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참 빠르다.

문영태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째란다.

 

지난 19일 문영태화백의 3주기를 맞아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에 위치한 민예사랑에서 문영태 유작전이 열렸다.

두 권의 추모집, “심상석-문영태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출판기념회를 겸하여...


 

그의 작품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전시된 유작들을 둘러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문영태화백이 옆에서 싱긋이 웃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그 전시공간은 문화백이 많은 시간을 보낸 집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곳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품 보여 달라니까, 약 올리듯 전시나 한 번 해볼까라는 아리숭한 말을 했던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도 사진 촬영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전시를 준비한 미망인 장재순여사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소품의 배치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미를 보여주며 작품을 돋보이게 하였다.

이 전시를 위해 전시장 구조를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재개관했다는데,

작품 배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문영태 화백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이나 마찬가지인 상처 난 두개골을 보면, 바로 시대정신이 생각난다.

제일 먼저 문영태씨 그림을 본 것이 시대정신표지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리민족의 아픔에 앞서,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두개골의 상처를 광주항쟁에서 피 흘린 민중의 상처로 보았다.

판화가 오 윤씨의 그림이 동적이라면

그의 그림은 정적이면서도 더 충동질 하는 매력이 있다.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의 정서가 묻어나는 심상석'시리즈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내 세우기 싫어하는 선비적 성격으로,

그 작품들이 부각되지 못한 채, 덜 평가되었다는 견해들도 생각해 볼 문제다.


 

신학철선생 말처럼, 그는 지사(志士)의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화가이기 전에 문화운동가였다.

전시와 출판기획은 물론 문화운동가로서, 저술가로서, 더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1980년대 초반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등 중요한 전시와 출판을 주도했다,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며

민중미술을 확장시키며 현장을 지켜 온 장본인이다.


 

90년대, 지금의 김포 문수산방에 정착한 이후에는

민속학적 문화에 바탕을 둔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진보월간지 사회평론'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을 연재하였는데,

그의 깔끔한 문체와 독보적인 비평의 글들은 독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무렵에는 사진가 이지누씨를 비롯한 16명의 작가들로

'경의선모임'을 결성한 후 사진 작업도 했다.

다들, 그림이나 문학, 사진 등이 예술이기 전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작가적 문제의식은 사진집 분단풍경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 뒤 시인 김정환씨가 대본을 쓰고 자신이 사진을 찍어 두 사람을 출판하는 등

사진작업도 열심히 한 팔방미인이다.


 

이번 유작전은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부터 사진작업인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전시인데,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기를 연상시키는 돌의 형상으로 민중 신앙을 표현했던 심상석

광주항쟁을 겪으며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적 상흔을 상징하는

상처투성이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둘러보며 남다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벽에다 쓰 놓은 古風이란 붓글도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서재에서 문영태 화백을 증언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책이나 집기는 물론 그 어느 것 하나 그의 손 때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문영태화백의 작품과 활동 자료가 담긴 심상석-문영태

그가 집필한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도 출판되었는데,

뒤늦게 심상석을 펼쳐보며, 도록을 만들고 전시를 추진한

나무아트김진하씨의 안목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짚어 낸 그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찾아 낸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문영태화백의 전모를 제대로 살펴 볼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다


   

 

그 날 개막식은 문영태화백 미망인 장재순여사와 아들 문지함, 김윤지 내외,

그리고 딸 문지민 등의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 사회로 진행되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정갈한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가 그린 상처 난 뒤통수는 분단의 아픔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던 그 때 모습이 그립다고도 했다.


    

이재권동문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는 관점이나 칼라를 보는 관점도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었다고도 추억했다.


 

그 외에도 성기훈 마을이장과 김정환시인, 김진하, 이인철, 홍선웅씨 등

많은 분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의 인사말을 했고,

자리를 마련한 장재순여사의 감사 인사도 따랐다.

집안 곳곳에 그이의 손길이 남아 더 마음이 아프다

사무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 외 참석한 분으로는 류충렬, 김명희, 박불똥, 안창홍, 장경호,

이재민, 손기환, 김영중, 박정현, 양정애, 정재숙, 정동용, 김 구,

한상진, 김재홍, 최경태, 김종길, 양상용, 노광래, 편근희, 정영신,

나종희, 김영진, 송용민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 전에는 유흥준씨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했고,

밤늦게는 유연복씨와 김준권씨가 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은 오는 62일까지 김포 보구곶리에 위치한

겔러리 민예사랑’(010-5357-5256)에서 열린다.

