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같은 쪽방을 탈출하여 바람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정신 나간 상민이만 횡설수설할 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공원에는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릴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다시 쪽방으로 올라가는 무료한 일상이 반복된다.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후, 수도승처럼 좌정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

 

요즘 몸도 아프지만, 자책감에 더 시달린다.

'가족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냐?'는 때 늦은 반성 때문이다.

예전엔 타고난 팔자라며 자위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죄악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 사람만 찍어 온 사람이 사람만나기가 싫어졌다.

아니, 사람이 싫다기보다 사람 찍을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전시장 들리는 일을 비롯하여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 가며

동자동과 녹번동만 오간지가 벌써 두 달째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동안 주변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쓴 소리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늦었지만 전시리뷰나 사사로운 내용은 올리지 않기로 작정했으나,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주민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지만,

죽기 전에 재개발된 쪽방에서 살아보기는 틀린 것 같다.

 

공영개발보다 민간개발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용적률을 조정하여 많은 세대를 수용한다지만

거지 사는 아파트를 돈 많은 분양자들이 찾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쓰서라도 쪽방주민을 내보내려고 하겠지만, 주민들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자난달 초순, 오세훈시장이 창신동 쪽방촌에서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하며 쪽방에 에어컨을 달아주겠단다. 

서울에 있는 쪽방이 삼천오백여개나 되는데, 150대로 어디다 붙인단 말인가?

코구멍 만한 쪽방이라 복도에다 에어컨을 설치하여 모든 방문을 열게 한다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차라리 층마다 생수기라도 놓아 시원한 물이라도 마음대로 마실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다.

 

또 한 가지 혜택은 쪽방 주민들에게 한 끼 팔천원 상당의 식권을 매일 한 장식, 년 말까지 준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수 있는 일인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용수칙을 살펴보니 마음 상하는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먼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에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이용자가 많은 혼잡한 시간을 피해 가급적 세사람 이상 가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똑 같은 밥값을 주는데, 왜 이리 규제가 많은지 모르겠다.

 

밥 값이 팔천원을 초과하면 모자란 돈은 내야하지만, 남는 돈은 돌려주지 않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았다.

식당 이용 시 청결한 복장을 갖추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쪽방 주민을 거지로 취급한다는 말이 아닌가?

 

대화도 없이 일방적 동행을 외치는 오세훈시장님!

제발 헛발질 그만하시고. 동자동 공영개발에 힘 좀 보태주세요.

 

요즘 내가 하는 일은 함께 싸울 쪽방 사람들 정면사진 찍기다.

서울역 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동지들 사진첩을 만들 계획이다.

여태 내가 찍어 온 초상사진은 상대의 눈동자에 주목해 왔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적 기록만을 고집해 왔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고) 이명동선생 말씀을 새겨 왔는데,

사진 최고의 가치는 허상을 쫓는 게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하기야! 해석이나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밖에 없어 사진이라고 모두 진실할 수도 없겠다.

 한 장의 예술이기보다 한 장의 사진을 원한다는 뜻이다.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의 사진첩에 남아 오랫동안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세상은 거리 스냅사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렸다.

초상권이란 지나친 권리 주장에 사진가들이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라져,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찍힌 자의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막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다큐사진가라면 대중의 잘못된 과잉방어에 승복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가급적 상대방을 바라보며 찍은 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처음엔 흠칫 놀라지만, 이내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상대가 싫어한다면 그 자리에서 지워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포기해서는 안 될 문제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감방 갈 각오하면 된다.

 

몸 아프다는 신세타령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동자동 이야기에서부터 사진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메주 알 고주 알 늘어놓았는데,

모든 게 무위로 끝나는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는 말이다.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가족을 거두지 못한 못남이 어깨를 짓누른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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