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간신히 올라 갈 수 있는 건물 입구에 앉아 바람을 쐬고있다. 옆에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는 건물주의 붉은 깃발이 걸려있다.

동자동 쪽방촌으로 옮겨 온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젠 쪽방살이에 제법 익숙해 졌으나, 한여름만 되면 여전히 곤욕을 치러야 한다.

낯 시간에는 길가에 자리를 펴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떠돌지만, 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다들 해수욕장 처럼 옷을 벗고 사는데, 우리 층에는 여성이 있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한다.

선풍기로 잠을 청하지만 밤새도록 후덥지근한 바람을 쐬니, 아침이면 얼굴이 퉁퉁 붇는다.

생지옥이 따로 없으나, 스스로 자청한 일이라 누굴 원망하랴?

 

내가 사는 쪽방을 ‘관사 403호’라 부른다.

정부에서 주는 주거비로 사용하니 관사가 아니겠는가?

한 층에 아홉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건물이라 요상한 냄새마저 풍긴다.

나야 몸에 배어 잘 느끼지 못하나, 찾아 온 손님마다 코를 컹컹거린다.

냄새를 잘 맡는 정동지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란다.

오래된 목재건물의 퀴퀴한 냄새와는 또 다르다며 거지촌 냄새라고 못 박았다.

 

고장난 컴퓨터 손 봐주러 온 정영신 동지

계절적 이재민을 양산하는 쪽방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보다 못하고, 교도소 독방보다 못하다.

여름에는 찜질방 같은 방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하고, 겨울에는 차거운 냉골에 떨어 감기를 달고 산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1.5평 남짓한 쪽방이라 한 몸 누우면 꽉 찬다.

그 좁은 곳에 쥐와 바퀴벌레까지 함께 살아야 하니 더 이상 무슨말을 하겠는가?

 

코 구멍만한 방이지만,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고, 라면을 끓이면 주방이 되고,

자판기를 두드리면 작업실이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 거실이 되는 요술 방이다.

창문이 하나 있으나 옆 건물과 붙어 있어 햇볕은커녕 비둘기 똥만 덕지덕지 붙었다.

 

아홉 명이 사용하는 재래식 공용화장실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면장은 물론 설거지까지 하는 곳이라 아침이면 나라비를 서야한다.

요즘은 샤워까지 자주해, 급한 볼일을 보려면 공원 화장실을 찾는게 상책이다.

 

이것이 쪽방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 주거 실태다.

쪽방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임시정거장이 아니라, 늪지대로 전락된 지 오래다.

다들 노숙자 신세를 피해 쪽방에 발을 들였으나, 열에 아홉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횡포다.

세입자들의 처지를 악용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방에 평균 23만원의 선 월세를 받아 챙긴다.

이는 서울 평당 아파트 월세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쓰여야 할 세금과 피땀 흘려 번 빈민들의 돈이 자본가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돈벌레들은 그 돈을 모아 또 다른 건물을 사들이며 탈세를 밥 먹듯이 한다.

 

쪽방건물은 치밀한 먹이사슬 구조로 얽혀있다.

세입자들은 건물주를 볼 수가 없다. 대개 관리인을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한다.

건물주들은 등기부 상의 주소지를 허위 신고하여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고,

관리인은 쪽방 일을 맡아 주는 대가로 무료로 쪽방 한 칸을 얻어 산다.

 

보통 쪽방 계약은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벽보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해 계약한다.

정식 부동산 계약서도 보증금도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월세를 먼저 내지 못하면 곧 바로 쫓겨난다.

 

동자동에 명기된 쪽방 건물 소유주 124명 중 88명이 쪽방 건물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현 건물주들의 정체는 정치인, 중소기업대표, 강남의 고급빌라 소유자, 인터넷 스타강사,

투기로 쪽방건물을 매입한 청년과 고등학생에 이르기 까지 각양각색이다.

투기목적으로 쪽방건물을 구매했거나 부모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아 건물주가 되었다.

