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은 밥 주고 물주고 옷까지 챙겨주는 공짜천국이다.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물건을 수시로 나누어 준다.
그 일은 '서울시립 쪽방상담소’라는 이름조차 별난 조직에서 주관한다.
서울에 쪽방상담소가 있는 곳은 동자동을 비롯하여 영등포, 남대문, 돈의동, 창신동 등 다섯 군데다.
동사무소를 두고도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는데, 주된 일이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달에는 연이틀 동안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명절이나 한더위에 나누어주는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이번엔 '서울역 희망공동체', ‘한국가스공사’, ‘열매나눔재단’에서 보내 온 식료품이었다.
생수에서부터 라면, 밥, 죽, 김, 통조림, 티셔츠 등 없는 것이 없다.
난생 처음 맛보는 인스턴터 식품도 있고, 빨아먹는 죽도 가지가지였다.
주는 것만 잘 챙겨먹어도 누구처럼 뿌옇게 부티가 날 것 같있다.
방부제를 너무 많이 먹어 죽어도 시신 썩을 염려도 없다.
선착순 육백 명이라는 벽보 따라 긴 줄을 서야했다.
천 명이 넘는 동자동에 다들 600개만 보냈다는데, 그 600개란 숫자는 어떻게 산출된 거냐?
평소 줄서는 사람이 6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벽보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힘없는 노약자는 매번 소외된다.
발 빠르고 뻔뻔스러운 자만 얻어먹는 배급인 셈이다.
문제는 모자라는 수량을 핑계 삼아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춥거나 무더운 악천후도 신경 안 쓴다.
보내온 물품을 나누어주려면 줄 세우는 방법이 제일 쉽기야 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립심을 잃게 만들어 의존케 하는 빈민 길들이기라며,
‘줄 세우지 말라’고 몇년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줄 세우기는 노약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심한 모멸감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줄서기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 서는 것과 얻기 위해 줄 서는 차이지만,
배급은 일제강점기부터 국민을 길들여 온 나쁜 잔재다.
같은 나눔이라도 동사무소 물품 나눔은 줄 세우지 않는다.
지원하려면 주민 모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량을 요구하여,
동사무소처럼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는 물품에는 본인이 필요 없는 물품도 많다.
소량의 지원품은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푸드마켓으로 넘겨
필요한 상품을 골라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푸드마켓도 공짜로 주어서는 안 된다.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하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쪽방촌 이외의 빈민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공영임대주택을 배당받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 못 살겠다지만, 줄 세워 나눠주는 먹거리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자존심을 지키며 줄 서지 않는 주민도 있다.
이준기씨는 줄을 서지 않은 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줄 선 내 모습이 한심했겠지만, 똑같이 줄서서 느끼며 기록하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서서히 길들어 나도 모르게 뻔뻔해졌다.
쪽방 살이를 오래하다 보니, 고맙다는 말조차 잊어버렸다.
비참하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인성마저 망가졌다.
사진, 글 / 조문호
'조문호사진판 > 동자동 쪽방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푹푹 찌는 쪽방, 노숙인이 부럽다. (0) | 2022.08.09 |
---|---|
[르포] ‘재개발 갈등’ 1년, 진전 없는 동자동 (0) | 2022.08.06 |
오세훈 시장님, 쪽방촌 폭염 '에어컨'으로 풀 수 없습니다 (0) | 2022.07.29 |
[르포]"방에 있으면 더 더워"…옹벽 밑에 모여 폭염 견디는 쪽방촌 사람들 (0) | 2022.07.21 |
비오는 날의 동자동 풍경 (0) | 2022.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