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정녕 도시에서 소외된 뒷방이란 말인가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 낙원동 전경(1983) 공원을 빙 둘러 "J"형상으로 들어선 상업시설(파고다아케이드)과 종로 대로변에 선 건물이 보임. 주변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c 서울역사박물관

이곳에 서면 도도한 시간의 흐름이 날로 전해 온다. 허허로운 일상을 보내는 노년 세대가 점유한 공간은, 마치 뒷물에 밀려 하구에 다다른 강물처럼 보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이 풍경 속 출연자는 분명 우리로 대체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 낼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소비하는 도시공간이 이채롭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한 시점에 멈춰 서버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한 세대 전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도시에서 지대(地代) 지불 능력은 소비행태 및 구매력이 결정한다. 따라서 지대가 구획한 공간조직은 세대별 특성을 부각시키려는 경향성을 띤다. 전유 공간 형성이다. 이런 공간은 반드시 배타성을 갖게 되며, 이는 한 공간에 형성된 그 세대의 문화와 공간소비 행태로 치환되어 유기체적 흐름으로 변화한다.

 

 

▲ 송해길 북단;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바라 본 송해길. 7월 폭염에 거리가 낮잠을 자는 듯하다.ⓒ 이영천

홍대 앞이 20∼30대 공간이듯, 이곳도 시니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탑골공원을 위시한 낙원동 일대 '송해길'이라 명명한 곳에 형성된 특이한 공간조직이다. 일종의 '환원 공간'인 셈이다.

노년이 채운 공간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터부시했다. 이들 사이에도 욕망이 작동하는 엄연한 하나의 '사회'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자꾸 밀쳐내려 했다. 또한 이 공간을 타자화하며 지우려 했다. 집단으로 모인 이들 행태를 곁눈으로 흘겨보며 비난하기 바빴다.

이렇듯 이곳은 소외된 도시의 '외딴방이거나 뒷방' 취급을 받아 왔다. 월드컵 개최를 빌미로 서울시는 운현궁 맞은편에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지어 이들을 수용할 의지를 내보인다. 명분은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이었다.

 

 

▲ 서울노인복지센터 운현궁 맞은 편에 21세기 초 들어선 노인복지기관. 탑골공원 노인을 수용하려는 의도였으나, 명백한 한계를 보임.ⓒ 이영천

물론 서울노인복지센터 프로그램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무척 훌륭하다. 식생활에서부터 건강, 취미, 교육은 물론 취업 알선까지 이 시대 노인들이 당면한 제 분야를 망라한다.

그러함에도 탑골공원에서 밀려난 노인들이 종묘공원으로 자리를 바꿔, 하루 2∼3천 명씩 모여들었던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이들을 관리와 통제대상으로 상정하고 일정 공간에 '가두어' 두려 한 서투른 행정이, 시작부터 이미 절반은 실패한 건 아니었을까?

이제 탑골공원이건 종묘공원이건 수천이 군집하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두 공원이 갈 곳 잃은 그 많던 노인들을 어디론가 다시 쫓아버린 셈이다. 그러나 두 공원 주변엔 적잖은 수의 노인들이 지금도 모여들고 있다.

설 자리가 없는 노년

노인은 누구이며,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딱히 법이나 제도로 규정되어 있진 않으나 '반강제로 경제활동을 끝내야만 하는 연령대'로 규정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다니던 직장을 내 뜻과 무관하게 그만두어야만 하는, 정년을 맞이하는 시점으로 간주하는 게 사회통념이다. 생물학적 노쇠는 물론 생리적, 심리적으로 급격한 퇴화가 밀려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다.

 

▲ 일상풍경 낙원상가 왼쪽 전면, 탑골공원 북쪽 빈터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풍경.ⓒ 이영천

 현재 구백만 명인 노인 인구가, 2032년 천사백만 명으로 예측된다. 급격한 노령사회로의 진입이다. 대중교통 이용요금이 면제된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얄팍한 연금에 의존하는 전혀 다른 세계로 생활행태 천이가 강제된다. 노인 빈곤이다. 불과 1백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락이 펼쳐진 것이다.

노인이 핵심이던 대가족체제가 산업화 이후 급격히 해체되고, 그 자리를 핵가족화한 도시형 가구 구성이 차지했다. 이는 노인의 권위와 경륜은 물론 안락한 노후마저 보장해 주지 못했다. 노환이나 병이 찾아들면 요양원이나 병원에 갇혀 자식이 부담하는 화폐 단위에,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여생을 저당 잡혀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잉여 존재로의 전락이다.

