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떠나 보내는 지난 28일 저녁 무렵,

시대가 낳은 의인 방동규선생을 모시는 자리가 인사동 '선천집'에서 마련되었다.

송년회와 방동규선생 미수연을 겸한 자리였는데,

늦장 부리다 송년 인사하려다 새해 인사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푸른사상맹문재 주간이 방동규선생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고 했다.

장소만 결정되면 한번 뵙고 싶어 했는데, 친구 송년회 선약과 겹쳐버렸다.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선천집에는 방동규선생께서 먼저 와 계셨다.

이승철 시인도 보였고, 한 분은 방동규선생의 미수를 축하한다는 글을 붙이고 있었다.

 

송년회가 미수연으로 바뀐 셈인데, 지난 4월 은성식당에서 가진 방동규 선생 미수연이 떠올랐다.

그날 참석하지 못한 분들이 모신 자리기는 하지만, 방동규선생께서 그런 자리를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년 말이라 저녁 식사나 하자기에 나왔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자신을 내세우는 자리 자체를 싫어하시지만, 일제의 잔재라며 미수란 글자도 못 마땅해 했다.

 

맹문재씨가 나타나서야 송년회 아닌 미수연이 시작되었다.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맹문재주간과 이승철시인 외는 모르는 분이었다.

맹주간이 강태승씨를 비롯하여 권순자, 고은진주, 유국환, 장우원, 조미희 시인과

고서적 수집가 김병호씨, 그리고 뉴스페이퍼이민우씨를 차례대로 소개했다.

 

맹문재씨는 오래전 선생께서 펴낸 자서전 배추가 돌아왔다1,2권을 챙겨 와 방동규선생을 소개했다.

방배추를 모르면 간첩이다는 말도 한 물간 옛말이었다.

 

방배추란 별명은 어떻게 생겼냐는 첫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하드라마에 버금가는 방배추선생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시대적 울분을 날린 낭만 주먹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다.

방동규선생은 돌아가신 백기완선생, 소설가 황석영씨와 더불어

조선의 삼대 구라로 불리는 분이 아니던가?

 

방배추의 주먹도 좋고 구라도 좋지만, 무엇보다 의인이라는 것이다.

구순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일손을 놓지 않는데,

꾸준한 근육운동으로 몸 관리까지 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추운 날, 윤석열 정권 규탄하는 토요 집회에도 빠지지 않으신다.

다들 눈치나 살피는 어른들이라, 못 볼 것을 보아도 꿀 먹은 벙어리다.

진정한 어른이 없는 시대라 방동규선생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고은시인이 만인보에 쓴 방동규선생에 대한 시를 한 번 들어보자.

되지 못한 세상에서는 / 꼭 엉뚱하기는 / 천장에 매달린 / 대들보 같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

힘깨나 쓰지만 힘자랑보다 / 입심 좋아 / 그 입심에 술자리 눈과 귀 집중하다가 /

술자리 입들 짝 벌어져 / / 와 웃음 터진다.”

 

새해에는 다들 웃고 삽시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건강하고 의롭게 삽시다.

방동규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사진, / 조문호

 

 

녹번동에서 동자동 갈 때는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거리를 지나쳐 종각역에서 갈아탄다.

빨리 가는 코스도 있지만, 인사동 들리는 재미가 좋아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별 볼일 없이 인사동 길을 걷게 되는데,

더러는 좋은 전시도 보지만, 반가운 분도 만날 수도 있어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다.

 

지난 월요일은 작심하고 볼만한 전람회를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이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원치용의 길 건너기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시장에 올라가니, 문명 비판적인 작품들이 더 숨 막히게 한다.

 

드로잉 방식으로 그린 원치용의 화법도 독특했다.

철로에 코뿔소가 있거나 고속도로에 오리가 방황하는 

현대 문명에 의한 반생명적 개발행위를 비판하고 있었다.

 

눈앞에 다가온 재앙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었다.

 

두 번째 들린 곳은 인사아트센터 지하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4.3미술아카이브 기획전 바라 이었다.

