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을 맞아 돌아본 동자동 쪽방촌의 살풍경이다.

곳곳에 술 취한 사람이 마치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있었다.

먹은 것이 없어 그런지, 조금만 마셔도 몸을 가누지 못한다.

자신의 명을 술로 재촉하고 있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이러한 알콜 중독자는 서울역보다 동자동이 더 많다.

한때는 노숙인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이야기도 들었으나,

그들의 중독 증세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 피해 다닌 지 오래다.

 

구멍가게에 담배 사러 갔다가, 우연히 유정희씨를 만났다.

이분은 오랜 노숙 생활 끝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입주했다.

유씨를 비롯하여 초상사진 찍기로 약속한 분이 여럿 있으나,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셔 찍지 못했는데. 모처럼 정신이 또렷했다.

 

그 자리에서 초상사진부터 찍었는데, 만난 현장성에 의미를 두나,

 햇빛 때문에 건물 입구 그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햇빛을 비롯한 일체의 변화요인을 초상에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원칙이다.

찍기 전에 항상 강조하는 것은 당당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진은 일주일 뒤에 주기로 약속하고, 내키지 않으면 다시 찍기로 했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싸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발걸음을 멈추어 나라를 위해 목숨 잃은 분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현충일이라 중령으로 퇴역한 이병호씨를 만나 군대 이야기나 듣고 싶었다.

 

그가 자주 머무는 공원 앞 담벼락으로 갔더니, 최정훈씨와 둘이 앉아 있었다.

그 역시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으나, 그날따라 사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사실은 술 살 돈이 없어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자부심부터 인식시킨 후 찍었더니, 정훈이도 찍어라며 눈을 깜빡였다.

정훈씨는 잘 모르는 데다, 초상사진 찍는 목적에 공감하는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스스로 원하지 않아, 안 찍는다고 손을 내저었다. 

 

처음에는 빨리 추진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수를 두었지만, 하등의 서둘 이유가 없었다.

원로작가지원사업으로 시작된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전’은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도 충분히 치를 수 있으며,

이 일은 살고 있는 동안 꾸준히 해야할 내가 짊어 질 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상사진은 상대를 제대로 알고 찍어야 한다.

 

커피를 뽑아 와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딱 한 잔 만 하자는 권유를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소주 두 병과 꽈베기 한 봉지를 사 왔더니, 잠자던 녀석도 일어나고,

보이지 않던 녀석까지 나타나, 술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하는 수 없어 만원을 꺼내 주었더니, 아예 소주 됫병을 사왔더라.

결국, 그들에게 약은 주지 못할망정 독을 주고 말았다.

 

그날은 이병호씨 군대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최정훈씨 군대 이야기를 들었다.

이북에 넘어가 죽다 살아났다는 그는, 젊은 시절 이태원에서 두 사람이나 죽인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단다.

마침 군대 장교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나서서 교도소 대신 북파공작을 수행하는

UDU로 들어가게 만들었는데, 인생의 쓴맛은 그때 다 보았다고 한다.

 

보급품을 주지 않아 뱀은 물론 표창으로 온갖 산짐승을 다 잡아먹고 살았는데,

제일 맛없는 고기가 고라니라며 고라니 고자도 듣기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북파되어 옆구리와 허벅지에 맞은 총탄 자국까지 보여주었다.

 

군번 없는 군인으로 살아, 죽어도 이름조차 남지 않았겠지만,

죽는 것 보다 못한 짐승 같은 나날을 보내는 현실이 더 슬펐다.

 

다들 먹은 것이 없으니, 술도 많이 마시지 못했다.

목사님이 갖다준 빵 봉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교회 단체 ‘이에수스 핸즈’에서 얻어 온

물김치 한 술 뜬것이 전부라, 한 사람 한 사람 드러눕기 시작했다.

 

동자동에서 오랫동안 노숙을 한 지경학, 유정희, 김상진 등 여러명이 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들어갔지만,

쪽방보다 밖이 더 좋은지 허구한 날 길거리에 나 앉았거나, 노상에 쓰러져 자는 것을 더 자주 본다.

