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공간 ‘마인’은 말 그대로 문화를 나누는 곳이다.

 아산시 온천동 상가에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곳에서 기획, 추진하는 일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뭉친 젊은이들의 생각도 올곧지만 의욕도 대단했다.

머지않아 지역문화를 꽃피우며

지역과 지역을 잇는 문화 메신저로서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왜 문화 예술이 서울에 집중되어야 하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문화 예술은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단다.

팀장인 김선우씨만 50대지, 나머지 세 사람은 20대였다.

정영신씨 말에 의하면 김선우씨 주 특기가 들이대는 것이란다.

아직까지 수익이 없어 다들 무임금으로 일하는 게 안타까웠는데,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절실했다.

 

난, 공유공간 ‘마인’ 팀과 만나기는커녕 전화도 한 적 없었다.

정영신씨와 협의한 일이라 내용도 모른채, 시키는 대로만 했다.

꼬장꼬장한 영감쟁이라 쓰리쿠션을 친 모양인데,

밥이라도 한 술 얻어먹으려면 정동지 말에 어떻게 토 달수 있겠나?

 

어느 누가 자기 전시한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아마 직접 제안 받았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전시할 형편도 되지 않지만, 문제는 어느 한 가지에 집중된 내용이 아니라,

마치 유작전 같은 백화점식 전시라는 것이다.

내 사진은 잘 못된 것을 개선하기 위해 알리는데 목적을 둔 사진들이라

이 것 저 것 떠벌리는 전시는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기획팀들이 어디서 찾아 냈는지, 보낸 이미지가 대략 30여장 되었다

 이미지 목록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원고도 제법 섞여 있었다.

스캔 받지 않은 것도 더러 있었는데, 필름은 손 댈 여력이 없었다.

다시 보내 온 이미지마저 수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몇 명이 달라붙어 내 자료를 샅샅이 뒤진 것 같았다.

 사진집은 물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 까지 뒤져, 모든 것을 알았다.

여러 명이 찾아낸 이미지를 펼쳐놓고 협의하여 선택한 사진이라 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선택하였으니, 어쩌면 더 객관적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사진을 모두 찾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일을 추진하는 그런 열성에 어찌 감복하지 않겠는가?

 

나야 시키는 대로 이미지를 찾아주는데 그쳤지만,

정동지가 프린트하면 내가 잘라야 하고,

액자 맡기러 가면 따라가야 하니 같이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비용 줄이려고 삼각지 액자집에 맡겼다.

사업 전모는 뒤늦게 알았지만, 협력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사진 사이즈가 크지 않아 아담한 전시가 되겠지만,

타지역으로 이어가며 계속 다른 전시로 확대시키는 릴레이 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도 추진하고 있단다.

이번에는 지자체에서 작품제작비 정도 지원했다지만,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업이 틀림없었다.

 

타 지역도 마찬가지다.

큰 미술관이 아닌, 사람들이 쉽게 드나드는 곳에 공간을 만들어

작은 예산으로 지역민과 예술이 친숙해져,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드디어 공유공간 ‘마인’팀과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지난 27일, 맡겨 둔 액자 찾아 가는 길에 경의선 책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김선우 팀장 따라 온 김 온 군과 양햇살 양도 믿음직했다.

일찍 장가갔으면 딸과 손자 뻘 되는 어여쁜 청춘이었다.

다들 싱글 벙글 웃어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지껄여 실수는 안 했는지 모르겠다.

기념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었다.

다섯 명이라 두 팀으로 나누어, 땀을 흘려가며 육계장을 먹었다.

 

오랜만에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눈빛출판사’ ‘예술산책’에도 들렸다.

'마인' 전시공간에 작가의 책은 물론 좋은 사진집도 함께 전시, 판매한단다.

사진집 목록에 따라 책 구입을 한다지만, 책 구경 하러 간 것이다.

 

'예술산책'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제법 많았다.

전시장 입구에는 새로 나온 사진집도 진열되어 있었다.

김보섭씨의 ‘자유공원’사진집이 눈에 띄었다.