이 길에서 누군들 예외이겠는가? 강의 뒷물은 항상 앞 물을 밀어낸다. 지금의 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세대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묻는다. 그대는 효용가치가 영원한 존재로 살아남을 것이라 자부하는가?

그래도 작동하는 공간조직

이곳 노인들은 대체로 이중의 존재 의식에 사로잡혀있다. 물리적 신체나이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된 상황을 심리적으로 거부한다. 이곳에 나와 있어도, 스스로는 철저히 '관찰자'라 여긴다.

빈한한 경제 능력에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과거를 살아낸 시간에 의식의 끈을 묶어 두고 있다. 열정적이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현재 시공간에 끊임없이 투영시킨다. 분명 현실과 괴리된 몽상임에도, 이런 의식이 이곳을 노인 전유 공간으로 변화시킨 힘이라 여겨진다.

이곳은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나이 듦'은 속도와 반대개념이다. 따라서 이 공간도 사라질 위험성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그러함에도 이곳에 작동하는 나름의 법칙이, 이 공간을 지켜줄 최후 보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구매력한계에 따른 지대 때문이다. 지대가 배타적 노인 전유 공간으로 살아남게 한 핵심 요소다.


▲ 허리우드클래식 실버 전용 영화관으로 이용료가 저렴하며, 낙원동 일대 노인 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이영천

음식값이 무척 저렴하다. 20세기 말에 형성된 가격대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무료급식에 의존하기 싫은, 최소 지불 의사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인이 주로 이용한다. 이발소가 그렇고 목욕탕이 그러하며 아주 값싼 커피값이 또한 그렇다. 술집과 간이주점이 그렇고, 패스트푸드 주 고객마저 이들이다. 낙원상가에 있는 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 '실버 전용'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대표적 본보기다.


탑골공원 북측 빈터에선 바둑과 장기 대결이 일상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경운동, 봉익동, 돈의동과 피맛골 등지 골목을 소비하는 걸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공간조직은 여전히 살아 퍼덕이고 있다. 속도와 무관하게 지나간 젊음을 회상하며 느리게 변해가는 철저한 '환원 공간'으로 생존해있다.

 

▲ 공터 간이주점 탑골공원 동측 담장과 송해길 사이에 형성된 간이주점. 잔술을 팔고 있으며, 대낮임에도 이용자가 상당수다.ⓒ 이영천

외부자 시선에 포착된 몇몇 스틸컷은, 이 공간이 오히려 넘쳐나는 활기를 버겁게 껴안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직도 숨 쉬며 살아있는 존재라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지를 이들은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온갖 욕망을 이 공간에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다. 모두 한때는 찬란한 시절을 구가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잉여 존재로 밀려난 '노인'들이 점유·소비하는 장소기억이다.

'송해길'이 가진 힘으로

지난 6월 방송인 '송해'씨가 타계했다. 1985년 낙원동에 자리한 '원로연예인상록회'가 사랑방 역할을 맡게 되면서, 고인은 이곳 주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낙원동 일대에서 일상생활을 펼쳐나간다.

 

▲ 송해길 상징 최근 타계한 송해 씨 흉상과, 그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는 종로3가역 5번출구 송해길 상징 장소.ⓒ 이영천

이곳을 활성화하려는 그의 여러 봉사와 노력이 주민들 지지를 얻게 되었고, 주민들 요청으로 명예도로명인 '송해길'이 2016년 탄생하였다. 수표로 북쪽 끝 240m 구간으로 종로2가에서 종로3가역 5번 출구까지다. 이곳이 아슬아슬한 노년의 삶을 보듬어 주며, 이들을 젊은 시절로 환류시켜주는 공간이다.