아예 가족 비즈니스 형태로 쪽방건물을 여러 채 매입하여 수익을 올리는 이도 있다.

 

쪽방촌 건물주에게는 평균 한 달에 1.750만원의 수익이 생기지만, 모두 현금으로 받아 세금 한 푼 안 낸다.

벽지가 너덜거리고 비가 새어도 보수 작업을 해주지 않으니, 건물 관리도 걱정할 필요 없다.

무허가 숙박업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않아,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사실은 쪽방 사람들을 바라 보는 부정적 시선이다.

게으르다는 인식이 만연해,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고 줄여 부르며 ’기생충‘ 취급을 한다,

부자가 아닌 서민들조차 정부지원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빈민들을 손가락질한다.

열심히 일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앉아 나라 곳간만 축낸다지만,

대개 일할 수 없는 노인이거나 장애인이 많은 쪽방촌 실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진짜 기생충은 따로 있다. 비정한 도시에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돈벌레들이다.

피 냄새를 맡은 흡혈귀처럼, 말라비틀어진 자들의 목에 빨대를 꼽고 고혈을 빨아들인다.

그 단맛을 못 잊어, 정부에서 고시한 공공개발을 막으려고 발악이다.

 

'사람나고 돈 낳지, 돈 나고 사람 낳냐'

더구나 공정을 내 세운 정부가 아니던가?

국토교통부는 더 이상 악질 자본가들의 눈치만 보지 말고,

하루속히 동자동 공공개발 지구지정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30도 넘는 더위 피할 곳 없어

"서울시 에어컨 설치 도움 안되고 쉼터는 너무 좁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김정호씨 집 천장 모습. 플라스틱판이 얹혀있다.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문 열기가 겁납니다."

31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0일 오후 3시. 김정호씨(62)가 지내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에는 천장이 없었다. 대신 지붕 모양의 철골 윗면을 얇은 플라스틱 패널이 간신히 덮고 있었다. 김씨가 집 문을 선뜻 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패널 때문이다. 플라스틱 판이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해 방 전체를 찜통으로 만든다. 

쪽방촌의 살인적인 폭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평 남짓한 쪽방에는 겨우 이불을 깔고 누울 좁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창문이 있는 방은 A급"이라며 "대부분은 창문이 없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창문이 있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김씨는 창문 없는 방에서 6년을 살다 월세 3만원을 더 내고 창문이 있는 지금의 방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열 기능이 없는 건물이라 그 역시 여름이 고통스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쪽방촌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에어컨 설치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씨는 "정상적인 쪽방에는 에어컨을 달기 어렵다"며 "복도에 공동 에어컨을 달아도 밖과 차단되지 않아 냉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도로 옆 인도에 걸터 앉아있다.©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재개발 갈등속 더위 피해 거리로 나온 쪽방촌 주민들

동자동 쪽방촌은 1년 넘게 재개발 이슈에 휘말려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토지 소유주 등이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대해 지구지정도 못하고 있다. 

동자동주민대책위는 지난 12일 서울시와 만나 공공재개발 대신 민간재개발사업안 제출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당시 사업안이 제출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민간재개발사업안이 제출되지는 않은 상태다.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쪽방촌 주민들은 올해도 폭염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더위를 피하겠다며 자주 찾는 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대로변이다. 이곳에서 17년을 산 동자동 사랑방마을 대표 윤용주씨(61)는 "더위가 심한 날에는 여기 건물 앞에 돗자리 펴고 자는 사람이 많다"며 바로 앞 고가 오피스텔을 가리켰다. 

실제 이날 윤씨가 가리킨 오피스텔 옆 인도에는 쪽방촌 주민 열명 남짓이 걸터앉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으려 하고 있었다. 

