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 자정 무렵 서울역광장에 나가보았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며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밤에는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날씨 탓인지, 서울역광장은 두 세사람만 웅크려 잘 뿐 평소와 달리 한적했다.

 

노숙인들이 머무는 지하도로 내려가니, 십여명의 노숙인이 자고 있었다.

때마침 지하도 맞은편에서 서울역희망지원센터직원들이 몰려나왔는데,

지하도에 머무는 노숙인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

 

노숙인에게 빵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지나갔는데, 나 한데도 빵 봉지 하나를 안겨 주었다.

봉지 안에는 두유 하나 빵 두 개, 마스크 한 개가 들었는데, 그 속에 편지 형식의 안내문이 접혀 있었다.

 

보호시설과 쉼터를 안내하며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원시켜 기초생활수급을 돕겠다고 적혀 있었다.

가족관계가 정리되지 못해 해당되지 않는 노숙인도 많겠으나 더러 구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두사람도 아니고 직원들이 밤늦게 떼거리로 몰려나온 걸 보면. 노숙인 구제에 관한 지시가 내린 것 같았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일을 왜 여태 방치했을까?

아무튼, 모든 노숙인에게 도움주어 길에서 죽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빵 봉지를 챙겨들고, 다시 쪽방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더울 때는 쪽방 문을 열지만, 날씨가 쌀쌀해 다들 문을 닫아 놓았다.

유독 삼층 서씨 방문만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사람은 없고 온갖 잡동사니만 늘려 있었다.

잠잘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한데, 내방처럼 조그만 목침대를 만들어 주면 좋겠더라.

침대 밑을 책장으로 사용하는 대신, 찬장으로 활용해도 되지 않겠나?

 

서울역쪽방상담소도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에만 신경 쓰지 말고,

쪽방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목공 사업을 추진하라.

그리고 정부는 중단된 동자동 재개발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여 빈민부터 구제하라.

 

사진, / 조문호

 

 

 

쪽방·고시원은 되는데 천막은 안 되는 주거지원
주거지원 받더라도 생계로 천막 벗어나기 막막

 

지난 10일 용산역 뒤편에서 바라본 텐트촌의 모습. 나무가 무성히 자란 사이사이로 천막들이 보인다.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A(60)의 집에는 문이 없다. 입구 쪽 천막을 살짝 들추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사실 문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지붕도 바닥도 벽도 없고 거실도 욕실도 화장실도 없다. 하지만 이곳을 A는 집이라고 부른다. 7~8평 되는 공간에 A는 손수 집을 만들었다.

 

상가 입주자 모집을 알리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지붕 삼고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는 골조를 기둥 삼아 햇빛과 비를 막는 역할을 맡겼다. 천막 안 바닥에는 검은색 플라스틱 화물운반대(팔레트) 석장을 쌓아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았다.

 

천막 안 팔레트 위에 세워진 1인용 텐트가 그가 먹고 생활하는 안방이다. 텐트 안에는 그가 덮고 잤던 이불과 침낭이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있다. 텐트 바로 앞 팔레트가 깔리지 않은 천막 안 땅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컵라면 용기가 놓여있다.

 

어두운 천막 벽면을 가득 메운 잡동사니들 중 사실 정리되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천막 입구에는 언제 썼는지 모르는 스테인리스 숟가락 하나가 흙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치 않은 '이사'를 하기 전까지 그의 집은 열심히 정리한 흔적이 있던 곳이었다. 그는 이전 집에 살 땐 집 앞으로 오는 길도 매일 깨끗이 청소했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2주 전까지 살던 천막 집이 허물어지고 불과 10m 떨어진 곳에 다시 천막을 지으면서 A는 짐을 정리하는 것을 미루고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A의 집 옆에서 함께 천막를 치고 사는 이웃주민 B(68)"속상한 일이 있는지 A8~9일 내내 나오지도 않고 밥도 안 먹고 술만 먹었다"고 했다. 결국 A11일 새벽 술을 마시고 계단에서 미끄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10여년 전부터 A가 천막을 치고 살아온 공터 주변에는 20여개의 비슷한 천막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천막들이 즐비한 이곳을 사람들은 '텐트촌'이라고 부른다. 용산역 뒤편에 자리 잡고 있어 '용산역 텐트촌'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지난 10일 용산역 텐트촌 한쪽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뉴스1

이 텐트촌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용산역 3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달주차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 다시 왼쪽으로 향하면 지상으로 향하는 고가가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텐트촌으로 향하는 콘크리트 계단이 보인다. 계단 바로 옆에는 큰 오동나무가 텐트촌으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여명의 주민이 이 마을에 살고 있지만 누구 하나 땅을 가지진 못했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용산역 인근에서 노숙을 하던 이들로 각자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거리를 떠돌다 갈 곳이 없어서 지낼 곳을 찾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

 

최근 이들이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이 텐트촌의 공간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일이 있었다. 용산역과 주변 고급 호텔을 잇는 공중보행교를 새롭게 짓는 공사가 시작되면서 2개의 천막이 철거된 것이다. AB는 이번 공사로 원래 살았던 천막이 헐려 텐트촌 안쪽으로 이동해 다시 천막을 쳤다.