여행하듯 훌쩍 떠나시어최북단 마을의 정취에 빠져 좋은 전시 한 번 관람하기 바란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사진들이 하나같이 한변의 촛점이 선명하지 않아 카메라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렌즈를 살펴보니, 막걸리 자욱이 선명하네.

난, 소주를 마셨는데, 그기 왜 막걸리가 들어갔을까?

아마 카메라는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던 모양이지.

나만 취하면 그만이지, 너까지 취해 버리면 난 어떻해!

사진 물어 내놔~













 

 

 


최북단마을 김포시 월곶면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려...

[서울문화투데이]2018년 05월 22일 (화) 13:34:56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문영태추모위원회’에서 기획한 문영태 유작전이 지난 19일 오후4시, 북한을 눈앞에 둔 최북단마을 김포 월곶면에 자리한 갤러리 ‘민예사랑’에서 개막되었다. 이 유작전은 인사동에서 ‘민예사랑’을 운영하는 미망인 장재순씨가 미술관을 새롭게 개관하며 마련하였다.

민중문화운동가이기도 했던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에는 80년대 작업한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에서 부터 사진작업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



▲ 심상석-상황, 종이에 연필, 53X53cmX4


3주기에 맞춰 마련한 문영태 유작전 개막식에는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의 사회로 진행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문영태의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분단의 문제로 보인다. 그의 ‘심상석’(心象石) 연작은 어떤 표현도 가능하기에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본다. 모더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은 그의 모습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자화상,종이에 연필, 31X49cm, 2002


이재권 동문은 ”대학 다닐 때의 문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 그의 그림 속에도 도를 보는 관점, 칼라를 보는 관점이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다고도 했다.


린다노클린은 "예술의 목표는 그 시대의 모습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것이며, 예술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는 그 시대의 세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상이나 상징보다는 사회적 제 조건과 보다 간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 장재순'민예사랑'대표 Ⓒ정영신


민중문화운동가였던 문영태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80년대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을 추진하였고,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면서 출판과 전시기획,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며 동시대의 삶을 성찰해왔다.


▲ 천지인 115X77X20cm 상석에 조각 1995


화가 박건씨는 1980년 문영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시대정신>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미술운동가들이 함께 만든 최초의 민중문화운동 담론지로서 나중에 ‘민미협’과 ‘민예총’으로 가는 다리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또한 문영태는 “공공성과 민중문화에 대한 존중감이 높은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 나무화랑 대표이자 평론가 김진하씨 Ⓒ정영신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문영태의 심상석 연작은 1977녀부터 1983년까지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품으로 ‘심상석’은 마음의 형상이 새겨진 돌, 혹은 돌에 새겨진 마음이다. 어떤 것이든 무형의 마음이 구체적사물인 돌로 치환하는 마음과 돌이 인과 혹은 등가의 의미를 띄는 단어이다.


▲ 심상석-결합, 종이판화, 44


타제 마제석기를 연상시키는 ‘심상석’작품은 대체적으로 무겁고 심각하다며, 마음이나 정서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한, 혹은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몸과 두개골 등에 상흔이 새겨진 사람들, 일상적인 삶의 무게와 민중적 생명력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단단한 돌에 풍화작용처럼 마음의 흔적이 심상(心象)으로 새겨진다는 것은 뭇 생명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생존에의 의지가 긴 세월 인고의 세월을 부침하며 견딘 결과라며, 문영태의 심상석에서 기층 민중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恨)의 정서가 동시에 묻어난다고 작가론에 적었다.



▲ 심상석 78-3, 종이에 연필, 168X122cm, 1978


특히 문영태는 1990년 경의선모임이란 공동작업체를 만들어 사진 작업도 했다. 문영태가 주축이 되어 사진가 이지누, 화가 박불똥, 유연복, 최민화, 김기호, 김태희, 남궁산, 백창흠, 박 건, 송진헌, 유은종, 이정희, 조경숙, 공예가 김원갑, 이송열, 미술평론가 라원식씨 등 열일곱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결과물로 ‘눈빛출판사’에서 ‘분단풍경’사진집을 펴냈다.

