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기찬 선생의 유작, ‘골목안 풍경’에서

 

지난 달 ‘골목 안 풍경’을 기록한 다큐사진가 김기찬 선생의 유품 일체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다시 한 번 선생의 따뜻한 인간애를 떠올리며 반가워했다.

 

사진과 필름, 카메라 등 십만 여점이 박물관에 소장된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한 편으로 가난한 후배 사진가들의 한 가닥 희망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저런 소중한 작업도 아무런 보상 없이 기증 형식으로 소장하는데,

어찌 생계를 팽개쳐가며 하던 작업에 몰두하고 싶겠는가?

 

역사박물관의 사진 수집은 가난한 사진가들이 국가에서 보상 받을 마지막 바늘구멍 같은 곳인데,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나 그 좁은 구멍조차 막힐까 걱정하는 것이다.

 

고 김기찬 선생의 유작, ‘골목안 풍경’에서

 

돈과 거리가 먼 사진이라지만, 문둥이 코 구멍에 마늘 빼 먹는 치사한 언론사도 많다.

개인적 유명세를 노려 언론사에 원고료 없이 주는 버릇이 고착화되어

이제는 대형 언론사마저 공짜로 얻어 쓰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 공영방송인 케이비에스에서 쪽방 촌을 취재하며

내가 찍어둔 빈민들의 스틸사진을 쓰고 싶다고 부탁해 왔다.

어떤 사진들이 필요한지 몰라 적합한 사진 100여장을 골라 보내며

사용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라 했더니 그 이후로 감감소식이었다.

돈이 없다든지, 사진이 좆같거나 편집방향이 바뀌었다 던지, 연락을 해 줘야 알 것 아닌가?

얼마나 다큐멘터리사진가를 업신여겼으면 젊은 피디 까지 그러겠는가?

그런 형편이니 군소 언론사야 말해 뭐 하겠는가?

 

열흘 전 한정식선생과의 오찬약속으로 정영신씨와 서초동 자택을 방문했다.

새 해 문안 겸 들렸는데, 선생께서 건강 상태가 별로 호전되지 않아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계셨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선생의 마지막 사진집이 될 ‘가을에서 겨울로’의 원고를 출판사 넘겨

꽃피는 봄날이 오면 사진집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날 신년 오찬은 서초동 ‘초원 복집’에서 있었다.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김기찬선생의 유품기증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래 전 강단에서 하셨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서다.

절대 다른 사진가를 위해 원고료 없이 그냥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셨다.

 

처음 듣는 기증소식이라 관심을 가지면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구입이던 기증이던 가타부타할 처지가 못 되는 것 같았다.

유고작가는 그렇다 치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진가마저

눈치나 살피며 그냥 주지 못해 안달하는 자가 있다는 현실이 더 안타까운 것이다.

 

왜 나라에서 역사적인 사진자료를 적극적으로 소장하지 않을까?

이제 국민들에게 구걸할 만큼 가난한 나라는 아니잖은가?

마치 작가가 세상을 떠나 기증하기만 바라는 것 같다.

유 무명을 떠나 가치 있는 사료들은 적극 발굴하여 응분의 보상을 해야한다.

 

‘역사박물관’에서 일부 알려진 작가 위주로 수집하며 소장 전을 열지만,

사진가들의 이전투구로 그마저 어려워졌다.

이런 지경이니 사진가들이 팔리지 않는 사진집이지만,

살아생전 책 한 권이라도 남기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아무리 이미지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나, 오래된 사진의 기록적 가치는 다르다.

이미 수많은 무명사진가의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집안의 애물단지처럼 굴러다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소멸되고 말지만, 누구하나 나서는 이 없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

 

어느 분야의 예술이건 작가들의 삶이란 빈궁하기 짝이 없다.

예술계 전반의 빈곤 문제지만, 그중에서도 가난한 작가는 시인과 사진가고,

사진 중에서도 기록에 전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다큐멘터리사진을 전공해도 사회에 나오면 다들 몇 년을 견뎌내지 못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문학과 현장을 누벼야 하는 다큐멘터리사진과는

경제적 비용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아무런 보상과 보장도 없지만 오로지 사명감하나로 버텨내는 것이다.

 

고 김기찬 선생의 유작, ‘골목안 풍경’에서

 

 

아마추어 사진가들 모임인 ‘한국사진작가협회’라는 거대한 조직은

이권에만 눈이 뒤집혀 사진가들의 권익 따윈 관심도 없어 포기한지 수십 년이 넘었지만,

그 대안으로 창립한 ‘민족사진가회’마저 개인의 사유화로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니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사진계 구심점이 없으니 단합 할 수 없고, 단합할 수 없으니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모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다.

어느 예술매체보다 사회현실과 가까워야 할 다큐사진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조차 침묵하니 ,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 김기찬 선생의 유작, ‘골목안 풍경’에서

 

 

스스로 권익을 찾지 않으면 누가 권익을 찾아주겠는가?

정신 바짝 차리자.

배고픈 것은 참지만, 쪽 팔려 못 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고 김기찬 선생의 생전 모습. 오른쪽 아래와 왼쪽 뒷편에 아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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