 

4,3과 관련된 전시로는 이달 초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렸던,

동백이 피엄수다에 이은 두번째 전시로 탐라미술인협회에서 주최했다.

 

참여작가로는 고길천, 고혁진, 김수범, 박경훈, 양미경, 오석훈,

이경재, 이명복, 정용성씨 등 아홉 명이었다.

 

4,3의 아픔을 상징한 작품들이 걸린 전시장 분위기가 숙연감을 주었다.

그 가운데 이명복 작품 광란의 기억이 있었다.

이승만 도당의 본색과 악질 패거리 만행에 치를 떨었다.

 

지난 달 세상을 떠난 미술평론가 성완경선생의 글도 반가웠다.

 

세 번째는 한국펜화가협회전이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로 갔는데,

관람객 없는 다른 전시장과 달리 관람객이 몇 있었다.

 

평소 회원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지난해 많은 초상을 그려 보여준 임동은씨 작품이 기억나서다.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군침 도는 문어 한 마리가 꿈틀대며 글자를 흘리고 있었다.

내 이름이 문호라 그런지, 문어가 남 같지 않더라.

 

네 번째는 김명식씨의 ‘East side story’가 열리는 선갤러리에 들렸다.

 

이분은 동아대에서 오래동안 교편잡던 분인데,

20여년 전부터 ‘East Side Story’연작으로 주목받은 화가다.

 

비슷한 집들이 적당하게 배치된 그림들은 주택단지의 평면도를 연상시키는데,

벗겨질 듯 연하게 묻은 물감 자욱들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전시제목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란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의 공동체 이야기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 배열이 새마을 운동 같은 느낌도 난다.

 

담백한 구도와 풍부한 색감을 빚어낸 칼 질의

민감한 리듬성은 설렘의 활력소를 만들어낸다.

색으로 모인 집들의 조화와 여백이 따스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이하 시인의 홍제천 사진전’이 열리는 ‘다섯시’에 갔다.

김교서 시인의 비득치에 가면출판기념회도 함께 했다. 

 

김이하 시인은 오랫동안 사람과 홍제천을 기록해 왔다.

 

지난해의 사람에 이어 두 번째 보여 준 홍제천’은, 결국 사람과 자연은 하나라는 것일게다. 

사람을 좋아하고 자연 생태를 사랑하는 한 작가의 일상적 기록이고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작가가 오랜 세월 찍어 온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에 의한 기록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자연환경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홍제천에 서식하는 청동오리나 왜가리, 해오라기 같은

작은 몸짓들을 살피며 함께 정 나누어 온 것이다.

 

아직 서울이 살아 있다는 것에 위안하며...

 

사진전과 함께 김교서 시인의 비득치에 가면’(영화나무) 출판기념회도 있었다.

 

40여 년 전 등단한 이래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는 김교서의 시는

시인 모습이나 이력처럼 갯벌처럼 끈적거렸다.

 

이 시집은 편향된 사회에 대한 그의 편향된 분노이자

음습하게 가려진 그곳을 되비추는 거울이다고 김이하시인이 적고 있다.

 

전시장에는 김이하. 김교서 시인이 자리를 지켰고,

연극배우 이명희, 시인 이승철, 홍순창, 이동엽, 강경석씨 등

여러 명이 축하 술자리를 만들었다.

 

술자리 피해 콜라를 방패막이로 앉았는데,

이명희씨는 '스마트협동조합'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는

일인극을 핸드폰으로 보여주었다.

 

앤지 한 번 안 내고 단숨에 촬영했다는 동영상인데,

배우 이명희의 절규가 처절하도록 슬프게 만들었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광고로 사용하면 대박나겠다'며 바람도 넣었다.

 

               

다섯시에서 열린 김이하의 홍제천을 마지막으로 서울역 가는 지하철을 탔다.

 

원치용의 길 건너기 한국펜화가협전은 지난 화요일로 전시가 끝나버렸다.

그러나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4.3미술아카이브 바라   5 9일까지 열린다.

선갤러리에서 열리는 김명식 ‘East side story’ 426일까지고,

다섯시의 김이하 홍제천 4월30일까지 열린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인사동에서 봄바람 나자.

