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자리 잡은 KCDF갤러리 1층 매장이 '공예정원'으로 새롭게 문을 열어

코로나19로 침체된 공예 유통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은 우수하고 아름다운 공예품이

대중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매장 내 동선과 공예품 진열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기존의 기념품 매장 분위기와는 다르게

동·서양 건축물과 가구들을 모티브로 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했다.

 

김태훈 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공예산업 종사자들의 우수한 공예품이

널리 유통될 수 있도록 판로 개척에 힘쓰겠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공진원 20주년이 되는 중요한 시점인 만큼 이번 온오프라인 매장 리뉴얼을 통해

공예유통 활성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글 / 조문호

 

 

대개의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길거리에서 쉽게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5일의 수요일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김윤수선생 2주기 추모전이 열렸고,

‘나무아트’에서는 나종희씨의 ‘터널’전이 열렸다.

그래서 인지 두 전시장 사이의 짧은 거리를 지나며 반가운 화가를 여럿 만났다.

 

난 안면은 있지만 마스크에 가려 헷갈릴 때가 많다.

화가 박흥순씨와 두시영씨도 만났고 김재홍씨도 만났다.

 

‘나무화랑’에 올라 가려니, 버스킹 나온 번개가 시비 걸었다.

 

“형은 좋아하는 노래가 뭐요?”

기다렸다는 듯이 ‘봄날은 간다’ 아이가‘ 했더니,

바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렸다.

 

아무리 갈길이 급해도 청성 맞은 그 노래를 2절까지 다 들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는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을 짠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요소요소에 빈 점포들이 늘려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다들 나설 엄두를 못 내지만, 어쩌면 위기가 기회일지도 모른다.

업종만 잘 선택하면 몫 좋은 곳은 물론 좋은 조건으로 임대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인사동 거리를 메우는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다.

인사동을 찾는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막연한 갈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 마시고 술 마실 곳이야 많지만, 전시장 외의 문화공간이 별로 없다.

연인과 함께 연극이나 공연을 볼 수 있는 소극장도 절실하다.

 

성업을 이루던 싸구려 잡화상들이 지금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젠 몇 곳 남지 않았는데, 임대료가 싼 골목 안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 빈 가게에 젊은이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살려내면 어떨까?

 

중국산 싸구려 상품이 아니라 연인들 끼리 품격 있는 선물을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아트상품 매장들이 들어섰으면 좋겠다.

예술적 감성에 목마른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업종을 찾아야 한다.

 

지난 2일은 인터뷰에 불려나간 정영신씨 따라 인사동에 나왔다.

끝날 동안 인사동 거리를 돌아 다녔는데, 빈 가게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유재만씨가 직영하던 대형 음식점 ‘아라랑가든’까지 문 닫았더라.

 

‘보물창고’,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나락실’ 등 문 닫은 지 오래된 점포들이 늘렸지만

‘황금연못’, ‘까망글씨’등 새로 개업한 가게도 생겨나고 있었다.

 

한정식 ‘옥정’은 ‘853’이란 고기집으로 간판을 바꾸었고,

호텔 ’쿠레타케소‘도 언제 개업했는지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마스크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

근성으로 답례를 하고 돌아설 때야 누군지 생각이 났다.

바로 꿈길 속의 춤을 찍는 양재문씨였다.

 

가는 분을 불러 사진을 찍는 헤프닝까지 벌였다.

빨리 복면의 시대가 끝나야 할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청각은 물론 인지 능력까지 떨어져 종종 실수를 한다.

 

나도 쪽방에서 예전에 살던 인사동 옥탑 방으로 옮길 생각이다.

다시 한 번 인사동의 봄을 꿈꾼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은 모처럼 인사동이 붐볐다.

 

사람이 많아 반갑기는 했으나,

코로나 감염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인사동에 사람이 없어도 걱정이고 많아도 걱정이다.

 

외국관광객이 사라지니 잡화상들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잡화상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았다.

 

태엽 장식물 파는 ‘기정아트’만 사람이 몰렸다.

벽에 걸린 태엽이 움직이는 형상에 시각적 흥미를 느낀 것이다.

 

인사동에 빈 점포가 제법 남아 있었다.

하기야! 이 불경기에 누가 장사하러 들어오겠는가?

 

문닫는 가게가 속출하는 것이 어디 인사동만의 문제겠는가?