▲ 국도 7번 도로변- '분단풍경'사진집에서


‘분단풍경’ 사진작업 이후로는 김포 월곶리 자택에 칩거하며 평소 관심가진 전통적인 민중성과 민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기층 민중들의 생활사에 기반 한 민속민예문화를 연구하면서 상처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무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꾸었고, 그런 민초들의 생명력에서 서로를 보듬는 미술의 민중성을 지향해 왔다.


▲ 시대정신 창간호,1983-1987


새롭게 자리잡은 ‘민예사랑’개관과 문영태 3주기 유작전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민예총’이사장 박불똥씨, 화가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씨, 사진가 조문호, 판화가 홍선웅, 미술평론가 김진하, 동영상을 제작한 양정애씨등 ‘문영태추모위원회’를 비롯한 친지와 많은 지인들이 찾아 와 고인을 추모하며 유작전을 관람했다.



▲ 김포 월곶리 '민예사랑' 전시된 작품 Ⓒ정영신


이날 추모전시에서는 ‘나무아트’대표 김진하씨가 만든 자료집 <심상석·문영태>와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몰가부-자루 빠진 도끼)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책에는 1990년대 ‘분단풍경 : 열일곱 사람의 경의선 사진작업’ 그룹을 결성하고 분단된 국토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찍어둔 필름들, 시인 김정환과 공동으로 펴낸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두 사람>, 1996~98 월간 <사회평론 길>에 연재한 ‘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 2001년 사진가 이지누와 공동으로 발간한 계간 <디새집>에 연재한 ‘궁시렁 궁시렁 문영태의 집 이야기’ 등 문영태선생의 후반기 글쓰기 작업까지 한데 모아서 엮었다.



▲ 좌)'심상석-문영태'도록표지, 우)'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 책표지


문영태선생의 유작전은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문의 (010-5357-5256 민예사랑)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 정영신기자


▲ ‘쓴 맛이 사는 맛'으로 인사동 작가전을 연 채현국 선생 Ⓒ정영신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 60여명 참가,. 수익금은 생활 어려운 작가들에게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이름을 내 건 이색적인 전시가 지난 15일 오후5시 ‘인사아트프라자’ 3층에서 개막됐다.

'쓴맛에 생각도 하고, 쓴맛에 괴로웠고 아팠지만, 그 쓴맛에 사람이 깊어진다'는 '건달'할배' 채현국'선생의 말씀에 따라, 회화, 사진, 조각, 서예, 도예, 새김아트, 금속공예, 섬유공예 등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 60여명이 뭉친 것이다.


 

개막식에는 참여작가 외에도 이부영, 임재경, 이애주, 유홍준씨 등 2백여명의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모인 전시가 쉽지 않은데, 바로 이것이 채현국 선생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 전시 축하를 위해 참석해주신 이애주,이부영,임재경,채현국선생(왼쪽부터) Ⓒ정영신


건달할배 채현국 선생은 인사말에서 같이 어울리고 함께 살자는 의미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되었는데, 전시회 수익으로 생활이 어려운 문화예술인들을 돕는다고 했다. 욕심을 부린다면 참여 작가들과 함께 남북을 걸어서 가보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


  

▲ 방혜자선생의 '생명의 숨결' 15호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는 질타로 이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채현국 선생은 현재 경남 양산에 있는 효암학원 이사장이다. ‘쓴맛이 사는 맛’으로 세상에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선생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른이기도 하다.


  

▲ 주재환선생의 '이곳과 저곳' 캔버스에 유화 90.5x90.5cm,2008


시인 신경림 선생은 ‘쓴맛이 사는 맛’ 전시에 부쳐 “그는 거인이다. 키는 작지만 생각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고 큰 것을 향해 성큼성큼 발도 빠르다/ 그는 젊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전혀 늙지 않는다/ 그래서 늘 거침이 없고 늘 싱싱하다/ 게다가 그는 부자다. 돈은 없으면서도 늘 남을 도울 것을 생각하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느라 분주하다/ 이웃과 친구들이 다 잘 살길을 찾느라 늘 바쁘다/ 가장 크고 가장 젊고 가장 부자인 그는/ 그래서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쁜 늙은이다.”라고 썼다.

