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은 아산의 문화 공유공간 ‘마인’으로 전시 보러 가는 날이었다.

 정영신씨와 오래 전 약속한 일인데, 가는 길에 미술평론가 최석태씨를 태웠다.

 

그런데, 구로에서 그를 만나고 부터 차 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앉자마자 시작된 구라는 도착할 때까지 잠간도 쉬지 않았다.

아는 게 많고, 하는 일이 강의라 달변가인 줄이야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재벌 집안의 더러운 내막에서부터 모르는 게 없었다.

이야기에 빠져 고속도로에서 뒷걸음질 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조선 최고의 구라로 꼽을 만 했다.

여지 것 백기완, 방동규, 황석영선생을 조선의 3대 구라로 꼽았는데,

얼마 전 백기완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지 않았는가?

그 빈자리에 추천해도 전혀 손색없는 조선 최고의 구라였다.

 

듣다보니, 금세 아산에 도착했는데,

김선우씨를 비롯하여 김온 군과 양햇살 양이 반겨주었다.

전시장은 오밀 조밀 정겹게 꾸며 놓았더라.

 

쉬거나 일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책장에는 ‘눈빛’의 예술산책 서고를 옮겨 놓은 듯 반가운 책이 많았다.

 

오히려 벽에 걸린 모듬전 스타일의 내 사진이 챙피했다.

물론 내가 정한 사진이 아니라 정해 준 사진을 만들어 보냈지만,

다양한 사진이라 잡화상 같았는데,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에게 조언하던 최석태씨 지적도 따랐다.

이런 사진보다 정영신의 아산장 같은 사진이

지역민에게 더 친숙하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었다.

그 외에도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단다.

숨겨 둔 캐잌과 오래된 함지와 재봉틀을 가져왔다.

 

축하받아야 할 자리는 아니지만, 졸지에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정영신씨에게는 함지와 재봉틀을 주는 등, 송구스럽기만 했다.

 

아산 온천동 상가 1층에 있는 ‘마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인데,

여지 것 여러 차례 공간을 빌려 주었는데, 반응이 좋았단다.

시일과 시간만 예약해 둔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같이 일하거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사진집이나 좋은 책들을 골라 볼 수 있고 커피도 내려 마실 수 있었다.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도 있어 모든 걸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구입할 책은 무인시스템으로 결제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업무 협력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 끼리 생일잔치 하기도 좋았다.

 

개방전 마지막 날이라 전시 보러 온 김종우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오찬으로 육회비빔밥도 얻어먹었는데, 돈만 있다면 내가 사고 싶었다.

 돈도 없고 쓸 곳도 없지만, 돈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어찌 지역문화를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에게 밥 한 끼 사주지 못할망정, 주머니를 털게 한단 말인가?

 

그 곳에서 기획, 추진하는 일이 또 있다고 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동네잡지도 만든단다.

공중파나 주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

인문적 사유와 삶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로 꾸민다고 한다.

머지않아 ‘마인’에서 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이 점쳐졌다.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최석태씨도 할 일이 있지만,

아산으로 이사 간 신학철 선생 댁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산으로 이사 간지 일 년이 넘었으나

그동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걱정이었다.

더구나 낯선 동내에 지은 큰 작업실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최석태씨의 안내로 꼬불꼬불 시골 길로 들어갔는데,

동네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이 공장 같다지만, 내가 볼 땐 박물관 같았다.

신학철 선생은 지난 번 백기완선생 장례식장에서 뵌 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옆에서 수족처럼 도와주는 분이라고 소개했는데,

‘동학혁명실천시민행동’ 대표로 계신 이요상씨였다. 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십 여년 아내 간병으로 혼자 끓여 먹는 것이 생활화되긴 했지만,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드실 수 있었겠는가? 이제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작업실에는 신학철선생 작품 DB작업 하러‘나무아트’ 김진하관장도 있었다.

그런데, 작업 중인 작품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전체적인 메시지가 강열했다.

 

그동안 팔려 나간 작품을 찍어둔 조그만 사진도 펼쳐 놓았고,

옛날 교편 잡던 시절의 제자 작품도 보여주었다.

작업 진척이 늦어 전시를 일 년 연기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서고와 작업실 곳곳을 보여 주었는데, 이전 아파트와는 비교도 못 할 작업장이었다.

이젠 천장이 높아 대작 그리는데 전혀 지장이 없겠더라.

 

밖으로 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사방이 전원 이었다.

위쪽에는 낮은 산능선이 병풍처럼 둘러 싸 있었는데,

집 가까이 밭은 신학철 선생께서 일구는 텃밭이라 했다.

이웃사람들이 거들어 할 일이 없다지만, 그래도 농사는 농사다.

 

이요상선생게서 서울 갈 약속이 있다기에 먼저 일어났지만,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끝나는 날, 제대로 된 집들이 한 번 해야지...

부디 훌륭한 대작이 태어날 산실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신학철 화백의 아내 강고운 시인이 지난 8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배우자 : 신학철  / 자 녀 : 노현산



빈소 : 삼육서울병원 추모관 105호
발인 : 2019년 11월 10일 오전7시
장지 : 백제 승화원



아래 사진은 강고운 시인의 생전 모습과 추모관을 찾은 문상객 사진입니다.
고인을 추억하며 명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8일 저녁 장례식장을 찾은 문상객 입니다.

손장섭, 주재환, 김세균, 성완경, 공선옥, 정희섭, 이철수, 박불똥, 정희성, 장경호,

김진하, 김영진, 최석태, 이종구, 양기환, 서인형, 박흥순, 김윤기, 공윤희, 노광래,

정영신, 덕원스님외 다수



















한국현대사-625 /194X113cm 캔버스에 유화 2019



신학철화백의 <한국현대사 625>전이 지난 12일 오후6시 효자로 인디프레스 서울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한국현대사-625 망령들/220X130,5cm 캔버스에 유화 2018



신학철화백과 강고은시인 내외를 비롯하여 백기완, 이수호, 주재환, 황효창, 이종승, 박재동, 김정헌, 오길석, 박불똥, 정복수,

성완경, 정희성, 장재순, 김정환, 장경호, 류연복, 강성원, 조준영, 최석태, 천호석, 박흥순, 김재홍, 김태서, 권행연, 장순향,

정영신, 조경연, 박세라, 이지하, 최 범, 정재안, 손병주, 김정대, 서인형, 최병수, 이광군, 손기환, 홍성미, 정세학, 김이하,

두시영, 최명철, 하태웅, 김 구, 정영철, 성기준, 이종률, 김윤기씨 등 역전의 용사들이 다 모였다.



한국현대사-625 /194X113cm 캔버스에 유화 2019



전시장 규모와 참석인원을 감안하여 기동성 있는 카메라를 준비했으나, 사람에 가려 앵글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서 왔다 갔다하여 화천에서 온 화가 길종갑이인철, 미술평론가 이태호, 김명지시인 등 여러 명은 놓쳐 버렸다.

어쩌면 지명 수배자에서 빠져 다행인지도 모른다.

 


한국현대사-625 통곡/220X130,5cm 캔버스에 유화 2018



그런데, 신학철선생의 저력, 아니 깡다구가 놀랍더라.

집안 우환으로 가슴에 피멍이 던 상태에서 언제 그 많은 그림들을 그렸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 치유의 방법으로 그림에 몰입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현대사-6,25’시리즈 5, 사진 오브제 9, 유화작품 7점이 전시되었는데, 이렇게 신작으로만 전시를 연 것도 처음 보았다


 

   



신학철선생의 얼굴에는 항상 슬픈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선생의 미소조차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다.

세상 아픔을 혼자 끌어안고 사시는데, 이제 그 악업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먼저 사랑하는 아내의 초상화부터 한 장 그리면 어떨까?.

이번에 선보인 뜨겁게 키스하는 유채색 그림 여명처럼, 꿈을 꾸어도 희망을 꾸었으면 좋겠다.



여명 / 90,5X116.5cm 캔버스에 유화 2018




다행스러운 것은 앞으로 악몽으로 이루어진 흑백의 역사화보다 원색조의 소원에 해당하는 그림에 주력할 것이라 했다.