 

지자체와 공사를 진행한 시행사는 사전에 철거를 공지했고 천막 이동을 위한 편의도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A'사전에 아무런 합의도 없이 다짜고짜 포클레인을 가지고 와 철거를 진행했다'고 열을 냈다.

 

​ 용산역 - 서울드래곤시티 공중보행교 위치도 ( 용산구 제공 ).©  뉴스 1

A는 시공사 측에서 '밥이라도 사먹으라'5만원을 준 것이 전부였다며 "우리 같은 거지들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살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A는 천막을 다시 쳐주겠다는 시공사 측에 제안도 거절하고 공사 구역에서 텐트촌 안쪽으로 10여미터 자리를 옮겨 직접 다시 천막을 쳤다.

 

지난 3월 공중보행교 공사가 시작될 당시부터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철거가 예정된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해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주민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거주공간을 옮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지만 결국 A는 별다른 준비 없이 다시 천막을 짓고 살아가게 됐다.

 

그나마 최초에 철거될 예정이었던 천막이 3개동에서 2개동으로 줄어들면서 철거 대상에서 제외된 C(72)는 천막을 지키게 됐다.

 

시민단체들은 국토교통부훈령인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을 내세우며 공사가 진행되기 전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민들의 주거지 마련에 나서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 지침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거주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건설·매입·전세임대주택 거주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당되는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 움막, PC, 만화방 등의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서 3개월 이상 주거를 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용산구청은 텐트촌 주민이 3개월간 천막에서 실거주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해당 주거지원 사업의 신청을 받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구청은 주민들에게 노숙인 지원 사업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에 3개월 정도 거주를 하고 이후에 주거취약계층을 위하 주거지원 신청할 것을 안내했다.

 

지난 4일 용산역 텐트촌에 있던 주민 A의 천막이 철거되고 있다. © 뉴스1

10년간 이곳에 살았던 D(62)는 본인이 직접 나서 주거지원을 신청해 보려고 했지만 '천막'은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며 "고시원, 쪽방 이런 데서 3개월 이상 살아야 매입임대든 전세든 조건이 된다는 데 여기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슷하게 열악한 실정인 텐트촌 사람들이 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지자체의 입장에 대해 '소극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서울시와 소방당국 등에서 텐트촌 거주민을 위한 상담과 안전 점검들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거주민 명단도 작성하고 있기에 이를 통해 3개월 이상 거주 사실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민단체들은 쪽방이나 고시원 자체가 이미 '비정적 주거형태'인 만큼 텐트촌의 주민들을 다시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보내는 것 또한 주거 상향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실제 이번 공사과정에서 텐트가 헐릴 뻔했던 C의 경우 용산역 인근에 고시원을 마련해 거처를 옮겼지만 영 적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있는 것도 불편하고 눈치가 보여 밥을 먹기도 힘들다"며 하루 웬만한 시간은 나와 지낸다고 했다. C는 고시원을 얻은 뒤에도 텐트촌으로 나와 자신의 천막이 잘 있는지 살피고 텐트촌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지난달 14 일 용산역 텐트촌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구청에 적절한 주거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뉴스 1

용산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주거지원 대상에 대해 자체적으로 임의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며 해당 지침을 제정한 국토교통부 측에 지난 4월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용산구는 유권해석에 대한 답이 오면 그에 맞게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텐트촌 주민들은 주거지원이 되더라도 과연 이곳을 떠나 잘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주거비 지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부수적인 비용들을 감당하기 어렵고 10년 이상 용산역 주변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살아가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을 받거나 65세를 넘겨 기초노령연금이라도 받으면 사정이 좀 낫지만 텐트촌 주민 중에는 이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몸이 아파 근로를 하기 힘든 노숙인들의 경우에도 병원에 가기가 어려워 이를 증명할 수가 없고,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 받으니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든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A는 뇌전증을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텐트촌 주민들은 마을 쪽에 더 가까운 보행교가 완성되면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텐트촌이 더 잘 노출될 것이고,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불어 텐트촌이 자리 잡고 있는 '용산 정비창 부지'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 예고된 곳이라 개발 과정에서 텐트촌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설 방침이다.