 

사진,  / 조문호

 

아래는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4.3 미술아카이브 '바라-봄' 전시작입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가 무색한 날이었다.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에는 광화문광장 시위에 일장기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일본 놈들 손아귀에서 벗어 난지 75년이 지났건만,

친일 청산은 커녕, 오히려 일제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리는 ‘독립이 맞습니까?’란 전시 제목이 실감났다.

 

다시 한 번 미치광이 전광훈 개독집단과 꼴통 보수 세력이 친일 잔재라는 걸 입증했다.

그 뿐이던가?  맞장구치며 부추기는 보수언론이 더 문제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를 씹는 보수언론 논리에 귀가 막혔다.

 

독재자 이승만의 일제 계승과 무고한 민중 학살을 몰라서 하는 말이던가?

그렇게 일제 치하가 그리우면 국적을 바꾸던지, 차라리 일본으로 이민가라.

언론이란 가면을 쓰고 국민을 이간질 시키는 무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위급한 때가 아닌가?

도저히 쪽방 구석에 처박혀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어디서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인사동으로 갔다.

시위를 끝내고 지하철로 몰려드는 늙은이들의 행렬이 측은해 보였다.

무엇이 저들을 거리로 내 몰았을까? 역병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요즘 떠도는 유행어처럼 독립운동은 못해도 꼬장은 부리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원칙도 가치관도 없이, 젊은이들로 부터 지탄 받고 살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인사동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비에 젖어 가라앉은 거리엔 발길만 분주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거리 사진부터 찍었겠지만, 바로 술집을 찾아갔다.

 

벽치기 골목을 들어서니 ‘유목민’ 앞에 연출가 기국서씨와 김명성씨 모습이 보였다.

김명성씨가 추진한 독립 자료전을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개막식이 있던 날은 작업 때문에 밀양에 있었단다.

 

모처럼 소주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기국서씨가 고충을 털어 놓았다.

아무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일에 답답해했다

결과에 돈이 걸려 있다는 대목에서는 미칠 것 같단다.

 

비록 기국서씨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주변과 얽히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며, 돈에서 자유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도 권력이나 돈에 치우치면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나 친일시인 서정주와 다를 게 무엇인가?

차라리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이 나을 것이다.

 

한 쪽 자리에는 ‘뮤아트’ 김상현씨가 후배 가수들과 어울려 노래를 불렀고,

유진오씨는 분주히 ‘유목민’ 일손을 돕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출연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인 이승철씨, 박재웅씨 일행에 이어 단청장 이인섭씨가 나타났다.

좀 있으니, 시인 정희성씨와 소설가 현기영, 산악인 박기성씨가 왔다.

 

이 우울한 날 어찌 술 한 잔 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때와 달리, 기국서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시국처럼, 술자리마저 흩어져 사분오열이었다.

‘유진커피숍’에서 팥빙수에 더운 속을 식히고 자리를 떴다.

 

아무리 코로나가 설쳐도 꼭 찾아갈 곳이 있다.

바로 구로구민회관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리는 ‘독립이 맞습니까?’전이다.

그 전시를 보며, 독립을 위하여 몸 바쳐 싸운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되새기자.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0일, 정선대표음식 시식콘서트와 문학콘서트가 함께 열리는 아라리촌을 찾았다.

반가운 사람들 만나 시와 음악, 음식으로 어울린 한나절이 되었다.


노기환씨 사회로 진행된 시식콘서트에 이어,시인, 정선을 노래하다문학콘서트는 강기희씨가 사회를 맡았다.

그리고 문학과 마술의 절묘한 만남을 보여 준 박경호씨의 마술공연도 펼쳐졌다.

시는 이승철, 안현미, 김이하, 이정록, 손세실리아, 박남준시인이 낭송했고,

노래는 시노래 프로젝트 블루문, 박경하, 이정황, 손병희, 이지상가수가 열창했다.






