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터줏대감 채현국 선생께서 복막염으로 서울대병원에서 가료중이다.

병문안 드리려 지난 25일, '유목민' 전활철씨와 병원에 들렸더니,

사모님 혼자 병실을 지키고 계셨다.
대학로 내려가는 길목의 커피숍으로 오라신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 선생님의 손을 잡았는데,
손아귀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힘이 펄펄하셨다.






병원에 입원하신지가 오늘로 십팔일 째이지만,
금식중이라 커피도 입만 축였는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실까?

좌우지간 별난 선생님이시다.
오척단구의 거한,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 등 선생님을 대신하는 이름들도 숱한데,
반세기가 가깝도록 인사동에 나타나시어 가난한 예술가들 술값 대주고
차비까지 붙여주는 그런 구세주였다.






몇 년 전 부터 세상에 너무 알려져, 이젠 간첩도 다 아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채현국선생님이 세상에 알려지며, 인사동에서 자주 만나 뵐 수 없었다.
초청 강의가 전국에서 물밀 듯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두 세시간의 강의를 꼿꼿하게 서서 하시는 등 체력을 과시했으나,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이제 선생님 연세가 팔순을 훌쩍 넘기셨으니...





섞은 사회의 오래된 통념을 가감하게 깨부수는 선생님 말씀에 짜릿한 희열도 맛 볼 수 있었다.


사실 선생님 덕분으로 우유부단하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 넘어가는 나의 나쁜 성격을 완전히 뜯어 고치게 했으니, 나에게는 큰 스승이셨다.

등달아 입바른 소리해댔다가 이젠 친구까지 잃어버린 외톨이 신세가 되었지만,
많지 않은 남은 인생 쪽팔리게 살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선생님께서 처음엔 부산대학병원에 맹장염으로 입원하셨다가
오진에 의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복막염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곧 퇴원하실 계획이셨다.


사모님까지 고생시키는 힘든 일을 치러고 계시지만,
오히려 건강을 보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찻집에서 “이제, 식구들을 위해 살거다”란 말씀도 하셨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가족에게 소홀했던 점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의사선생님이 찾는다는 사모님의 전화로 선생님을 모시고 병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방귀는 물론 대변까지 시원하게 보아, 모처럼 식사를 맛있게 드셨다.


“선생님의 쾌유를 축하합니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기원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 쯤 퇴원하실 계획이니 병문안 하실 분은 서두르기 바랍니다.
병실은 대학로 서울대병원 6509호입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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