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9

세상에! 이토록 천진난만한 늙은이가 어디 있겠나?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시끄러워 잠이 오겠냐?”고 말했더니,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네.

 

지난 8일은 우산을 받쳐 들고 ‘새꿈공원’에 나갔다.

노숙하는 양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다.

솔직히 말해 술 생각이 간절해 빗물 섞인 막걸리라도 한잔 얻어 걸칠 심사였다.

 

유씨는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고 병학이는 술이 취해 졸고 있었다.

다들 떨어지는 빗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박씨 영감은 떨어지는 빗물이 거슬리는지 재활용품 비닐 포대에 들어가 있었다.

빗물이 거슬리기보다 자신의 육신도 재활용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빗물 소리가 음악으로 들릴지언정 바닥의 찬 한기는 어찌 견디겠나?

차라리 물방울 음악에만 심취하도록 대마초라도 한 대 권하고 싶었다.

그래! 비 피하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받는 설움보다야 낫겠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피아노곡 ‘물의 요정’으로나 알고 들게나.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사랑을 잃고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전설 속 물의 요정의 슬픔과 절박함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때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해지는

물방울의 춤은 자연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부디 물방울 소리를 장송곡으로 여기며 천국 가는 꿈이라도 꾸게나...

 

사진, 글 / 조문호

2021,9,22

 

추석은 잘 지내셨습니까?

저희들 사는 모습이 책과 전시로 소개된다네요.

많이 봐주시고 우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려주십시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입니다.

가족과 사회에 버림받아 거리를 떠돌며 목숨을 이어갈 뿐입니다.

부디 절망의 벼랑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십시오.

 

2021년 10월 22일

김지은 합장

 

https://blog.naver.com/josun7662/222504873464

2021.9.21

서울역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노숙인이 많다.

숨어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난날을 돌아보는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리고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한다.

투명 인간으로 떠돌다 죽고 싶은 것이다.

 

‘서울역 다시서기 지원센터’ 지하 벽에는 노숙인들이 써 놓은 낙서가 많다.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차고, 술과 욕설과 싸움이 난무하는 곳”

‘내 고향 솔치재“라는 글도 눈에 뜨인다.

솔치재라면 내가 살던 정선 지척에 있던 고개 이름이 아니던가?

낙서 중에는 백조 시인이 쓴 ’신비로움과 사소함의 동거‘라는 시도 있다.

 

”오랫동안 간절한 것은 신비롭고

한참 머무는 것은 사소롭다.

신비는 직장에서 잘린지 오래고

사소는 각방을 쓴지 오래다.

불황이 걷히지 않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해가 풀리지 않아

바람 부는 날이 잦아진다.

신비로움과 사소함은 동거 중이다.

궂은날이 이내 지나가고

풀어헤친 머리를 야무지게 묶는다.

네가 내게로 온다“

 

백조 시인이 일 년 전에 쓴 글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노숙인들의 술자리에는 말 없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이야기가 나와도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실 뿐이다.

말 없는 이들은 표정도 변화가 없다.

다 놓았으니 마음은 편할 것이다.

 

추석을 며칠 남긴 서울역광장의 밤은 한적했다.

다들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더라.

 

오 갈대 없는 이의 명절이란 또 하나의 고통에 다름아니다.

 

다음 날은 쪽방촌 추석 선물 나누어주는 날이다.

웬일인지 ’새꿈공원‘에 선 줄이 길지 않았다.

다들 추석 선물이라 모자라지 않을 것으로 여겼나 보다.

옆방 사는 김씨는 마스크를 두고 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누어 준 선물 박스는 쌀이 들어 묵직했다.

육개장, 라면, 김, 고추장, 된장에 이르기까지 식료품 종합세트였다.

대개 내용물이 비슷비슷해 된장과 고추장은 지난번 것도 있어 남아돈다.

 

낑낑거리며 사층까지 올려놓고 라면 끓일 물을 올리는데,

때맞추어 교회 청년들이 도시락을 전해 주네.

 

고맙게 받아먹었으나, 부끄러웠다.

남의 도움에 길들어 산다는 것이...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월요일 오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쪽방 거지는 걱정할 것 없으나 길거리 사는 거지는 지랄 같다.