이발소 그림 형식도 적극 끌어들이겠다는 거다.



갑돌이와 갑순이 / 91X53cm 캔버스에 유화 2019



신학철선생의 작품세계를 모르는 분이 없겠지만, 혹시 간첩이라도 있을까봐 몇 마디 보태겠다.

검찰에 압수되어 부스러져 유적이 되어버린 그 유명한 '모내기' 그림의 주인공으로,

여덟 살에 고향 김천시 감문면에서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작가다.

그림에 나와 있는 처형당한 아버지의 시신에 울고 있는 소녀가 바로 선생의 동네 친구였다고 한다.

그동안 보여 주었던 갑돌이와 갑순이시리즈도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 온 선생과 같은 촌사람 이야기다.


 

한국현대사-625  이태골의 총살형/ 130X162cm 캔버스에 유화 2019


 


통속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여명이나 소원 높이 치솟다같은 작품은 이발소 그림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선생께서는 서민의 역사는 의식적인 역사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역사로 본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역사는, 머리도 없고 눈도 없고 귀도 없이 그저 하나의 본능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는데, 그 욕망의 역사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현대사-DNA 90,5X116,5cm 캔버스에 유화  2018



이영준씨는 도록에 이렇게 적었다.

신학철의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는 역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정면으로 응시한 역작이자,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경험하지 못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미술평론가 심광현은 신학철이 30여 년 전부터 계속해서 한국 근현대사 연작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의 작업 여정을 파생적 트라우마들과 뒤석여 오히려 증식되어 온 한국 근현대사 고유의 어떤 역사적 트라우마의 증상들과의 대결과정이라 말한바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평론가 홍지석은 두려운 낯설음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독특한 리얼리즘이라 칭하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팝의 가볍고 세속적인 정서와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합리적인 성찰, 샤먼의 신성한 제의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콜라주,

혹은 몽타주되어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날 개막식 뒤풀이가 두 곳으로 나누어졌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 못할 지경이었다,

손에 익지 않은 카메라까지 말썽 부려 사진도 찍지 못한채, 먹어서는 안 될 술만 축내고 있었는데, 입구 탁자에 초대장이 놓여있었다.

뭔지도 모르고 집어 들었는데, 박불똥씨가 달려 와 아니라며 뺏어가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발불똥씨의 장남 불휘군의 청첩장이었다.

아들을 아는 분만 모신다는데, 개털신세를 염려해 하는 말이지 요즘처럼 끼리끼리 사는 가족사에 자식들 얼굴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혼식은 오는 518() 오후420, 송파구 양재대로 932 ‘가락몰타워에 있는 서울웨딩타워 2이니

박불똥씨를 잘 아는 지인들께서는 축하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김정헌씨는 바다는 가라 앉지 않는다는 안전사회를 위한 세월호 참사5주기 추념전 리프렛을 나누어 주었다.

고등어, 김서린, 김성희, 김정헌김지영, 김흥구, 이승배, 노원희 노순택, 박야일, 성남훈씨 등 40여명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인디프레스 서울’(070-7686-1125)바다는 가라 앉지 않는다가 열리는 통의동 보안여관은 가까운 곳이니

함께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421일 까지고, 신학철선생의 한국현대사 625’66일 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한국현대사-625
신학철展 / SHINHAKCHUL / 申鶴澈 / painting
2019_0412 ▶︎ 2019_0606 / 월요일 휴관



신학철_여명_캔버스에 유채_90.5×116.5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509h | 신학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9_0412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www.facebook.com/INDIPRESS



한국 현대사의 악몽과 소원 성취의 이중주: "신학철 – 한국현대사 625"에 부쳐 ● "꿈을 꾼다는 것은 꿈 꾼 사람의 아득한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퇴행이고, 어린 시절과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충동과 당시 사용했던 표현 방식의 재생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유년기의 배후에서 계통발생학적인 유년기, 즉 인류의 발전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 열린다. 실제로 인류 개인의 반복이다."1)