그 날 정선을 대표하는 음식 열가지를 시식해 보았지만, 솔직히 배가 불러 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난, 경상도 촌놈이라 짭고 매운 강한 음식들이 몸에 배어 있는데,

20여년 전, 처음 강원도 음식을 먹어보니,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었다.

올챙이국수도 그렇지만, 배추전 등 많은 강원도 토속음식들이 닝닝한 것이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살다보니 이젠 그 맛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정선토속음식 메니아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맛은 뭔지도 모르며 은근히 당기는 맛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모유같은 그 맛 말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하고 넘기면 넘길수록 편안한 그 맛을 어찌 얄팍한 글재주로 옮길 수 있겠나?

그리고 배고파 어쩔 수 없이 먹었다는 산골 음식이 이젠 최고의 웰빙음식이라 하지 않던가? 



    


아무리 맛있는 천하의 음식도, 술 한 잔 없이 어찌 맛있다 할 수 있겠나?

'정선음식콘서트' 주최측에서  술 한 잔 내놓지 않았지만,

다행히 묵객 최명철씨가 전산옥 주모를 꼬셔 부지런히 술배달을 해 왔다.

그러나 차 때문에, 그 아리까리한 아라리막걸리 맛에 젖지 못해 미칠지경이었다.





그 날 무대에 오른 분들 외에도 미술평론가 곽대원씨를 비롯하여 춤꾼 장순향교수, 김여옥시인,

김명지시인, 이창주감독, 황지웅피디, 서예가 김우영씨, 사진가 정영신씨, 정선군의 신주호부군수,

전상현씨 등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길은 정선아리랑제가 열리는 본 무대에서 문학콘서트가 열리는 아라리촌을 연결하는 섶다리길이다.












































































정선




지난 11일, 모처럼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동 ‘고도’에서 열리는 박성남씨 전시에 들렸다가 ‘툇마루’로 갔다.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김이하, 이승철 시인, 그리고 인사를 나누지 못한 최명철씨도 함께 있었다.

최명철씨는 광화문광장에서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는데, 화가 박광호씨를 너무 닮았다.
이미 술판은 파장이었고, 막걸리 한 두 잔 마시고 나와야 했다.





다들 술이 취했으니, 노래 할 수 있는 술집으로 가자했다.
‘아리랑’으로 갔으나, 이른 시간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그 다음 찾아 간 곳이 ‘백상사우나’ 부근에 있는 ‘갤럭시 노래방’이었다.
처음 가본 곳인데, 대뜸 최명철씨가 아가씨 네 명을 불렀다.
술 취한 사내가 여인네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난, 술도 취하지 않았지만 너무 뜻밖이라 걱정 되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짝 맞춘다면, 그 돈은 어쩔건가?





이미 엎질러 진 물로, 양주가 나오고 아가씨 네 명이 사내들 옆에 끼어 앉았다.
최명철씨는 노래하느라 바빴고, 아가씨들은 술 권하기 바빴다.
맨 얼굴로는 도저히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아 바쁘게 술을 마셔댔다.
빈속에 들어가니, 금세 본색이 더러 났다.
그 때야 옆에 앉은 여인에게 나이를 물어 보았다. 딸이나 마찬가지였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고? 다시 물었다.
한 마디로 돈이라 했다.
돈은 중요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쾌락이라 고쳐 말했다.
너무 솔직한 대답이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까...





취기가 올라 맞은편에 앉은 여인에게 춤을 추자고 권했다.
파트너였던 김이하시인이 마침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녀는 40대로, 그중 나이가 들어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춤은 추지 못하지만, 그녀를 안아보고 싶었다.


여인네의 살 냄새에 강한 욕정이 일었다.
몸에서 피가 끊었고 힘이 흘러 넘쳤다.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금세 한 시간이 지나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다들 술이 취해 시킨 술도 마시지 못했건만, 3차로 ‘아리랑’에 갔다.
‘아리랑’엔 먼저 온 손님들이 이미 놀이판을 휘잡고 있었다.
마실 만큼 마셨으면 그만 헤어지지, 왜 방황하는지 모르겠다.