이불 삼은 종이 박스도 젖어버리지만, 몸 젖는 것보다 마음 젖는 것이 더 서럽다.

노숙인들이 비 오는 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이유다.

 

다들 비 피할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누군가 랩처럼 비닐을 몸에 감고 버티는 자도 있었다.

깡다구로 버티는 것일까? 아니면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것일까?

무슨 천형의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으로 살아야 할까?

 

 

그래도 지은이는 우산을 하나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을 돌아다녔다.

똑같은 노숙자지만 지은이는 낙천적으로 산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옷이 그 옷이지만 나름대로 바꿔 입어가며 멋을 엄청 부린다.

 

만들어 주기로 한 시진을 준비하지 못해 일부러 눈 마주치기를 피했으나

멀찍이서 보고 다가와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해준다.

다음엔 꼭 사진을 뽑아오겠다고 변명했더니,

밀린 사진이 석 장이라며 찍은 회수까지 기억했다.

 

지하도를 건너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인사를 한다.

그는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그를 왜 기억하지 못할까?

치매 환자라며 이름이 뭐였더라고 머리를 조아리니,

박완호예요 박완호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자칭 인사동 광대라는 자가 서울역엔 어떻게 진출했나?

하기야! 나 역시 인사동 찍사가 서울역 부근에서 놀지 않는가.

서울역광장은 거지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동자동으로 건너와 공원에 갔더니, 젖은 땅에 앉아 여럿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근 일 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던 유정희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젖은 자리에 끼어 앉았는데, 그동안 감방에서 몸조리하고 왔단다.

싸움판에 끼어 덤터기를 썼다는데, 폭력전과 별까지 달았다며 씁쓸해한다.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일 년 가까이 서류를 갖고 다녔는데

원고 마감하고 나서야 나타났다며 안타까워했더니,

형님!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뭐 필요합니까?”라며 오히려 섭섭해한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찍힌 사람들에게 사인받으러 다니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만약 찍힌 사람이 고소를 해도 이왕 단 별, 몇 개 더 단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 등 제삼자에게 줄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외면할 수 없었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머무는 곳이 일정치 않아 만나지 못하면 부득이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출감기념으로 소주 두 병 사 와서는 빗물에 칵테일해 마셨다.

그런데, 건너 자리에 있던 상일이가 내 옆으로 옮기더니 말을 붙인다.

다들 나에 대한 호칭을 형이나 어르신 아니면 사진작가라 붙이는데, 이 친구만 늘 사장님이라 부른다.

~ 배도 안 나오고 이래 삐적 말라빠진 사장이 어딧노?”라며 싫어해도 자기는 그 말이 편하단다.

 

오래전 상일이가 나온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구가 그 내용을 찾아주어 보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어려운 처지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들은 노숙하는 친구를 범죄자처럼 피하지만,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이 야박한 세상에 착하게만 사니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만, 몸이 축축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쪽방에 올라와 옷부터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가짜 미투로 독박 쓴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최효준씨가 쪽방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달짝한 복분자 술을 한 병 사왔는데, 부족한 알콜 농도는 복분자로 보충했다.

 

사진, / 조문호

 

 

 

며칠 전 아침 무렵 공원산책에 나섰다.

그 때까지 잠에서 못 깬 노숙자도 있었고,

초장부터 술로 달래는 노숙자도 여럿 있었다.

 

밥 배급은 점심 때 부터 시작하니 다들 빈속일 것이다.

빈속에 들어가는 짜릿한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나 역시 엊저녁 마신 술에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를 연발했으나 순식간에 무너졌다.

공원입구 술자리에 한동안 안 보였던 병학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역 확진자 실려 갈 때 저승 따라 간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어찌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연을 들어보니, 코로나 걸린 것이 아니라 감방에 다녀왔단다.

죄목이 절도죄라는데, 임자를 알 수 없는 텐트를 잠깐 옮긴 죄였다.

 

그들이 머문 자리는 비에 노출된 곳이라 텐트가 절실했을 것이다.

오래 전 비를 피하지 못해 낭패 당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다.

몸 젖는 것이야 샤워 쯤으로 생각하나 이불은 물론 담배마저 젖어버린다.

