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전북 장수장과 임실 오수장 갔다.

 

명절 대목장마다 빠짐없이 나서는 정영신씨 장터 순례 길에 따라 나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나들이를 삼가하라지만, 거리두기 시국의 장터도 기록해야 했다.

장터 사람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유적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방으로 다니다보면 의례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리게 되는데,

유행가 테입 장사꾼이 들려주는 트롯 음악을 싫으나 좋으나 듣게된다.

얼마전에는 송가인 노래가 판을 치더니, 이젠 임영웅이 노래가 판을 친다.

 세상물정 어두운 나로서는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가수 인기순위를 알아차린다.

 

 

장수장은 손님보다 장사꾼이 더 많았다.

자식들이 명절에 오지 않으니, 음식 장만할 마음도 사라진 듯했다.

 

지역 농산물과 전통시장을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피켓들이 농촌 실상을 대변하는 듯 했다.

 

장터 안에 자리 잡은 대장간에는 농기구 손보러 온 농민이 더러 있었다.

대장쟁이 박석진씨의 쇠달구는 솜씨에 호미와 낫이 날렵하게 변신했다.

 

정선에 망가진 연장들을 챙겨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요즘은 대장간이 없어 연장이 무디어지면 대부분 버리게 되는데,

정선장터에도 이런 대장간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정영신씨 일 끝날 때 까지 장터 맞은편 한적한 데서 기다렸는데,

장터에 어울리지 않는 ‘TOP'이란  멋진 커피숍도 있고,

’콩나물순두부‘집 앞에는 깨끗한 흡연석까지 만들어 놓았다.

 

요즘 어디를 가나 천대 받는 흡연자로서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니, 마음까지 넉넉해졌다.

 

장수읍내 있는 의암송과 향교도 돌아보고,

장계면에 있는 ‘의암 주논개 생가지’도 가보았다.

 

주논개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단다.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고향이 이곳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생가가 있던 마을 전체가 수몰되어 저수지 근처에 생가만 복원해두었다가

주촌 일대 2만평 부지에 1996년부터 4년에 걸쳐 다시 조성했다고 한다.

 

의암 논개생가지에는 생가뿐 아니라 논개기념관을 비롯하여 의암루가 있었다.

동상을 비롯하여 주논개비,·최경회비,·주논개 부모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해로 묘지의 축대가 무너져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몰아 장수군 계내면과 함양군 서상면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육십령으로 올라갔다.

 

옛날에는 도둑 떼가 많아 고개 아래 주막에 육십명 이상 모여야

산을 넘을 수 있다고 해서 육십령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하고,

이곳에서 안의 감영까지 거리가 육십 리요 장수 감영까지의 거리가

육십 리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임실 오수장도 들렸다.

장꾼들 끼리 잡담이나 나누는 한가한 장터풍경인데,

장사할 시간이 남았는데도 짐 싸는 장꾼도 있었다.

 

사라져가는 오일장의 현실에 다름 아니다.

 

장국밥 한 그릇 사 먹고, 우리도 보따리 쌌다.

하루 쉰 다음 날에는 김포장으로 간다.

고속도로나 밀리지 않아야 할 텐데...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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