한국현대사-625 통곡/220X130,5cm 캔버스에 유화 2018



1. 신학철 회화의 비판적 성격과 놀이적 성격의 이중 구조 ● 신학철의 이번 개인전은 어떤 면에서 프로이트가 규명했던 꿈의 기이하고 상반된 특성들을 모두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현대사 - 6.25」 등 다수의 흑백의 역사화들이 공포스럽고 불쾌한 내용을 담은 <불안-꿈>처럼 보인다면, 「여명」 같이 강렬한 키스씬을 담은 유채색 그림들은 밝고 환한 <소원-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는 저 유명한 『꿈의 해석』(1900년)에서 꿈은 <꿈-사고>, <꿈-작업>, <꿈-내용>이라는 3 가지 상이한 수준이 연결된 특수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어떤 무의식적 소원을 가진 <꿈-사고>는, 전위-응축-동일시-혼합의 방법을 이용한 <꿈-작업>에 의해 변형되어, 기이한 형상(사물-표상)들의 복합체인 <꿈-내용>으로 표현됨으로써 그 소원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로이트는 모든 꿈의 <내용은 소원 성취이고 동기는 소원이다>(160쪽)라고 요약한다. 물론 실제 꿈들 중에는 소원 성취보다는 오히려 공포스럽고 불쾌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불쾌한 꿈, 불안-꿈 역시 해석 후에는 얼마든지 소원 성취로 드러날 수 있다"(178쪽)고 말한다. 그 이유는 심리 장치의 두 심급 중 첫 번째(무의식의) 심급에서는 꿈을 통해 표현되는 소원을 형성하고, 두 번째(전의식의) 심급에서는 불쾌하지만 동시에 첫 번째 심급의 편에서는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무언가를 포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7~169쪽). 심지어는 소원이 거부되는 꿈을 통해서도 현실에서 못다 이룬 소원을 표현한다고 한다(193쪽). 이 경우 <꿈은 (억압되고 억제된) 소원의 (위장된) 성취이다>(206쪽). ● 신학철의 그림에 프로이트의 꿈 이론을 일 대 일로 들이대려는 것은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림과 꿈 양자 모두 어떤 무의식적인 소원을 심층적인 동기로 한다고 해도, 단적으로 신학철의 그림은 고도로 비판적이고 의식적인 데 반해 꿈-작업은 무의식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그림을 그리는 작업 전체가 의식적인 주의 집중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 나아가 여러 그림들 간의 상관관계로 시야를 넓혀 보면 한편의 시나리오나 소설처럼 의식적으로 일관된 플롯에 의해 구성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회화적 작업은 얼핏 보기와는 달리 의식보다는 무의식적인 요소에 의해 더 많이 지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프로이트는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1908년)이라는 글에서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2) 소설과 희곡처럼 고도로 의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문학의 창작자조차도 "결국 놀이를 하는 아이와 동일한 것" 즉, "몽상적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고", "현실과 자신의 몽상적 세계를 선명하게 구분하면서도 창조 행위에 엄청난 양의 정서적 움직임을 쏟고 있다"(83쪽)는 것이다. 그 증거 중 하나로 그는 "놀이라든지 행위Spiele라는 단어는 희극Lustspiel, 비극Trauerspiel이라는 말들 속에 들어 있고, 또 이러한 극들을 공연하는 사람, 즉 배우를 지칭하는 샤우스필러Schauspieler라는 말 속에도 모습을 나타내고"(83쪽)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 "인간의 정신적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한 번(필자: 어린 시절의 놀이를 통해) 경험한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대상을 바꿀 뿐이다……이제 그는 <놀이>를 하는 대신 자신의 몽상을 따라가는 것이다……흔히 <비몽사몽>이라고 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이 사실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고 따라서 그 중요성을 낮게 평가해 왔을 뿐이다."(84~85쪽) ● "요컨대 문학 창조는 백일몽과 마찬가지로 그 옛날 어린 시절의 유희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대체물"(93쪽)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말한 이 점을 낮게 평가하면서, 문학이 진지한 작업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유희의 연장이나 백일몽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 화를 낼 지 모른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논지를 잘 따라가 보면 그의 주장에 공명하게 된다. 성인들은 유치한 놀이나 몽상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냉담하게 대하지만 이것이 창조적인 작가의 손에 들어가 변형되면 외려 즐거움을 주게 된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94쪽). ● "한 개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수 많은 장벽들과 관련된 이러한 거부감을 넘어서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이 기교 속에 아마도 진정한 시학이 존재할 것이다. 이 기교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창조자는 낮에 꾸는 꿈을 변형시키거나 베일로 가림으로써 자아 예찬이 주조를 이루는 꿈의 성격을 약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몽상을 통해 순수하게 형식적인, 다시 말해 미학적인 즐거움을 제공하여 독자들을 유희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이것을 우리는 흔히 <상여 유혹>이라거나 혹은 <사전 쾌락>이라고 불러 왔다."(95쪽) ● <상여 유혹>이란 마치 실제 일인 것처럼 상상의 상황 속으로 들어갈 때 덤으로 얻어지는 즐거움이며, <사전 쾌락>이란 육체의 움직임이 수반되지 않는, 행동 이전에도 가능한 즐거움을 뜻한다(95쪽). 이렇듯 문학은 <상여 유혹>과 <사전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놀이가 주었던 즐거움을 대신한다. 그런데 그림은 <언어-표상>에 의한 관념의 가공과 변형이 특징인 2차과정(고차의식)보다는 <사물-표상>의 지각과 표현이 지배하는 1차 과정(1차의식)의 주도 하에 창작되고 수용되기 때문에 문학보다 더 직접적으로 어린 시절의 놀이나 낮에 꾸는 꿈에 근접한다고 할 수 있다. 신학철의 그림을 프로이트의 꿈 이론에 입각해서 해석해 보는 것이 억지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신학철의 작업의 주된 부분을 이루는 흑백 역사화들은 캄캄한 배경 속에서 크고 작은 사람들의 산 모습과 죽은 모습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커다란 리바이어턴 같은 괴물 형상이 전경화되는 방식으로 그려져 있어 처음 보는 순간 고통스러운 <악몽>과 생생하게 대면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통쾌한 현실비판을 통한 카타르시스 효과와 더불어, 정교한 회화적 묘사와 이질적 이미지들의 압축과 전위에 바탕을 둔 강렬한 몽타쥬 형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넘어서 시각적 표상들의 자유로운 유희를 즐기게 해준다. 또 이 악몽의 세부 내용들에는 화가가 살면서 겪었던 다양한 개인적 경험들에 "흔히 <시대의 각인>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자국들을 덧붙인"(88쪽) 역사적 내용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렇게 개인사와 사회사가 겹쳐져 있기 때문에 이 악몽 같은 형상들의 비판적 재현은 프로이트가 "재현 행위의 세 순간 사이를 부유한다"고 말했던 몽상의 시간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 "정신 활동은 현재의 인상에 밀착되어 있는데, 이 현재의 인상이란 개인이 품고 있는 어떤 큰 욕망을 일깨우는 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 계기에서 시작해 우리의 정신 활동은……대부분은 현재의 인상으로 인해 일깨워진 욕망이 충족되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되돌아간다. 정신 활동은 이때 미래와 연관된 상황을 창조해내는데, 이 상황이 욕망이 충족되는 상황, 더 정확히 말해 낮에 꾸는 꿈 혹은 몽상인 것이다……시간을 가로지르는 욕망의 도화선이 요컨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시간대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이제 우리는.…..욕망이 어떻게 현재의 계기를 이용해 과거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지 알게 된다"(88~89쪽) ● 세 시간대를 부유하는 몽상을 가동시키는 이 욕망이 끔찍한 형태로 좌절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몽상은 악몽으로 변한다. "몽상은 이성적인 정신 활동의 마지막 단계이면서 또한 환자들이 종종 호소해 오는 고통스러운 증후들의 전 단계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병으로 이어지는 넓은 측면도로가 갈라지게 된다."(89쪽)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개인적-역사적 악몽의 재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학철의 「한국현대사」 연작들은 일종의 개인적-집단적 <신경증적 불안>의 증후군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2014년 신학철의 회고전 서문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로지르는 휘파람 소리」에서 그의 작품의 이런 측면을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끈질기게 대결하는 치열한 <회화적 정신분석>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3) ● 당시에는 주로 <비판적 대결>의 측면에 초점을 두었기에 그의 작업의 내적 동기를 이루는 <신경증적 불안>의 요소를 포함한 몽상의 <소원 성취적> 측면을 깊이 헤아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바로 신경증적인 불안의 측면과 더불어 어린 시절의 소원 성취적인 성격의 꿈과 같은 내용들이 전경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비판적 회화의 주조를 이루어온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비판>과 그 이면에 내재한 <창조적 몽상의 놀이>라는 측면, 양자의 관계를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학철_한국현대사-6.25_캔버스에 유채_194×113cm_2019


2. 비극적 악몽과 끝날 수 없는 애도의 우울증 ● 신학철의 이번 전시 주제는 <6.25>다. 6.25전쟁은 분단한국 최대의 비극이자 20세기 동서 냉전의 기원이 된 세계사적 비극이었다. 그런데 동서냉전은 1990년대 초에 해소되었지만 한국전쟁은 아직까지도 휴전 중일 뿐 종전되지 않고 있다. 지난 70여년 간 이 엇갈린 이중의 리듬이 휴전 후 한국현대사의 궤적을 비극적으로 왜곡시킨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아직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1990년 이전까지 한국현대사가 휴전과 냉전의 이중족쇄에 묶여 있었다면, 1990년 이후에는 휴전과 북미 간 전쟁위험이라는 새로운 이중족쇄에 묶여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협정과 평화협정 체결이 논의되고 있지만, 2019년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서 드러났듯이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많은 난항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문제의 대외적 해결만큼 중요한 과제는 70여년 간 이중족쇄의 구속으로 발생한 대내적 문제의 해결이다. 이 후자의 문제는 – 마치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친일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던 것처럼 - 전자가 해결된다고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학철의 이번 전시는 바로 이중구속에 의해 대내적으로 누적된 사회구조적 적폐를 공시적인 틀 속에 전체적으로 압축해 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학철_한국현대사-6.25(고난의 대장정)_캔버스에 유채_220×122cm_2018


이런 방식으로 구조적 적폐를 공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 그의 화력에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래 그의 「한국현대사 연작」은 역사적 사건들의 연대기를 그리는 일반적인 역사화의 방법과는 달리, 서로 다른 시간대의 주요 사건들을 하나의 공시적인 구조 속에 몽타주 하는 방식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출품작 중에서 한 가지 새로운 지점은 <연기>를 몽타주의 기본 형식으로 삼는 일련의 작품들이다. 작가에 의하면 이 연기 형상은 담배 연기가 위로 솟아오르는 형태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형상이 죽은 자들의 이미지와 연결되면 장례의식에서 피우는 향의 부정형적인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연상작용을 매개로 한 여러 작품들이 여순반란 사건과 6.25 전쟁의 희생자들 및 피란민들의 형상을 구비구비 휘감아 승천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이 연기 형상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애도>의 형식인 것이다.  ● 신학철이 북미간 종전협상이나 남북 평화협상이 거론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런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지난 70년 간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가 온전히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휴전과 냉전의 이중족쇄가 짓누르는 동안 상당수의 희생자들(특히 전쟁 직전에 시작하여 전후까지 지속된 제주4.3학살의 희생자들이나 4.3학살을 반대하여 일어난 여순반란 사건의 희생자들)은 무소불위의 반공주의의 잣대에 의해 지워져 공식적인 애도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었다. 애도를 통해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배제되거나 억제되면 슬픔은 깊은 우울증으로 전환되어, 외부로 향해져야 할 공격성이 내부로 향해져 자기 고문이 심화되고 자아는 빈곤해진다. 이들의 유가족들은 말하자면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분단과 전쟁을 통해서 (친일에서 친미로 배를 갈아타면서) 지배권력을 독점해 온 세력들은 억압과 착취와 수탈로 배를 불리며 무소불위의 폭력을 행사해 왔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두환, 노태우 등이 공식 처벌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들은 곧 풀려났고, 최근 <5.18 망언>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은 아직까지도 희생자들과 지난 역사의 고통을 우롱하고 있다. ● 물론 이들이 이런 만행을 버젓이 저지르는 이유는 70년간 대자본과 결탁하여 권력을 휘둘러 온 반공/냉전/친일 수구세력들이 이들의 배경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2016~17년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으로 기세가 상당히 꺾이기는 했지만, 수구세력들은 여전히 <태극기 부대>를 앞세워 발악을 하며 기득권 방어에 열중하고 있어 정세의 변화가 무색하게도 과거의 악몽을 새롭게 일깨우고 있다. 실제로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는 알튀세르의 말처럼 이들 수구세력(과 태극기 부대)의 정신적 뿌리인 반공/냉전/친일 이데올로기는 스스로 변화할(반성할) 줄 모른 채 영원한 지배를 추구하기 때문에, 희생자들과 역사의 깊은 상처에 매번 새로운 상처를 덧입힌다.