 

2018.5.17촬영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오들오들 떠는 것이 안 서러워 옷을 갖다 준 적도 있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장 발장은 빵을 훔쳐 잡혀 갔지만

집을 훔친 그 역시 생계형 신판 장 발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18.5.17촬영

쪽방으로 올라 와 페북질에 빠져 있으니, 고맙게도 한 젊은이가 도시락을 전해준다.

살기 위해 먹었으나, 배가 덜 고파 지껄이는 헛소리에 다름아니다.

 

가볼 곳이 있어 일어서니, 맞은편 김씨도 나서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이 더운 여름철에 정장을 차려 입었다.

 

반질반질한 구두는 파리 똥도 미끄러질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많은 자금을 빌려 바다 야시장을 개발하려는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지척에 있는 ‘KP갤러리’를 찾아갔.

그곳에는 임창준의 기원의 장소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텅 빈 전시장을 돌아보며 빈 자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사진, / 조문호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노숙인 단속반이 들이닥쳐 외곽으로 쫓겨나야 했다.

단출한 짐을 가진 노숙인들은 잠깐 외곽으로 옮겼다 다시 자리잡으면 되겠으나

짐을 많이 가진 김지은씨만 피박을 썼다.

 

서울역광장에서는 제일 오래된 고참이지만 단속하는 경찰 앞에는 찍 소리도 못했다.

많은 짐이 모두 쓰레기봉지로 들어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라면 담긴 봉지마저 집어넣자 그것만은 간신히 돌려받았다.

단속반이 사라지면 또다시 하나하나 주워오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노숙자가 노숙자에게 갑 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힘센 노숙자가 누워있는 노숙자에게 일어나라며 지팡이로 후려치자 지팡이를 잡고 통사정 한다.

단속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행동인지 모르지만, 권력자에 빌붙는 완장부대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단속하는 경찰 역시 완장부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완장부대의 잔재는 노숙자들 뿐 아니라 쪽방촌에도 종종 볼 수 있다.

쪽방상담소 일 돕는 자들의 갑 질은 물론 심지어 모범방범대 마저 그런 우월감이 묻어난다.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기생해 온 완장부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완장부대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홍위병들이 찬 완장은 사람 죽이는 완장이었고,

일본 놈들에게 빌붙어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제의 완장부대는 물론, 한국전쟁 때도 완장이 설쳤다.

 

대개 완장 찬 사람은 건달이 많았는데, 완장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었다.

완장을 채워준 권력자의 뒷배를 믿고 갑 질을 해대는데,

옛말에 때리는 서방보다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밉다는 말이 있듯이

권력자보다 그 밑에 빌붙은 완장부대가 더 미운 것이다.

 

한국사회는 완장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완장만 차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문제는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완장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성을 위해서는 정의나 법도 따지지 않는다.

 

공직도 하나의 완장에 가깝다.

완장을 차면 국민도 안보이고, 나라도 안 보이고 오로지 임명자의 입맛만 맞춘다.

정권마저 완장을 채워주는 자들과 완장을 차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등이고 공정이고 말짱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진. / 조문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전문출판사인 ‘눈빛출판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무실을 외곽으로 옮겨가고 유일한 직원이었던 성윤미씨가 그만두고 이규상대표가 북치고 장구치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초판 천부 찍던 사진집이 오백부로 줄어들었고, 그마저 엄선해서 출판해야 한다니 33년 전통의 출판사가 고사 직전에 몰렸다. 안 팔리는 다큐멘터리 사진집만 냈으니, 여지 것 버텨낸 것만도 용하다 싶다.

 

사진출판사로서 오로지 한 길을 걸어 온 '눈빛출판사'의 궤적은 한국사진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정작 보아야 할 사진인들이 책을 사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젠가 유명 사진가의 집을 방문하여 서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국내에서 출판된 사진집은 보이지 않고 비싼 수입서적만 잔뜩 꽂혀 있었다. 그러면서 '눈빛출판사'에 자신의 사진집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650여종에 이르는 많은 사진집을 출판했으나 베스트셀러 한 권 없다.

프랑스 사진가 크리스 마커가 북한 모습을 담은 사진집 '북녘 사람들'이 3,000부 팔렸고, 이경모선생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이 1만부, 김기찬 사진집 '골목 안 풍경'이 7000부 정도 팔린 것이 대박 친 사진집에 속한다.