윤씨에 따르면 이들은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더위를 피해 잠에 들었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후 이슬비로 몸이 축축해지면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피스텔 주민들이 이들을 노숙자로 오인해 신고하는 일이 잦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서울역 쪽방안내소는 동자동 쪽방촌 상담소 지하 2층에 쉼터가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불만이다. 쉼터는 작업장과 남녀 샤워실 사이 5평 남짓한 공간이다. 등록된 쪽방촌 주민 880여명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근처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또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날 공원 쉼터에 설치된 그늘 천막에서는 주민 10여명이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저녁에는 그늘 천막이 걷힌 자리에 종교단체가 야간 더위를 피하라며 천막을 친다. 그러나 윤씨는 "야간 천막에서 술판이 벌어진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곳 주민 중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40%, 장애인이 30%나 된다. 이들에게는 기약 없는 재개발이 아닌 당장 오늘의 더위를 식혀줄 방안이 더 절실해 보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김정호씨 집.©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찜통 같은 쪽방을 탈출하여 바람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정신 나간 상민이만 횡설수설할 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공원에는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릴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다시 쪽방으로 올라가는 무료한 일상이 반복된다.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후, 수도승처럼 좌정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

 

요즘 몸도 아프지만, 자책감에 더 시달린다.

'가족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냐?'는 때 늦은 반성 때문이다.

예전엔 타고난 팔자라며 자위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죄악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 사람만 찍어 온 사람이 사람만나기가 싫어졌다.

아니, 사람이 싫다기보다 사람 찍을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전시장 들리는 일을 비롯하여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 가며

동자동과 녹번동만 오간지가 벌써 두 달째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동안 주변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쓴 소리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늦었지만 전시리뷰나 사사로운 내용은 올리지 않기로 작정했으나,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주민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지만,

죽기 전에 재개발된 쪽방에서 살아보기는 틀린 것 같다.

 

공영개발보다 민간개발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용적률을 조정하여 많은 세대를 수용한다지만

거지 사는 아파트를 돈 많은 분양자들이 찾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쓰서라도 쪽방주민을 내보내려고 하겠지만, 주민들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자난달 초순, 오세훈시장이 창신동 쪽방촌에서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하며 쪽방에 에어컨을 달아주겠단다. 

서울에 있는 쪽방이 삼천오백여개나 되는데, 150대로 어디다 붙인단 말인가?

코구멍 만한 쪽방이라 복도에다 에어컨을 설치하여 모든 방문을 열게 한다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차라리 층마다 생수기라도 놓아 시원한 물이라도 마음대로 마실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다.

 

또 한 가지 혜택은 쪽방 주민들에게 한 끼 팔천원 상당의 식권을 매일 한 장식, 년 말까지 준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수 있는 일인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용수칙을 살펴보니 마음 상하는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먼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에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이용자가 많은 혼잡한 시간을 피해 가급적 세사람 이상 가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똑 같은 밥값을 주는데, 왜 이리 규제가 많은지 모르겠다.

 

밥 값이 팔천원을 초과하면 모자란 돈은 내야하지만, 남는 돈은 돌려주지 않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았다.

식당 이용 시 청결한 복장을 갖추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쪽방 주민을 거지로 취급한다는 말이 아닌가?

 

대화도 없이 일방적 동행을 외치는 오세훈시장님!

제발 헛발질 그만하시고. 동자동 공영개발에 힘 좀 보태주세요.

 

요즘 내가 하는 일은 함께 싸울 쪽방 사람들 정면사진 찍기다.

서울역 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동지들 사진첩을 만들 계획이다.

여태 내가 찍어 온 초상사진은 상대의 눈동자에 주목해 왔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적 기록만을 고집해 왔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고) 이명동선생 말씀을 새겨 왔는데,

사진 최고의 가치는 허상을 쫓는 게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하기야! 해석이나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밖에 없어 사진이라고 모두 진실할 수도 없겠다.

 한 장의 예술이기보다 한 장의 사진을 원한다는 뜻이다.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의 사진첩에 남아 오랫동안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세상은 거리 스냅사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렸다.