신학철_한국현대사-6.25(망령들)_캔버스에 유채_220×130.5cm_2018


신학철의 이번 흑백의 역사화들은 이들의 시대착오적 발악에 대한 비판적 조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마치 새끼줄을 꼬듯이 결합했다가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양자가 결합된 작품들에서 수구세력들의 뻔뻔한 작태는 희생자들의 슬픔을 짓누른다. 그러나 「한국현대사 – 질곡의 종말」에서는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김진태, 나경원 등에 이르는 수구 정치 세력들과 이들의 이데올로그들(조갑제, 지만원 등)의 희화적 계보학이 제시된다. 이를 통해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관객들도 한국 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깊은 우울증과 비극을 야기한 장본인들의 권력의 계보 전체가 청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승되어 온 권력의 뿌리와 줄기와 잎새의 연결망을 하나의 형상으로 재현한 이 사진 콜라주는 6.25 전쟁을 전후로 70년간 누적되어온 구조적 적폐의 청산 없이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애도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신학철_한국현대사-6.25(이태골의 총살형)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9


3.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 ● 사회구조적인 적폐와 그 문제의 역사적 연원을 함께 시각화하는 점에만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에 그다지 새로운 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신학철은 6.25 당시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미래의 소원 성취로 나아가는, "현재의 계기를 이용해 과거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프로이트) 화가 자신의 욕망의 형상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유화 「한국현대사 – 6.25 이태골의 총살형」(2019년)에서 – 6.25 때 화가의 고향 마을(김천시 감문면)에서 인민군 부역자로서는 유일하게 처형 당했다는 – 아버지의 죽은 모습을 보고 울고 있는 소녀는 바로 화가의 동네 친구였다고 한다. 소녀의 시선을 화가의 시선과 겹쳐 보게 되면, 관객은 흑백의 사진과 문자로만 이해하던 한국전쟁의 추상적인 기억에서 벗어나 공식적 애도에서 배제되어 온 희생자 유가족들의 험난했던 삶의 궤적을 구체적으로 가늠해 보게 된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갑돌이와 갑순이」(2019년)의 화면을 보면, 나물 캐는 젊고 예쁜 갑순이가 누군가 뒤따라 오는 인기척을 눈치 채고 옆을 흘기자 급히 나무 뒤로 숨어 엿보는 갑돌이의 움츠린 시선과 마주치게 된다. 이 두 그림을 연결해 보면 관객은 마치 소년 화가를 들뜨게 했던 에로스가 앳된 소녀 친구를 덮친 무시무시한 타나토스와 마주쳐 꽁꽁 얼어 붙어 버린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숲과 마을을 오가며 자유롭게 뛰어 놀던 화가의 소년 시절의 에로스는 이후 한국 현대사를 뒤덮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 오십 년 가까이 지속된 흑백의 역사화의 긴 우회로를 거쳐 불현듯 화면에 다시 등장한 이 대조적 장면을 휴전선의 굵은 철조망에 매달려 애틋한 입맞춤을 하는 남녀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상반신을 벗은 채 열정적 키스를 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린 다른 두 그림, 「여명」(2018년)과 「소원 높이 치솟다」(2018년)와 연결해 보면 이 네 개의 그림들은 일련의 영화적 시퀀스와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이루게 된다. 시대의 폭력 앞에서 얼어 붙었던 에로스가 타나토스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상대를 찾아내서 사랑의 결합에 도달함으로써 자신의 오랜 소원을 성취한다는 꿈 같은 이야기 구조가 그것이다. ● 이런 이야기 구조는 유치한 신파조와 같아 세련된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여기서 다시 예술 창작은 미학적인 기교를 통해서유치함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게 하면서, 모든 사람의 어린 시절의 못다 이룬 무의식적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프로이트의 날카로운 통찰을 환기해 보자.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유치한 에로스의 꿈 이야기야말로 역사적 트라우마와 끈질기게 대결해온 신학철의 <회화적 정신분석>을 떠받쳐온 근원적인 무의식적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끔찍한 폭력을 휘둘러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해온 지배권력의 갖은 악행을 흑백의 이미지로 재현해온 「한국현대사」 연작은 이 무의식적인 동기의 성취를 억압하고 왜곡시켜온 역사적 악몽의 재현이 된다. <악몽은 (억압되고 억제된) 소원의 (위장된) 성취>라는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자면, 무시무시한 흑백의 악몽과 같은 「한국현대사」 연작의 이미지들은 <억압되고 억제된 에로스>가 타나토스에 의해 참혹하게 수탈당하고 학살당하는 역사적 과정이라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결코 소멸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소원(권선징악)을 마침내 성취하고 마는 <불안-꿈>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겉으로는 타나토스에 의해 얻어터지면서도 속에서는 소진되지 않는 에로스의 끈질긴 모습의 <부분적> 재현을 이전의 「한국현대사」 연작들, 특히 「한국현대사 - 갑돌이와 갑순이」 (1998~2008년)의 세부에서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출품된, 촛불이 가득 찬 광화문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어깨를 마주잡은 남녀의 누드 형상이 불쑥 솟아오른 배치 구조를 보여주는 「한국현대사 - 광장」에서는 타나토스에 대한 에로스의 승리가 <전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 여기서 한 가지 일반적인 오해, 즉 프로이트의 에로스 개념을 오해하여 그를 <범성욕주의자>로 간주하는 그릇된 관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는 초기에는 자기보존본능과 종족보존본능의 대립, 자기애와 대상애의 대립만을 고려했지만 후기에는 이 대립 모두를 에로스(생명 본능) 내에서 벌어지는 대립으로 간주하고, 에로스와 대립하는 다른 본능으로 타나토스(죽음 본능)을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에로스 개념은 성적 충동에 제한되었던 초기의 리비도 개념의 좁은 틀을 넘어서 "언제나 더 큰 통일을 이루고 이를 유지하는 것, 즉 애착"(즉 인력)이라는 개념으로 일반화되며, 타나토스 개념은 "연관을 해체하여 사물을 파괴하는 것"(즉 척력)으로 일반화되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 개요』(1938년~미완성)에서 모든 행위는 에로스(인력)와 타나토스(척력)의 조화와 대립 작용으로 나타나기에, "먹는 행위는 섭취하려는 최종 목적에서의 대상 파괴이고, 성행위는 내밀한 통일의 의도를 지닌 공격"(419쪽)이라고 말한다.