 

만약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사진이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을 수 없는 불모지에 뛰어들어 온 힘을 기울여 온 ‘눈빛출판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다큐멘터리사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땅의 역사와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투지가 없었다면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가 개인 파일에서 잠자다 잊혀 지거나 사장되었을 것이다.

 

‘눈빛출판사’는 긴 세월동안 다큐멘터리사진을 발굴하여 출판해 왔고, 역량 있는 신진작가를 배출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분야인 다큐멘터리사진을 부흥시켰다. 그 고마운 출판사를 위해서보다 사진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사진집은 사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대중성 없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몰락은 사진가 스스로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사진집 출판에 이변이 생겼다. 이강산 시인이 준비한 사진집 ‘여인숙’이 선주문 형식으로 진행된 ‘텀블벅 펀딩’에 283명의 후원자가 몰려들어 천 팔백 육십 만원을 후원했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는 사진인도 있었겠지만, 일반인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집 출판에 전례가 없었던 일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를 겨냥한 서적은 꾸준히 잘 팔린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곤충사진가 이수영씨의 곤충사진집에서 나오는 인세는 그가 작업하는 경비뿐 아니라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도 꾸준히 들어온다고 했다. 그 뿐 아니라 이십 년 전 정영신씨가 글을 쓰고 정영신씨 사진으로 유성호씨가 그림을 그린 ‘시골장터 이야기’(진선출판사)는 23쇄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팔리는 품목이다. 6개월간의 판매부수를 정산한 인세 백여 만원이 지난 7월에 보내왔다는데, 정영신씨에게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책이다. 다큐멘터리사진집으로 그런 수익을 얻는다는 것은 요원한 꿈일까?

 

작년에는 정영신씨가 ‘길 위의 인문학’ 공모에 선정되어 작업비를 지원받았으나, 2차에서 탈락하여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하게 될 ‘어머니의 땅’ 사진집제작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운이 없는 출판사다. 나 역시 그동안 작업해 온 노숙인은 책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해 출판하자는 제안은 커녕 꿈도 꾸지 못했는데, 우연히 ‘이숲’출판사에서 출판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의외의 출판계약으로 편집까지 마무리한지가 오래되었지만, 서둘 필요는 없다고 했다. 책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책으로 하여금 노숙인들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하기에 지원 없는 출판은 무의미했다. 적어도 찍힌 사람에게는 책 한 권씩이라도 전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출판사에서 지원 신청한 ‘노숙인’이 종이책 부분 우수출판물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사진집이 나오는 9월23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전시를 한다는데, 나도 꼽사리 끼어 인사동거리에서 가두 전시를 할 작정이다. 일반인은 전시장에서 놀고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노는 잔치판을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기대하시라!

 

사진, 글 / 조문호

 

 

다들 찌푸리고 사는 동자동 쪽방 촌에도 늘 행복하다는 이가 있다.

서울역 주변을 떠돈 지 10년차인 위씨(66세)인데, 그는 개미보다 매미의 팔자를 타고 났다.

 

지난 9일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쪽방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을의 향취가 묻어났다.

노숙인들은 총 맞은 병사처럼 여기 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중에는 내외간인지 남녀가 같이 누워 자는 이도 있었고, 한 할머니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붓이 아니라 여러 자루의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얼마나 힘차게 그렸으면 스케치북이 닳아 떨어질 정도였다.

궁금증이 발동했으나 저리 가라며 손사래 쳤다. 야심한 밤인데다 여자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을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버스정유장 벤취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오래 전 ‘다시서기’에서 일했던 위씨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그동안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서 산다며 너무 좋아했다.

 

간섭하는 사람이 싫어, 낯에는 자고 사람들이 잠든 한 밤중에 혼자 나와 논단다.

얼마나 기타를 많이 쳤으면 기타줄 하나는 끊어져 있었다.

이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족으로부터 버림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족을 버렸다“며

기타하나 들고 나와 떠돈 지가 어느 듯 십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고 한다.

처음엔 대학로 주변을 떠돌았으나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 서울역으로 진출했단다.

 

천성이 기타 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니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젠 이가 빠지고 기타 줄마저 끊겨 볼품없는 노래였지만,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트 씽’을 불렀다.

회한이 묻어났다.

 

“난 울지 않겠어. 내색도 하지 않겠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거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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