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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덥잖아. 낮이고 밤이고 방에 있으면 돈 없고 임도 없으니 여기 앉아서 놀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오른편에 시작하는 후암로60길은 남대문5가 경로당까지 130여 미터(m) 이어진 오르막길이다. 경로당 맞은편에는 낡은 건물이 10여채 모여있다. 이곳은 동자동쪽방촌 또는 서울역쪽방촌이라 불린다.
기상청이 서울에 폭염경보를 내린 4일 오후 동자동쪽방촌 주민들은 대다수가 방 밖에 나와 있었다. 오후 1시 서울의 기온은 섭씨 31도를 웃돌았지만 방안에는 습도가 높아 견디기 어려운 탓이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5도에 이른다.
30년 이상 서커스배우로 활동하다 이곳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A씨 역시 남대문5가 경로당 인근 옹벽 아래 앉아있다. 옹벽 아래에는 쿨링포그가 설치돼 있어 불과 한두 걸음 바깥쪽 길가보다 시원했다. 쿨링포그는 물안개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장치다. 기온이 26도가 넘으면 자동으로 물안개를 뿜는다. 이날은 오전부터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A씨는 서울시립 남대문쪽방상담소(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준 여름이불과 간편식을 받으러 나온 길이었다. 물품은 챙겼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방이 너무 더워 낮이고 밤이고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경로당 앞 야외무더위쉼터에도 주민 6~7명이 모여있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자원봉사 중인 양동일씨(47)는 야외무더위쉼터천막 아래 테이블을 펴놓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씨는 더위에 지친 동네 주민들이 오면 아이스박스에서 얼린 생수병을 꺼내 준다. 쪽방상담소는 야외무더위쉼터를 찾는 동네주민이라면 누구나 장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얼음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B씨는 "두 세 시간 이상 선풍기를 틀면 선풍기가 열을 받아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1시에 야외무더위쉼터에 나와 앉아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동자동쪽방촌 건물은 보통 한 층에 0.5~2평 크기 방 8~15개와 화장실 1개가 있다. 건물이 4~5층 규모여서 살고 있는 주민은 20명~50명에 이른다. 선풍기가 과열되면 주민들은 층마다 한 개씩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다. 샤워 후에는 선풍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야외무더위쉼터나 쿨링포그 아래로 모인다.
무더위가 계속될수록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최근의 물가상승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면을 사 먹거나 커피를 사서 나눠 마신다. 낮부터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동자동쪽방촌에 2개 남은 '구멍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역시 소주, 막걸리, 라면 등이다.
10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규언씨는 "밀가루값이 오르면서 과자, 라면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과자는 이제 너무 비싸서 잘 안 가져다 놓는다"고 했다. 박씨 가게의 하루 매출은 3만~5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기초생계비가 지급되는 매달 20일부터 2~3일간은 하루 매출이 1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이곳 주민의 3분의 2가량은 기초생활수급자"라며 "매달 82만원 남짓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했다.
쪽방촌의 월세는 25만~35만원 수준이다. 전기세와 수도요금 등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된다. 한때 동자동쪽방촌에는 450여명이 살았지만 재개발을 앞둔 현재 180~200여명의 주민만 남았다.
기상청은 폭염과 열대야가 6일까지 이어지다 전국에 장맛비가 예고된 7일부터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머니투데이 /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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