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길 빌 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 오후6시, ‘리얼 포토’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준비모임이

인사동 ‘푸른별 이야기‘에서 있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옛 사우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더구나 대전에 은둔하는 이석필씨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 날은 쪽방 관리인 정씨가 같이 갈 때가 있다며 저녁식사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어 방문을 열어보니 파리똥이 미끄러질 정도로 내 구두를 빤짝 빤짝 닦아 놓았다.

정씨가 빙그레 웃으며 ‘옛 친구 만나는데 구두가 더러워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난, 빤짝거리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아 여지 것 아무리 더러워도 구두 닦는 일은 없었는데,

닦아놓으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마 정씨는 군대 내무반시절 선임들 구두깨나 닦아준 것 같았다.

 

초라한 행색에 구두만 반짝거렸으나, 서둘러 나갔다.

 인사동에서 약속 있을 때마다 늦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라 늦장부리다 매번 시간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10분이나 빨랐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도 없어 약속장소가 바뀐 줄 알고 술집에서 나와버렸다.

김문호씨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뭔가 잘 못된 것 같아 돌아서려는데,

좁은 벽치기 골목에서 김문호씨와 이석필씨가 등장했다.

 

김문호씨야 전시장에서 가끔 만나지만, 이석필씨는 만난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술집에 먼저 자리 잡았는데, 이석필씨는 비슷한 연배지만 아들처럼 젊어보였다.

이 친구의 건강비결은 술을 마시지 않고 밥을 잘 먹는데 있지만, 본래 야생의 체질이다.

야생화 찍으려 산을 숱하게 돌아다녔는데,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며

물을 더럽힌다고 비누는 물론 세수도 잘하지 않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질이 생겨 그런지 비누를 사용한다고 했다.

 

막걸리와 소주에다 김치찌게를 시켜 한 잔하고 있으니 안해룡씨가 나타났다.

김봉규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일이 있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네 사람이 만나 한 잔하는 자리가 오붓하기는 했으나, 왠지 씁쓸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는데,

기념전을 어떤 식으로 치룰 건지 의논하는 자리였으나,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작업을 소환하느냐 아니면 지금 작업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압축되었는데,

그야 당연히 지금의 작업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떤 공동주제를 내세워 짧은 시일이지만 집중적으로 작업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왜 중요한 모임에 다들 참석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면 모를까 별로 관심 없는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결론도 얻지 못한 체 케케묵은 이야기나 근간의 사진계 이야기를 안주로 술만 마시다

대전까지 가야 할 이석필씨가 먼저 일어났다.

 

술값 품앗이로 돈을 냈더니, 안해룡씨가 슬쩍 돌려주었다. 고맙긴 하나 마음은 편치 않더라.

소주 한 병이면 주량보다 좀 과하게 마셨으나, 그냥 집에 가기는 싫었다.

지척에 있는 ‘유목민’에 들렸더니, 전활철씨가 반겨주더라.

술보다는 시원한 콜라 한 잔 얻어 마시고 녹번동 가는 3호선을 탔다.

언제나 술이 취하면 동자동으로 가지 않고 녹번동 가는 이유는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서다.

다만 마스크 쓰고 지하철 타는 시간이 길어 곤욕스럽기는 하나 정영신씨 만나는 기쁨도 크다.

 

난,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지고, 쪽팔리는 것도 잘 모른다.

술 값 돌려받은 돈으로 꽃집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산 것이다.

정영신씨에게 알랑방귀 뀌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가 너무 섹시해서다.

초라한 늙은이가 꽃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문을 들어서니 세수하던 정영신씨 표정에 미소가 감도는 걸 보니, 쪽팔렸지만 잘 했다싶다.

 

오늘의 결론은 안 하고 입 닦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고,

하려면 의미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부근으로 옮겨 온 주홍수감독 작업실에 초대받았다.

지난 화요일 오후 6시무렵 찾아 나섰는데, 한 참 헤메는 헤프닝을 벌렸다.

 

동자동에서 불과 300미터 남짓의 가까운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길눈이 어두워 '독일문화원'까지 올라가는 바보짓을 했다.

 

결국 주감독이 입구까지 찾아 나오도록 하는 불편을 끼쳤는데,

덕분에 남산 산책 한번 제대로 했다.

 

주감독 안내를 받아 작업실에 들어 가보니 마치 술집 같았다.

산악인 가수 신현대씨와 율무춤꾼 이귀선씨가 먼저 와 계셨다.

