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Photographers Gallery(이하 K.P 갤러리)는 허승범 작가의 사진전 『몽마(夢魔) / The Unconscious Mind』 전을 7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 개최한다.'몽마(夢魔)' 는 밤중에 자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여 악몽을 꾸게 한다는 악마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이번 전시에서 허승범 작가는 본인과 주변인들이 꾸었던 악몽들에 착안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내재된 어두운 상념의 그림자이자 억눌린 욕망과 욕구들을 사진, 영상작업을 통해 소개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거듭된 우리 사회가 급속히 이룩한 산업화와 문명화 이면에는 해소되지 못한 개인의 억눌린 욕구와 욕망들이 존재하며 이는 무의식에 침잠하여 꿈을 통해 발현된다고 이야기한다. K.P 갤러리는 『몽마(夢魔) / The Unconscious Mind』 전시를 통해 정신적 불안과 압박, 스트레스를 억누르며 쉼 없이 달려가는 우리들이 삶을 돌아보고 무의식에 침잠하여 꿈을 통해 발현되는 현대인의 삶과 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 ■KP 갤러리
허승범_The Unconscious Mind Series, 사람들_120×80cm_2021허승범_The Unconscious Mind Series, 낮잠_60×90cm_2021
거듭된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급속히 이룩한 산업화와 문명화는 분명 우리들에게 편리한 삶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인류의 발전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미래를 앞당기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가시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만하며, 더 큰 성공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다. 하지만 급속한 변화에 따른 현대 문명의 빠른 속도감은 우리들의 삶에 적잖은 부작용을 이야기한다.
허승범_The Unconscious Mind Series, 사람들_120×80cm_2021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보다는 온라인상으로 건조한 안부를 주고받는 데 익숙해졌다. 한 개인이 도시라는 거대한 조직의 요소로 작동하게 함은 개인의 존재적 결핍을 야기하며 우리들의 가치를 군중 속의 익명으로 제한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무한 경쟁시대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정신적 불안과 압박, 스트레스를 억누르며 쉼 없이 달려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바쁘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다 보니'쉼'이란 단어는 사치이자 낙오자들의 넋두리로 전락해버렸다.
허승범_The Unconscious Mind Series, 친구_80×120cm_2021
강퍅해진 현대사회의 해소되지 못한 개인의 억눌린 욕구와 욕망들은 무의식에 침잠하여 꿈을 통해 발현된다. 학자들의 꿈 해석에는 이견이 있지만 명백한 공통점은 꿈을 통해 우리들의 무의식의 상태를 성찰한다는 것이다. 깨고 나면 희미해지는 대부분의 꿈과는 달리 악몽은 우리들 기억 속에 트라우마가 되어 현실의 스트레스를 매개로 언제든 다시 찾아온다.
허승범_The Unconscious Mind Series, 날고기_120×80cm_2021
나는 나와 주변인들의 꾸었던 악몽들을 소재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들은 현대인의 악몽이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악몽은 현대의 집단적 무의식이 보내는 어두운 상념의 그림자이자 억눌린 욕망과 욕구들의 분출구이다. 환부에 느껴지는 통증처럼 악몽이 우리들에게 보내는 신호는 경고에 가깝다. 화려한 도시의 페르소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몽마는 어쩌면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바이러스이지 않을까? 현대사회에 증가하는 자살률과 정신질환 발병률은 몽마의 강한 전염력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사이코 패스적 범죄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들의 내면은 안전한가?
허승범_The Unconscious Mind Series, 친구_80×120cm_2021
큰 배에 타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하차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은 하나 둘 출입구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간 들고 있던 유리로 된 물병을 떨어트렸다. 물병은 데굴데굴 굴러서 여기저기 부딪혔지만 깨지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슨 일이 있는지 배 안의 상황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배 밖에선 어떤 무리의 시위소리와 총성이 들렸고 배 안의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총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시위대는 출구 쪽 문 앞에서 배 안으로 진입하려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들고 있던 물병을 주시했다.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분명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차분히 물병을 열어 물을 마시려 했지만 손이 떨려 병을 열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 도망치는데 나는 꼼짝없이 그곳에서 물병을 여는 시도를 반복할 뿐이었다. (악몽노트 중에서) ■허승범
지난 26일 박사모 집회를 찍기 위해 고가에 올라갔더니, 뒤에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돌아보니 사진가 박옥수 선생이었다.
2년 전에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홈리스 추모식‘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그 땐 사진 찍느라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박옥수선생은 나보다 두 살 적은 49년생이지만, 20대부터 찍어 사진으로는 한참 선배다. 일찍부터 이형록선생의 ‘신선회’와 ‘싸롱 아루스’에 이어져 결성되었던, ‘현대사진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한 원로 사진가다.
차 한잔하기 위해 서울역사에 있는 커피체인점을 찾아갔다. 한 끼 밥값에 버금가는 찻값이지만, 자릿세로 생각하고 들어간 것이다. 요즘 박선생께서 페이스 북에 자주 올리는 70년대 사진이 궁금해서다.
박선생은 오랫동안 충무로에서 ‘토탈스튜디오’를 운영한 상업사진가다. 탈에 관한 사진이나 풍경사진은 더러 보았지만, 사회기록에 관한 사진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페북에 올린 사진 밖에 보지 못했지만, 뚜렷한 주제 없는 포괄적인 기록이었다. 더러는 세월에 숙성된 귀중한 사진들도 있었는데, 그토록 열심히 찍은 사진을 왜 묻어두었는지 궁금했다.
차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모르는 사실도 많았다. 젊은 시절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차정환씨가 근무한 것은 알았지만, 박선생이 근무한 것은 전혀 몰랐다.
제일 먼저 미국 이민 간 이창진씨가 했고, 그 후임으로 박선생께서 맡았다는데, 차정환씨는 박선생 후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파리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니’ 자동차 광고사진을 찍던 추억담도 들려주었다.
요즘 페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사진이 현대자동차에 근무했던 시기였다. 추측컨대, 상업사진을 하다 보니 순수사진에 대한 갈증으로 틈틈이 기록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충무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일거리가 없어 집세를 내지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추석이나 설날 전에 몰려오는 상품 사진을 찍어, 밀린 집세를 내기도 했단다.
나도 한 때 박선생 스튜디오에서 신세 진 적이 있다. ‘동아일보사진동우회’ 일을 할 때인데, ‘동아국제사진살롱’ 도록에 들어갈 입상작을 급히 찍을 일이 생겨, 박선생이 운영한 ‘토탈스튜디오’로 가져가 도움을 받은 것이다.
갑자기 잊혀 진 시절의 오래된 사진들을 내놓은 것은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나서야 짬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후배의 도움으로 많은 필름을 스캔 받았다는 데, 그 사진 원고를 몽땅 출판사에 넘긴지도 한참 되었다고 한다.
아직 어떻게 하겠다는 확답을 듣지 못해 초조해 했으나,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기가 간단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아무쪼록 좋은 결실 맺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