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25일은 첫 출발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늦잠에서 깨어나니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허급지급 공원으로 달려갔더니, 빵 배급은 이미 끝나버렸다.

그 날 사용할 전투식량을 배급받지 못한 채 광화문광장으로 나가야 했다.

지하철 타러 내려가니, 국적불명의 군복 입은 노장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베레모에다 요상한 군장을 달았는데, 어깨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꽂혀 있었다.
몇 개월 전 동자동과 남영동 노인들이 모인 경노잔치에서 한 번 뵌 적 있는 분이었다.

방한모를 눌러 쓴 빨지산 같은 내 행색도 별다를 바 없으나, 괜히 복장이 눈에 거슬려 알면서도 물었다.

“군복이 죽이네. 지금 어디 가는 기요?‘라고 물었더니 ’시청광장에 빨갱이 잡으러 간다”고 했다.

나도 태극기부대로 알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월남전에 참전해 세운 역역한 전과를 늘어놓는 걸 보니 피 맛 좀 본 것 같았다. 사람 이성을 잃게 하는 피 맛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랫사람들 눈치 보느라 찍 소리 못하고 살았을 것이니, 모처럼 살 맛 난다고 했다.

주말마다 시청광장에 나와 고함을 쳐 질러대니, 오죽하겠는가? 그것도 나라를 위한다는데...

지하철 시청역에 도착하자 그가 일어나며, 왜 내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난 빨갱이니 종각역에서 내려야지”랬더니 화를 버럭내며 소리치고 나간다.
“정신 차려! 이 빨갱이야~”
이제 이 노인을 동네에서 만나면, 적대감부터 가질 것 같았다.

이 건 작은 사례지만, 이미 광화문과 시청으로 나누어진 이념의 갈등은 도를 넘고 있다.

늙은이들이 세에서 밀리니 이제 폭력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들 또한 정치모리배들의 희생양에 다름 아니라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나쁜 정치인들이 발 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색깔의 잣대보다 정의가 우선되는 세상 말이다.
박근혜야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기회를 엿보는 황교안 같은 교활한 자들부터 싹쓸이해야 한다.






종각역에 내려 광화문광장으로 갔더니, 날씨가 풀려 그런지 가족 나들이도 많았다.

탄핵을 눈앞에 둔 민중총궐기라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미 ‘광화문미술행동’의 광장 에어갤러리의 설치작업도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 날 진행되는 촛불광장 열 번 째 프로젝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신학철 선생의 100년 민중사를 담은 ‘한국근대사-금강’이 세워졌는데, 높이가 4미터나 되는 대작이었다.
옆에는 백기완선생의 사진과, 선생의 글 ‘비나리’를 류연복씨가 옮겨 적어 놓았다.
탄핵을 주제로 한 포토존은 이철수씨의 목판화를 바탕으로 박방영씨와 강병인씨의 글을 합성한

김진하씨의 작품이었는데, 전체적인 전시 분위기가 중량감이 있었다. 



 



뒤 이어 안쪽에 설치된 빈 화폭에다 여태명씨와 박방영씨가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예가 여태명씨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몸부림을 그려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게 했다.

박방영씨는 방초색농(芳草色濃), 화영무접(花迎舞蝶), 장락무극(長樂無極)이란 한시에다 홍매화를 그렸다.

봄이 오듯 ‘박근혜탄핵’이란 꽃소식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 같았다.






단단하지 않은 천위에 척척 그려나가는 대가들의 역량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작업 광경이라 몰려든 구경꾼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사방 곳곳을 포토 존으로 활용해도, 그지 그만이었다.


여태명씨의 서예퍼포먼스와 시민들의 바닥 글쓰기도 이어졌다.
유대수, 류연복씨가 판화를 찍어주는 ‘궁핍현대미술광장’의 ‘민미협’ 광장미술전도 관객들로 미어터졌다.






시간이 지나자 광화문광장은 사람의 물결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광장에는 정원스님 49제를 비롯하여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의 사전집회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일행의 옳 퍼포먼스는 어디에서 열리며,

서예가 여태명씨의 ‘아프니까 투쟁이다’ 퍼포먼스는 어디에서 열리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에 밀리며 광화문광장을 몇 바퀴 돌다보니,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어 이인철 내외와 이기홍, 탁영호, 김천일씨가 어울린 술자리에 퍼져 버렸다.

거나하게 마시고 나오니, 광장전을 철수하고 오는 일행들과 마주쳐 또 한 잔 마셨다.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술만 잔득 마신 날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불발과 불편한 만남은 끝까지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 날도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광화문미술행동’의 김준권, 류연복, 김진하, 장경호, 여태명, 박방영, 유대수, 김봉준, 김남선,

정덕수, 김영배, 정영신, 송용민, 강성봉, 이광군, 이재민, 변정대섭, 이철재, 윤병권씨를 비롯하여

백기완, 임재경, 염무웅, 강 민선생, 신학철, 김진열, 최병수, 이윤엽,  권 홍,  남 준,

고 헌, 오춘석, 김영중, 장진영, 성효숙, 김미란씨 등이다.





다음 3,1절에 열릴 ‘민주주의 촛불공화국 만세!!“에서는 다 같이 광화문광장으로 몰려나와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만세 한 번 불러보자.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