원님 덕에 나팔 불듯 잘 놀았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도망쳤는데, 맡겨 둔 짐 보따리 찾느라 유목민에 들렸다 지하철을 놓쳐버렸다.

술 취한 거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오는 택시마다 도망치네. 제기랄~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인사동거리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인사동의 색깔은 보이지 않고, 상혼만 들끓는다.
다들 뭘 보고 뭘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걱정스럽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미술품에도 별 관심 없다.
인사동이 미술의 메카로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냥 인사동의 전통성이 뭔지, 기웃거릴 뿐이다.





지금도 인사동 주변에 호텔은 계속 생겨나지만,
인사동의 정체성을 살릴 일은 아무도 생각 치 않는다.
인사동 골목문화를 알릴 노력조차 없다.






관광객들이 사라진 내일의 인사동이 궁금하다.
호텔은 가난한 예술가들 작업실이 되고,
거리는 온통 예술품이 들 끊는, 그런 날이 올까?

괜한 헛꿈에,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 30일은 이른 시간부터 인사동을 기웃거리다가,
오후5시 무렵에는 임옥상씨 전시 보러 평창동으로 갔다.





개막행사가 끝난 후, 다시 인사동으로 돌아왔더니,
전시장에서 만난 박진화, 송 창, 김태서, 박홍순씨가
‘유목민’에 먼저 와 있었다.





한 쪽에는 공윤희씨와 이지연씨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좀 있으니 장경호, 이승철, 임경일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미 술에 젖어 온 장경호씨는 막걸리를 마시며, 다른 곳에서 한 잔 더 하잖다.
‘월하의 공동묘지’? 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꺼떡이며 일어났다.
난, 동자동으로 가야해 남은 술을 마시며 자리를 지켰다.






종로3가 지하철로 가는 길에 ‘국악’에 잠시 들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장경호씨가 있었다.
빈털터리 주제에 왜 비싼 술집에서 여인네들 접대를 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밝히지 않는 사람이건만, 외로워서 그럴까?
혼자 두고 오려니 마음에 걸렸으나, 더 취하기 전에 나와야 했다.






낙원상가 앞길에는 성기준씨 일행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밤이 되면 인사동 곳곳에 반가운 사람들이 박혀 있어 좋다.
새로운 인사동 풍류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사진,글/ 조문호






















인사동을 사랑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다들 자기 집에서 지내다, 큰 맘 먹어야 나오는데 나와도 잘 만나지지 않는다.
가끔 주변 전시오프닝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런 기회마저 많지 않다.

일 때문에 인사동에 나가도 미리 약속 하지 않으면 아무도 만날 수 없다.
술꾼들이 방앗간처럼 들리는 ‘유목민’에서 가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들이가 잦지 않으니, 대개 해가 바뀌어도 얼굴 한 번 못 보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고, 만나면 몇 번이나 더 만나겠는가?
예전에는 ‘인사동 사람들’이라는 ‘창예헌“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판을 벌여 왔으나
그마저 물주 김명성씨의 사업이 쇠락하여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를 애석하게 생각해 온 조준영시인이 가끔 연락해 만나기야 하지만 10여명에 불과하다.
이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회비를 조금씩 걷어 그런지 모르지만,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한 사람이 맡아 여기 저기 사발통문을 보내지 않아 그럴거다.






그 날, 내가 제안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날짜를 정해두고, 일 없는 분들은 인사동으로 나오자고 했다.
시간은 정 할 필요가 없지만, 장소는 인사동 낭만의 마지막 보루인

벽치기 샛길에 있는 ‘유목민’도 좋고,  인사동 11길에 있는 '부산식당',  

인사동 8길의 '사동집'이나 '낭만', 아니면 6길의 '툇마루'던, 어디던 들려보자.

특정한 분들끼리 만나려면 장소를 페북이나 카톡에 알려, 함께 놀자는 것이다.


어느 한 집을 지정하여 약속하는 것도 좋지만, 약속 없이 만나는 즐거움이 더 좋다.

매월 몇일로 날자를 정하던지, 아니면 전시들이 열리는 몇째주 수요일로 택해도 좋다.