초상권이란 지나친 권리 주장에 사진가들이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라져,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찍힌 자의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막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다큐사진가라면 대중의 잘못된 과잉방어에 승복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가급적 상대방을 바라보며 찍은 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처음엔 흠칫 놀라지만, 이내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상대가 싫어한다면 그 자리에서 지워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포기해서는 안 될 문제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감방 갈 각오하면 된다.

 

몸 아프다는 신세타령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동자동 이야기에서부터 사진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메주 알 고주 알 늘어놓았는데,

모든 게 무위로 끝나는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는 말이다.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가족을 거두지 못한 못남이 어깨를 짓누른다.

 

사진, / 조문호

 

 

쪽방촌은 밥 주고 물주고 옷까지 챙겨주는 공짜천국이다.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물건을 수시로 나누어 준다.

 

그 일은 '서울시립 쪽방상담소라는 이름조차 별난 조직에서 주관한다.

서울에 쪽방상담소가 있는 곳은 동자동을 비롯하여 영등포, 남대문, 돈의동, 창신동 등 다섯 군데다.

동사무소를 두고도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는데, 주된 일이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달에는 연이틀 동안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명절이나 한더위에 나누어주는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이번엔 '서울역 희망공동체',한국가스공사’, 열매나눔재단’에서 보내 온 식료품이었다.

생수에서부터 라면, , , , 통조림, 티셔츠 등 없는 것이 없다.

 

난생 처음 맛보는 인스턴터 식품도 있고, 빨아먹는 죽도 가지가지였다.

주는 것만 잘 챙겨먹어도 누구처럼 뿌옇게 부티가 날 것 같있다.

방부제를 너무 많이 먹어 죽어도 시신 썩을 염려도 없다.

 

선착순 육백 명이라는 벽보 따라 긴 줄을 서야했다.

천 명이 넘는 동자동에 다들 600개만 보냈다는데, 600개란 숫자는 어떻게 산출된 거냐?

평소 줄서는 사람이 6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벽보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힘없는 노약자는 매번 소외된다.

발 빠르고 뻔뻔스러운 자만 얻어먹는 배급인 셈이다.

문제는 모자라는 수량을 핑계 삼아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춥거나 무더운 악천후도 신경 안 쓴다.

 

보내온 물품을 나누어주려면 줄 세우는 방법이 제일 쉽기야 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립심을 잃게 만들어 의존케 하는 빈민 길들이기라며,

줄 세우지 말라고 몇년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줄 세우기는 노약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심한 모멸감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줄서기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 서는 것과 얻기 위해 줄 서는 차이지만,

배급은 일제강점기부터 국민을 길들여 온 나쁜 잔재다.

 

같은 나눔이라도 동사무소 물품 나눔은 줄 세우지 않는다.

지원하려면 주민 모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량을 요구하여,

동사무소처럼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는 물품에는 본인이 필요 없는 물품도 많다.

소량의 지원품은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푸드마켓으로 넘겨

필요한 상품을 골라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푸드마켓도 공짜로 주어서는 안 된다.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하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쪽방촌 이외의 빈민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공영임대주택을 배당받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 못 살겠다지만, 줄 세워 나눠주는 먹거리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자존심을 지키며 줄 서지 않는 주민도 있다.

이준기씨는 줄을 서지 않은 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줄 선 내 모습이 한심했겠지만, 똑같이 줄서서 느끼며 기록하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서서히 길들어 나도 모르게 뻔뻔해졌다.

쪽방 살이를 오래하다 보니, 고맙다는 말조차 잊어버렸다.

비참하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인성마저 망가졌다.

 

사진, / 조문호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약자와 동행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모습.

[주장] 단발성 대책 아닌 '쪽방촌 공공임대주택' 등 근본 대책 필요

 

불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장마까지 겹치며 높아진 습도에 몸을 조금만 바삐 움직여도 금세 땀에 젖는다. 평년보다 이른 더위에, 기상청은 향후 3주는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으로 전망해 폭염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쪽방과 같은 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주거에 사는 이들에게 있어 폭염은 더욱 다루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온다.
  