신학철_쇠뿔이_캔버스에 유채_116.5×90.5cm_2018


"두 가지 본능의 조화와 대립 작용으로 인해 삶의 다양한 현상이 일어난다. 생명체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의 이 두 가지 기본 본능의 비유는 비유기체에서 지배적인 인력과 척력이라는 대립쌍에 이른다. 본능들의 혼합 비례의 변화는 가장 확실한 결과들을 가져온다. 성적 공격이 더 강하게 추가되면 애인은 강간 살인범이 되고, 공격적 요소가 아주 감소하면 그는 소심해지거나 불능이 된다."4) ● 인력과 척력의 적절한 비율은 개체들이 각기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랑과 협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존의 열쇠인 셈이다. 이 비율이 깨지면 한편에서는 도착적인 파괴가 다른 한편에서는 과도한 위축이 발생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함께 변화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들의 역동성 때문에 인력과 척력의 비율은 고정될 수 없다. 마치 낮과 밤의 주기나 계절의 주기, 경기순환의 주기와 유사하게 에로스의 비율이 상승하고 타나토스의 비율이 하락하거나 그 반대 방향으로 비율이 상승하고 하락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교차하는 리듬이 발생한다. 삶의 주기가 낮과 밤, 계절의 주기와 대체로 일치했던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주기의 진폭이 크지 않았기에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교차 리듬은 주기가 길고 진폭은 작은 안정적 형태를 취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잉여가치의 빠른 축적을 위해 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빠르게 소진시키며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쟁 압력을 높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균적으로 에로스의 비율은 급격히 낮아지고 타나토스의 비율은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지난 50여년 동안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속 압축성장을 이룬 한국 자본주의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비율은 기형적인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신학철의 「한국현대사」 연작의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형상들은 바로 이렇게 미쳐 날뛰는 타나토스에 의해 파괴되어 온 에로스의 고통과 분노와 한이 얼룩진 일종의 정신적 지도라고도 할 수 있다.


신학철_한국현대사-DNA_캔버스에 유채_90.5×116.5cm_2018


압축성장을 하게 되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긴 교차주기가 짧은 주기로 변화하기 때문에 <타나토스의 폭거>에 대한 <에로스의 항거> 주기도 잦아지게 마련이다. 분단 이후 거의 10년 단위마다 반복되었던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민중항쟁의 주기(4.19혁명, 삼선개헌 반대 시위, 1979부마항쟁, 1980서울의 봄, 518광주민중항쟁, 610항쟁, 2002촛불시위, 2008촛불항쟁, 2016~17촛불혁명 등)가 이를 입증한다. 이 기간 동안 한국자본주의는 발전주의 시대를 거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1인당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도달했지만 그만큼 계급적, 젠더적, 생태적 모순과 위기도 증폭되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도 첨예한 형태를 취해 왔다. 하지만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전지구적 환경위기가 겹쳐지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타나토스의 위력도 정점을 치고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에로스의 힘이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하는 문명사적인 이행기가 도래하고 있다. 최근 1, 2차 북미회담의 개최도 이 같은 이행기의 도래를 알리는 징후의 하나인 셈이다. 물론 이행의 과정은 매끄럽지 않고 낡은 세력과 제도의 붕괴에 따라 다양한 고통을 동반하는 지그재그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밤이 물러가면 새벽이 올 수밖에 없듯이 <억압되었던 에로스의 회귀>는 필연적이다. ● 이렇게 역사적 파도의 교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학철의 이번 전시는 <전-자본주의적 에로스>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적 타나토스의 상승과 하락>을 거쳐 <억압되었던 에로스가 회귀하는 여명>의 개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퀀스를 보여줌으로써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적 전개과정을 형상화하는 데 역점을 둔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했던, "현재의 계기를 이용해 과거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욕망의 소원 성취를 보여주는 창조적 몽상의 전형적 범례가 아니고 다른 무엇이겠는가!


4. 도상-에너지와 지표-물질성의 이중주로 작동하는 민중적 리얼리즘의 미학 ● 물론 신학철의 <악몽-그림>과 <소원-그림>은 단순한 몽상이 아니다. 백일몽의 모호한 성격과 달리 신학철의 욕망은 유화와 콜라주라는 물질적인 이미지화의 작업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형상-이야기>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비축되었던 심리적 에너지들이 시각적 형상으로 변화하는 무의식적인 과정보다 더 많은 신체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적 에너지들을 쏟아 붓는 물리적 과정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신학철의 작업에서 프로이트가 <리비도(무의식적 에너지)의 경제학>(A)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응하는 <의식적 에너지의 경제학>(B) 사이에 일종의 이중주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꿈에서 깬 상태에서 깊이 사고하게 되면 의식의 비판적 기능에 의해 무의식적인 표상의 흐름들이 중단되거나 거부되는 반면, 꿈을 꾸는 상태에서는 그와 반대로 비판적 사고가 중단되고 무의식적 표상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와 달리 신학철의 <악몽-그림>과 <소원-그림>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의 자세와 유사하게 일차적으로는 비판적 사고를 억눌러 평상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표상들을 의식으로 떠올리지만, 이차적으로는 이를 다시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이중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이 사고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판적 기능 또한 작동시키고 있다. 그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인지한 후 이러한 생각의 일부를 비판을 통해 거부하거나 즉시 중단시켜, 일단 시작된 사고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고, 다시 말해 지각하기 전 억눌러 버리는 사고들도 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은 오로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평상시 파악할 수 없었던 수 많은 생각들이 의식에 떠오른다. 이와 같이 자기 인식을 위해 새로이 얻은 재료의 도움을 빌어 병적 관념과 꿈의 형성물들을 해석할 수 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문제는 심리적 에너지(활발한 주의력)의 분배에서 잠들기 전의 상태와 (최면에 걸린 상태도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유사성을 공유하는 심리적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잠이 들면서 표상들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자의적인(물론 비판적이기도 한) 활동이 이완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표상들)이 떠오른다…….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오른 표상들은 시각적, 청각적 형상으로 변화한다."(『꿈의 해석』: 140~141쪽) ● 이런 맥락에서 신학철의 작업은, 평소에는 억눌려 있던 무의식적 표상들을 자유롭게 떠올려 시각적 형상들로 변화하게 만들고, 이런 형상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에너지를 재분배하는 <자기-분석적> 과정이자, 이 분석 과정 전체를 다시 <형상-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절차를 거치는 <회화적 정신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절차들은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보여준 꿈의 형성 과정을 규명하면서 꿈을 해석하는 절차와 그대로 일치한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이 모든 과정이 신학철에게서는 – <언어-표상> 대신 – 철저하게 <사물-표상>의 물리적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이때 <사물-표상>의 물리적 운동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기한다. 하나는 흑백의 역사화와 콜라주에서 보이는 매끄러운 사진적 이미지의 연속적인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유채색의 유화에서 나타나는 붓 터치가 두드러지는 회화적 이미지의 단절적 운동이다. 퍼스의 기호학에 의하면 전자는 <도상적(iconic)>인데 반해 후자는 <지표적(indexical)>인 측면이 더해진 것이다. 도상은 사물-표상의 <형상적 기호>라면, 지표는 사물-표상의 <질료적 기호>이다. 형상에서는 사물의 물질성이 휘발되어 에너지의 자유로운 운동 속에서 사물의 윤곽과 명암이 상대적으로 뚜렷해진다면, 지표에서는 사물의 무거운 물질성이 표상의 휘발성을 끌어당기면서 에너지의 운동이 둔중해지고 윤곽과 명암이 상대적으로 중첩된다. 상대성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에서는 물질에서 에너지로의 전환이, 후자에서는 에너지에서 물질로의 전환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리적 이중성은 어떤 사회심리적인 의미가 있을까? ●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우리의 정신 기관이 마치 망원경의 여러 렌즈 조직들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듯이, <지각 조직 기억 조직 기억조직1 기억조직2…..무의식 조직 전의식 조직 운동성 조직>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꿈에서는 일종의 병풍과 같이 무의식 조직과 운동성 조직 사이에 서 있는 전의식 조직의 검열이 약화되면서 이 방향이 역전(퇴행)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624-628쪽). 그러나 그는 꿈에서만이 아니라 "의도적인 회상이나 평상시 사고의 부분적 과정들 역시 심리 장치에서, 어떤 복합적인 표상 행위에서 그 근저를 이루는 기억 흔적의 원재료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취한다"(630쪽)고 말한다. 이렇게 지각 조직을 향해 역진하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정신분석이다. 그렇다면 지표 이미지와 도상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런 구분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각 조직이 물리적인 사물에서 시작한다면 무의식 조직은 그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기억조직들의 표상들의 자유로운 운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상-이미지>가 무의식 조직에 가깝다면 <지표-이미지>는 기억 흔적의 원재료에 가깝다고 말이다.



