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이 낡은 봉창을 두드린다.

반가운 손님일까 반색하지만,

덜덜거리던 선풍기가 아니라고 고개 흔든다.

 

장마철은 쪽방살이에 걱정거리를 몰고온다. 

천장에 물이 새어 이불이라도 젖을까 전전긍긍하지만,

다행히 비새는 곳이 없어 한숨 돌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가 쪽방 열기는 식혀주지만,

 뼈마디가 쑤시는 골병은 때 만난듯 고개드는구나.

요즘들어 늙어가는 게 하루가 다르다.

 

몸이 편치않아 꼼짝하기 싫지만, 약속 때문에 안 나갈 수도 없었다.

김용철씨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경기여인숙' 입구에서 비 피하던 송범섭씨는 빚쟁이 처럼 독촉한다.

지난번에 찍은 사진은 왜 안 주는 거야?”

한꺼번에 뽑아 줄테니 좀 기다리라고 다독였다.

 

생수 타러 나온 주민들이 서울역쪽방상담소앞으로 몰려들었다.

빗속에 줄 지어 선 모습이 왠지 짠하게 느껴진다.

 

정재은씨를 만나 담배 피우는 중에 반가운 분이 나타났다.

개미 팔자가 아니라 매미 팔자를 타고났다는 기타맨 위씨였다.

 

온몸이 비에 젖었는데, 몸만 젖은 게 아니라 마음도 젖었다.

오늘 새벽에 옆에 살던 양반이 천당 갔어!“

흘러내리는 빗물이 눈물인 양, 슬픈 웃음을 흘린다.

 

어쩌면 편안한 곳으로 갔으니,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긴 줄을 서야 하지만,

모든 원한과 미련을 훌훌 떨치고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서울역전은 천국 가는 대기소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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