‘그 곳에서 정영신의 ‘장에가자’ 전시가 진행 중이라, 장터 책도 골고루 구입하더라.

 

이제 ‘공유공간 마인’이 하는 사압에 불 지필 일만 남았다.

“자! 돌리고 돌리자, 코로나 이놈을 문화예술로 녹여버리자“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어제는 허리가 아파 녹번동에 있는 ‘최원호병원’에 갔다.

허리를 쥐고 꼬부랑 할배 포즈로 지하철을 탔는데, 아는 사람 만날까 걱정되더라.

어렵사리 역촌역에 내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허리 협착증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나니,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졌다.

강력한 진통제 덕인 것 같은데, 약발 하나는 죽였다.

 

녹번동까지 와서 정 동지 사는 집에 어찌 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금요일까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주말에 들릴 예정이었으나,

온 김에 동지도 만나고, 차 쓸 일이 있어 차를 가져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골목 전봇대 옆에 세워둔 차에 새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네.

뭘 잘 못 먹었는지 물똥을 사방에 싸 놓았는데, 말라붙어 닦아 내기도 힘들었다.

 

어렵사리 청소를 해두고 집에 들어가니, 정동지가 빙그레 웃네.

온 다는 기별도 없이 불쑥 나타났으니, 웬일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허리 아픈 것을 자랑처럼 널어놓으며 이야기보따리 풀다 보니 가기가 싫어졌다.

 

아침 일찍 떠날 생각으로 눌러앉았는데,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반가워 강아지처럼 달려나가 사진을 찍었으나, 한편으론 걱정이었다.

노숙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눈이 아니던가?

 

아침에 보니 눈이 제법 내렸는데, 어렵사리 닦은 차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눈 치울 일도 여간 아니지만, 날씨가 장난 아니었다.

미끄러운 길에 자동차사고라도 나면 큰일 아닌가?

무슨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당장 하지 않으면 난리 쳐들어오는 일도 아닌데, 하루 더 퍼져버렸다.

눈과 추위 덕분에 따뜻한 방에서 이틀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보냈다.

티브이에는 폭설로 도로에 갇혀 밤을 지세기도 했다는 뉴스로 시끄러운데,

살다 살다 날씨 덕에 편히 쉬게 되었구나.

 

이 모두 정동지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 아닐런지...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글 / 조문호

 

2012, 화령장에서

 

장 따라 다니며 만났던 시골 부부들의 정겨운 사진에서

새삼 부부 금실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금실이란 것이 저울로 달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 쌓여 곰 익은 것이 금실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장에 오는 부부들이 승용차나 트럭을 타고 오기도 하지만,

얼마 전 만해도 경운기가 대부분이고, 오트바이나 삼륜차 등 종류도 가지가지였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소가 끄는 달구지가 더 많았지요.

장에 같이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 해가며 친구도 되고 애인도 되며 정을 쌓아갑니다.

나 역시 전국 장터 찾아다니며 쌓은 금실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3 금산장

 

'금슬(琴瑟)'은 거문고 금자와 비파 슬 자로 거문고와 비파지만, 부부간의 사랑을 말할 때도 사용됩니다.

거문고와 비파처럼 잘 어울린다는 말이겠지요, 아름답지만 덤덤한 화음처럼...

그러나 금슬보다 금실이란 말을 많이 써, 사전에도 부부간의 사랑을 '금실'이라 해놓았습니다.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말이 되기도 하지요.

 

나도 글 쓸 때 문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글이란 내가 편하게 말 할 수 있고 상대가 쉽게 알아채면 그만이니까요.

법이나 문법이나 일률적으로 규정지어놓은 것을 싫어하는 건, 규정지울 수 없는 게 너무 많거든요.

누가 한말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과거는 고체이고, 현재는 액체이고, 미래는 기체다”란 말을 읽은 적 있습니다.

말이나 법이나 모든 것들이 굳어버린 과거를 붙들고 고민하기보다,

현실에 맞는 것들이 바람직하다는 말이겠지요.

 

왜 갑자기 부부금실 이야기가 길어졌느냐 하면 스스로의 금실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금실보다 계산에 의해 사는 내외도 많으니,

금실이란 말도 금으로 만든 실처럼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1995 고창장

 

헌법도 얼마나 잘 못 된 게 많습니까?

