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30도 넘는 더위 피할 곳 없어

"서울시 에어컨 설치 도움 안되고 쉼터는 너무 좁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김정호씨 집 천장 모습. 플라스틱판이 얹혀있다.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문 열기가 겁납니다."

31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0일 오후 3시. 김정호씨(62)가 지내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에는 천장이 없었다. 대신 지붕 모양의 철골 윗면을 얇은 플라스틱 패널이 간신히 덮고 있었다. 김씨가 집 문을 선뜻 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패널 때문이다. 플라스틱 판이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해 방 전체를 찜통으로 만든다. 

쪽방촌의 살인적인 폭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평 남짓한 쪽방에는 겨우 이불을 깔고 누울 좁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창문이 있는 방은 A급"이라며 "대부분은 창문이 없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창문이 있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김씨는 창문 없는 방에서 6년을 살다 월세 3만원을 더 내고 창문이 있는 지금의 방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열 기능이 없는 건물이라 그 역시 여름이 고통스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쪽방촌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에어컨 설치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씨는 "정상적인 쪽방에는 에어컨을 달기 어렵다"며 "복도에 공동 에어컨을 달아도 밖과 차단되지 않아 냉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도로 옆 인도에 걸터 앉아있다.©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재개발 갈등속 더위 피해 거리로 나온 쪽방촌 주민들

동자동 쪽방촌은 1년 넘게 재개발 이슈에 휘말려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토지 소유주 등이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대해 지구지정도 못하고 있다. 

동자동주민대책위는 지난 12일 서울시와 만나 공공재개발 대신 민간재개발사업안 제출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당시 사업안이 제출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민간재개발사업안이 제출되지는 않은 상태다.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쪽방촌 주민들은 올해도 폭염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더위를 피하겠다며 자주 찾는 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대로변이다. 이곳에서 17년을 산 동자동 사랑방마을 대표 윤용주씨(61)는 "더위가 심한 날에는 여기 건물 앞에 돗자리 펴고 자는 사람이 많다"며 바로 앞 고가 오피스텔을 가리켰다. 

실제 이날 윤씨가 가리킨 오피스텔 옆 인도에는 쪽방촌 주민 열명 남짓이 걸터앉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으려 하고 있었다. 

윤씨에 따르면 이들은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더위를 피해 잠에 들었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후 이슬비로 몸이 축축해지면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피스텔 주민들이 이들을 노숙자로 오인해 신고하는 일이 잦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서울역 쪽방안내소는 동자동 쪽방촌 상담소 지하 2층에 쉼터가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불만이다. 쉼터는 작업장과 남녀 샤워실 사이 5평 남짓한 공간이다. 등록된 쪽방촌 주민 880여명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근처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또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날 공원 쉼터에 설치된 그늘 천막에서는 주민 10여명이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저녁에는 그늘 천막이 걷힌 자리에 종교단체가 야간 더위를 피하라며 천막을 친다. 그러나 윤씨는 "야간 천막에서 술판이 벌어진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곳 주민 중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40%, 장애인이 30%나 된다. 이들에게는 기약 없는 재개발이 아닌 당장 오늘의 더위를 식혀줄 방안이 더 절실해 보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김정호씨 집.©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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