유목민 골목에서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전강호씨와 시작한 술자리는 사인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이어졌으니

어찌 취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찝쩍거려 실수라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저녁 늦게는 김상현씨 초대 파티가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일곱 시 무렵 정영신, 김명성씨와 함께 이태원 ‘뮤아트’로 찾아갔다.

재즈가 차분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힌 ‘뮤아트’에는 김상현, 임성익, 하양수씨가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어회와 전어회를 준비해 두었더라.

너무 과분한 접대에 미안했으나 어쩌겠는가?

 

취기에 고마운 마음도 감추고 축하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초빙한 연주팀은 처음 본 젊은이었다.

보컬에 유혜린, 드럼에 김소희, 콘트라베이스에 김민욱, 피아노에 박종현씨로,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잘하더라.

 

잘 모르는 곡이지만, 유혜린씨의 음색에 깜짝 놀란 것이다.

앳된 소녀의 목에서 어쩌면 저렇게 농익은 소리가 나는지...

마치 수십 년 동안 알콜과 담배에 절은 베테랑 재즈 가수의 목소리 같았다.

아무튼, 축하의 자리를 만들어 준 김상현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일의 전쟁 준비를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천지신명님이시여~

제발 전시가 끝나는 날까지라도 목숨을 보존하여 주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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