 

신현대씨는 ‘난 바람 넌 눈물’로 데뷰한 미성의 가수로, 그 날 처음 인사 나누었다.

신현대씨의 찔레꽃처럼 애잔한 노래로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안주는 육 해군이 다 나왔고, 술도 여러 가지라 무슨 술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대대포'라는 막걸리 맛도 좋았지만, 봉화에서 왔다는 15도짜리 막걸리도 좋았다.

 

주감독이 작업실 옮긴지가 몇 달은 된 모양인데, 작업실 평수가 무려 80평이란다.

 작업실을 돌아보니, 벽에 그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많은 이야기가 담긴 매력적인 그림이었다.

 

주감독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베테랑 작가지만,

에니메이션 뿐 아니라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팔방미인이다

 

오래전 박권수화백 유작전에서 만난 나를 그려 준적도 있었다.

 속필로 멋진 형상을 만들어 냈는데, 주감독의 뛰어난 순발력에 감탄했다.

 

그 뒤 인사동 ‘유목민’ 화장실에 전활철씨 초상을 개성있게 그린 적도 있었는데,

몇 일 있다 가보니 누군지 모르도록 그림을 망쳐놓았다.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미궁에 빠진 사건이다.

 

그나저나,  막걸리가 독해 그런지 술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술이 취하면 숨 쉬기가 힘들어, 먼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젊은 친구들이 찾아오는 틈을 이용해 제빨리 퇴장했다.

아무튼, 반가운 만남이었고, 즐거운 자리였다.

부디 새 작업실에서 좋은 일 많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전염병으로 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지만,

인사동 전시장에는 따뜻한 훈풍이 불었다.

 

‘마루아트’ 2층에서는 한센촌 주민들이 기록한 ‘만종’이 열렸고,

3층에서는 사진가 양재문씨의 ‘舞夢’이 열렸다.

 

양재문씨의 환상적인 ‘비천몽’은 여러 차례 보았지만,

"처용 나르샤" 시리즈는 처음 보았다.

 

오방색 치맛바람 휘날리는 사진들은 언제보아도 설렌다.

꿈결 같은 춤 자락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양재문씨 말로는 갑작스레 이루어진 전시라 했다.

빈 공간을 메워준 전시였지만, 두 점이 팔리는 작은 성과도 있었다.

 

‘무몽’은 20일까지 열리고, ‘만종’은 23일까지 열린다.

전시를 볼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전시장을 나오다 사진가 권양수씨와 김효성씨를 만났다.

신단수란 필명을 가진 김효성씨는 알아주는 역술가인데,

이번에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도 주었다.

 

축하주를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차를 끌고 나와버렸다.

오래 마스크를 쓸 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부자 병에 걸린 탓이다.

 

인사동에서 주차비가 가장 싼 대일빌딩에 세웠지만,

꾸물대면 밥 한 끼가 통 채로 날아간다.

정확하게 한 시간 10분 걸렸는데, 주차비는 3500원이었다.

 

돌아서는 내 발길만 무거운 게 아니라 지나치는 노작가의 발길도 무거워 보였다.

늙어가는 설움에 무거운 게 아니라 외로움의 설움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 무렵의 인사동 거리 풍경이다.

 

연휴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주로 가족 나들이였다.

 

이젠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복면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복면의 인파가 휩쓰는 거리는 마치 유령의 도시 같다.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때도 많을 것이다.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고 얼굴까지 가리고 살아야 하니,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 와 살갑게 인사했다.

알아보지 못해 머뭇거렸더니, '시가연’이란다.

‘시가연’ 주인이라면 김영희씨인데, 아무리 보아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스크를 벗겨 확인할 수야 없지 않은가?

 

이 날은 인사동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지인만도 여섯 분이나 되었다.

전시 작품들이 보고 싶었지만, 들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 약속한 일이라 어딘 가고 어딘 안 갈수 없어서다.

코로나가 사라지기 전엔 사람 모이는 곳을 피할 수밖에 없다.

 

마스크 쓰면 숨이 가빠 일이십 분도 견디지 못하는 호흡기환자가

목숨 걸고, 민폐 끼쳐가며 찾아다닐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이젠 전시하는 분들이 온라인 전시도 병행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으니, 한 번 고려해 볼 문제다.

 

어차피, 시대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다 사랑도 온라인으로 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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