 

다들 술로 명을 재촉하고 있으나, 손 쓸 방법이 없다.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편할지 모르겠으나, 산 목숨이다.

정부에서 알콜 중독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어버이 날이 되면 쪽방촌 어르신을 위한 잔치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열린다.

 

해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하는 잔치지만, 코로나에 발목잡혀 3년 만에 열려 더 반가웠다.

 

동자동 쪽방 촌에 사는 분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있어도 찾아오지 않아 어버이날이 되면 외로움을 더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텅빈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나누니, 이보다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조화에 불과한 카네이션이지만, 삶에 찌든 어두운 그늘을 지우고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잔치도 자선단체에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한 자리라 더 의미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나눔과 또 다른 것은 줄 세우지 않는데 있다.

주민들에게 음식을 차려줄 뿐 아니라, 이날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머릿 고기에다 각종 부침개, 떡과 소주, 음료수 등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동네 어르신들은 깔아놓은 자리에서 이웃과 정겹게 술잔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어버이날과 추석뿐이다.

 

예전에는 잔칫날이 되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빨랫줄에 걸어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그마저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만 두었는데, 어딜 가나 시기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후로는 찍힌 분을 언제 만날지 몰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불편은 따르지만,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잔칫날이 되면 평소 잘 보이지 않는 분도 더러 뵐 수 있는데,

이날은 한 때 동네 사발통문처럼 쏘다니며 도시락을 전해주던 원용희씨를 만났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그동안 어디 아팠냐고 물었더니 죽다 살아났단다.

멀지않은 해방촌으로 이사를 갔다는데, 어버이 잔칫날이라 찾아 왔으나 술은 끊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술에 취해 여기저기 드러눕는 사람도 생겨났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기력이 없으니 조금만 마셔도 쓰러지는 것이다.

 

하기야! 답답한 쪽방에 눕는 것보다 시원한 공원에 드러눕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회장과 김호태씨가 주민들께 인사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잔치가 끝난 뒤, 교회 봉사단체에서 나와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으나, 다른 때와 달리 남아 돌았다.

요즘은 도시락 인기가 무료식권에 밀려나 예전같지 않다.

 

뒤 따라 쪽방상담소에서도 마스크와 꽃을 나누어 준다며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는 대로 주면 될 텐데,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게 하니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 세워 거지 취급하는 나눔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있게 즐기며 살자.

 

대개 기초생활 수급자라 술과 담배만 즐기지 않는다면, 살아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돈을 쓰지 않고 이불밑에 넣어 두다 남 좋은 일 시키는데 있다.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도 가난한 독거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평생 고생하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않았는데, 누굴 위해 저축한단 말인가?

 

문제는 수급비를 받는 대부분의 독거노인들이 돈 쓸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른다는데 있다.

돈도 쓰 본 사람이 잘 쓰지, 돈이 없어 쓰 보지를 못했으니 돈 쓸 줄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돈 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정말 돈 쓸 곳이 없다면 수급비도 받지 못하는 노숙인에게 적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부디 내년에도 건강하게 어버이날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10작성]

 

 

 

30여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일하며, 생계비 보내는 원용희씨(56)

지난 해 부터 서울역주변 노숙인과 동자동 쪽방사람을 대상으로 ‘서울역전 사람들’의 입상사진을 찍고 있다.

 

밀양에서 태어나 고아처럼 떠돌다 20년만에 안착한 박희봉씨(70)

 작업 시한은 동자동 쪽방이 재개발 되는 날 까지의 기록을 책으로 엮을 것이라 서둘 것 없이 시름시름 작업하면 되는데, 지난달 예술인 협동조합인 ’스마트협동조합‘으로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2023년 원로예술지원금을 신청 받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부자처럼 낙천적으로 사는 신문황씨(81세

지원액이 300만원이라 전시지원이나 출판지원이라기 보다, 살기 어려운 원로예술인들의 생계비를 보조하는 것으로 알고 신청했다.