이 헌시(獻詩)에 채현국 선생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 김정헌작가의 '이승과 저승-시원소주' 캔버스에 아크릴과 종이꼴라쥬,91x91cm


채현국 선생의 부름에 놓았던 붓을 다시 들어 그림을 완성했다는 화가도 있었다. 박재동 화백은 개구쟁이 같은 채현국 선생의 초상화를 선보였고, 단색화의 대표작가인 이우환 선생의 작품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출품한 작품으로 전시장은 가득 메워졌다.



  
▲ 민정기작가의 '우리섬 독도 삼형제 굴바위' 105x107cm oil on canvas,2015

이번 전시에 참여한 많은 작가 중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을 대표해온 작가 신학철 선생은 캔버스 위에 포토몽타주, 포토리얼리즘 기법으로 시대정신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역사를 관념이 아닌 구체적 실체로서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 ‘모내기’ 그림은 1989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당국에 압수되었고, 3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판문점 풍경으로 분단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 신학철 선생의 '가야할 길' 116x81cm,2017


조절된 에너지와 침묵의 힘을 빛의 순간으로 보여주는 방혜자 선생은 ‘생명의 숨결’을 내놓았고, 시계가 멈춘 탄광촌의 삶을 그로테스크한 질감으로 그려내는 황재형 작가는 ‘Bus’를 출품했다.


  

▲ 황재형화가의 'Bus'53ㅌ72.7cm, 캔버스에 유채,1993


비닐과 골판지, 폐품과 종이 등을 재활용해 발랄하고 통통 튀는 작품으로 블랙유머를 시대정신으로 재현하는 주재환 선생의 ‘이곳과 저곳',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비판적 리얼리즘 작가이자 문화운동가인 김정헌 선생의 ‘이승과 저승-시원소주’, 인사동 그림판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의 ‘묵시’는 삶에 지친 인간의 초상으로 오늘의 시대정신을 말하고 있다.


  

▲ 장경화화가의 '묵시' 72.7x90.9cm Oil on canvas,2011


조각가 박상희씨는 예수를 안고 있는 부처를 통해 세상의 다툼과 분리에 저항하는 ‘삐에타’를 선보였다. 우주의 근원적 생명과 사랑을 표현하는 화가강찬모는 ‘빛의사랑’을, 키치화풍의 전형성을 재창출하여 미학적 엄숙주의에 빠져있는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민정기화백은 우리시대 삶의 풍경인 ‘우리섬 독도 삼형제 굴바위’작품을 내놓았다.


  

▲ 박상희조각가의 '삐에타' 67x53x94cm, mixed media,2012


이번에 작품을 내놓은 대부분의 작가들은 채현국선생과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채현국 선생은 인사동 허름한 술집을 찾아다니며 가난한 작가들의 술값을 말없이 내주고, 힘들어하는 작가에게는 슬그머니 지폐를 호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이 술집 저 술집을 떠돌며 주머니가 텅텅 빌 때 까지 사람 만나기를 계속해 온 구세주 같은 분이었다.


  

▲ 박재동 화백의 '채현국선생' 종이에먹,2017


작가들은 오랫동안 채현국 선생에게 빚진 술값을 갚기라도 하듯, 전시 소식에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작품을 내놓았다. 어려운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자선바자회지만, 잘 알고 지낸 작가들이 함께 어울리는 이러한 전시는 단발성으로 끝내는 것보다 해마다 했으면 하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았다.


  

▲ 강찬모화백의 '빛의사랑' 53x72cm, 한지에 한국전통채색기법및안료,2017


참여 작가인 조문호 사진가는 오래전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창예헌’ 사람들이 다시 뭉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2008년 창립되어 몇 년 전부터 흐지부지된 ‘창예헌’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 200여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기능을 상실한 오늘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다시 부활시키자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채현국 선생은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것도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기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어야 인생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고 말씀하셨다. 선생이야 말로 염치를 아는 이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아닌가 싶다.


  

▲ ‘쓴 맛이 사는 맛'전을 위해 모인 문화예술인들 Ⓒ정영신


건달 할배 채현국과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전 ‘쓴 맛이 사는 맛’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 3층에서 열리고, 다음달 12일부터 25일까지는 유카리화랑에서 이어진다. 전시작품을 판매한 수익금은 생활이 어려운 작가들을 위해 쓰인다.