공간조직은 대체로 소탈하고 허름하며, 좁은 골목마다 점포가 상당수다. 꼭 노년만을 위한 점포들도 아니다. 젊은 세대도 얼마든지 이용할 넉넉한 품을 갖췄다.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스레 지혜와 경륜을 엿보고 익힌다면, 지금보다 더 너른 품의 '어른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 송해길 남측 초입 종로에서 송해길로 드는 초입. 보도에 문을 세워 명명한 길을 표현하고 있으며, 오른쪽 붉은 집이 시인 박인환이 운영했던 "마리서사" 서점 자리.ⓒ 이영천

자본과 도시 권력의 촉수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곳 역시 개발 압력이 상당하다.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낙원상가가 한때 존폐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송해길'은 지역주민들 힘으로 탄생하였다. 모두가 공존하자는 지혜가 담긴 제안이었고, 한 대중문화예술인의 삶과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송해길이 무자비한 자본의 개발 압력으로부터, 이 공간조직을 든든히 지켜내는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 시민기자 이영천

인사동은 젊은이 천국이지만, 길만 건너면 늙은이 낙원이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낙원동이다.

 

그 곳은 사회와 가정에서 퇴출 당한 늙은이들 아지트다.

평생 몸 바쳐 돈만 벌며 살았으니, 놀 줄도 모른다.

 

식구들 눈치 보여 별 볼일 없이 지하철 탄다.

공짜 전철로 어디든 못 가겠나마는, 맘 편히 소일 할 수 있는 곳은 탑골공원 뿐이다.

 

탑골공원 담장에는 장기판이 줄을 섰고, 골목에는 대폿집과 국밥집이 줄지었다.

장기판에 훈수 들다 목노주점에서 시간 죽인다.

 

국밥 한 그릇에 추억을 되 세기고, 탁배기 한 사발에 왕년의 무용담이 쏟아진다.

 

그들은 우리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 아니던가?

한 때는 월남전에서 피 흘렸고, 독재정권과 싸운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늙은이 대부분이 꼴통 보수라는 점이다.

그토록 보수정권을 지지했으나, 늙은이 복지는 항상 찬밥 신세다.

 

'거리두기로 공원 문이 닫혀도 장기판은 돌아 간다성북동 김씨가 하소연 한다.

 

마누라한테 밥 얻어먹는 것도 눈치 보여요.

돈 없고 힘 없으니, 벌레 취급받기 싫어 나오지요,

해장국 삼천원에다 소주 삼천원, 하루 만원이면 찍 싸요.“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단다.

덧없는 세월 속에 인생 무상을 체감한다.

 

허리우드에 걸린 영화 간판처럼, 모든 건 바람과 함께 사라질 뿐이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 길 건너에 자리한 낙원동은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의 안식처다.

그러나 오 갈 때 없는 노인들의 도피처에 다름 아니다.

 

이곳에서는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이발도 할 수 있고 헌책도 살 수 있다.

따뜻한 국밥으로 허기를 메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그리고 대포 한 잔으로 시름도 풀 수 있는 곳이 바로 낙원동이다.

 

소뼈와 우거지로 밤 세워 끓여낸 국밥 한 그릇이 2천 원이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에다 이발도 염색도 5천 원이면 충분하고,

맥주 컵에 따라 주는 천원의 잔술 한 잔에 하루가 지나간다.

 

서쪽의 인사동과 북쪽의 익선동, 남쪽의 종로에 비해

낙원동은 제반 시설이 낙후된 데다 노인이 많아서 인지,

길 하나 사이에 가게 임대료조차 세배나 차이 난다.

 

낙원상가 지하에는 청국장으로 유명한 ‘일미식당’도 있고 ‘맛국수’와 ‘엄마김밥’도 있다.

탑골공원 북문 쪽으로는 ‘유진식당’ 등 싸고 맛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지난6일, 인사동에서 낙원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 밑에 자리잡은 ‘다리 밑 집’에서 길만 건너면 낙원동이다.

탑골공원 북문 쪽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기판 하나에 훈수꾼은 여러 명 붙어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아! 씨발, 마가 왼쪽으로 갔으면 막을 수 있었잖아!"고

투덜거리자 구경꾼들이 모두 웃었다. 다들 처음 만났지만, 이내 친해졌다.

인천에서 왔다는 서씨는 "아는 사람 없어도 그냥 와서 이야기하다보면 친해진다"고 한다.

장기 두는 사람도 훈수 두는 사람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게 전과 달라졌을 뿐이다.

이곳은 사회적 격리도 통하지 않는 노인들의 천국이다.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는 노인들이 늘어난 것은

무료 급식도 있지만, 파격적으로 싼 식당이나 이발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현궁 맞은편에 있는 노인복지센터와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영화관 등

노인들 시간 보낼 곳이 몰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노인들에게 몸 파는 '박카스 아줌마'들이 종묘 쪽으로 옮겼다.

