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무렵, 강 민선생으로 부터 인사동에서 점심이나 먹자는 연락이 왔다.
전 날 정영신씨와 밤늦도록 퍼마신 생일 술에 빌빌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을 뵌 지도 오래되었지만, 요즘 식욕마저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냉수만 들이 키고 세수도 못한 채 나갔으나 선생님께서 먼저 나와 계셨다.

툇마루 건물 1층의 ‘나주곰탕’집에 돌아 앉아 계셨는데, 그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계절 탓일까? 아니면 친구들이 떠난 빈자리 때문일까?






선생님께 인사드렸더니 대뜸 “요즘 인사동에 나오면 아무도 못 만나.
‘유목민’까지 문 닫혀 갈 곳도 없어”라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렇다. 요즘은 미리 약속 하지 않고 나오면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저녁시간이라면 단골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분이라도 있지만,
낮 시간에는 갈 때도 마땅찮아 관광객처럼 거리만 기웃거려야 한다.






인사동에서 자주 만났던 심우성 선생은 요즘 ‘공주요양원’에 가 계시고,
방동규선생은 바쁜 일로 뵐 수 없고, 오늘은 김승환선생 마저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선생님의 얼굴빛에서 외로움이 묻어났다.
식욕도 잃고 몸이 편치 않은 것도 외로움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주변머리가 없어 선생님께 위안조차 드릴 수 없었다.






쏙이 쓰렸지만, 밥보다는 술이 더 땡겼다.
빈 속에 들어가는 소주의 짜릿한 쾌감을 한 두차례 느꼈더니, 바로 어제 밤으로 돌아갔다.
그때사 연극배우 이명희씨가 나타나 주절주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머쓱한 술자리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이가 들면 유식한 말보다는 실없는 이야기들이 훨씬 듣기 편하다.






마침 밥집 앞을 지나가던 화가 박성남씨와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수송동의 ’고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도 주었다.
아버지 박수근화백에 이어 아들까지 화가 길을 들어 서,
이제 삼대 째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집안인데, 그의 전시 작품이 궁금했다.
박화백은 동갑내기지만,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멋쟁인데,
몇 년 사이 많이 늙어 보였다. 흐르는 세월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소주를 한 병 더 시키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혼자 낮술에 취해 추접을 떨어 댔는데, 아무래도 죽기 전에는 철들기 어려울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밀려오는 외로움에 지랄발광을 떨지만, 공허할 뿐이다.
그 사이 강민 선생님께서 밥값을 먼저 계산해 버렸다.
모처럼 밥 한끼 대접하려고 단단히 마음 먹었는데, 그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인사동 사람들’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서서히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것 같았다.
다방커피 한 잔으로 먼저 일어나야 했는데, 선생님께 인사라도 제대로 드렸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맞은 마광수씨의 자살 소식에 술이 뻔쩍 깼다.
그건 마광수씨 개인의 죽음에 앞서 사회적 소외와 인간적 외로움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죽음이었고, 사회를 향한 일종의 경종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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