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추석대목장 촬영지는 태안으로 정했다.

 

해안국립공원에 속한 태안은 바다 경관이 아름다울 뿐더러 해수욕장과 많은 역사적 유적이 남아있다.

태안하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해안경관보다 백화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입상’과 민요 ‘꼬대각시‘다.

 

태안은 3일과 8일에 장이 섰지만, 지금은 장날이 따로 없는 상설시장으로 변했다.

서부시장은 5일장, 동부시장은 상설시장으로 이름만 달리했을 뿐,

200여 개의 점포와 90여 개의 노점들이 넓은 장옥에 분산되어 있다.

 

동부시장은 1918년에 개설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서부시장은 80년대 초반 태안버스터미널 주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2009년 태안서부시장으로 정식 등록되었다고 한다.

 

지난 28일 들린 태안장의 서부시장은 간간이 사람이 오갔으나, 동부시장은 텅 비어있었다.

상인들이 둘러 앉아 고추 손질을 하고 있었는데. 인구에 비해 장터규모가 너무 큰 것 같았다.

요즘은 장터 기능이 마트에 밀리는데다, 시골에 노인들만 있어 오일장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그날은 택배기사가 시장에 물품을 전해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상품이 외부로 팔려 나가는 것이 정상이나, 외부에서 물건을 가져온다는 것이 뭘 말하겠는가?

인터넷 쇼핑에 없는 상품이 없는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니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이다.

 

장에 나온 김에 미용실에 들려 파마 하는 할머니도 있었고,

이 것 저것 제수품을 구입하는 노인들만 간간이 보일 뿐. 대목장이지만 일반장과 다를 바 없었다.

대목장만 되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떡집이나 과자 만드는 집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식이나 손자들이 오지 않으니 음식 준비할 여유도 잃은 듯 했다.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목숨 내놓고 장에 나와야 하는 장돌뱅이의 삶도 안타깝지만,

시골노인들의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서해안에서 잡아 올린 다양한 해산물들이 장바닥을 메워야 할 태안장이지만,

있는 둥 없는 둥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정육점은 사람들이 기웃거렸다.

 

배고픈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정영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맛있는 밥집을 알았으니 빨리 오라는데, 장터 할머니가 알려 준 ‘경재대구탕‘으로 오라는 것이다.

 

아침 겸 점심으로 갈치조림 백반을 시켰는데,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밑반찬까지 정갈해 너무 맛있다고 칭찬했더니, 주인아줌마의 자랑이 시작되었다.

오래 전 맛 자랑에서 대상을 받은 사진을 핸드폰에서 찾아 보여주며,

그 사진을 붙여 홍보하고 싶어도 쪽 팔려 못하겠다는 것이다.

 

태안 지역 유적을 찿아 남면 몽산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는 태안의 대표 독립운동가인 ‘우운 문양목’ 선생의 생가터와 '몽산리 석가여래좌상'이 있었다.

 

우운 선생은 1869년 남면 몽산리에서 태어 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고,

을사조약 체결 후 하와이로 망명해 1940년 서거하기까지 언론에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 쟁취를 주창한 분이다. ‘한인사회 단합론’과 교육사업도 펼쳤다.

 

석가여래좌상은 원래 무너진 것을 복원하였다는데,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부러진 목을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다.

그러나 불꽃무늬로 조각된 광배가 아름다웠고, 불신 과 대좌는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세련된 좌상의 광배와 대좌의 치밀한 세부 기법에서 조성 시기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그 다음은 ‘마애삼존불입상’이 있는 태안면 동문리로 옮겼다.

‘태을암’이 지킨 백화산 정상 못 미쳐 큰 바위에 새긴 삼존불로 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마애삼존불입상’은 중앙에 보살상을 본존으로 세우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삼존불 주위로 목조전실이 만들어졌는데, 얼굴은 둥글고 통통한 편으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신체 역시 어깨와 가슴을 양감 있게 표현해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외에도 불교문화재로는 동문리 석탑과 남문리 오층석탑

그리고 상옥리의 흥주사 만세루,·흥주사 삼층석탑, 해남사지,·안파사지 등이 있고,

유교문화재로는 동문리의 ‘태안향교’와 남면 양잠리의 ‘숭의사’를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서해 바닷가의 안면도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였다.

이 바위는 만조 시에는 섬이 되고 간조 시에는 육지와 연결되는데,

하루에도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경관을 보여준다.

 태안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장소로, 항시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태안에서 전래된 민요로는 연가나 서정요도 있는데,

유독 ‘꼬대각시요’가 잊혀 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겨울철에 부녀자들이 즐겨 불렀다는 꼬대각시는 ‘고자의 각시’를 뜻한다고 한다.

각시가 고자와 혼인해 평생을 고적하게 산 애달픈 사연이 마음에 걸린 듯 했다.

 

‘꼬대각시’라는 민요 가사는 한 여인의 애처로운 삶을 서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살 먹어서 어머니 죽고

두 살 먹어서 아버지 죽고

세 살 먹어서 말을 배우고

네 살 먹어서 걸음 배워

다섯 살 먹어서 삼촌 집에 가니

삼촌 댁은 남의 살붙이라고

십리만큼 내어치고

아이고 설움 공밥이야

아이고 설움 답답해요

그럭저럭 스무 살을 먹고 나니

중신애비 들락날락

삼촌 댁이 허는 말이

저놈의 지지배 때문에

우리 대문턱이 다 닳는 구나……”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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