“나랑 연애한번 할래요? 잘해 드릴게”라며 박카스를 내미는 장면은

이제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볼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늙어감에 따라 찾아오는 죽음을 막을 수야 없지만,

노년의 가난함과 외로움, 그리고 노인의 성 문제 등 사회가 터부시하는

여러 요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박카스 아줌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애잔하면서도 불편한 존재가 노인들이다.

어쩌다 나이 드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고통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가족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돈벌이에 급급하다 

미처 재미있게 사는 '놀이'조차 배우지 못한 것이다.

몰입할 놀이도 없는 남자들에게 불어난 잉여시간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노인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거쳐야 할 인생행로다.

낙원동이 노인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이름처럼 낙원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다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공원 주변엔 길 잃은 노숙자만 남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그들의 삶이 안타깝다.

 

사진, 글 / 조문호

 




낙원상가 계단 아래 자리 잡은 다리밑집은 다리 밑의 음습함이 정겹다.
테이블이라고는 두 개 뿐인 코 구멍만한 대폿집인데, 닭 똥집이 별미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좁은데서 부딪히는 사람냄새가 더 좋다.






지난 7일저녁 무렵, 편완식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인사동 찍사가 인사동에 안 있고 어딧냐?’는 것이다.
산토끼가 어디를 못 가겠냐마는, 동자동 쪽방에 살림 차린 걸 모르진 않을텐데...
연휴라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어 목구멍이 근질 근질하던 차에 반가운 기별이었다.
라면 끓이려 물을 올려놓았으나, 꺼버리고 나갔다. 


 



다리밑집에 들어가니 편완식기자와 건축가 김동주, 화가 이목을씨가 있었는데, 옆자리에 미모의 여인도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인데, 일전에 인사를 나누었다기에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틀니라고 끼고 나올 걸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통인’ 관우선생은 춥다며 옷 가지러 간 사람이 강원도 포수란다.
김동주씨가 설계한 강화도의 ‘통인미술관’ 준공검사가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날의 화제는 단연 미투였다.






화가 이목을씨가 국회의사당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미투에 휘말려 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에게 수제 명함을 주기위해 성향을 물은 것이 화근이란다.
명함에 그림 그리려, ‘굵은 것을 좋아하냐? 가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단다.
펜그림 굵기를 물었으나, 그 여인은 요상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다들 한바탕 웃고 넘겼으나, 편완식기자가 말을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있던 최효준씨가 당한 황당한 이야기였다.

부하 직원인 큐레이터에게 보낸 동영상이 문제가 되었는데,
작업에 상상력을 주려 보낸 동영상이 미투의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찌, 웃기 위해 농담도 못하는 이런 살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집에서는 마누라 한테 엎어지고, 밖에선 입도 벙긋 못하는 남자 수난시대다.




 


농담 잘하기로 소문 난 나는 왜 시비 거는 여인이 없는건가?
사람 차별한다며 투덜거렸더니, 돈도 권력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란다.
그 날도 전시 기획하는 미모의 여인에게 진한 농담을 했으나,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주둥이만 살아있는 능력 없는 사내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구 서러버라! 사내 취급도 못 받을 바에야 차라리 잘라 버릴까보다.


'




역시, 술타령은 미투가 최고더라!



사진, 글 / 조문호
















낙원상가가 가른 어르신들의 하루



조선일보 / 스크랩 

  • 이영빈 기자


  • 서울 종로 낙원상가 서쪽에는 인사동, 동쪽에는 탑골공원이 있다. 두 구역을 각각 '낙서' '낙동'이라 부른다. 지난 9일 오후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낙서파 노인 8명이 음식을 앞에 두고 건배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시각 낙동파 노인들은 낙원상가 8번 출구 계단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장기를 두고 있다(오른쪽 사진).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종로에는 두 개의 '낙원(樂園)'이 있다. 지갑이 얇은 노인은 탑골공원으로, 행색이 좋은 노인은 인사동으로 간다. 이 일대 3000㎡(약 907평)는 낙원상가를 중심으로 동서로 갈린다. 편의상 낙원상가 동쪽을 '낙동', 낙원상가 서쪽을 '낙서'라 부르자. 두 구역은 모이는 사람부터 거리 풍경, 먹을거리와 놀거리, 소음과 냄새까지 판이하다. 형편이 좋든 나쁘든 노인에게는 낙원이다. 두 모습을 나흘에 걸쳐 관찰했다.

