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낳은 의인 방동규선생의 미수연이

지난23일 정오 무렵, 조계사 옆 '은성한정식'에서 열렸다.

 

지난해 통일뉴스창간 21주년을 맞은 시상식에서

유튜브 채널의 첫발을 떼게 한 방배추 유튜브팀이 특별공로상을 수상함에 따라, 

'통일뉴스'에서 방동규선생 미수연을 마련한 것 같았다.

 

올해로 88세를 맞이한 방동규선생 미수연에는 사모님 이신자여사,

딸 방그레와 방시레 등 가족을 비롯하여 이계환, 구중서, 염무웅, 김승환, 백낙청,

정지창, 유인태, 주재환, 신학철, 김정헌, 민정기, 명진스님, 김명성, 최원일, 임진택,

장순향, 장봉숙, 정영신, 김지영, 채원희, 경복궁 재직동료 등 친구와 후배 

30여명이 참석하여 선생의 생신을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리꾼 임진택씨가 농부가와 사철가를 부르자

춤꾼 장순향씨가 나서서 너울 춤을 추는 등, 잔치가 흥겨웠다.

 

방동규 선생께서는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불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으나,

사모님 이신자여사의 노래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아마 젊은 시절 성악가로 활동하셨는지,

아직까지 프로 못지않은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명진스님은 스님답지 않게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기도 했다.

 

미수연에 참석한 분들이 차례대로 축하말씀이나 선생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어찌나 기구한 사연이 많은지, 이야기 듣느라 음식을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재야운동가 고 백기완선생, 소설가 황석영씨와 더불어 조선의 삼대 구라로 불리는

방동규선생은 입심뿐 아니라 주먹도 보통주먹이 아니다.

 

되지 못한 세상에서는 / 꼭 엉뚱하기는 / 천장에 매달린 / 대들보 같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 /

힘깨나 쓰지만 힘자랑보다 / 입심 좋아 / 그 입심에 술자리 눈과 귀 집중하다가 /

술자리 입들 짝 벌어져 / / 와 웃음 터진다.”

 

20여년 전에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서 방동규선생을 묘사한 시다.

땅에 뿌리 박고 천장을 받치고 있어야 할 대들보가 천장에 매달린 형국이라니,

방선생의 인생이 그만큼 기묘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방선생은 1935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48년 월남하여 서울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불렸고,

튼실한 체력을 바탕으로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백기완, 이부영, 김태홍, 구중서선생 등 수많은

재야세력과 교분을 쌓아 지난한 민주화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다.

 

광화문 촛불집회도 빠지지 않았지만, 아직도 투쟁 현장에서 선생을 종종 뵐 수 있다.

그러한 몸사리지 않는 투쟁정신에 어찌 고난이 따르지 않을소냐?

 

재야인사들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로 복역하기도 했고,

86년에는 지 사건에 휘말린 김태홍 전 의원을 숨겨줘, 고문기술자에게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그리고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듯 이일 저일 가리지 않는다.

서른이 되던 해에는 파독 광부생활을 했고, 4년여 파리에서 유랑생활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고급양장점 살롱드방을 운영했고

73년에는 강원도 철원의 노느메기밭에서 공동체생활의 꿈을 이뤘다.

 

79년부터 2년 동안 중동 아랍에미리트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다.

 91년에는 서해화성 CEO로 취임했고, 94년에는 중국공장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헬스클럽 강사로 변신했고,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도 일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없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장배 보디빌딩 대회에 최고령자로 참가해 상을 받았는데,

구순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꾸준한 근육운동으로 몸 관리를 하신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16년 전 선생께서 펴 내신

'배추가 돌아왔다"[전2권]에 실렸는데, 이름보다 방배추가 더 잘알려진 이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일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푼되지 않는 돈을 벌기위해 가내수공업 잔업까지 하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진정한 어른이 없는 시대가 아니던가?

정도를 보여주는 어른이 귀한 세상이라

젊은이들이 나쁜 짓을 해도 다들 못 본척 몸을 사리는데,

선생께서는 절대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지병으로 운신을 못하거나 치매에 걸려 정신없는 현실도 서글프지만,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정정한 노인들의 추함이다.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아집과 독선, 물질과 허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늙어감을 추잡하게 만든다.

 

그런 것으로 부터 훌쩍 벗어난 분이 바로 방동규선생인 것이다.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이기 까지 한다.

탐욕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던가?

 

겸손하기 이를데 없는 선생의 답사도 재미있었다.

"난,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다. 어영 부영 열심히 살았다:"

 

팔팔하신 방동규 선생님의 미수연을 축하하며 만수무강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사진은 누가 찍은 사진인지 모르지만, 장순향씨 페북에 있는 사진을 옮겨 트리밍했다.

이날 방동규선생 미수연은 아들 선거사무실 개소식과 겹쳐

인사만 드리고 갈 작정이었으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금새 두시간이 지나버렸다.

잔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마침 다른 분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양해를 구하지 못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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