어느 특정한 날은 인사동에서 친구들과 술 마시는 날로 정하자는 것이다.

지방에서 오는 분들도 약속을 그 날로 잡아두면 님도 보고 뽕도 따지 않겠는가.

인사동에 애착을 가진 많은 예술가들의 의견들을 한 번 듣고 싶다.






몇 일 전 조준영 시인의 연락을 받았다. 27일 오후6시30분경 ‘유목민’에서 얼굴 한 번 보자는것이다.

요즘에는 가야할 전시나 일이 몰려 시간내기가 어렵지만, 다행히 그 날은 약속이 없었다.
시간 맞추어 나갔더니,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화가 장경호, 전강호씨가 판을 벌여 놓았다.
뒤이어 음악인 김상현씨와 연극배우 이명희씨가 등장하였고,

김명성, 공윤희씨가 차례로 나타나 술자리가 두 패로 갈라졌다.






음악인 김상현씨가 나를 위해 부른다며 ‘봄이 오면“이란 신곡을 열창했는데,
이 노래 역시 짠한 슬픔을 남겼다. 왜, 봄은 와도 슬프고 가도 슬픈가?


전복안주가 나오니, 전강호씨가 몸 보신하라며 전복을 권했다.
농담으로 ‘몸 좋아져 거시기 발동하면, 책임 질거냐?’니까 조준영시인 말한다.
"남자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정력 타령이고,
여자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화장을 한단다."
꽃은 나비를 불러 들여야 하고, 나비는 씨를 뿌려야 하는 엄정한 자연의 이치를 어찌 할거나...






자리에 앉기 전에는 이승철, 김이하 시인이 마시다 갔고,

뒤늦게는 화가 김정헌씨와 최유진, 이상훈씨도 등장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뒤져보니, 전 날 찍힌 장경호, 성기준, 강기숙, 홍인호씨의 모습도 들어있네.

좌우지간,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인사동에서 만나, 못 다한 시름 풀어보자.

사는 게 별거냐?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다.


사진, 글 / 조문호






































탄핵을 하루 앞둔 지난9일 저녁의 안국역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촛불시민들은 중요한 날, 소란 피우지 말자며 일찍 흩어졌으나,

낙원상가에서 헌재 가는 길에 몰려있던 태극기부대는 분위기가 험악했다.

신들린 사람처럼 탄핵반대를 외치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욕설을 퍼부었다.

 

언론보도에 불만을 가져, 사진찍는 자들을 철천지 원수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주최 측 사람나 태극기부대만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었다.

나 같은 늙은이야 태극기부대로 보아 넘길 만도 하지만, 봐 주지 않았다.

태극기 하나 들고 위장이라도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사기 쳐 뭐하겠나 싶어 돌아섰다.



 


일찍 부터 유목민에서 죽치고 있는 화가 장경호씨와 합류했다.

종로경찰서 옆이라 유목민’엔 손님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부근에 모인 촛불시민들은 일찍 흩어졌지만,

한 사람이 간신히 드나 들수 있는 샛길도 모르거니와 골목 안 구석에 박힌 유목민을 알 리 없었다.

 

유목민에는 주인장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유진오씨가 마주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좀 있으니, 이승철 시인도 나타났다. 옆 자리엔 황 혁, 김기준, 이기묘, 성영만,

김응규, 박성원, 조봉훈씨 등 여러 명이 날아들어, 사진도 찍고 인사도 땡겼다.

밤 늦은 시간, 어디서 꺾었는지 꽃망울 맺힌 벚꽃 가지를 든 신현수씨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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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술이 취해도 좀처럼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그 병신 년 때문인지?

개구신들이 다 꼬리내려, 술자리 조가 잘 맞지 않았던지? 

예전 같았으면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봄날은 간다도 한 곡 뽑았을 것이나,

이런 저런 생각만 많아진다이제 철든 것일까?

 

그러나, 철들기를 절대 거부한다. 봄이 오면 미친 듯이 한 번 놀 것이다.

조지피면 같이 웃고, 조지 지면 같이 우는, 알뜰한 그 맹세를 불러대며...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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