난, 아내와 이혼하고 지금은 동지로서 만납니다.

부부 언약보다. 동지로서의 맹서를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말장난에 불과하겠지만, 법이 만들어 낸 모순입니다.

 

돈 안 되는 다큐사진가로 몇 십 년 살다보니 살기 힘들었거든요.

벌이가 없으니사진이나 제대로 찍을 수 있었겠습니까?

기초생활수급자만 되면 사는 게 문제없을 텐데, 아내가 젊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도 다큐 사진하는 거지인데, 이런 좆 같은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난, 대마초도 마찬가지지만 잘 못된 법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동지서약서 쓰고, 사진하는 동지로 만납니다.

이제 이혼한지 5년차로군요.

이혼하여 쪽방 촌에 들어오고부터 사는 게 훨씬 나아졌습니다.

동지 일을 자기 일처럼 한다는 동지서약서 보면 눈물 날 정도로 웃깁니다.

 

2014년 밀양장

 

인생은 한 편의 장편 드라마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장터 갈 땐 내가 기사가 되어주고,

쪽방 컴퓨터 고장 나면 동지가 기사 되는 그런 식으로 만나는데,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 시국인데, 누굴 만나겠습니까?

코로나 전에는 주말에만 함께 지냈으나, 지금은 일주일에 닷새 정도 함께 지냅니다.

비좁은 정영신씨 집에 같이 있는 동안은 하루 스무 네 시간을 반경 10미터 내외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니, 밀착 방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동지의 금실도 부부 금실 못지않다는 것을 감히 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4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동지를 만나 사진가 이정환씨 카메라에 잡혔네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랍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내일키움일자리사업’은

살길이 막막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다.

그것도 많은 예술가들을 거느린 예술단체에서 나선 것이 아니라

설립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해 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스마트협동조합’개소식에서

 

'스마트'(SMART)는 'Social Mutual ARTs'의 약자로,

예술인들을 위한 상호부조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지난 2월에 설립되어 5월에 ‘은평사회적경제허브센터’ 3층 사무실에 문을 열었다.

 

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작업과 연관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며 창작 여건을 개선하는데 있다.

공연이나 전시 기획, 조합원 교육, 예술인 네트워킹,

장비 및 공간 공유 등 조합원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개소식 만찬장

 

예술가들의 안정적인 활동 지원을 통해

공통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 졌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낸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서인형이사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술가 단체로 꼽히는 ‘예총’이나 ‘민예총’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여지 것 회원들 생계나 개인적 행정에 도움 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하기야! 제대로 일 할 사람은 안 보이고,

감투나 명예에 눈독 들이는 사기꾼 비슷한 예술가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아니던가?

 

작가들의 사행심이나 조장하는 공모전으로 장사나 했지,

회원들의 생계에 도움 줄 일을 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적 잖은 회비 갖다 바치며, 무리에 끼이려 안달하는 분들이 가련할 뿐이다.

 

‘스마트협동조합’ 회의장면

 

‘스마트협동조합’은 설립과 동시에 조합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지만 ‘예술가의 식탁’을 마련하여

매주 수요일 조합원들이 오찬을 함께하는 등 공동체 친목도 다졌다.

 

미술평론가를 앞세운 ‘도슨트와 미술관 산책’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조합원들에게 700w상당의 음향기기를 대여하는 사업도 벌였다.

예술가들의 프로필사진을 촬영할 스튜디오 설치와 사진출력 프린트기를 마련하는 등

조합원들이 염가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설비를 마련한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개소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어려운 시국을 맞아

조합에서 예술가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영등포 지역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사하는 일과

금속 소공인들을 만나 설문조사 하는 일을 따내 3개월 간 예술가 24명을

근무시간에 따라 월 90만원에서 180만원을 받는 일거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내일키움일자리사업 신청에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그리고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내일키움일자리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예술가들이 수도권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양로원 보육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이나 전시를(두 달간 2회 이상)해 주고 총 360만원을 받는 사업인데,

어려운 예술가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사업 일정이 너무 촉박하게 잡혔다..