매해 5월이면 서울시는 '여름철 노숙인·쪽방주민 특별보호대책'을 발표한다. 이 대책의 핵심은 쪽방상담소나 노숙인시설 등에 에어컨을 놓고 '무더위 쉼터'를 열거나, 야외 무더위 쉼터를 설치해 더위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역시 서울시는 5월 26일, 같은 대책을 발표해 노숙인 시설 10개소, 쪽방 지역은 14개소에 무더위 쉼터를 설치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쉼터는 전체 쪽방 주민의 6%밖에 품지 못하는 규모, 감염병 전파에 취약한 집합 시설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거지를 떠나 혹서기를 보내도록 권한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무더위 쉼터를 택할 경우 시원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생활이 깃든 '방'은 통째로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기존 폭염 대책은 쪽방 주민을 마치 '계절적 이재민'으로 간주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런 정책이 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약자 동행'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그가 내놓은 폭염 대책의 한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일, 취임식 뒤 첫 행보로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찾았다. 오 시장은 취임 이틀 전에도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던 터라, 일주일 새 두 차례나 쪽방촌을 방문하는 이례적인 일정이었다. 아마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자신의 서울시 정책 브랜드를 강조하고 드러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쪽방 주민 폭염 대책이었다. "쪽방 주민들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시 예산과 민간후원을 활용해 에어컨 150대 설치와 추가 전기요금을 지원(7~8월 중 추가요금, 가구당 5만 원 한도)"하고, "여름철 침구 3종 세트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50대라는 물량은 서울지역 쪽방 건물의 절반도 채 안 되는 것으로, 나머지는 폭염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에어컨이 설치될 건물도 각 실(방)별 설치가 아닌 건물별/층별 설치로, 냉방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오 시장 스스로도 6월 29일 돈의동 쪽방촌을 방문해 에어컨이 설치된 것을 보고는 "크게 시원하지는 않겠는데 (...) 에어컨 하나로 한 8개 방을 같이 쓰다 보니 턱없이 용량이 부족할 것 같다"라고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틀 뒤 아무런 개선 없이 똑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살인적 폭염을 다루는 데 적합한 장치가 에어컨이라 하더라도, 여기에만 의존한 폭염 대책은 분명 한계가 있다. 서울지역 쪽방 건물 중 '목조' 건물은 43.2%(2021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달한다. 건물이 노후화해 발생하는 안전 문제와 건물주들의 저항, 내부 전력의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에어컨 설치 대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거 대책 빠진 폭염 대책은 임시방편

 

▲남대문로5가 쪽방 복도에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 쪽방 12개가 이 에어컨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공조설비가 없는 쪽방의 특성상, 복도에 놓인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서는 방문을 계속 열어 놓아야 한다. 이럴 경우 안전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남대문 쪽방 주민인 홍아무개씨는 "그럼 맨날 방문을 열고 살란 말이냐.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여다 볼텐데 어떻게 열어 놓고 살 수 있냐"고 했다. 옆에 있던 주민 박아무개씨는 며칠 전 새벽, 방문을 열고 자던 중 도둑이 들어 도둑 발목을 붙잡았다는 일화를 얘기하기도 했다. 더구나 쪽방촌 여성 주민들에게 '방문 열고 생활하라'는 건, 사생활은 물론 자기 안전을 포기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모든 쪽방에 작은 에어컨을 달면 문제가 해결될까? 앞서 말했듯, 목조 등 쪽방의 취약한 구조와 낡아 손상된 건물의 상태가 이를 버텨내기 어렵다. 게다가 쪽방의 32.9%는 아예 창문이 없다(2020년 서울시 실태조사). 건물주들에 대한 보상과 대대적 조치를 통해 모든 쪽방에 에어컨을 놓는다 해도 쪽방 주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최근 쪽방 주민 이아무개씨는, 최근 손바닥만 한 화상을 입었다고 내게 말했다. 방 안에서 휴대용 버너로 끓인 찌개 냄비를 옮기다 실수로 허벅지에 떨어뜨렸고, 그 일로 꼼짝없이 한 달을 비좁은 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쪽방 주민 김아무개씨의 사례는 에어컨 설치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관리자에게 요청해 맞은 편으로 방을 옮겼다. 음식을 만들 때 나온 수증기가 방을 못 빠져나가 방 안에 곰팡이가 피고 천정 벽지마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방을 옮겨 다행이라는 말에, 그는 '옮긴 방도 곧 다시 그렇게 될 것'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밥 해먹을 수 있는 별도의 부엌이 생기지 않는 한 이 두 사람이 겪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과거 관리자가 살던 내실로 옮겨 넓고 밖으로 난 큰 창문이 있는 동자동 쪽방에서 살게된 이아무개씨을 만났다. 그에게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좀 견딜만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러나 창틀 밖 벌어진 틈으로 비둘기들이 들어와서 깃털과 배설물은 물론 얼마 전에는 알도 두 개 낳았다고, 그래서 창문을 닫고 산다고 했다. 에어컨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언제까지 단발성 대책만 낼건가... 쪽방촌 공공주택 등 근본책 고민해야
 