    낙동파 vs 낙서파

    지난 9일 오후 7시 탑골공원 근처 포장마차. 의자는 없다. 주인의 앞, 양옆에 'ㄷ'자 모양으로 탁자가 있다. 손님은 선 채로 술과 안주를 먹는다. 가오리 초고추장 무침, 삶은 꼬막 등을 5000원 안팎에 판다. 꼬막을 주문한 할아버지가 "요즘 안주가 영 부실하다"고 불평하자 주인이 대꾸했다. "잔술 서비스 먹으려면 입 다물어!"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빨간 소주'를 종이컵에 8부쯤 담아주는 잔술은 1000원짜리다.

    한 할아버지가 기자에게 "젊은 친구가 어쩐 일이냐"며 말을 걸어왔다. 인천 서구에 사는 강금성(71) 할아버지. 지하철 1호선으로 곧장 올 수 있기 때문에 편하다고 했다. 젊은 시절 항구를 드나드는 배에서 물건을 옮기는 등 힘쓰는 일을 주로 했다는 그는 "여기서 소리 내 웃고 떠들다 보면 옛날처럼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했다.

    강 할아버지는 '낙동파'가 된 지 15년째다. 탑골공원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사회와 정치를 논한다. 대화 상대가 떠나면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간다. "모르는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게 이곳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가 이날 밤 쓴 돈은 도합 1만원이다.

    '낙서파'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6일 오후 4시 인사동의 한 찻집. 회색 롱코트에 와인색 목도리를 두르고 검은 중절모를 쓴 권명현(73) 할아버지가 들어섰다. "언제 오셨나?" 찻집 안 3명과 인사를 나눈다. 테이블에 오미자차, 생강차, 쌍화탕 2잔에 가래떡구이가 놓여 있다. 차를 마시던 한 할아버지가 "안동 문중에서는 권씨가 최고 아닌가?" 운을 띄운다. "유성룡의 유씨를 빼면 섭섭하지" "김씨를 빼면 우리나라 역사를 논할 수 없다"로 대화가 흘러간다.

    이들은 오후 7시 고급 민속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1인당 약 5만원의 코스와 2만원 상당의 전통주가 상에 놓였다. 술잔을 부딪치며 축하의 말이 오갔다. 한 할아버지의 손자가 내과 병원을 개업했기 때문이다. "손주가 준 용돈으로 내가 사겠다"고 하자 박수가 터졌다. "내가 청와대에 있을 때 정세균이를 자주 봤는데, TV보다 훨씬 인상이 좋다"는 등 왕년에 '한가락' 했다는 무용담이 이어졌다.

    권 할아버지는 경기 군포시에 살지만 10년째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인사동을 찾는다. 합판 등을 유통하던 개인 사업에서 은퇴하고, 시(詩)에 관심을 가지며 자주 드나들게 됐다. 그는 "인사동은 조선왕조 시절부터 예술의 거리였기 때문에 나 같은 시인에게는 더 의미 있다"고 했다.

    물가는 천지 차이, 행복감은 비슷해

    탑골공원 동쪽 담장을 따라 해장국집과 포장마차 20여 곳이 늘어서 있다. 8일 오후에 가보니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2000원 하는 시래기 해장국이나 황태 해장국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다. 낙동의 해장국은 다른 7000~8000원짜리 국밥보다 국물이 묽고 건더기가 적다. 그래도 공깃밥은 한가득 담아준다.

    이들은 주로 두꺼운 무채색 패딩 재킷에 귀까지 내려오는 '군밤장수 모자'를 썼다. 이제 무엇을 할 예정인지 묻자 "그냥 있다" "별생각 없다"고 했다. 그 자리에 서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다. 이날의 주제는 차기 대선 후보였다. "오세훈이 슬슬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하면 "아직은 시기상조니 조금 더 몸을 사릴 것"이라고 전망하는 식이었다.