사업선정 통보 받은 지 4일 만에 접수를 받았다는데,

300명 모집에 무려 700여명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북새통을 이룬 것이다.

심의 기준에서 제외된 분을 위해 추가 모집을 협의해

다시 200명을 고용했다니,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내일키움일자리사업 신청에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그 많은 인원의 서류접수와 면접을 불과 몇 일만에 해 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서인형 이사장과 황경아 국장, 박건주씨 등 세 명이 밤을 새워가며 중노동을 했는데,

끝난 후 함께 일했던 박건주씨가 노동청에 고발한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 그 과정이야 말하나 마나다.

 

사람이 죽고 사는 생계문제가 걸렸는데, 어찌 원칙만 따질 수 있겠는가?

그 많은 예술가들의 활동 상항을 체크해 가며

마무리하는 것도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서인형이사장이 '내일키움일자리사업'에 신청한 예술가 면접을 보고있다.

 

조합원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재정은 빈 깡통이나 다름없다.

이사장이 앵벌이처럼 외부에서 벌어 두 직원 급여를 충당해가며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 온 것이다.

 

그런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지난 달 ‘문체부’의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어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이 제 자리에 안착된 것은 이사장과 사무국장의 부단한 노력에 의한 성과지만,

코로나 위기가 받침이 되었으니, 위기가 기회란 말이 딱 맞다.

 

지난 30일, ‘스마트협동조합’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가 있었다.

조합원에 불과한 나야 갈 필요가 없으나 정영신 이사가 가신다는데,

기사가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약속된 ‘궁중족발’까지 태워만 주기로 했으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 칠 수도 없지만,

서인형, 황경아, 정영신씨 뿐이라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한

다섯 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있으니, 최석태씨와 박건주씨가 나타난 것이다.

인원이 초과되었으면 얼른 나와야 하지만,

모처럼 최석태씨를 만났는데, 어찌 그냥 올 수 있겠는가?

테이블 두 곳에 나누어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놈의 코로나가 여러 가지로 입장 난처하게 만드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스마트협동조합 송년회 덕에

불청객도 기분 좋게 한 잔 걸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런데, 술값을 돈도 못 버는 최석태 감사가 계산했다.

거지 조합에 거지들 밖에 없지만, 통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협회 밥값을 감사가 내는 것 본 사람 있으면 어디 나와 봐라.

 

내년에는 더욱 성장하여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본산이 되길 기대한다.

더 많은 참여와 예술가들의 연대도 부탁드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한 때는 장모님이셨던 정영신씨 어머니 김덕순씨는

100수를 일주일 남긴 지난 2018년 12월 25일에 임종하셨다.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이 탄생하는 날 제사를 지내는 반역처럼 보이지만,

가족들이 잊지 말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난, 솔직히 제사보다 젯밥을 더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제삿밥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제삿밥 먹기위해 기다리다 잠이 들어버린 적이 있었다.

이튿날 깨우지 않았다며, 울며 생 때를 쓴 적도 있었다.

 

일찍부터 정영신씨가 장보러 가는데 따라 나섰다.

봉지 봉지 싸들고 왔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십 만원은 날아간 것 같았다.

좁은 집에서 다듬고 부치고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나야 시키는 대로만 하지만, 시다바리가 더 고달픈 것은 사실이다.

 

온 종일 난리법석을 친 결과 드디어 제사상이 차려졌다.

요즘은 가족까지도 거리두기를 하는 시대라

둘이서 오붓하게 제사를 지내려는데. 동생 주영씨가 오기로 했단다.

뒤늦게 오면서 제사상에 놓으라고 큰 문어 한 마리를 사왔는데,

문어 삶느라 시간이 더 지체되어버렸다.

 

내 이름을 닮은 문어라 한 번도 먹어 본적은 없으나 제사상이 그득했다.

어머니께서 살아 생 전 좋아하시던 고구마도 제사상에 올랐고.

바닷가 추억이 담긴 홍어와 문어까지 올랐으니, 흐뭇하셨을 것 같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즐거웠던 추억보다 안쓰럽고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았다.