▲서울역 인근 한 쪽방 주민의 방. 살림에 필요한 물품들을 수납하기 너무 좁다.


단발성, 프로그램식 폭염 대책으로는 쪽방 주민들의 주거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 낡은 데다 구조적으로도 취약한 쪽방 건물은 개보수한다 해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2012년~2014년까지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고, 2016년부터 쪽방을 임차해 개보수한 후 재임대하는 '저렴 쪽방'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쪽방의 주거환경 개선 효과는 미미하게 나타났고, 결국 이 사업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마감되었다.

대안은 있다. 쪽방을 헐고 그 자리에 임대주택을 지어 주민들이 재정착하도록 돕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의 대안이 그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영등포 쪽방을 시작으로 해 정부-지자체 합동으로 이 방식이 제시되었고 주민들에게서 환영받고 있다. 근거 법령과 주체에 따라 방식은 공공주택사업(영등포 쪽방, 동자동 쪽방), 도시정비형 재개발(남대문로5가 쪽방-양동 지구, 창신동 쪽방)로 나뉘나, 둘다 현 쪽방 위치에 공공주택을 짓고, 쪽방 주민이 다시 살게 한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런 개발은, 기존 쪽방을 전면 철거하고 원 쪽방 주민을 강제퇴거 시켰던 폭력적인 개발 역사와 단절한다는 점에서도 과거로부터의 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저항이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건물주들 반대로 발표 이후 첫 단계인 공공주택 지구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동안 양동 쪽방 주민들은 계획발표 당시 472명이던 숫자가 작년 1월 230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창신동 쪽방 역시 계획이 발표되기 시작한 2020년 388명이던 주민이 2021년 말 235명으로 40% 가량 줄었다. 공공임대주택 등 세입자 대책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건물주들에 의해 쪽방 주민들이 퇴거 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쪽방 건물주들은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거나, 주민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선 이주 선 순환' 쪽방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나 자치구의 대응책은 아무것도 없다.


  
폭염 대책 넘어 주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7월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지역 쪽방 주민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폭염 대책만으로는 쪽방 주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쪽방'이라는 한계적 주거 자체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쪽방 지역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주민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사업, 도시정비형 재재발 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은 폭염 대책을 포함한 쪽방 대책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쪽방 주민들이 한결같이 내왔던, 굳이 오세훈 시장이 쪽방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들을 수 있었던 쪽방 주민들의 요구이자 목소리다.

지난 13일, 서울 동자동·양동·돈의동 등지의 쪽방 주민들과 단체활동가들은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을 열고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 주민 등 홈리스 당사자와 면담하고 대화하라!"며 오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또한 오는 20일까지 답변을 줄 것을 요구했다.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오세훈 시장의 정책 기조가 과연 진실인지는, 곧 확인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 이동현기자

동자동의 김정길하면 몰라도 동자동의 김반장하면 모르는 이가 없다.