 

노숙자의 대부로 통하는 홈리스자활센터 최성원목사(78세)

웬만한 지원금은 신청절차가 까다롭고 선정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거들떠 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번 지원금은 나이 많은 예술가들의 생계비 보조라는 생각에 관심을 가졌는데, 번거로운 신청절차도 ’스마트협동조합‘에서 대신 해 주었다.

 

동자동의 굳은 일을 도맡아 김반장으로 통하는 김정길씨(76세)

그동안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예술인에게 도움을 주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술인복지 사업의 여러 정보를 알아내어, 일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가난한 예술인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일을 주선해 왔다.

 

쪽방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동자동의 원로 이상준(79세)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술단체로 꼽히는 ’예총‘과 ’민예총‘도 있지만, 여태 이권이나 자리다툼에 연연했지, 가난한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온몸이 종합병원이라는 강석남씨(70세)

그동안 예술가들의 얇은 호주머니 털어가며, 회원을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못하는 일을 창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조합원4-5백 명에 불과한 예술인 협동조합에서 해 낸 것이다.

 

서울역 주변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넘은 노숙인 김지은씨 (57세)

이번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예술지원금도 '스마트협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쉽게 접수할 수 있었는데, 복권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았다. 나만 운이 좋아 선정 되었지,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신청한 많은 원로 예술인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지원 받은 극 소수의 예술가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선외로 밀려 난 많은 원로예술가의 실망감이나 자괴감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동안의 실적과 사업계획서를 어렵사리 제출했는데도 밀려났으니, 얼마나 열 받겠나? 쥐꼬리만 한 돈으로 창작을 지원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지원하는 생색만 내고 원로예술인들 엿 먹이는 처사다.

 

지난 14일,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금 교부신청 하라는 통보를 받아  '서울시민청 태평홀'로 찾아 갔다. 지정한 장소에는 대상자 40여명이 모여 있었는데, 아무리 돌아보아도 아는 예술가는 한 명도 없었다. 서울의 원로예술가가 많기야 하지만, 어찌 이토록 생소한 분만 선정되었을까? 누가 심의를 했는지, 선정한 심사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더 웃기는 일은 1시간 30분 동안 늙은이들 모아 놓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시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창작지원과 성교육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요즘 세상에 그 정도 모르는 늙은이가 어디 있겠나?

오래전 정관 수술하면 예비군 훈련 면제해 주던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타고난 괴으름으로 꼼짝도 하기 싫다는 이정회씨(62세)

아무튼, 제 기능도 못하는 성교육 한 번 잘 받고 접수 순서대로 신청했는데, 보름 후에 세금을 공제한 금액을 입금시켜 준 단다. 그러나 300만원에 대한 사업 결과보고를 연말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는 말도 덧 붙였다.

 

'새꿈공원'앞에서 구멍가게 운영하는 강재원씨(65세)

나야 하던 작업을 그대로 추진하면 될 것으로 여겼으나, 연말까지 정산하려면 전시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작업한 사진으로 치룰 수도 있지만, 전시내용을 바꾸어야 할 사정도 생긴 것이다.

 

아름다운동행' 식권이 생겨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임백수씨(68세)

얼마 전 찍은 입상 사진을 당사자에게 전해 주었더니, “이런 사진 말고 얼굴만 크게 나오도록 찍어 달라”는 것이다. 아마 방에 걸어 두었다가 영정사진으로 활용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들 생각이 훨씬 현실적 이었다.

 

그래서 "서울역전사람들" 전시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전시하기로 했다.

1부인 "버려진 사람의 초상“은 2023년 12월20일 부터 12월26일까지다.  

 

지원받은 삼백만원이면 사진 제작비와 액자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목적에 의한 기록성보다 당사자의 필요성이 더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며칠 전부터 '서울역전사람들" 입상사진과 "버려진 사람의 초상" 작업을 병행하여 추진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아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슬픈 초상을 통해

사람에 대한 존중감을 일깨우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외침이다.