    낙원상가 8번 출구 계단 앞에 있는 장기판 4개에도 노인들이 북적였다. 영하의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기판 하나에 훈수꾼이 5~10명이 붙어 있다. 한 할아버지가 "아 XX, 방금 마(馬)가 왼쪽으로 갔으면 장군 막을 수 있었잖아!"고 하자 구경꾼들이 모두 웃었다. 모두 이날 서로 처음 본 사이라고 한다. 박오윤(64)씨는 "아는 사람이 없어도 그냥 와서 이야기하고 담배를 피우면 친해진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낙서 거리에는 노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찻집이나 식당에서 모임을 갖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인사동의 한 찻집에는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향해 "너무 좋은 밥을 먹어서 그런지 차도 맛있는 거 같아"라며 미소 지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코트의 보풀을 떼며 "다음에는 내가 자주 가는 솥밥집에 가자"고 했다. 각자 배우자와 사별하고 소개로 만난 사이라고 한다.

    고급 한정식집 방 안에서는 60~70대 할아버지 5명이 자작시 낭송에 여념이 없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시 낭송회로 6년째를 맞았단다. 가장 잘 쓴 시를 뽑는 순서도 있다. 이날 수상작은 양모(72) 할아버지의 '화무십일홍'. '희푸른 갈매기에게/ 우리의 추억을 보낸다'라는 구절을 읽고서 탄식을 내질러 호응을 얻었다.

    낙동과 낙서는 노인이 쓰는 돈도 하늘과 땅 차이다. 인사동은 방문할 때마다 10만원가량 지출이 생긴다. 찻집에서 만나 차와 다과를 먹으면 1만원이 조금 넘고 저녁으로 술을 곁들여 7만~8만원짜리 식사를 한다. 낙동은 1만원이면 충분하다. 탑골공원 근처 가게들의 국밥 가격은 대체로 2000~3000원. 소주와 막걸리도 2000원이다.


    두개의 '낙원'


    '낙원' 사라질까 두렵다

    서울은 물론 멀리 경기 평택·수원·인천의 노인들도 낙원상가 일대를 찾아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노인문화지구다. 20년 넘게 탑골공원에서 황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김모(72) 사장은 "전국에서 노인들이 찾아온다. 멀리 전남 여수에서도 온다"고 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친구를 만나러 인사동에 왔다는 구갑회(64)씨는 "노인을 위한 거대 상권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종로3가 근처 돈의동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은 매달 20일 기초연금(약 26만원)이 나오면 낙동의 값싼 먹거리로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입금되는 오후 4시쯤 포장마차촌에 연금 수급자가 몰린다. 21년째 쪽방촌에 사는 고민영(60)씨는 "7000~8000원 하는 식사는 부담되지만 5000원하는 안주에 잔술 정도는 한 달에 한 번 쏠 수 있다"며 "무료 급식과 자선 단체에 의지하는 우리에겐 한 달에 한 번 허락되는 사치"라고 했다.

    노인들은 "최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우리가 갈 곳을 잃는 것 아닌가"라며 걱정하고 있다. 종로구 익선동이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낙원상가 쪽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5년째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노모(49)씨는 "젊은 친구들이 늘다 보면 거대 기업이 들어서지 않겠 느냐"면서 "그때는 우리가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인에게 성(性)을 파는 '박카스 아줌마'도 최근에는 뜸해졌다고 한다. 박카스 아줌마를 종종 불렀다던 한 할아버지는 "연락해도 받지 않고 다른 아줌마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탑골공원 서쪽 담벼락에서 만난 60대 박카스 아줌마는 "이쪽은 젊은 사람들이 늘어 종묘공원으로 많이들 이동했다"고 전했다.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여기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000원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야. 해장국 한그릇이 2000원이고, 공짜 커피 나오지. 머리를 자르고 싶어도 3500원이면 되니까. 나 같이 한 푼이 아쉬운 노인네들이 이쪽으로 흘러들어오는 이유가 있어.”

    지난 26일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 손님이 가장 몰린다는 종로구 낙원동 ‘소문난 해장국’집에서 만난 김호식(가명ㆍ74) 씨의 말이다. 둥그런 나무 테이블에 기자와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던 그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국물을 들이켰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교회서 밥을 먹는 일요일을 빼면 늘 탑골공원에 출근(?)해 한나절 소일한다는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여기서 점심을 해결한다고 했다.

     

     

    수십년간 서민과 함께 한 낙원동 일대의 식당가. 박리다매를 추구하지만, 언제나 얇은 서민들의 지갑을 의식하는 정다운 곳이다. 그래서 2000원 짜리 국밥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일부 고객들은 싼값도 싼값이지만, 추억을 찾아 낙원동 일대 골목을 누비곤 한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같은 날 오후 네 시 반쯤. 가게 앞에 주차된 택시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택시 앞에 달린 노란 번호판은 나무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6m 앞에는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CCTV가 서 있었다.