 

-정영신사진-

 

 

박근혜가 끝장 난 지난 10일 오후에는 ‘광화문미술행동‘의 뒤풀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탄액이 인용될 것으로 알고, 미리부터 날자를 잡아 둔 것이다. 

그 날 헌재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진가 전민조씨도 보였고, 안해룡, 성남훈씨도 만났다.

 

 

 

 

 

 

 

예견했던 것처럼 만장일치로 가결되는 걸 보고, 모두들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헌재 앞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하다 정영신, 장경호씨를 만나,

시원한 생대구탕으로 점심 식사도 했다.

 

 

 

 

 

오후 여섯시 무렵 약속장소인 인사동 ‘풍류사랑’에 갔더니다들 싱글벙글 모여들었다.

 

병신 년 하나 때문에 몇 달 간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그 날은 '광화문미술행동'의 결산을 겸한 자리였는데, 팔백만원이나 빚졌더라.
광화문 현장에서 김준권, 류연복, 윤여걸, 유대수씨 등 여러 명이 판화도 찍어 팔고 독지가들의 후원도 받았으나,
그 돈으론 한 참 모자랐다. 결국 총대 맨 김준권씨가 끌어안게 되었는데, 결과라도 좋았으니 다행이다 싶다.
가난한 동지들 술 한 잔 크게 대접한 걸로 여기시길... 그 날은 개털인 나도 기분 좋아 술 한 잔 사고 싶더라니까.
그 날 ‘풍류사랑’ 술 값도 꽤 나왔을 텐데, 마침 신학철 선생께서 맡아 주셨다.

 

 


-정영신사진-

 

 

‘광화문미술행동’은 김준권, 류연복, 김진하씨가 지난 12월 초순에 깃발을 든 모임이다,
모두들 박근혜에 열 받아 뭉쳤는데, 시민혁명에 동참하려는 많은 작가들이 모여 판을 키운 것이다.
그동안 열 네 차례에 걸쳐 다양한 퍼포먼스와 전시를 벌이며 촛불시민들과 함께 어울렸는데,
예술이 대중 속으로 녹아든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가난한 작가들이 고생은 했지만, 현장 미술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은 틀림없다.



 



 

이제 마지막 ‘촛불역사’사진전만 남았다.
오늘부터 21일까지 광화문광장의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열린다.
곽명우, 권 홍, 김문호, 김이하, 노숙택, 박영환, 부은정, 양시영, 엄상빈, 이재민, 정영신,

조문호, 채원희, 최연택, 하형우, 홍윤하, 정덕수, 강민, 김명지, 양혜경씨등

사진가, 시인, 화가, 촛불시민들이 함께 한 전시로, 난 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열림식은 오후4시로 시간나면 한 번 들려 구경하세요.

 

 



 

그 날 뒤풀이에 함께한 분은 김준권씨를 비롯하여 신학철, 류연복, 김남선, 김진하, 장경호, 정덕수, 송용민, 여태명,
김영배, 이인철, 장순향, 이원석, 유대수, 정영신, 정고암, 이도윤, 하형우, 하태웅, 김이하, 김천일, 이철재, 이재민,
윤병권, 강성봉, 이광군, 김보영씨 등 많은 분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뒷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느닷없이 서예가 여태명씨가 '난 빨갱이'라고 자랑했다. 하기야 박사모라면 모인 사람 모두를 빨갱이로 보이겠지만,

그는 확실히 빨갱이 였다. 상의에서 모자, 양말까지 모두 빨간색인데, 팬티까지 빨간색이었다. 

 

 

 



 

이 날은 서촌에 안가까지 준비해 두어 지방 분 들도 집에 갈 걱정 없이 혁대 풀고 마실 수 있었다.
‘풍류사랑’ 안방에는 채현국, 임재경선생과 임진택씨 등 여러 명이 자리하고 계셨는데, 와인 한 병을 선물 받았다.


난, 혼자서는 술 마시지 않아, 류연복씨에게 주었는데, 그 술이 돌고 돌아 정영신씨 손에 들어갔더라.
‘촛불 역사전’ 사진 프린트 도와주러 녹번동에 갔다가, 덕분에 잘 마셨다.