 

 

 

 

 

 

 

 

 

노숙인은 갖가지 병을 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 노숙자나 젊은 노숙인 중에 유달리 정신질환자가 많다.

 

내가 거주하는 쪽방 4층만 해도 8명 중 3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오랜 노숙생활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을 끌고 쪽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뇌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가능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에 들어온지 6년차인 최완석군의 증상은 그중 심한 편이다.

가끔 발작을 일으켜 고함을 지르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착하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방세를 빼고는 대부분 술값에 탕진하지만,

 돈 없는 노숙인들에게 베풀며, 복 짓는 일을 한다.

 

두 번째는 나이가 제일 어린 박상민군인데, 이 녀석은 불장난하는 별난 습관을 가졌다.

불낼까 염려스러운 것 외에는 심부름도 잘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일 년 전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쪽방에 들어 온 박종근군의 증상도 미미하다.

그런데, 정신질환자는 하나같이 바보처럼 착하다는 사실이다.

남 힘든 것을 두고 보지 못하며, 음식이라도 생기면 못 나누어 안달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은 쪽방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일체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우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고 몰인정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차라리 미친 사람이 훨씬 인간적이다.

 

베푸는 것은 물론, 먹지도 않고 돈만 챙기는 걸 보면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죽고 나면 남겨줄 자식도 없는데,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바보처럼 베풀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할텐데 말이다.

 

지난 26일, 준비해 둔 기념사진을 챙겨들고 나섰다.

식도락앞 골목에는 밥 얻으러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곳에서 이기영씨를 만나 부탁받은 영정사진을 전해주었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에는 여기저기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노인들만 사는 쪽방촌 공원을

왜 어린이공원이라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다.

 

이남기씨가 술 한 잔 마시라지만, 사양했다.

 

몸이 아프니 술도 독약처럼 보였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역에서 가장 고참인 김지은씨는 멋 부리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는다.

그 역시 정신질환을 가졌지만, 늘 즐겁게 산다.

 

그러니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 달라고 졸라대 피해 다녀야 할 지경이다.

 

 

한꺼번에 프린트하느라 바로 뽑아 주지 못하는,

마침 이기영씨 영정사진 만드는 김에 김지은씨 사진도 함께 만든 것이다.

 

'서울역광장'에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공사장 틈 은밀한 곳에 텐트를 쳐 놓았더라.

찍은 사진 중 시계를 주렁주렁 낀 사진이 제일 멋지다며 낄낄거렸다.

 

한 곳에는 노숙인들 선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나,

관련된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신나는 유행가로 유인했으나, 컵라면 나누어 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다들 먹는 일 외에는 관심 없는 듯 했다.

 

힘없이 광장 구석에 웅크려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노숙인 모습에서 인간 사육장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만 주면 짐승처럼 우르르 몰려드니까...

 

그들은 미치지 못해 천국 열차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바보처럼 미쳐야 사람답게 살수 있다면, 미치고 또 미쳐야한다.

 

사진, / 조문호

 

 

1

부모 잘 못 만나 거리로 내몰린 박종근(41)

내가 사는 옆방에 온 지가 2년 가까이 되었다.

동자동 오기 전만 해도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이었다.

오랜 노숙 생활로 생겨 난, 뇌 질환 선고를 받고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라도 입주할 수 있었다.

 

중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가 알콜 중독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단다.

부모 찬스는 커녕, 부모 잘 못 만나 버려진 인생이다.

 

학교를 중퇴한 종근이는 년 년 생인 동생을 데리고

거리를 떠돌았으나, 몇 년 전 동생마저 목메어 자살해 버렸다.

가족을 다 잃은 종근이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한 번도 희망을 품어보지 못해 바라는 것도 없단다.

여태 취미생활 한 번 즐겨본 적 없어

수급비가 생겨도 돈 쓸 줄도 몰라 대부분 담배값으로 날린다.

 

동자동 온 후로는 온종일 쪽방에 틀어박혀 티브이만 끼고 산다.

 동자동 사랑방에 들려 일 돕는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내성적이라 평소 말은 없으나, 인정은 많다.

 

한평생 누구처럼 사랑 한 번 받아 보지 못했고,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던 비참한 삶이 누구의 죄이던가?

그 억울한 삶을 보상받을 수는 없을까?

