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부자’ 상위 100명이 가진 집 2만 채
쪽방, 반지하 등 주거취약계층은 200만 명
심각한 빈곤 상황… 빈민 300명 서울 도심 집결
“불평등 구조 끝장내야 빈곤 철폐 가능”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빈곤 철폐’라고 적힌 빨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현재 한국의 빈곤을 수치로 나타내면 이렇다. 소득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46%를 가졌다.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16%, 노인 인구의 40%로 매우 높다. 쪽방·비닐하우스·지하·옥탑 등 열악한 환경에 사는 사람은 200만 가구다. 반면, 집 부자 상위 100명은 1인당 평균 207채의 집을 가졌다. 이들이 가진 집의 총합은 올해를 기준으로 2만 1천 채다.

빈부격차가 이토록 심각한데, 한국 정부는 때아닌 ‘새마을운동’을 부활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날 “새마을운동과 제 정치 비전이 정확히 일치한다”며 “국민이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다시 한번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정책 중 하나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며 빈곤의 책임을 국가가 지지 않고 국민에게 돌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시설에서 20년, 쪽방에서 20년,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그러나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이 근면‧성실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의 책임은 빈민이 아니라 자본주의 문제와 불평등, 이를 외면하는 국가에 있다”고 말한다. 노점상, 장애인, 쪽방주민, 철거민, 홈리스 등 가난한 사람들 300여 명은 15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변에 모여 투쟁대회를 열고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끝장내지 않으면 빈곤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보신각까지 행진했다.

이번 투쟁대회는 ‘빈곤철폐의 날’을 이틀 앞두고 열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은 시장에서 50년간 입어온 빨간 방수 앞치마를 둘렀다. 노점상은 어묵꼬치를 재현한 소품을 들었다. 붕어빵이 그려진 피켓을 든 노점상도 있었다. 장애인은 장애인거주시설에 갇힌 듯한 소품으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했다. 아랫마을 홈리스는 유령 분장을 하고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김건수 기후정의동맹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기후재난에 직면한 가난한 사람들… 해결 방법은 ‘평등’뿐

김건수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재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투쟁대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일상이 된 기후재난의 삶을 증언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은 1년이나 미뤄진 공공개발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한파와 폭염을 견디고 있다. 거리홈리스와 노점상도 마찬가지다. 냉난방이 불가능한 아스팔트 위에서 일사병과 동상에 시달린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많은 시간을 길바닥에 허비하는 장애인, 집과 가게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철거민, 반지하에 살다 폭우로 사망한 주거취약계층 모두 기후재난의 피해자다.

김건수 활동가는 자본주의와 불평등 때문에 기후재난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지구가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대기업과 부유한 국가는 여전히 자연을 파괴해 경제를 성장시킨다. 탄소가 많이 배출돼 기후재난이 일어난 게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따른 불평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자본주의는 위기에 취약하며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시스템이다. 이로 인한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 집, 일자리, 의료, 식량 등 모든 권리를 보장해야 기후재난을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웃 나라 활동가들이 자국 언어로 쓴 피켓을 들고 결의대회 무대에 올랐다. 사진 하민지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웃 나라 활동가들을 향해 미얀마 투쟁을 지지하는 손가락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인간의 기준을 ‘쓸모’로 나누는 국가,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우자”

이번 결의대회에는 반빈곤운동을 전개하는 이웃 나라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달마 디아니 도시빈민연합 주민지도자는 “여러분과 함께 불평등에 맞서 싸우려고 왔다. 정부, 다국적기업, 자본주의에 맞서 모든 종류의 가난, 불평등과 싸워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과 자립생활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보 평등한캄보디아 주민조직가는 “캄보디아는 홍수, 더러운 쓰레기, 식량 부족, 강제철거에 직면해 있다. 불평등한 빈부격차 속 개발정책에서 우리(가난한 사람들)는 배제돼 있다. 우리도 사람인데, 개발정책 속에 우리는 없다. 그래서 정부를 향해 주거권, 교육권,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 권리 등을 요구 중”이라며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오자. 가난한 사람도 이웃이고 항상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함께 알리자”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국가가 인간의 기준을 ‘쓸모’로 나눈다고 규탄했다. 박경석 대표는 “국가는 여기(결의대회) 계신 모든 동지를 쓸모없고 가치 없는 사람 취급했다. 50년 된 노량진수산시장, 평생을 일군 집과 가게를 철거당한 철거민, 동자동 쪽방주민과 홈리스, 시설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장애인, 모두 국가가 폐기처분했다”며 “국가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인간의 쓸모를 규정한다. 이런 사회에서 절대 잊히지 말자. 우리의 모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잊히지 않는 투쟁을 하자”고 강조했다.

이들은 결의대회 후 청계천에서 서울시청을 거쳐 보신각까지 약 2km를 행진했다.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당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추모공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를 지낼 예정이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빈곤 철폐’라고 적힌 커다란 빨간색 공을 이리저리 굴리다 바로 차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하민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스크랩] 비마이너 / 하민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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