 




술 취해 여럿이 ‘광화문광장’으로 다시 나갔는데, 늦은 밤이라 기쁨의 열기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뒤늦게 광장에 나온 최석태씨를 만났으나, 곧 바로 헤어져야 했다.

그 이틀 날의 마지막 축제를 즐기려면 좀 쉬어야 하니까...

사진, 글 / 조문호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지난 삼일절도 광화문광장에 촛불집회가 열렸다.
‘광화문 미술행동’의 열한 번째 프로젝트는 ‘민주주의 촛불공화국만세!!!’였다.





이 날은 보수단체들이 모이는 시청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로 뒤 덥혔다.

보수단체에서 악용해 온 태극기마저도, 이 날은 밉지 않게 보였다.

충돌을 우려하여 경찰들이 차벽치고 난리를 피웠지만, 한 가닥 기대도 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내 세운, 이 날 만큼은 태극기로 하나 되는 헛꿈을 꾼 것이다.

오히려 광화문까지 밀고 들어와 대형 확성기로 방해하며 망언을 해댔다.

이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사이비종교집단의 맹신도 같았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퇴진행동’과 ‘광화문 미술행동’에서는 예정된 행동을 벌였고,

30만에 달하는 많은 촛불시민들이 모여 박근혜 구속과 황교안 탄핵을 외쳤다.

‘광화문 미술행동’에서 펼치는 예술행동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오픈 에어 갤러리’ 기획전이다.

아니, ‘오픈 에어 갤러리’가 아니라 ‘바람찬 전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난 주 백기완선생께서 이름을 다시 지어주셨다고 했다.





이번에는 태극기에 관한 자료 전시가 열렸다.

태극기는 삼일절에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보수단체의 태극기 오용이 도를 넘는 시점에서, 아주 시의적절 했다.


친일파가 해방이 되니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어 그린 것부터,

여성 속옷 베에 그려진 태극기도 있고, 싸움터에 동원된 것 같은 태극기도 있었다.

그 태극기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뚫린 구멍과 혈흔이 묻어 있었다.





태극기는 국가에 대한 기호로서의 이미지에 앞 서, 3.1 독립운동에서 시작되어

민주화운동에 이르기 까지 국민들 마음에 소중하게 자리 잡은 국기이다.

이런 태극기가 부패한 정치집단의 무능을 가리는 도구로 오용되고 있으니,

태극기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기도 했다.






태극기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많은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등 분주했다.

비록 하루 열린 전시였지만, 어느 대형전시장도 이만한 관객동원이 쉽지 않다.

실사 이미지긴 하지만 대형 프린트의 시각적 효과는 야외전으로서는 그지 그만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보고 가는데, 중요한 것은 전시내용이 매번 볼 만하다는 것이다.

여지 것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가인 김진하씨가 기획과 전시 디자인을 해 왔다.





그런데, 자신의 화랑 일은 제쳐두고 이 일에 매달리는 김진하씨 뿐만 아니라,

‘광화문 미술행동’을 이끄는 많은 작가들의 숨은 노력과 땀이 베어있다.

대표 김준권씨와 류연복씨는 말할 것도 없고, 김남선, 정덕수, 송용민, 장경호, 여태명, 정고암, 김성장,

이재민, 강성봉씨 외에도 많은 분들이 싸움터인 광화문광장을 예술 광장으로 바꾸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 날도 행진에 사용할 깃발 만드느라 일찍부터 나와 고생했다.

전 날 김준권, 류연복씨가 청주민예총 서예위원회 회원들을 모아 글씨를 쓰 왔으나, 당일 아침에 또 만든 것이다.

깃발 하나하나에 담긴 구호도 다 다르지만, 글씨체도 각양각색이라 깃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폭력사태를 우려한 경찰이 그 날은 깃발을 못 들게 막아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행진에는 사용하지 못했으나, 이번 주말에 다시 사용할 작정으로 챙겨두었는데, 망가진 것도 더러 보였다.






이 날은 임실필봉농악의 대학생 풍물패들이 대거 참여하여 흥을 돋우었고,

강병인, 김성장씨의 서예퍼포먼스와 시민들의 바닥 글쓰기도 이어졌다.