십 오년 넘도록 병석에 누워 계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평소 말씀이 없어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해 하셨는데,

썰렁한 내 농담에 웃음 머금고 고개돌리시던 모습도 선명하다.

 

자리가 비좁아 운신하기 불편했지만 다들 엎드려 제사를 지냈다.

다섯 자식 중에 유독 셋째 딸 영신이를 좋아하셨는데,

이제 딸 걱정이랑 마시고 편히 계시라며 빌었다.

약식의 제사 였지만, 음복시간은 길어졌다.

 

홀짝 홀짝 마신 술에 취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제삿밥에 밥을 너무 많이 넣은데다 술 안주로 사온 소고기까지 넣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제삿밥으로 울고, 늙어서는 제삿밥 때문에 화가 났다.

늙어지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딱 맞다.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아닌 씁쓸한 제삿날이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한정식 선생님게서 정영신씨 전시 중에 집에 한 번 들리라는 전화를 몇 차례나 하셨으나.

틈이 나지 않아 전시가 끝난 지난주에야 들릴 수 있었다.

찾아 뵌 적이 한 달이 더 되었는데, 같이 식사하기 위해 부른 줄 알았다.

 

식사도 식사지만, 정영신 전시에 가보지 못해 축의금 전해주려 부른 것 같았다.

뻔한 형편에 전시하는 것이 마음 쓰였는지, 정영신씨께 봉투를 건네 주신 것이다.

항상 걱정만 끼치는 송구함에 차마 고개 들 수 없었다.

 

그 날은 선생께서 비빔밥을 드시는 요일이지만,

복국을 사주겠다며 서초동 초원 복집으로 데려갔다.

꾀죄죄한 행색에, 전 날 술 퍼마신 것을 눈치라도 챘을까?

선생의 세심한 배려에 코끝이 찡했다, 살아 생 전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댁으로 돌아오니, 사모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들릴 때마다 벽에 걸리고 탁자에 진열된 가족사진에 먼저 눈길이 가는데,

누군들 가족사진보다 더 애착 가는 사진이 있겠는가?

 

가족사진 틈에 징그러운 내 꼬락서니도 보였다.

오래 전 선생 생신 때 찍은 단체사진에 끼어 있었는데,

선생님 모습은 젊어 보이는데, 나는 왜 그때부터 늙어 보일까?

 

커피 한 잔 마시는 중에 선생께서 보관하고 계신 사진 파일을 보여주었다.

불면증에 시달리기 전 인사동 작업실을 오갈 때 기록한 사진이라는데,

내년 봄 쯤, 사진집으로 묶을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번에도 그 사진을 본 적은 있으나,

사진이 20여장 밖에 되지 않아 사진집 만든다는 말씀은 없었는데,

가을에서 겨울로란 사진집 제목까지 말씀하셨다.

하기야! 사진 내용이 중요하지 량이 무슨 소용이랴.

 

그 사진들은 이전에 발표된 '고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일상적인 도시풍경이 왜 그리 쓸쓸하고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다.

마치 선생께서 투병으로 사진을 더 이상 못 찍게 될 걸 예견이라도 하신 것 같았다.

 

그 사진들은 선생의 허무하고 쓸쓸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많은 사진인들에게 귀감이 될 좋은 사진집이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디 선생께서 마음의 병을 다스려 다시 작업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사진, / 조문호

 

 

지난 주에는 정영신의 전시 핑계로 술 마실 일이 많았다.

 

27일 저녁에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팀들이 정영신씨 녹번동 집으로 들이 닥쳤다.

해적도 아니면서 참치 한 덩어리를 들고 왔더라.

 

이사장 서인형씨와 최석태, 이미경씨가 왔는데,

집구석이 얼마나 넓은지, 다섯 사람이 앉으니 꽉 찼다.

사실, 춤 출 일 없으면 술 마시는 데는 좁을수록 술맛난다.

코로나놈 알면 큰 일 나겠지만...