쪽방촌 청소에서부터 후원물품 도우미나 순찰을 도는 등

동네 반장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 붙여 진 이름이다.

 

2017, 11, 14 / 대부도에서 가진 아름다운 동행에서..

김정길(76)씨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이다.

음식 나눔이 있던 새꿈공원에서 만났는데, 뒤처리하는 모습이 남달랐다.

일을 돕는다기보다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에 눈여겨 본 것이다.

그 뒤부터 행사가 있을 때는 물론, 가는 곳 마다 그의 모습은 빠지지 않았다.

 

2017,5,2 / 동자동 골목계단에서...

김정길씨가 동자동에 들어 온지는 39년째라 반 평생을 쪽방에서 보낸 셈이다.

공사 현장이나 음식점 등 막일로 전전하다 방세 싼 쪽방촌에 들어왔다는데,

봉사를 생활화하게 된 계기는 15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남을 돕는데 여생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닥치는 대로 일을 도운 것이다.

 

2017년 6월5일 / 거리에서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 그가 작년 무렵, '케이비에스'와 '조선일보'에 연이어 소개되며,

갑자기 동자동 김반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2019, 5, 23 / 화담 숲에서 가진 동자동소풍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옛 속담 처럼, 그의 봉사활동은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었다.

쪽방에서 내다버린 쓰레기에서부터 직장인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에 이르기까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골목입구가 아침이면 티끌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2017,5,8 / '동자동사랑방'에서 마련한 어버이날 잔치 정리하는 모습

만날 때마다 청소를 끝내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 쪽방상담소 문 열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매번 매점 가는 길이라 카메라들 두고 와 청소하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는데,

며칠 전에는 작정하고 내려와 쉬는 모습이라도 찍은 것이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는 김씨는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그가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

아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부디 건강 잘 지켜 오랫동안 좋은 일 많이 하길 바랍니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숙인도 다시서기에서 재활하는 이가 더러 있으나, 김반장 처럼 무보수의 봉사는 아니다.

 

힘없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노숙인들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지하도 입구에 새로 온 노숙인이 자리 잡았다.

갈 때마다 가부좌한 자세로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 다른 노숙인과 달랐다.

책을 정갈하게 모아두고, 난간에는 조화까지 모셔 두었다.

책은 가까이 두지만, 한 번도 책 읽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첫 장에 펼쳐놓은 군자의 삶이란 제목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의 말은 알아들어 반응은 하지만, 일체의 질문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름은 물론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더 궁금했다.

 

거리로 내 몰린 노숙인이 어찌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겠나마는

정신질환자로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쪼록 오갈 곳 없는 노숙인들을 한 곳에 정착시켜

더 이상 거리에서 죽는 노숙인이 없도록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모리아교회에서 사랑의 짜장면 나눔 잔치를 열었다.

 

쪽방촌이라 음식 나누는 자리가 잦지만, 짜장면은 또 다른 별미다.

 

어린 시절 먹던 짜장면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긴 세월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짜장면이다.

 

지난 14일 정오 무렵, ‘식도락에 도시락 얻으러 갔더니,

줄 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이기영씨만 국밥을 먹고 있었다.

 

이씨가 짜장면 주는 공원으로 가라는 것을 보니,

짜장면 나눔이 있어 도시락은 준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새꿈공원으로 가보니 짜장면 냄새가 진동했다.

현장에서 면을 뽑아 삶아 주는 봉사원과,

줄을 서거나 짜장면 먹는 주민들로 공원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번잡한 곳에서 누워 자는 노숙인도 있었다.

아무리 사는 게 귀찮은지 모르나, 한적한 곳으로 좀 옮겨주면 안 되나?

이런 노숙인 때문에 다른 노숙인까지 욕 먹인다.

 

3년 전에는 모리아교회 예배당에서 짜장면 나눔 행사가 있었다.

그때는 곧바로 주지 않고 예배당에 모아 기도한 후 먹게 했다.