전시가 끝난 후 본인에게 증정하게 될 초상은,

사람은 떠나도 그 사진만은 영원히 기억되는 초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원로예술가 지원사업

 

사업내용 :  ‘버려진 사람의 초상' 사진전

촬영 및 전시 작가 조문호 

촬영대상 :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및 서울역전에 머무는 노숙인

촬영일시 : 2023년 220일부터 12월10일까지 / 촬영인원 무제한

전시일시 : 2023년1220일부터 12월26일까지 / 전시작 50점 내외

공영개발과 민간개발을 사이에 둔 쪽방 주민과 건물주의 갈등으로

 재개발이 지연되고 있으나 윤석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눈치만 보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쪽방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낸다.

 

문제는 매서운 한파보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더 불안해 한다.

 

서울지역에 몇 남지 않은 쪽방촌인 동자동은 건물 63채에

한 평 남짓의 쪽방 1170칸이 벌집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거주자 861명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절반 이상이고, 장애인 등록자도 10%를 넘는다.

 

주민 대다수가 50대 이상의 남성으로, 65세 이상 독거노인 비율도 35%에 달한다.

 

이곳은 병들고 늙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사는 곳이다.

 

오래된 건물들은 웃풍이 심해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나와 안경에 서리가 낀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모자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전기장판에 의지해 사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연료비마저 폭등했다.

 

한파가 휩쓸고 간 지난 30일은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으나 쪽방촌의 냉기는 여전했다.

 

다가구 주택을 쪼개기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쪽방문은 낡은 목재라 불안하기 짝이없다.

 

취사시설이 없는 좁은 방에서 불을 지펴, 항상 화재에 노출되어 있다.

 

좁은 방이라 조그만 여유도 없어 복도에 둔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공용 화장실은 설거지까지 하느라 아침녘이면 줄을 서야한다.

 

대부분 수십 년 된 건물이라 제대로 된 곳은 하나도 없다.

 

방음은 물론 누수로 계단이 얼어붙어 얼음판을 지나 다녀야 하지만,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해도 불편하면 이사 가라는 말만 반복한다.

 

한겨레 / 강창광기자

아무리 돈에 눈이 뒤집혀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고은호기자

그럼에도 쪽방촌 주민들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언제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 온 곳에서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잠자리면 족하다빠른 재개발을 원한다.

 

2020년부터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논의된 동자동 재개발은 올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공공개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재개발은 건물주의 강한 반발에 막혀 있다.

 

 건물주들은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공공개발보다 민간개발을 요구하며,

공공개발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이다.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에 떨어야 하는 쪽방촌 주민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한다.

 

만약 서울시나 정부에서 억지로 철거하고 내쫓는다면

 여섯 명이나 사망한 용산참사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노숙인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그들은 찬 바람이 몰아치는 길바닥에서 위태로운 삶을 산다.

 

사람이 죽어가는 이러한 위중한 현실에 정부는 부자 감세 같은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빈민들의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 조속히 대책을 강구하라.

 

사진, / 조문호

 

 

 

26일은 서울 전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밤잠을 설쳤다.

 

눈이 오면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순백의 세계도 장관이지만,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 밟는 소리가 정겨워서다.

 

눈 치울 일이나 길이 미끄러운 불편함이야 따르지만,

 눈이 오면 어린애처럼 마음 들 떠는 것은 늙어도 어쩔 수 없다.

 

어제 밤엔 늦잠이 들어 오전 열시 무렵에야 일어났다.

 

쪽방에 창문은 있지만 옆 건물과 붙어있어 햇볕은커녕 바깥 날씨조차 알 수 없다.

 오로지 담배연기 빠져 나가는 배출구 역할만 톡톡히 해 준다.

 

마음이 바빠 서둘러 나가보니, 솜털 같은 눈발이 휘날렸다.

 

골목엔 간간히 눈 치우는 주민이 보였으나,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눈이 내려 나처럼 신이 난 사람도 있었다,

 정재은씨를 골목에서 만났는데,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다들 추운 날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티브이 삼매경에 빠진다.

