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노숙인 남씨가 인력시장에서 퇴짜 맞고 뱉은 하소연이다.

“씨발~ 노숙하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안 하네.

폐품은 재활용이라도 하는데, 폐품보다 못한 거 아이가?“

억장 무너지는 자학의 말이었지만 맞는 말이다.

 

지난 겨울 서울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90명이나 쏟아질 때 남씨도 실려 갔으나

아직 감감소식인걸 보니 아마 고행의 여정을 끝낸 것 같다.

갖가지 지병에다 먹은 것조차 없으니, 살아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디 저승에서나마 폐품이 아니라 사람대접 받고 살기를 바란다.

 

서울역광장에서 방황하는 노숙자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멀쩡한 놈들이 일 안하고 빈둥거린다‘고 나무라지만,

배운 기술도 없는데다 제대로 먹지 못해 힘도 쓰지 못한다.

거기다 행색마저 지저분하니 누가 일을 맡기겠는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을 위안하는 것은 오직 술 뿐이다.

술을 얻기 위해 구걸하고, 술이 취해 정신 놓는 일이 반복된다.

술마신 자는 노숙인 쉼터를 비롯해 어디에도 받아주지 않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천국행 열차를 기다리며, 지옥 언저리를 맴돈다.

 

지난 주말의 밤 늦은 서울역 광장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대우빌딩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무색했다.

더러는 패잔병처럼 쓰러져 잠들었고, 몇몇은 가로등아래 둘러 앉아

세상 뒤엎을 음모라도 꾸미는 것 같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긋지긋한 더위와 싸워야 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되돌리는 선풍기소리 조차 짜증스럽다.

요즘 같은 더위의 쪽방은 대개 자물쇠가 잠겨있거나 방문을 열어놓고 있다.

 푹푹 찌는 찜통에서 탈출하여 어디선가 노숙하고 있을 것이다.

 

쪽 팔려 노숙은 안 한다는 맞은 편 김응수씨만 곰처럼 버티고 있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지하철이라도 탔으면 좋겠으나, 사람 접촉이 싫어 안 나간단다.

옆방의 최완석씨는 길 모퉁이에 자리 잡았더라.

이런 더위에는 정해진 거처도 없는 노숙자가 상팔자다.

 

몇 년 전에는 쥐가 천장 전선을 갉아 먹어 정전된 적이 있었는데,

더운 바람이라도 돌리는 선풍기가 작동 안 하니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원인을 못 찾아 낑낑대다 하는 수없이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맞바람이 통하는 건물 입구에 자리 깔아 너무 시원했다,

 

그러나 칼잠 자는 습관으로 귀를 땅바닥에 붙여 누웠더니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노숙자들이 그 시원한 장소를 탐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잠들어 그런지 그 이튿날 근육통으로 혼이 나,

다음부터 절대 노숙은 하지 않았다.

노숙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워도 팬티만 걸치고 화장실 물을 뒤집어 써가며 방에서 버텨낸다.

이런 날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게 좋지만, 그 곳은 컴퓨터가 없어 일을 못한다.

사실은 컴퓨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마지막 지하철을 놓친 것이다.

그의 컴퓨터 중독에 가깝다.

 

더위나 식힐 겸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다.

자리 잡고 누운 이도 있지만, 광장을 오가며 시간 보내는 자가 더 많았다.

유독 정씨만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뭘 옮겨 적고 있었는데,

노트에는 씨알이 될만한 성경구절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어두워 눈 버린다며 밝을 때 보라고 말했으나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보고 또 보았는지 성경에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젊을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고시라도 붙었겠다고 농담 했더니 빙그레 웃는다.

네가 어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알겠냐?는 투다.

 

겨울은 쪽방, 여름은 노숙이라 듯이 요즘은 노숙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고 계단에 웅크려 자는 여인도 있었다.

무슨 사연으로 거리에 내 몰렸는지 모르지만, 안 서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이던가?

김씨는 무슨 꿈을 꾸는지 얼굴을 씰룩거리며 자고,

천씨는 어디 아픈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침이 오면 또 다시 더위와 싸워가며 밥 한술 얻어먹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을까?

 

요즘 뉴스에는 기본소득이니 어쩌니 나팔 불어 대지만,

거리에 내 몰린 노숙인의 생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는 정치인이 없다.

국민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표를 존중하는 더러운 정치꾼들에게 무슨 기대를 한단 말인가?