시간도 지체 되었지만, 면이 불어 굳어버린 것이다.

 

목사더러 '베풀고 욕먹는 자선'이라며 나무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금방 솥에서 건져낸 면을 비벼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느라 이빨 빠진 사이로 면을 걸어 쪽 빨았더니 콧 잔등을 치네.

쪽 팔릴 것이야 없으나 휴지가 없다.

 

그 날 긴 줄을 섰지만, 배식이 빠르니 금방 차례가 돌아왔다.

곱배기와 보통이 있었으나 대부분 보통을 찾았다.

짜장면은 맛도 맛이지만, 오랜 향수 때문일 것이다.

 

한 끼의 배를 채우기에 앞서 다들 소풍 나온 분위기였다.

좋은 자리 만들어 준 모리아교회에 감사드린다.

 

사진, / 조문호

 

 

간밤에는 너무 더워 방문을 열어놓고 잤더니, 온 몸이 떨려 일찍 잠을 깨야했다.

날씨마저 변덕스러운 우리나라 정책 같다.

 

감기가 걸렸는지, 연신 터지는 재채기에 코로나 환자로 의심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라면 국물로 속 데우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 곳곳에는 빈민들의 시름이 깊었다.

복에 없는 쪽방촌 재개발이란 수레는 바람 빠진 바퀴 같다.

살지도 않는 악덕 건물주들의 반발로 국토부에서 지구지정에 손을 놓은 것이다.

 

열 받은 이씨의 푸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왜 가만있는 사람들, 간에 바람 들게 하나?

차라리 몰랐다면 속 뒤집어지는 이런 일은 없을 것 아니가?

우리가 아파트로 옮겨 살면 몇 년을 더 살겠나?

죽고 나면 다시 가져 갈 집을 생색만 내면서...

 

듣고 있던 박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씨바~ 우리 사는 데가 방이 맞나? 개집도 그런 집은 없다.

요즘 개는 사람을 끼고 살지, 그런 곳에서 살지도 못한다.

방에 물이 세거나 전기가 나가도 모른다는 놈들이 방세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현금으로만 챙겨간다.

쪽방에 우글거리는 바퀴벌레나, 그 돈 벌레들이나 다를 게 뭐있나?

차라리 폭탄이라도 터트려 다 같이 죽고 싶다

 

분위기가 살벌해져 사랑방조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만난 선 간사는 입구에서 담배를 피웠고,

김 이사장은 보지도 않는 게시판에 소식지를 붙였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며, 그간의 소식을 살펴보았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중단에 빈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곳은 이곳 뿐이다.

 

가진 자 편인 새 정부가 들어서며 재개발이 불투명해지자

대통령인수위 사무실과 용산집무실을 쫓아다니며 지구지정 촉구에 목소리를 높였으나,

소귀에 경 읽기다.

 

동자동은 빈민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재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민간개발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삶을 포기한 막장 사람들이 그냥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가진 자 눈치 보지 말고, 계획대로 추진하라.

 

새꿈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낯선 젊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불이 빗물에 젖어, 물침대에 누워 자는 노숙인도 있었다.

 

주민들의 사랑방 노릇 하던 휴게실은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옮겨가며 문 닫은 지 오래다.

 

아는 사람도 쉴 곳도 없는 새꿈공원이 왠지 낯설어보였다.

 

'친절한 은자씨' 만이 난간에 올라 마릴린 먼로같은 풍만한 육체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시 무거운 몸을 끌고 돌아왔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4층까지 오르자니 숨이 막혀 몇 번을 쉬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삶, 오르는 김에 옥상까지 올라갔다.

 

떨어져 죽기위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삶의 흔적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화려한 서울 한 복판에 아직도 꾀죄죄한 자취들이 남아 있었다.

아니, 오히려 사람사는 냄새가 났다.

 

옆 건물 옥상을 지키던 개가 안 서러운 듯 바라보고,

불청객에 놀란 비둘기 한 마리가 후 두둑 날아갔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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