촛불시민 인증샷 사진 찍기와 류연복 유대수씨의 촛불 목판화 찍기도 계속되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분으로는 위에 거론된 작가 외에도, 신학철선생을 비롯하여 이인철, 김명희, 최병수,

홍석화, 김낙영, 엄상빈, 권 홍, 하재은, 정영신, 정영철, 김가영, 이도윤, 전태삼씨 등이다. 



 



이번 주말 ‘바람찬 전시장’에서 열리는 기획전은 ‘역사, 광장민주주의’다.

사진과 만화로 보는 ‘광장민주주의’로 만화가 이동슈 작품을 비롯하여

전민조씨 등 광화문광장을 기록한 여러 명의 사진가들이 참여한다.

여태명씨의 서예퍼포먼스, 김준권, 류연복씨의 촛불 목판화 찍기, 촛불시민 인증샷,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개드로잉 ‘새로운 바람회’ 등 많은 예술행동이 펼쳐진다.


새로운 시대로 방점 찍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다 같이 힘을 모아보자.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지난 14일 열린, ‘광화문미술행동’의 네 번째 프로젝트 ‘응답하라! 1987’이 시민들의 참여속에 진행되었다.

체감온도가 영하13도에 이르는 한파가 시민들의 몸을 얼어붙게 하였으나,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려는 강한 투지는 한파를 견뎌내게 했다.





이날은 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를 겸했는데,

박종철열사의 대형 사진과 그 당시 그림들은 30년 전의 민주항쟁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지 현수막 걸개그림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지지대가 풀려나가 다시 끌어 메는 등 작가들이 고생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와 연대한 추모제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탁 치니 억하며 죽었다”는 그 때의 말도 그렇지만, 청문회나 특검에서 오리발 내며 거짓말로 일관하는

오늘의 상황이 더 지능적이고 악랄하다.






현수막전에는 신학철선생의 ‘초혼가’, 조문호의 ‘87민주항쟁’,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등

그 때 그 시절의 이미지들이 내 걸렸으나 추운 날씨 탓인지 정치적 한기를 더욱 체감케 했다.

‘한국민족춤협회’에서는 ‘백년의 바람 춤’을 추었는데, 백년만의 바람인지 엄청 난 북풍이 몰아쳤다.

그 바람찬 광장에서 지켜보는 시민들은 이를 악물며 결기를 다지게 했다.






시민참여 인증샷 ‘그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와 차벽공략에 설치될 그림판 작업도 진행되었다.

사진가들이 찍어주는 인증샷에 참여하며, 굳은 얼굴을 펴기도 했고,

작가들과 시민들은 언 손을 녹여가며 글이나 그림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김준권, 류연복, 김진화, 윤병권, 장경호, 이인철, 정영신씨 등 많은 작가들이 고생했으나,

이 날은 대구에서 올라 온 이재갑씨가 인증샷과 사진기록을 돕기도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윤병권씨가 이재갑씨의 어린 시절 고향친구라는 것이다.

우연히 이산가족 만난 듯한 반가움에 얼었던 얼굴을 활짝 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이광군, 남 준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오후4시부터 다른 일과 겹쳐 잠시 떠나야했다.

그 시간의 기록은 정영신씨의 사진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오후6시가 지나서야 현장으로 복귀하니, 시민들은 종각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우렁찬 함성은 영하의 날씨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청와대 문고리 잡고 발악하는 박근혜나 자기 잇속 차리느라 잔머리 굴리는 정치꾼들을 보며,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이제 민심을 그르치는 정치꾼은 발 붙이지 못하게 모두들 눈 똑바로 떠야 할 것 같다.






작업을 마무리한 “광화문 미술행동”팀들은 ‘남원추어탕’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먼저 본 작가 외에도 김진열, 김 억, 최병수, 이재민씨 등 많은 분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자리가 파하여 장경호, 최병수씨와 차 한 잔하는 자리에서 사진가 곽명우, 남 준씨를 만나기도 했다.

다들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느라 늦은 시간 까지 고생하고 있었다.







오는 21일 열릴 ‘광화문 미술행동’ 다섯 번째 프로젝트 ‘차벽을 넘어 광장으로‘의 주제는 “동녘이 밝아 온다”다.