누구의 노랫말처럼, 잠자는 하늘 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광장을 배회하는 노숙인 중에는

세상에서 밀려 난지 얼마 안 된 초보도 끼어있다.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아 대개 지하도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충전하며 시간 보낸다.

어떤 이는 담배 생각에 서울역광장 흡연구역을 맴돌며 담배구걸도 한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수두룩한 재떨이 꽁초는 손도 안 댄다.

 

그런 초보들은 잠깐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어딘가 비빌 구석이 생겼거나 일당 주는 일거리 따라 전전할 것이다.

간혹 영등포역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 등지를 떠돌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노숙인도 있다.

 

하루가고 한 달 가는 세월 따라 그들도 하나하나 바뀔 수밖에 없다.

체납된 요금으로 핸드폰도 버리게 되고 등짐도 단출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찾는 것은 밥보다 술이다.

 

채움 터에 가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으니 술을 사기위해 구걸을 한다.

술이 모든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해 주는 마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노숙 생활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시킨다.

 

어제는 오전 여덟시 무렵 거리에 나왔다.

낯 시간은 가는 놈이나 있는 놈이나 만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서다.

동자동 새꿈공원엔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서울역광장도 술 마시지 않으면 대부분 누워있었다.

 

아직 코로나 검사받을 시간이 되지 않았으나, 대기 줄은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쫓겨 옮겨가기 직전의 서울역광장 풍경이었다.

 

뜻밖의 노숙인을 만났다, 가구점하다 마누라에게 쫓겨 났다는 박씨를 일년 만에 만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며 노래까지 불렀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다가 사진 찍지 말라는 손사래에 얼른 집어넣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던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동료와 아내가 배신했다며 울분을 터트린 적이 작년 봄이었다.

이젠 모든 근심 걱정을 버렸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편해보였다.

행색은 더 구질구질해 졌으나 그 것은 노숙인의 계급장에 불과하다.

 

그동안 영등포역에서 지냈는데,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났단다.

반가움도 잠시 뿐, 경계하는 눈빛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행여 소문 퍼트려 누가 찾아올까 걱정되어 서울역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 사이 담배는 끊었고, 술도 서서히 줄여가고 있단다.

 

이 지경으로 만든 동료와 가족에 대한 미움도 이제 사라졌고,

돈에 대한 집착까지 사라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옛날에는 비아냥거렸으나, 이제 사 가치를 알겠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며, 세상이치를 환갑이 되어서야 깨우쳤단다.

 

아는 절집에 가서 일이나 도와주고 여생을 보낼 것이라며 웃는다.

자리 잡으면 연락해 달라며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사진, / 조문호

 

 

 

모두 버린다

물건도 사람도 쓸모 없어면 다 버린다

쳐 먹고 싼 똥처럼 쉽게 버린다

 

가족이 버렸고, 친구가 버렸고, 세상이 버렸다

 

혈혈단신 밀려 나 정처없이 떠 돈다

 

모진 목숨, 다 버려도 목숨만 못 버린다

 

 

사진, 글 / 조문호

 

 

걱정이 많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으나,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

고질병인 호흡장애와 원인모를 두통에다 기력까지 쇄진하니, 사는 것 자체가 비참해 진다.

 

 

 

한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도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냈는데, 이젠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인데, 갑자기 날씨마저 더워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바람이라도 씌러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더니, 노숙하는 박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형님!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 잔합시다” 술 생각이 간절한 모양인데,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아 같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서너 잔 마셨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박씨가 “어디 아픈가베! 빨리 병원 가보라”며 술잔을 거두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었더니 어지럼증이 좀 안정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지은이는 “술을 혼자 많이 마셔 벌 받았다”며 낄낄댄다. 어디서 구했는지 헬멧을 쓰고 목에 채인 까지 감고 있었다. 지은이를 보니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노숙하는 처지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살아간다.

 

 

 

그래! 아무 것도 없는 게 속 편할거다.

 

 

 

나 역시 아무것도 없는데, 난 왜 편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쪽방도 있고, 좋아하는 동지도 있고, 케메라도 있지 않은가? 그 세 가지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았다.

 

 

 

곳곳에 쓰러져 자는 노숙인이 널려 있었다. 밥 얻어먹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 잠 잘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아플지 모르겠다. 아파 딩굴다 눈감으면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 짐승보다 못한 삶이지만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정치꾼들은 걸핏하면 복지복지 노래 부르지만, 말짱 개소리다.