 

그러나 티브이는커녕,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노숙인이 걱정이다.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도를 내려가니, 계단 구석에 웅크려 울고있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 파지가 깔린 걸 보니 그 곳에서 밤을 지샌 것 같았다.

 

무슨 사연으로 가출했는지 모르지만, 추위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슬펐던 것 같다.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인들은 찬바람 피할 곳을 찾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선교단체에서 여러 동의 천막을 세워, 오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예배를 시작할 때는 몇 명 안 되던 인원이 40여명으로 불어났다.

 

한 아낙은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젊은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구원을 외쳐댔다.

 

예배를 마친 이들은 추위를 피해 '서울역희망지원센터'로 가거나, 지하 통로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역 지하도에 앉은 노숙인은 “평소에는 저녁 6시가 지나야 내려오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이 일찍 내려왔다”고 한다.

 

일부는 광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추위를 버티기도 했다.

따뜻한 커피와 떡을 나누어 준다니까, 어디서 나왔는지 금방 긴 줄이 형성되었다.

 

잠잠하던 텐트 안에서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텐트 지프를 열려고 손이 슬그머니 나왔는데,

반지를 낀 고운 손을 보니 여성 노숙인 같았다.

 

요즘 들어 여성 노숙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모든 생활이 남성에 비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성 노숙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노숙인의 삶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별도의 보호시설은 있지만, 그 곳에 가지 않는 이유는 술과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추운 고통을 감수해 가며 자유를 원하는 노숙인의 삶은 살얼음판처럼 위태롭다.

 

서울역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 거리가 아닌데다, 인사동의 눈 내린 풍경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인사동 거리는 눈 치우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술집들은 대부분 문이 잠겼고, 내린 눈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더러 한복을 입은 중국관광객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다들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남인사마당 입구에는 눈을 뒤집어 쓴 노점상 리어카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눈 덮인 설경을 찾아 가까운 탑골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 또한 서울역광장의 살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빵과 두유를 얻기 위해 선 줄이 탑골공원에서부터 담장을 끼고 길게 이어졌다.

 

그 곳은 노숙인보다 집에서 눈칫밥 먹는 노인들이 더 많다.

춥고 미끄러운 눈길을 헤쳐 나와 빵조각 하나 얻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노인들의 속울음이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곳곳에 오갈 곳 없는 가난한 자들의 서러움이 넘쳐 나는데,

아름다운 설경이나 찾아 나선 스스로의 작태가 부끄러웠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가난한 자의 눈물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가난의 서러움을 껴안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권에 눈이 어두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투사라기보다, 싸우다 죽겠다.

 

새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눈이 아니라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흰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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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오갈곳 없어 죽어 간 그들을 기억하고, 존엄한 삶의 권리를 찾으려는 자리다.

 

'죽음 앞에는 모두 평등하다'는 말도 틀린 말이었다.

연고자가 없어 한 달이나 시체실에 붙잡혔으나, 아무도 슬퍼하는 이가 없다.

 

이 추모제는 동자동사랑방을 비롯한  42개 단체가 모인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역광장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무연고사망자의 이름과

장미 432송이가 놓인 레드 카펫이 깔린 가운데, 홈리스 추모기간 선포식이 있었다.

 

올해 442명의 홈리스가 집도 아닌 험한 곳에서 살다 세상을 떠났다.

아파도 병원 한 번 가지 못한채, 차가운 길바닥에서 살다 ‘고독사’란 이름으로 지워졌다.

 

ⓒ 비마이너

그들을 애도하며 기억하려는 추모제도 올해로 22년째다.

‘홈리스추모제기획단’은 지난 12일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동자동사랑방' 윤용주씨의 발언 ⓒ 비마이너

'동자동사랑방' 윤용주씨는 공공임대주택을 속히 추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쪽방 주민들은 지금도 여름이면 화장실 정화조가 역류해 벽에서 똥물이 새어 나오고,

겨울이면 얼어 터진 방 안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기대어 산다”고 말했다.