 

사진, / 조문호

 

 

 

쪽방촌도 봄 바람은 분다.

아침부터 ‘동자동 사랑방’ 김정호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카메라 작동이 안 된다는며 좀 봐 달랜다.

 

세수하러 나갔더니, 밥 푸던 박종근씨가 ‘밥 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운지, 다들 나만 보면 밥타령이다.

 

공원에는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이리 좋은 날, 어찌 방구석에 처박혀 있겠는가?

 

몇몇은 봄바람 맞으며 햇볕을 즐겼고, 몇몇은 술에 젖어있었다.

 

이남기는 상민이 한테 괜히 심각한 척 말거는데,

누군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여 자세히 보았더니,

한 때 왕래가 잦았던 김창현씨였다.

아마 본지가 이 삼 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개인적인 신상만 물어보면 횡설수설하는 창현이 버릇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건강한 모습이라 반갑더라.

 

‘동자동 사랑방’ 사무실 앞에는 김정호이사장이 기다렸다.

짐작한데로 카메라 조작을 잘 못한 게 아니라, 고장 난 카메라였다.

용산의 소니코리아 AS점에 가라고 전화번호 주었다.

 

골목은 도시락 배달하는 봉사원들의 발 길이 분주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식도락’앞엔 많은 사람이 기다렸다.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비참한 건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먹어야 사니까...

 

2년전만 해도 ‘식도락’은 점심 같이 먹던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 나누어주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줄 옆에 앉아 있던 이기영씨는 영정사진 한 장 찍어 달랜다.

 

오년 전 동자동 성민교회 다섯 쌍 결혼식에서

결혼사진 찍어주었는데, 오년 만에 영정사진이라니,

너무 빨리 가는 건 아닌가?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때라 그런지, 그곳도 컵라면 타려고 긴 줄이 서 있었다.

술 마시는 노숙인은 밥도 필요 없다.

 

술 기운으로 버티며 천국행 열차를 기다린다.

어디가 아픈지. 웅크려 자는 노숙인 밥을 비둘기가 훔쳐 먹었다.

문둥이 코 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그런데, 엊그제 YTN뉴스에서 노숙인 현황을 상세히 소개하더라.

‘홈리스행동’에서 대통령인수위에 제공한 자료라는데,

일정한 거처가 없는 노숙인과 쪽방주민이 전국에 1만4천여명이란다.

그 중 노숙인은 9천여 명으로 5년 전보다 21% 줄었다고 한다.

 

문제는 여성 노숙인이 점차 많아진다는데 있었다.

노숙인 네 명 중 한 명이 여자라는데,

남자보다 여자의 노숙이 더 힘들다는 것은 말해 뭐하겠는가?

 

새 정부에서 ‘노숙인 없는 대한민국’ 좀 만들어다오.

무대뽀 대통령이라면 그 것 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춘 삼월이 다 가건만 꽃구경은커녕, 마음은 한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이년 넘게 끌어온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다

무차별 살상하는 우크라 전쟁시국이라 뉴스보기도 무섭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 돌아가는 우리나라 정세는 어떤가?

대형 산불로 피해 입은 이재민들은 살길이 막막한데,

대권 잡은 윤석렬씨는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우긴다.

 

그 밑에 달라붙어 부채질하는 정치 파리 떼가 더 밉다.

백발의 능구렁이까지 끼어 알랑방귀 뀐다.

 

하필이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의 국방부에 가려는 속내가 궁금하다.

청와대 터가 무서운가? 아니면 선제타격에 앞장서겠다는 건가?

 

그렇게도 용산에 살고 싶다면, 내가 사는 쪽방촌으로 오라.

빈민들 사는 걸 보면 그 따위 허튼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도둑놈 대통령에다 바보 대통령까지 나오더니, 이젠 무대뽀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군인 정치에 몸서리를 쳤는데, 검찰 권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지난 16일은 일주일 만에 코로나 증상이 사라져 외출을 했다

사비나갤러리에 들려 그림 구경도하고 모처럼 외식까지 했는데,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양성이 나와 또 격리해야 된다네.

가만 있었으면 괜찮을 일을, 귀가 얇아 문제를 만들었다.

 

22일 오후 무렵, 격리된 정동지 집을 나와 동자동에 복귀했다.

 열흘 만에 찾아 간 쪽방이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쪽방 관리하는 정선덕씨는 할멈 염색해 주느라 정신없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정씨가 죽은 서방 만난 듯 반겼는데,

코로나에 격리되어 있다 왔다니까 눈이 둥그레 진다.