 

스마트협동조합으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일자리가 급하다'

 

서인형씨는 내일 키움 일자리 채용을 비롯하여 일이 많아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

'내일 키움 일자리'는 예술인들에게 2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주는 사업인데,

300명 채용에 7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사장과 황경하씨가 하루 17시간 가까이 일한, 주 100시간 넘는 일을 해냈다.

 

신청인원이  너무 많아 10여명씩 동시에 면접 심의를 하는 장면

 

그 짧은 기간에 사람 모아 분류하여 심사하는 등 완전 한 판 전쟁을 치룬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을 해 냈으나, 심의 기준에서 제외된 분들이 안타까워 추가 모집을 협의 중이란다.

예술가들의 삶이 힘들다는 방증인데, 고생은 하지만 조합원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안주로 가져 온 냉동 참치가 녹아 식칼로는 먹히지 않았다.

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톱으로 자르는 것 같았다.

주방장 솜씨 탓이 아니고 연장 탓이지만, 어쨌든 회는 맛있었다.

한 점만 넣어도 입안이 그득했으니까... 언제 이렇게 먹어 본 적이 있었더냐.

우물우물 맛있게 먹은 생각을 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양조장 술까지 잘 익어 그 날 밤은 애들 말로 해피한 밤이었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엔 경의선 책거리 ‘예술산책’에서 김수길씨를 만났다.

오랜만에 김보섭씨도 만나, 김수길씨는 응암동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진데다 공사 차에 막혀 골목에서 한 참 갇혀 늦어버렸다.

찿아 간 ‘푸른 언덕’에는 김수길씨와 조해인씨, 둘이서 마시고 있었다.

 

기분 좋게 술을 얻어 마신 것만도 고마운데, 조해인씨가 술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죠니 워카 블루’인데, 독주를 싫어해 선물 받은지가 20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고맙게 받아 녹번동 주막에 맡겨 두었다.

그런데, 그 날은 바쁜 걸음 치느라 권총을 차에 두고 내려 사진 한 장 못 찍었네.

 

일요일 오후에는 김상현씨와 김명성씨가 녹번동으로 찿아왔다.

양조장에 술이야 있지만, 안주 준비를 못해 단감으로 때웠는데,

나야 술만 좋으면 손가락을 빨아도 괜찮지만, 김명성씨가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부경찰서 뒤에 좋은 횟집이 있다며 끌고 간 것이다.

길이 헷갈려 간신히 찾았는데, 횟집 이름이 ‘마포나루’였다.

네 사람이 여러 가지 회를 양껏 먹었으나, 십 만원 남짓이었다.

가격이 싼데다 맛있고 가까우니 죽기 전에 한번은 더 올 수 있겠다 싶었다.

‘마포나루’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뿔뿔이 헤어졌다.

 

파장 잔치는 언제 쯤이나 끝날까?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정영신씨의 ‘장에 가자’ 전시는 끝났으나, 책방전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의선 책거리의 ‘예술산책’에 이어 은평구 불광동 ‘대한생명빌딩’ 지하의

‘불광문고’에서도 열리고 있다, 전시와 함께 정영신의 장터 도서 코너도 마련되었다.

 

이 전시는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주선으로 연결되었는데, 덕분에 좋은 서점을 알게 되었다.

'불광문고'는 1996년 문을 열었으니, 올 해로 24년차인 오래된 서점이다.

대형마트에 밀려나는 재래시장처럼, 동네 서점도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변두리 대형서점이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요즘은 서점을 찾지 않고 대개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한다. 

인터넷 서점은 할인에다 무료 배송까지 해주니 누가 서점에 가겠는가? 

그러나 이곳은 서점을 넘어 동네 사랑방 구실도 하고 있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불광문고'는 끝까지 지켜 낼 작정이란다.

 

다행히 오랫동안 문고를 애용한 단골손님 덕에 그나마 적자는 면할 수 있다는데,

불광문고를 운영하는 분의 책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도 대단했다.

아무리 세상이 편리하게 바뀐다 해도 서점을 둘러보며 좋은 책을 만나는 즐거움에 비길 수 있겠는가?

 

 

행여 부근을 지나치는 걸음이 있으면 한 번 들리시어 좋은 책들 구경하고 가세요.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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