 

‘2022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2일까지 열흘 동안을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추모팀, 주거팀, 인권팀, 여성팀을 꾸려 여러가지 행사를 추진했다.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의 문제를 알리는 일인시위ⓒ 홈리스행동

14일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쪽방살이를 들려주는 ‘’동자동 보이는 라디오‘가 진행되었고,

15일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촉구대회’가 열렸다,

홈리스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19일은 아랫마을에서 '여성홈리스증언대회'가 열렸다.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가 바로 여성 홈리스다.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노숙인 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 5명 중 1명이 여성홈리스다.

 

아랫마을에서 열린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 현장 c 일다

20일은 대학로와 아랫마을에서 '창신동쪽방 실태조사 보고'와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위한 공개좌담회’,

‘홈리스 자리에서 본 빈곤과 차별금지 집담회’가 각각 열렸다.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위한 공개좌담회 ⓒ 홈리스행동

21일은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주민 토론회가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열렸다.

 

정부는 국내 최대 쪽방촌인 동자동에 先이주 善순환 방식의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 10개월이 지났지만, 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지정’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주민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삶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쪽방 주민들은 공공개발이 추진될 날만 기다리며 폭염과 한파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토론회는 동자동사랑방,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2022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의 공동주최로 마련되었다.

 

 1부에서는 김호태씨를 비롯한 주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동자동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 발제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와 '세종대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였다.

지정 토론자로는 국토교통부 공공택지조사과,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정비사업처 담당자와

J&K 도시정비 백준 대표가 나왔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토론은 아니었다.

보다 못한 참석자가 발언을 신청하여 토론회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숙 생활을 하다 몇 년전 쪽방에 입주한 박종근씨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평생 처음으로 집 같은 곳에서 사는 꿈에 부풀었으나, 진짜 꿈이될 것 같아 불안해요.

노숙생활에서 간신히 벗어났는데,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바퀴벌레와 살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더이상 미루지 말고, 빨리 입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동짓날인 22일은 서울역 광장에는 열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2022 홈리스 추모제’가 열렸다.

 ‘코로나 종식을 넘어 홈리스 차별과 배제가 종식된 세계로!’라는 글이 달렸다.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3600여 명으로 3년 전보다 1.4배 증가했고

10년 전인 2012년보다 3.5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한다. 

 

동자동 김정길 씨는  "올해 쪽방촌에서 돌아가신 분만 서른 두 분으로

돌아 가실 때마다 사는게 얼마나 허망한지 모른다"며 먼저 떠난 분을 그리워했다.

특히 친동생처럼 지낸 아우 ‘관석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관석이를 향한 추도사를 읽으며, 동자동에서 돌아가신 서른두 분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동자동 쪽방주민 김정길 씨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하민지 출처 : 비마이너

서울역 부근에서 사는 홈리스 박천석 씨는 먼저 간 동료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강신환 씨를 그리며 추모했다

 

'동자동 사랑방' 박승민 활동가는 “무연고자의 죽음과 장례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운영되고 있는 ‘공영장례’를 국가 차원에서의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영하 15도 한파 속에서 진행된 홈리스 추모제는 추모발언에 이어

무용가 서정숙씨의 위령무와 노승혁  활동가의 연대공연으로 이어졌다

지나치는 이들도 발길을 멈추어 함께 추모했다.

 

비명에 숨져 간 442분을 기억하며, 그 분들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주민 토론회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물러가니, 연이어 추위가 찾아왔다.

쪽방은 더위보다 추위가 지내기 쉽지만, 노숙인의 겨울은 죽음의 골짜기다.

노숙인을 위해 안 입는 내복을 얻으러 쪽방 몇 곳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단벌이라 여분이 없었고, 정씨는 일찍부터 잠들어 있었다.

박희봉씨 방문을 열어보니, 그는 짐 속에 파묻혀 웃고 있었다.