다 나았다고 했으나, 그래도 검사 한 번 받아 보란다.

 

정씨는 벌어먹기 위해 까탈스럽게 굴어도 인정스러운 사람이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워 수시로 방문을 열어 먹을 것을 챙겨준다.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 그 이만 할멈과 오순도순 살아간다.

 

정신장애가 있는 옆방 상민군의 방안을 들여다보니 만물상처럼 펼쳐놓았더라.

사진 한 장 찍었더니, 자기가 찍은 사진이 더 멋지다며 자랑이다.

 

걱정하는 정씨 말이 마음에 걸려 서울역광장으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갔다.

출 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몰려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오후 세 시 무렵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검사를 마친 후 서울역 주변의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왔다.

 

동자동 새꿈 공원에는 처음 보는 전도사가 듣는 사람도 없는

텅 빈 마당에서 열심히 설교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때 마침 옆 골목의 봉사단체 이에수즈 핸즈에서 밥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시장 끼가 돌아 끼어 섰는데, 그 날의 메뉴는 버섯 덮밥인지 버섯 죽인지 헷갈렸다.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와 식사를 했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몇 술 떠다 말았다.

 

문제는 다음 날 양성판정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또 다시 일주일동안 격리되어야 한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일 만들지 말고, 방구석에 처 박혀 푹 쉬라는 말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갇혀 독수공방 하려니, 좀이 쑤셔 못 견디겠다.

사진 몇 장 꺼내 놓고 콩팔칠팔 지껄임을 널리 양해하시길...

 

사진, / 조문호

 

몇시간 후면 판가름 나겠지만,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그동안 대선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검찰 권력에 정치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재명후보가 되어야 더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와 멀어 그렇지, 마음은 심상정후보에 가 있었습니다.

비명에 떠난 노희찬씨나 정의당에 적을 둔 아들 햇님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약자를 위해 발 벗고 나설 사람은 심상정이기 때문입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보여준 진정한 마음은 진작 알았습니다.

 

이제, 이재명후보를 찍을까? 심상정후보를 찍을까?

더 이상 망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역 사전투표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심상정후보를 찍는 소신투표는 했으나, 안 될 줄 알면서도 찍었으니 무효표에 가깝습니다.

이제, 거대양당이 좌지우지해 소신을 펴지 못하는 정치구조는 끝내야 합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정치를 무시한 이상 정치의 허망함보다

한국정치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동지들의 결의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전투표를 마치고 서울역광장으로 내려왔습니다.

노숙인들이 여기 저기 힘없이 쓰러져 있고,

한 끼의 컵라면을 받기위해 많은 노숙인들이 줄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거에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허덕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가 이런 것인가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당선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용산역 철도정비창 빈터에도 사람이 산다.

15년 전부터 노숙인이 하나 둘 모여들어, 속칭 ‘용산역 텐트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20여명의 노숙인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이곳은 용산역과 고층 호텔 사이의 빈터로, 숲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다.

땅거미처럼 숨어있어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용산미군기지 개발 계획의 한 카드로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금싸라기 같은 서울 요지에 문패도 없는 텐트를 쳤지만,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으니 짐승우리나 다름없다.

텐트도 공공이 해야 할 일을 인근 교회에서 지원했다.

가끔 사회단체에서 온정의 손길도 보내주지만, 추위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처음엔 이슬이라도 피할 수 있는 텐트가 생겨 좋아했으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더란다.

노숙할 때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는데, 바늘구멍에서 황소 같은 바람이 들어 와

온 몸은 물론 얼굴까지 파묻고 산단다.

 

박씨는 요즘 일거리를 못 구해 하루종일 텐트에서 지낸다.

그 흔해빠진 핸드폰이나 티브이도 없으니, 먹고 싸는 시간외는 하루 종일 이불 속에서 딩군다.

희망이나 재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허무한 망상으로 시간 죽인다.

 

용산역 텐트촌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언젠가는 봄이야 오겠지만, 날씨 따라 걱정도 따라온다.

주민들의 민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물론 음식찌꺼기 버릴 곳도 없으니, 어찌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용산구청 청소과 담당자에 부탁한다.

‘용산역 텐트촌’에 쌓인 쓰레기부터 좀 치워다오.

재활용 분류까지 해둔 쓰레기를 구청에서 수거하지 않으니,

악취에 시달려야 하는 주민들이 어찌 그냥 두고 보겠는가?

 

이제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시선도 거두어다오.

그들의 삶에도 저마다의 까닭이 있다.

 

그들도 사람이다.

같은 국민이며 이웃이고 가족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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