신학철_갑돌이 갑순이_캔버스에 유채_91×53cm_2019



무의식적인 꿈의 작업은 무의식적인 시각-표상들을 압축하고, 전위시키고, 동일시하고 혼합하기 때문에 사물-표상의 물질성은 휘발되고 에너지의 자유로운 연상 운동이 부각된다. 악몽의 경우에는 이 연상 운동이 고통스러운 감정-기억의 응축과 함께 그로테스크한 <도상-이미지>로 압축되고 전위된다. 반면 기억 흔적의 원재료(원-형상으)로까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는 분석 작업에서는 표상들의 휘발적인 연상 운동 이전의 사물-표상의 온전한 물질성이 훼손되지 않은 형태, 즉 <지표-이미지>로 포착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심리적 장치들의 역진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신학철의 흑백의 역사화/콜라주들이 매끄럽고 휘발성이 강한 <도상-이미지>로 구성된 악몽의 형태를 취하는 반면, 원색조의 소원성취 그림들은 물질성을 드러내는 <지표-이미지>로 그려지는지 그 이유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렇게 소원성취를 이발소 그림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원색조의 그림들이란 결국 유치한 놀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런 비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신학철 자신은 오히려 유치한 이발소 그림의 형식을 자신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추구하려는 형식이라고 말한다. ● "실제로 삼각지에서 이발소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은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고 그냥 자기 본능에 따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그려내는 거에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조했던 대중성에는 이발소 그림이 보여주는 본능적이고 자생적인 측면은 삭제되고, 그 대신 의식적으로 훈련된 측면이 두드러지게 강조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이발소 그림에는 서양적인 이상향과 동양적인 이상향이 같이 녹아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대중가요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라는 가사가 그런 것처럼 개인적인 사소한 꿈 같은 것 말이지요. 물론 이발소 그림이 다 좋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지요. 현실에서 너무 벗어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비록 유치하다고 하더라도 지식인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찾아 보기 어려운 따뜻한 꿈 같은 것이 정성스럽게 녹아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어릴 때 마을에서 청년들과 아이들이 야밤에 벅적대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음껏 뛰어 놀던 그런 세계를 이발소 그림의 형식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가지고 있습니다."5)● 프로이트에 의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놀이를 숨기지 않는 반면, 어른들은 자신이 빠져 있는 몽상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려고 하면서 그런 몽상을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내면적 삶으로 여겨 마음 속에만 품고 있게 된다고 한다(「창조적 작가와 몽상」: 85쪽). 이런 간극을 드러내면서 프로이트는 아이들의 개방적이고 원초적인 놀이와 현실원칙으로 무장된 성인들의 숨겨진 내면 세계를 연결해줄 수 있는 공개적인 통로를 예술에서 찾는다. 예술 창작의 기교, 즉 "한 개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장벽들과 관련된 이러한 거부감을 넘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이 기교 속에 아마도 진정한 시학이 존재할 것"(「창조적 작가와 몽상」: 94~95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술(적 정신분석)은 수많은 장벽에 막혀 있는 개인들의 무의식적 소원 성취(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에로스적 결합이라는 소원)를 정교한 미학적 형식을 통해 연결해주는 사회적 통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물론 마음껏 뛰어 놀던 아이들의 밝은 놀이와 현실원칙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수없이 좌절을 겪은 성인들의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무의식적인 소원 성취를 연결하는 미학적 형식은 이발소 그림의 형식처럼 단순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과 암의 콘트라스트를 연결해야 하기에 이 형식은 원하든 원치 않든, 희망과 절망, 기쁨과 고통의 상반된 측면을 함께 엮어내는 형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학철의 이번 전시가 원색의 <지표-이미지>와 흑백의 <도상-이미지>의 이중주로 드러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그의 개인적 소원 성취의 열망이 유토피아를 꿈꾸어 왔던 사회적 소망의 오랜 전통과 연결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흔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는 개인심리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프로이트는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1921년)이라는 글에서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개인 심리학과 사회 심리학 또는 집단 심리학 사이에는 언뜻 보아 중요한 차이가 있는 듯 싶지만,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보면 뚜렷한 차이가 거의 사라진다…….개인 심리학이 개인과 타인 간의 관계를 무시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며, 그것도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하다. 개인의 정신생활에는 타인이 본보기나 대상이나 조력자나 적대자로 끼어들게 마련이다…….따라서 개인 심리학은 처음부터 사회 심리학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부모와 형제 자매, 사랑의 대상, 주치의 등과 맺고 있는 관계 – 사실상 지금까지 정신분석적 연구의 주요 대상이었던 모든 관계 –는 사회 현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6) ● 그러므로 한국 근현대사의 폭거와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여기에 위축되지 않은 채 부단히 항거하며 전진해 나가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러브 스토리>라는 장치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회화적 정신분석을 통해서 실현해 보려는 신학철의 개인 심리학은, 1943년 생인 그가 유년기부터 다양한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마주쳐온 조력자들과 적대자들 간의 사회적 갈등과 투쟁의 역사이기도 한 한국 현대사의 지난했던 과정을 함께 헤쳐 나온 민중적 소원 성취의 궤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회 심리학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 심리학과 집단 심리학을 분리시켰던 당대의 학문적 경향을 비판하면서 개인 심리의 무의식적 갈등과 집단 심리의 무의식적 갈등을 내적으로 연결시키고자 노력했던 프로이트와 유사하게, 신학철도 흑백의 휘발성 이미지(도상-이미지)로 압축한 「한국현대사」 연작과 유채색의 터치와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이미지(지표-이미지)로 그린 「갑돌이와 갑순이」의 러브 스토리를 이중주의 형식으로 그림으로써 자본-국가-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선 민중의 항거와 희생의 역사를 함께 겪어 왔던 자신의 개인사의 분노와 열망을 내적으로 연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렇게 개인사와 사회사가 서로를 비추고 있는 이중주의 골격은 이십 여 년 전부터 시작했으나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한국 현대사-갑돌이와 갑순이」(1998~2008년)의 전개 과정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었다. 그 작품은 들에서 일하다가 헤어지게 된 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부여잡은 두 팔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장면이 도입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갑돌이와 갑순이」(2018년)에서 노란 저고리를 입은 갑순이는 산나물을 담은 바구니를 한 손에 든 채 예쁜 붉은 치마를 날리며 숲 속을 사뿐히 걷고 있고, 더벅머리 갑돌이는 그 뒤를 좆는 은밀한 사랑 놀이를 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 소원 성취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꿈 같은 이 장면에서 거칠지만 시원스럽게 칠해진 붓 터치들의 지표-이미지가 바람을 일으키듯 그려내고 있는 배경의 나무들과 바닥의 풀들은 은밀한 시선으로 연결된 두 남녀의 고양된 에로스에 생명력을 더해주고 있다. 생명이라고는 모두 지워진 흑백의 역사화의 도상-이미지의 차가움과 대조될 때 거친 붓 터치들은 사라졌던 에로스의 기억-흔적을 더 강렬하면서도 애잔하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보았을 어린 시절의 그 아름답던 사랑 놀이와 그와 일체를 이루던 살아 숨쉬던 자연적 배경은 모두가 덧없이 사라져 버린 것들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덧없음」(1916년)에서 말했듯이 "그런 덧없음만이 오히려 더욱 새로운 매력을 우리 삶에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23쪽) ● "아름답고 완벽한 그 모든 것이 소멸과 쇠퇴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 마음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하나는 그 젊은 시인이 느꼈을 것과 똑 같은 가슴 저미는 낙심이며, 또 하나는 그 명백한 사실에 대한 저항이다……모든 것은 소멸해 버린다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진정 진실이 아니겠는가……그러나 나는……그 염세적인 시인의 견해에는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반대로 그러한 덧없음으로 인해 아름다움의 가치가 더 증대되는 것이 아닌가! 무상함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는 바로 희소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향유의 가능성에 어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향유의 가치가 놓아지는 것이다…….모든 아름다움과 완벽함은 그것이 우리의 정서적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절대적인 시간의 길이에 구속되지 않는 것이다."7) ● 한때 존재하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흔적을 살려내려는 부단한 노력은 단지 과거의 어느 시절에 머물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유년기의 사랑의 대상을 더욱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현재의 계기를 이용해 과거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망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자본과 국가와 제국주의의 광포한 타나토스에 의해 파괴되어온 인간과 자연에 내재한 생명력 넘치는 에로스의 기억 흔적을 온전히 회복할 때라야 온갖 차별과 착취와 수탈의 파괴적 에너지(타나토스)를 적극적으로 통제하여 인간과 자연의 건강한 신진대사를 통해 에로스의 건강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분단 70년의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새로운 새벽이 동트고 있는 여명의 시대에 신학철의 이번 전시가 전하려는 역설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 심광현

