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의 김정길하면 몰라도 동자동의 김반장하면 모르는 이가 없다.
쪽방촌 청소에서부터 후원물품 도우미나 순찰을 도는 등
동네 반장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 붙여 진 이름이다.
김정길(76)씨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이다.
음식 나눔이 있던 새꿈공원에서 만났는데, 뒤처리하는 모습이 남달랐다.
일을 돕는다기보다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에 눈여겨 본 것이다.
그 뒤부터 행사가 있을 때는 물론, 가는 곳 마다 그의 모습은 빠지지 않았다.
김정길씨가 동자동에 들어 온지는 39년째라 반 평생을 쪽방에서 보낸 셈이다.
공사 현장이나 음식점 등 막일로 전전하다 방세 싼 쪽방촌에 들어왔다는데,
봉사를 생활화하게 된 계기는 15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남을 돕는데 여생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닥치는 대로 일을 도운 것이다.
그런 그가 작년 무렵, '케이비에스'와 '조선일보'에 연이어 소개되며,
갑자기 동자동 김반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옛 속담 처럼, 그의 봉사활동은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었다.
쪽방에서 내다버린 쓰레기에서부터 직장인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에 이르기까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골목입구가 아침이면 티끌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만날 때마다 청소를 끝내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 쪽방상담소 문 열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매번 매점 가는 길이라 카메라들 두고 와 청소하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는데,
며칠 전에는 작정하고 내려와 쉬는 모습이라도 찍은 것이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는 김씨는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그가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
아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부디 건강 잘 지켜 오랫동안 좋은 일 많이 하길 바랍니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숙인도 ‘다시서기’에서 재활하는 이가 더러 있으나, 김반장 처럼 무보수의 봉사는 아니다.
힘없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노숙인들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지하도 입구에 새로 온 노숙인이 자리 잡았다.
갈 때마다 가부좌한 자세로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 다른 노숙인과 달랐다.
책을 정갈하게 모아두고, 난간에는 조화까지 모셔 두었다.
책은 가까이 두지만, 한 번도 책 읽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첫 장에 펼쳐놓은 ‘군자의 삶’이란 제목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의 말은 알아들어 반응은 하지만, 일체의 질문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름은 물론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더 궁금했다.
거리로 내 몰린 노숙인이 어찌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겠나마는
정신질환자로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쪼록 오갈 곳 없는 노숙인들을 한 곳에 정착시켜
더 이상 거리에서 죽는 노숙인이 없도록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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