정오부터 ‘서울민미협’의 깃발전을 시작으로 ‘광장 갤러리’ 설치, ‘세화 목판화 찍기(김준권, 류연복)’,

‘서예 퍼포먼스(정고암, 강병인, 여태명)’ ‘시민과 작가가 함께하는 그림, 글쓰기’, ‘인증샷 사진촬영 등

다양한 미술행동이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뒤편과 미대사관 앞에서 펼쳐진다.





오랫동안 끌어 온 집회의 누적된 피로와 추위로 시민들이 완급을 조절하고 있으나,

다음 집회에서 다시 한 번 동력을 끌어 모아야 한다.

그 걸 악용하여 뒤집기를 시도하는 ‘박사모’ 잔당들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은 박사모 잔당보다, 박근혜 무리가 척결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과의 싸움이다.

13차 촛불집회에는 모두 나서서, 끝장을 내자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조문호사진































































정영신사진




















조문호사진




















지난 30일 오후5시, 광화문광장에서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전이 열렸다.
24일 문을 열었지만, 열림식은 뒤늦게 가졌는데 전시장은 미어 터졌다.
워낙 궁핍하다보니, 자리가 좁아 다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찾아오신 분들도 한 눈에 다 알아볼 수 있는 분이었다.
백발투사 백기완선생을 비롯하여 원로화가 손장섭, 주재환선생,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화백,

그리고 박불똥, 류연복, 장경호, 이인철, 정영철, 양혜경씨등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궁핍한 정치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만 많은 게 아니라 작품들도 빼곡했다. 회화, 판화, 사진, 시, 포스터, 신문 등이 골고루 벽면을 장식했다.
입구 정면에는 송경동시인 의 시 ‘폴리스라인'이 걸려있다.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 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 개의 천만 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판화가 이윤엽씨의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결의를 다지게 하는 주먹과 절규하는 모습, 다양한 풍자로 보는 이의 분발심을 일으켰다.

한쪽 벽면에는 시민예술가들이 벌여 온 다양한 광장의 기록을 담은 정태용씨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노순택씨의 대형 사진 한 장은 공권력의 가혹함을 해부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격구속’, ’박근혜 옥중편지 단독입수‘ 등 한 발 앞서 가는 광장신문 호외판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군데군데 최병수씨의 날카로운 철제 작품들도 세워져 있었다.

결의를 다지게 하는 백기완, 신학철선생의 말씀에 이어 송경동, 이윤엽, 노순택, 최병수씨 등

참여 작가들이 차례로 나와 인사말을 했는데, 사진가 노순택씨의 절규에 가까운 사연도 들었다.

‘타임’표지를 풍자한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을 담은 작품을 전시장 외벽에 붙였는데,

어느 날 새벽, 누군가의 예리한 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 만들지 않고 언 손을 녹여가며 한 땀 한 땀 꿰맸다고 한다.

그 따위 비겁한 탄압에 굴복할 전사로 아직까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관전인‘내가 왜’란 설명문의 마지막 글귀가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왜 서 계신가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왜 서 있을까요.”

사진,글 / 조문호














































신학철선생이 서울대병원 본관 7414호에 입원해 계십니다.
몇일 전 심장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선생은 오랫동안 협심증으로 고생해 왔으나, 최근에 증상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지난 인디프레스 삼인전 개막식에 나왔을 때도 상황이 좋지 않아, 이미 수술예약이 된 상황이랍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으나, 이젠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놈의 담배가 원인이라는데, 또 한사람의 담배친구를 잃었습니다.


지난 26일 오후 병문안을 갔더니, 수술 자국도 아물어가고 안색도 좋았답니다.

심심 할 것 같아 재미있는 책이라도 한 권 구해 드릴랬더니, 걱정 말랍니다.

빈 종이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작업노트를 보여주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도 작업에 대한 구상하느라 바쁘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 게 아니라 쉬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전시 중인 ‘인디프레스’에 들렸더니, 장경호씨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전시장 문 닫을 시간이 되었으나, 술집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신통했습니다.

날씨가 하도 더우니 별 일도 많습니다.

병문안 가실 지인께서는 서두르세요. 이 번 주 중으로 퇴원하실 것 같습니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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