* 각주1)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2018년 신판 35쇄, 637쪽.2) 지그문트 프로이트,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1996년 초판 1쇄.3) 심광현,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로지르는 휘파람 소리」, 『한국현대미술의 화제 작가, 신학철 전』 전시 도록, 김해문화의 전당 윤슬미술관, 2014. 5.13~6.29, 4)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개요』, 박성수/한승완 옮김, 열린 책들, 2013 재간 7쇄, 419쪽.5) 신학철/심광현 대담,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회화적 정신분석」, 『민중미술, 역사를 듣는다 1』, 박응주/박진화/이영욱 편, 현실문화연구, 2017, 157쪽6) 지그문트 프로이트,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 『문명 속의 불만』, 김석희 옮김, 열린 책들, 2009년 신판 7쇄, 73~74쪽.7) 지그문트 프로이트, 「덧없음」,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1996, 22~23쪽.


Vol.20190412e | 신학철展 / SHINHAKCHUL / 申鶴澈 / painting





‘한국민예총’ 드디어 서광이 비친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한국민예총)의 창립이 어언 30주년을 맞았다.

한국민예총은 예술인들의 공동실천으로 사회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기여하고,

민족문화 창달에 헌신할 목적으로 19881223일 창립한 예술단체다.

현재는 지역별로 분권화한 형태지만, 가닥을 잡아 갈 본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민예총30년 동안 민주화와 문예부흥을 위해 크게 기여해 왔으나,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다,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어려운 처지에 있다.

오랜 부채를 해결하여 다시 일어서기 위해 역대 이사장단을 비롯하여

신학철, 이철수, 유순웅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재를 털어  재기하려 노력해왔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격이었다.



   



창립 때부터 인간적인 관계를 더 중요시 했는지 모르지만,

많은 회원을 대표하는 단체 운영에 그런 사심이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사무총장 뜻에 따라 이사장이 추대되는 모순이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이루어져 왔다는데 있다,

그러니 자신을 내 세워 준 실세더러 누가 감히 메스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사무총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올 2월부터 화가 박불똥씨가 이사장을 맡으며,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사무총장을 해임하여 새 집행부를 구성했으나 당사자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장부까지 움켜 지고 배 째라 식으로 버티는데,

더 웃기는 것은 일부 지역 민예총을 조종하여 내분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제 제발 그만하라.

회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뭉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법적 조치도 불사해야 한다.

단체를 끌어 가는대는 절대 인간적인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한 선례를 들어 보겠다.

오래전 민예총산하단체인 민족사진가회’(민사협) 창립에 사진가 김영수씨를 도운 적이 있다.

그 단체가 주저앉게 된 원인이, 바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독재에 의한 것이라는데 있다.

초대 이사장으로 작고하신 홍순태선생을 로봇 이사장으로 앉혔으나,

이사회나 회계절차도 형식일 뿐, 모든 게 한 개인의 뜻대로 움직여졌다.



 


창립시 내가 사무국장 직책을 맡았으나 그것도 이름 뿐이었다.

인사동에 사무실을 내려는데, 보증금이 없어 잘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

홍순태 이사장 명의의 차용서를 써 주고 빌려와 입주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만 바보가 되었다.

뒤늦게 민예총본부 사무실로 이전했으면 보증금은 돌려줘야 할 것 아닌가?

 


 


가까운 친구라고 덮어주고 변명해 주다보니, 결국 단체 자체가 문을 닫도록 만든 것이다.

박정희보다 더 지독한 독재로 좌지우지 했으니, 어느 회원이 남아 있으려 하겠는가?

유령 회원을 이끌고 가내수공업 식으로 끌어가다, 본인이 죽고 나니 결국 문을 닫더라.



 


문제는 박불똥이사장이 정영신씨를 조직국장으로 내 세워 조직을 다시 복원시키려 했으나,

그 불신의 골이 깊어 대개의 사진가들이 머리를 흔든다는데 있다.

이제 민족이란 자도 단체명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조직에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모두 화합하여 잘 못된 것을 과감히 개혁하여 우리나라 문화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 개혁에 나선 박불똥 이사장을 믿는다.

원칙주의자인 그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사협에 진저리를 내어 오래 동안 방관하고 살았기에, 민예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차 몰랐다,

마침 사무국장을 맡은 서인형씨와 정영신씨가 쥐꼬리만큼의 보수로 일한다기에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이다.




 

유순웅 부이사장 도움으로 사무실을 얻어 어렵사리 꾸려가지만 살얼음 판 같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어렵기야 하지만, 그러나 희망이 보이더라.

이제 단합하여 협력하는 일만 남았다.



 


일반인들에게 받는 CMS도 계속 들어오고 있고, 기금 마련전에도 많은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기금마련전도 여지 것 해 왔던 것처럼 무조건 작품을 내 놓는 것이 아니었다.

사무국과 작가와의 계약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출품작가의 뜻에 따라 판매대금 분배와, 끝난 후의 작품반환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출품 작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몰랐던, 그 전의 주먹구구식 기금마련전이 아니라

작가와 단체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획전이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기획한 민족예술, 다시 날아오르다기금마련전에는

신학철, 황재형, 임옥상, 김정헌, 민정기, 김진열씨 등 내 노라 하는 작가 4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미 작품이 팔려 나간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 19일 오후5시 인사동 관훈갤러리전관에서 개막된 민족예술, 다시 날아오르다

기금 마련전에는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대 성황을 이루었다.



    


개막 행사는 유순웅 부이사장의 사회로 이성호 경기민예총이사장의 비나리 공연에서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의 북춤으로 신명을 일으켰다.

박불똥 이사장의 인사와 백기완선생의 축사, 그리고 유홍준씨의 격려사로 이어졌다.



 


이어 마임이스트 유진규씨의 무언극은 마치 민예총의 아픔을 대변하듯 절절했다.

손병휘 서울민예총이사장의 노래에 이어

임진택 명창의 김구선생 탈출기를 담은 창작 판소리가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수 정태춘씨가 나왔는데,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늙어가는 모습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목소리는 더 깊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관훈갤러리가 생겨난 이후 최고의 관객이 몰렸다.

3층 공연장에 다 들어 올 수 없어, 입구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2층에 마련된 조촐한 다과로 환담을 나누었고,

낭만에 마련된 뒤풀이에서 밤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판화가 김준권씨 100만원, 박종관 한국문예진흥위원장 100만원, 화가 김정헌씨 50만원 등,

독지가들이 줄을 이어 민예총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다음해 16일까지 열리는 민예총기금마련전은 꼭 볼만한 전시다.

유명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 민중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신학철씨가 88년에 제작한 목판화 한국현대사-유월항쟁도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으로 민중미술을 이끌어가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구입하지 못하더라도 작은 금액의 CMS 한 구좌라도 적어주길 바란다.

작은 물방울이 내를 이루듯, 작은 힘이 모여 민예총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참여 작가는 다음과 같다.

 

작고작가) 박생광 김영수 문영태 김구한

 

강연균 강요배 김영진 김재홍 김정헌 김진열 김천일 김현철 나규환 노원희 두시영 민정기

모노리 박불똥 박재동 박흥순 변승훈 손장섭 송 창 성낙중 신학철 심정수 안경진 안창홍

양형규 여태명 이영선 이명복 이원석 이종구 이종희 이철수 이태호 임옥상 장경호 정비파

조문호 주재환 최병수 황재형

 

사진, / 조문호





































































 





지난 5일, 반가운 손님 오셨다는 연락을 정영신씨로 부터 받았다.
문경의 문화활동가 이선행씨가 인사동 왔다는데, 점심이나 같이 먹잖다.