 

방세가 20만원이라 다른 곳보다 싸기는 하지만, 한 평도 채 되지 않았다.

창문도 없는데다, 사방이 짐으로 둘러쌓여 들어가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방문을 열어놓고 밖에 걸터앉으려니, 방으로 들어오라며 손을 내 저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좁은 통로라, 길을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좁은 공간에 끼여 앉아 커피한 잔 얻어 마시며, 내복 이야기를 꺼냈다.

안 입는 내복은 있으나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다 들어내야 해, 이사가기 전에는 손도 대지 못한단다,

많은 짐을 끌어 내리면 다시 쌓아 올릴 수가 없다기에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공간이 협소했으면, 티브이와 선풍기도 손바닥만 한 것을 사용했다.

 

박희봉(69세)씨는 밀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객지를 떠돌았다고 한다.

혈육이라고는 형님 한 분 계셨으나 어린 시절 헤어져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고생이란 고생은 찾아 다니며 하다, 20년 전에야 동자동에 안착했다.

그동안 모은 짐이 쪽방을 가득 채웠으나,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만약 쌓아놓은 짐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술은 끊었다지만, 담배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단다.

담배연기 빠질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유일한 낙이 담배라며 담배부터 꺼내 문다.

살아 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악몽의 세월은 돌아보기도 싫단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쪽방이 공공 개발되면 방 같은 방에서 한 번 살아 볼 꿈에 부풀었지만,

죽기 전에 이룰 수 없는 진짜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 쉰다.

동자동 공영개발이 민영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오늘의 현실은

동자동 빈민들에게 심한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집에서 가져 온 내의 한벌을 챙겨 서울역광장으로 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서울역광장에 노숙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 응급 잠자리를 운영하는 지하공간은 공사 중이었고,

노숙인이 머물 수 있는 지하도에만 30여명이 몰려 있었다.

 

내의가 한 벌 뿐이라 잠든 노숙인 머리맡에 슬쩍 내려놓고,

오는 길에  ‘실버넷뉴스’ 운현선 시민기자를 만났다.

나를 만나러 서울역에 왔다는데, 평소 전화를 받지 않아 어렵사리 만난  것이다.

작년 홈리스 추모제에서부터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 전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취재해 갔으나,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야 한단다.   

 

여지 것 신문이나 방송기자들의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지만, 운현선씨만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나의 ‘인사동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공조했기 때문이다.

별 영향력 없는 매체라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마음에 걸리는 일은 틀림없었다.

 

마침 서울시에서 실시한 ‘약자와의 동행’ 식권사업에 대해 물어 흔쾌히 답해 주었다.

독거노인에게 절실한 사안이라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국토부'는 빈민들의 마지막 희망인 동자동 공영개발을 하루속히 추진하고,

'복지부'는 독거노인에게 하루 한 끼의 식권을 제공하라.

그리고 차디 찬 거리에 방치된 노숙인의 안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약자들의 재난은 정부에서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집 부자’ 상위 100명이 가진 집 2만 채
쪽방, 반지하 등 주거취약계층은 200만 명
심각한 빈곤 상황… 빈민 300명 서울 도심 집결
“불평등 구조 끝장내야 빈곤 철폐 가능”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빈곤 철폐’라고 적힌 빨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현재 한국의 빈곤을 수치로 나타내면 이렇다. 소득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46%를 가졌다.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16%, 노인 인구의 40%로 매우 높다. 쪽방·비닐하우스·지하·옥탑 등 열악한 환경에 사는 사람은 200만 가구다. 반면, 집 부자 상위 100명은 1인당 평균 207채의 집을 가졌다. 이들이 가진 집의 총합은 올해를 기준으로 2만 1천 채다.