 

 

 

그래도 그냥 들어 갈 수는 없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는 한 이 짓은 반복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다. 세상에 별의 별 병이 많지만, 이 병도 마약처럼 하나의 정신병에 속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속에 들어가 눕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관 치고는 큰 방이지만, 계단 오르는 일이 너무 힘들다. 쉬엄쉬엄 올라오긴 왔는데, 오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숨을 못 쉬어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런 복이 내게 올 리는 없다.

 

 

 

누워 있어도 할 일이 눈에 어른거려 미칠 지경이다. 지금쯤 정선에 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병이 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온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웠다.

먹기도 싫고, 컴퓨터도 싫고, 자다 깨다만 반복한다.

 

가끔은 정선 집이 불탄 것을 잊고 일 할 것을 생각하다

뒤늦게 정선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쫙 빠진다.

 

난, 정선 집에 많은 것들을 가져 쪽방에 살아도 항상 마음은 부자였다.

다 태우고 모든 걸 잃었으니, 쪽방사람과 똑 같은 동격이 되었다.

 

관리인 정씨가 꼼짝을 하지 않으니, 방문을 열어보고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때 사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뚜벅뚜벅 공원으로 걸어갔다.

모든 것은 그 풍경에 그 풍경이고 그 얼굴에 그 얼굴이었다.

 

강씨는 보자마자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한다.

혼자 술 마시던 정씨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반색한다.

 

술 한 잔 하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역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역광장은 노숙자와 비둘기의 천국이다.

 

노숙자는 사람에게 얻어먹고, 비둘기는 노숙자에게 얻어먹는다.

무소유의 삶을 누리는 공존의 장이다.

 

노숙자 지은이가 짐을 끌고 어디로 가고 있었다.

차도 건너 편 외딴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았더라.

 

짐이 많아 치우라는 역무원 등살에 피신한 것 같았다.

터줏대감 가오인지, 그는 항상 짐을 쌓아놓고 산다.

 

나를 보고 멀리서 달려와 손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똥색인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다.

 

가진 것 없는 노숙자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젠 나도 가진 게 없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아직 미련이 남았나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사진, 글 / 조문호.

 

말 없는 노숙인 천씨가 어렵사리 뱉어 낸 첫 말이

‘세상을 원망하랴! 마누라를 원망하랴’다.

가족은 어디 사냐? 는 물음에 내 뱉은 뜬금없는 말이다.

 

이 친구는 다른 노숙인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넋 나간 듯 역전에 앉아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어디서 발목까지 다쳐 깁스 한 사연을 물었더니,

그때서야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다.

힘이 없어 발을 헛디뎌 부러졌단다.

 

그는 잔재주 못 부리고 적극적이지도 못해

직장과 가정을 잃은 지가 십 여년이 훌쩍 넘었단다.

믿었던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져

사람 자체가 싫고, 말하기도 싫단다.

 

예전에는 부모 잘 못 만나 물려받은 것 없고 배우지 못한,

 타고 난 노숙인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돈 벌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많다.

 

노숙인이 많이 생겨 난 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노숙인 세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대개 아이엠에프 사태에 밀려 난 세대다. 

 

지금은 또 다르다.

돈 못 벌어 가정불화로 쫓겨난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돈 못 면 아내는 물론 자식에게도 버림받는 세상이다.

 

영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정한 세상이라

팔자소관으로 돌리기에도 억울한 삶이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의 삶은 차지하고라도

꿈마저 잃어버린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죽을 자신이 없어, 죽지 못해 산단다.

하기야! 죽을 용기로 나선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버림받은 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주변에 코로나 감염자가 퍼져 비상 걸린 지가 두 달이 지났다.

감염된 많은 노숙인들이 사라졌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살아남은 노숙인은 물론 동자동 쪽방 빈민들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사전검사를 받아야 밥집이건 보호시설에 출입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확진가가 나오지 않자 서서히 긴장감이 풀릴 수밖에 없었는데,

나른한 봄바람 타고 다시 서울역 노숙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긴장감이 풀림에 따라 마스크를 벗거나

반쯤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언제 다시 확진자가 생겨 이차 재난이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병 걸리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배고픔과 외로움이다.

 

그리고 동자동 쪽방 촌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노약자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시로 공원을 들락거린다.

 

이제 검사받는 것도 지겨울뿐더러,

목련이 만발한 봄날 어찌 쪽방에 갇혀 살수만 있겠는가?

 

죽고 사는 문제는 운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사람은 없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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