하필 ‘헌법제판소’ 부근이라는데, 요즘은 헌법 이야기만 들어도 열 받는다.
부지런히 내려가니, 이선행씨와 함께 골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9월 문경장에서 뵙고 처음인데, 그 때보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여자 분들은 살이 빠지는 것이 좋은지 모르지만, 난 든든한 미인이 좋더라.






그 곳에 맛있는 만두집이 있다는데, 자주 들락거리는 나보다 시골 사람이 더 잘 알았다.
가보니 '깡통만두'집인데,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동자동에서 줄 세우는 게 지겨워, 줄서는 건 딱 질색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두라 먹기도 편하지만, 기다리다 먹으면 더 맛있잖아.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지, 빈대떡 도시락까지 싸 왔다.
두 분이 인사동에서 차 한 잔 한다지만, 난 자판기 스타일이라 빠졌다.






나온 김에 볼 전시가 있어 인사동 거리로 나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돌아보니 안면 있는 분인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야! 이럴 때, 정말 입장곤란하다.
기억이 날 듯 말듯 머뭇거렸더니, 봉화 도예가 신동여씨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야 오랜 기억이 떠올랐는데, 영주의 권오진씨 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종문씨와 적음까지 그리워졌다.






잘 아는 분 전시가 있어 왔다기에 따라갔더니,
‘인사아트’에서 열리는 김흥배씨의 ‘달항아리’전이었다.
달 항아리가 정말 달덩이처럼 훤하게 잘 생겼더라.  
녹차는 얻어 마셨지만, 그 곳도 자판기 커피는 없었다.






전시장을 나와 김진열, 장경호, 정복수씨 삼인전이 열리는 ‘나무화랑’으로 올라갔다.
전시장에는 김진하 관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4년만의 "조우 또는 해우“ 김진열, 장경호, 정복수전은 ’나무화랑‘ 기획전이다.
김재홍, 김영진, 박불똥의 36년만의 만남-오!레알?』展에 이어
'중견작가 되돌아보기 시리즈' 두 번째 전시다.






강렬한 물질성과 형상성으로 민족의 아픔을 말하는 김진열씨,
초지일관 인간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는 정복수씨,
한 때 ‘한강미술관’을 운영하며, 민중미술에 기름을 부었던 장경호씨 등
다들 한 가닥 하는 배트랑 작가전이라 볼만하다.






그러나 방명록에 흔적만 남기고, 얼른 줄행랑쳤다.
사실 장경호 만나지 않으려고, 개막식을 피해 일부러 일찍 간 것이다.





그는 동생처럼 생각하는 친구지만, 요즘은 일체 상종을 않는다.
한 달 전에 부린 주정이 내게 부린 술주정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건 정영신에 대한 모욕이라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은 내 기집이 아니지만, 십 몇 년 살아보니 참 착한 년이더라.
여지 것 그 여자 힘들게 하면 누구든 그냥 두지 않았다.






그러나 화는 시간만 지나면 풀리지만, 이 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칠 작정이다.
그만큼 서럽고 외로웠으면 작업으로 토해낼 때도 되었는데, 허구한 날 술로 세월 보낸다.
그것도 조용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쌓인 분노를
술 친구에게 다 풀어 주변에 술친구가 없다.






사실 좋은 신작이라도 내놓았다면, 오히려 내가 사과하려 했다.
무슨 철천지 원수진 것도 아니지만, 작업에 매달리지 않는 한 보지 않을 생각이다.





나 역시, 존경하는 선생이던 친구든 후배든, 가리지 않고 입 바른 소리를 해 사람 많이 잃었다.
그렇지만, 그런 모욕에도 깨우치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필요 없다.
좋은 사람 만나기도 바쁜데, 덜 된 사람 만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나저나, 커피생각은 간절한데 인사동에는 커피자판기가 없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러 계동 ‘민예총’사무실로 올라갔더니,
정영신씨는 없고 서인형 국장과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있었다.
다들 ‘민예총’ 기금 마련전 준비로 바쁜 것 같았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니, 그때야 정영신씨와 이선행씨가 올라왔다.






마침 탁자 위에 2003년도 ‘문예진흥원’에서 만든 신학철선생 전시도록이 있었다.
신학철화백의 걸작들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끔찍한 작품 한 점이 눈에 밟혔다.






난, 세상만사 미리 정해져 일어난다는 운명론보다 인간이 짓는 업보를 믿는 편이다.
저 그림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지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세상사 누가 알겠냐마는, 좋은 것이 좋다는 어른들 말씀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게다.






지금 선생께서 처한 슬픔이, 한낱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빈다. 간절히...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9일은 두 모임이 동시에 벌어져 졸라 바빴다.

김명성씨가 마련한 ‘인사동사람들’ 만찬과
신학철, 강고은씨가 마련한 만찬이 같은 시간에 있었다.

 

강고은 시인이 준비한 만찬모임은 신학철 선생이 사시는
장안평에서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신학철선생과 강고은 시인이 오래 전부터 연문을 모락모락 피웠으니,
중요한 자리라는 낌새는 알아차렸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경복궁’에서 열린 만찬에 이어 이차로 ‘유목민’ 가는 길에,
그때 사 신학철선생 모임이 인사동 ’낭만으로 변경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좀 일찍 연락해 주었더라면, 먼 길이 아니니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는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늦었지만, 발길을 ‘낭만’으로 돌렸는데, 파장이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모여 있었다.
신학철선생의 친구인 춘천 사시는 황효창화백 내외분도 와 계셨다.
분명 예사모임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원로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민정기, 황의선, 김정환, 박불똥, 장경호, 이태호, 이인철,
김명희, 송진헌, 김진하, 박흥순, 김환영, 김정대, 최석태, 박영애, 정영신씨등 많은 분들이 있었다.

 

손장섭선생과 박세라씨도 왔다고 했으나, 먼저 가고 없었다.
당시는 똥인지 된장인지 몰랐지만, 여쭈어볼 겨를도 없었다.
술이 깨어 생각해보니, 신학철선생과 강고은 시인의 가연을
주변 분들에게 알리는 자리 같았는데, 축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강고은 시인은 작고한지 오래된 김진석화백의 미망인인데, 그분은 살아 생전 신학철선생의 절친이 아니던가.
신학철선생의 사모님께서도 오랫동안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지가 3년이 지났다.
이제 긴 외로움을 떨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니 이보다 더 좋은 경사가 어디있겠나.

 

당시에는 술이 취한 상태라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왔으나,
뒤늦게 이인철씨에게 물어보았더니 후배들이 두 분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고 주재환 선생께서는 즉석 주례사도 했다고 한다.

 

준비한 선물을 전달한 분도 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분들은 십시일반 거두어
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뒤늦게 전달했다고도 한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두 분의 가약을 기념하는 사진이라도 제대로 찍어 드려야 하는데 말이다.

 

뒤늦게나마 두 분의 만혼을 축하드립니다.
부디 행복한 여생을 꾸리시길 바랍니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3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인철의 ‘in the paradise’가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서의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기도 경직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작가 이인철은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로,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하는 것도 흥미롭다.






몇 일전 문영태화백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에 의한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인철씨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씨 작품을 비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인철씨의 인간적 친화력은 개막 전시장을 북적이게 했다.
원로 손장섭선생을 비롯하여 김명희, 민정기, 황의선, 윤범모, 김진하, 정복수, 장경호, 김재홍, 곽대원,

최경태, 김 구, 이재민, 변대섭, 한상진, 박홍순, 김영중, 김보중, 이원석, 김경지, 송용민, 김영진, 마문호,

양상용, 황준연, 박승원, 조경숙, 현린씨 등 많은 미술인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가 되었는데,

뒤풀이 장소인 ‘낭만’에는 손기환, 박은태, 임정의, 성기준, 소리꾼 유주현씨 등이 합류하여

판소리가 흘러 나오는 질퍽한 친목의 자리를 만들었다.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리는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에 많은 관람 있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