빈부격차가 이토록 심각한데, 한국 정부는 때아닌 ‘새마을운동’을 부활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날 “새마을운동과 제 정치 비전이 정확히 일치한다”며 “국민이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다시 한번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정책 중 하나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며 빈곤의 책임을 국가가 지지 않고 국민에게 돌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시설에서 20년, 쪽방에서 20년,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그러나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이 근면‧성실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의 책임은 빈민이 아니라 자본주의 문제와 불평등, 이를 외면하는 국가에 있다”고 말한다. 노점상, 장애인, 쪽방주민, 철거민, 홈리스 등 가난한 사람들 300여 명은 15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변에 모여 투쟁대회를 열고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끝장내지 않으면 빈곤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보신각까지 행진했다.

이번 투쟁대회는 ‘빈곤철폐의 날’을 이틀 앞두고 열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은 시장에서 50년간 입어온 빨간 방수 앞치마를 둘렀다. 노점상은 어묵꼬치를 재현한 소품을 들었다. 붕어빵이 그려진 피켓을 든 노점상도 있었다. 장애인은 장애인거주시설에 갇힌 듯한 소품으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했다. 아랫마을 홈리스는 유령 분장을 하고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김건수 기후정의동맹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기후재난에 직면한 가난한 사람들… 해결 방법은 ‘평등’뿐

김건수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재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투쟁대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일상이 된 기후재난의 삶을 증언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은 1년이나 미뤄진 공공개발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한파와 폭염을 견디고 있다. 거리홈리스와 노점상도 마찬가지다. 냉난방이 불가능한 아스팔트 위에서 일사병과 동상에 시달린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많은 시간을 길바닥에 허비하는 장애인, 집과 가게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철거민, 반지하에 살다 폭우로 사망한 주거취약계층 모두 기후재난의 피해자다.

김건수 활동가는 자본주의와 불평등 때문에 기후재난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지구가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대기업과 부유한 국가는 여전히 자연을 파괴해 경제를 성장시킨다. 탄소가 많이 배출돼 기후재난이 일어난 게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따른 불평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자본주의는 위기에 취약하며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시스템이다. 이로 인한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 집, 일자리, 의료, 식량 등 모든 권리를 보장해야 기후재난을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웃 나라 활동가들이 자국 언어로 쓴 피켓을 들고 결의대회 무대에 올랐다. 사진 하민지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웃 나라 활동가들을 향해 미얀마 투쟁을 지지하는 손가락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인간의 기준을 ‘쓸모’로 나누는 국가,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우자”

이번 결의대회에는 반빈곤운동을 전개하는 이웃 나라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달마 디아니 도시빈민연합 주민지도자는 “여러분과 함께 불평등에 맞서 싸우려고 왔다. 정부, 다국적기업, 자본주의에 맞서 모든 종류의 가난, 불평등과 싸워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과 자립생활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보 평등한캄보디아 주민조직가는 “캄보디아는 홍수, 더러운 쓰레기, 식량 부족, 강제철거에 직면해 있다. 불평등한 빈부격차 속 개발정책에서 우리(가난한 사람들)는 배제돼 있다. 우리도 사람인데, 개발정책 속에 우리는 없다. 그래서 정부를 향해 주거권, 교육권,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 권리 등을 요구 중”이라며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오자. 가난한 사람도 이웃이고 항상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함께 알리자”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국가가 인간의 기준을 ‘쓸모’로 나눈다고 규탄했다. 박경석 대표는 “국가는 여기(결의대회) 계신 모든 동지를 쓸모없고 가치 없는 사람 취급했다. 50년 된 노량진수산시장, 평생을 일군 집과 가게를 철거당한 철거민, 동자동 쪽방주민과 홈리스, 시설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장애인, 모두 국가가 폐기처분했다”며 “국가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인간의 쓸모를 규정한다. 이런 사회에서 절대 잊히지 말자. 우리의 모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잊히지 않는 투쟁을 하자”고 강조했다.

이들은 결의대회 후 청계천에서 서울시청을 거쳐 보신각까지 약 2km를 행진했다.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당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추모공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를 지낼 예정이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빈곤 철폐’라고 적힌 커다란 빨간색 공을 이리저리 굴리다 바로 차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하민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스크랩] 비마이너 / 하민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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