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도려내는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 김치 얻으러 쪽방상담소를 찾았다. 

200명 선착순으로 김치와 라면을  준다는 벽보에, 이른 시간부터 비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식료품이 아니라 보약을 준다해도 줄서기는 싫다.

길들이기의 잔재인 쪽방촌 줄 세우기는 얻어먹는 비굴함과 묘멸감을 느끼게 해

나붙은 벽보만 보면 반갑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쪽방촌에 들어온 6년동안 주구장창 노래 부른 것이 줄 세우지 말고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줄 세우기는 외면해야 되지만,

빈민의 삶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본능에 앞서, 당해 봐야 서러움을 뼈 속 깊이 느껴 개선을 요구할 것 아닌가? 

벽보는 대부분 나누어주기 하루나 이틀전에 붙어, 잘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때도 많다.

그러나 벽보를 본 이상은 먼저 가서 기다리거나 뒤늦게 기다리며 걸리는 시간까지 체크해 왔다.

 

본인임을 확인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 들었으나,

업무의 편의성보다 주민 입장을 먼저 생각해, 줄 세우는 자체를 없애야한다.

만약 업체에서 보내 온 물품 량이 부족하다면, 전체 주민을 번호순으로 정해 차례대로 지급하라.

순번에서 끊긴 사람이 다음에 첫 번째가 되는 릴레이식으로 말이다.

물론 줄 때마다 내용물이 달라 불공평한 점은 있으나, 어쩔 수 없다.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후원을 상품에서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동지는 추운 날은 줄서지 말라지만, 추운 날은 밥도 안 먹나?’며 능청을 떨었다.

정해진 오전10시쯤 갔는데, 이미 긴 줄은 골목골목을 돌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몰아치는 칼바람으로 얼굴을 내밀 수도 없으나, 줄서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먹고 산다는 게 이렇게 비참한 것이던가?

 

봉사원이 건네주는 차 한 잔에 몸을 데워야 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을 떨고서야 차례가 돌아왔는데, 김치와 라면 세 봉지를 받았다.

고생 끝에 받아 그런지, 서러움이 북받혔다.

 

오후에는 공원에 갔더니, 용산구청에서 떨어 진 낙엽을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엘림교회’의 성탄절기념 찬양대회가 열렸다.

 

이 추운 날씨에 주민을 불러 모으려면 미끼가 필요한지,

쌓아둔 선물 꾸러미에 끌려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소하는 기계소음 때문에 기도는 물론 찬송도 부를 수 없었다.

 

마침 찬양대회에 온 정재은씨가 고함쳤다.

“씨발넘들아! 예수님 태어나시는데, 좀 조용히 해라”

욕설을 해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추워도 청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여태 의족을 끼고도 표 나지 않게 다녔으나,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자가용 구입 기념사진 찍어달라며, 선그라스까지 쓰고 폼을 잡았다.

 

‘추워 보인다며 옷 좀 두껍게 입고 다니라는 준기씨의 염려가 추위를 녹여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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