    이 택시를 몰고 온 박인철(64) 씨는 “딱지 떼는 거 피하려고 세워둔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7년 전부터 이 가게를 드나들고 있다. 그는 강남 삼성역에서 젊은 중국인 관광객 둘을 태워서 종로 체부동에 내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종로에 손님 내려줄 일 있으면 한 번씩 들르죠. 싸고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가게 종업원이 차도 봐주니까 좋네요”라고 했다.

    낙원동은 전형적으로 싸게 많이 파는 ‘박리다매’ 상권이다. 낙원 악기상가 주변엔 낙원동 2000원짜리 해장국을 비롯해, 4000원짜리 순대국밥집이 성업 중이다. 3500원만으로 이발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대개 적게는 7~8년에서 많게는 수십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들이다.

     

    낙원동 터줏대감 격인 ‘소문난 해장국’ 집과 바글바글한 손님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롱런’ 원동력은 수십년 쌓인 단골들=‘다매’를 가능케 하는 배경은 뭐니뭐니해도 두터운 수요층이다. 수십 년간 낙원동의 식당을 거쳐 간 사람들이 다시 찾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데려오면서 하나의 거대한 ‘수요 풀(pool)’이 형성된 것이다. 개별 손님들은 가끔씩 들르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매일 수백명이 이곳 식당을 찾는 셈이다.

    낙원상가 바로 옆에서 25년 넘게 순대국밥집을 꾸려온 서숙녀(78) 사장은 “육개장 1000원, 순대국밥 500원에 팔던 시절이었는데 인심 많이 써가면서 장사했다”며 “그때 여기서 공짜밥 얻어먹고 갔던 학생들이 점차 커가면서 취업했다고 자랑하고, 결혼한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다 봐왔다”고 했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도 빼놓을 수 없는 주고객층이다. 가게 주변은 해장국 한그릇을 비우고 나온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더구나 이곳 식당들은 대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일 없이 문을 연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20대 젊은이들도 이따금 찾는다. 주변 영어학원이나, 고시학원에 다니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수민(27) 씨는 “학원에서 가까운 인사동이나 종각역에서 점심을 먹으면 보통 6000~7000원을 써야하는데 (낙원동은)가격적인 면에서 일단 매력적”이라며 “친구들마다 호불호는 갈리는데 뭐든 잘 먹는 친구들끼리 자주 온다”고 했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2000원 국밥 체험기’ 등의 제목으로 글이 퍼지면서 ‘체험’을 위해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종종 있다.

    ▶부대비용과 임대료는 저저익선(低低益善)=‘많이 파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게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메뉴를 너무 벌리지 않고 한두가지만 최소한으로 유지하면, 재료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 쓸데없이 낭비되는 식재료가 줄기 때문이다.

    소문난 해장국집의 권영희(69) 사장이 수십년째 해장국 한가지만 만들어 파는 이유다. 그는 “‘술 안주를 만들어 팔아봐라’, ‘선지를 넣어서 끓여봐라’ 하면서 한마디씩 하는 손님들이 많지만 결국은 해장국만 고수하고 있는 것도 그래야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가스 대신 연탄불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3500원에 머리를 자를 수 있는 탑골공원 근처의 이발소들은 물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아직도 연탄불을 쓴다. 일부 식당에서도 조리하는 과정에서 연탄과 가스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점포 임대료가 종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도 5000원도 안되는 밥값의 비결이다.

    돈의동 S부동산 대표는 “낙원동 일대 1층에 들어선 33㎡ 내외의 가게 자리는 월세가 100만~120만원 수준이다. 몇 년 새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낙원동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펼쳐지는 인사동의 점포 임대료가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으면 800만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도 채 안되는 수준이다.

     

    소문난 해장국 집의 2000원짜리 국밥 메뉴.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종로 다 뜨는데…낙원동만 섬처럼 남아=낙원동에서 20년간 부동산을 해왔다는 구본고 현대부동산 대표는 “부동산에 가끔 점포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거의 안된다. 4~6평짜리도 1년에 한번 거래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거래가 활발하면 덩달아 임대료 수준도 오르기 마련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정체돼 있다는 설명이다.

    강태욱 하나은행 부동산팀장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종로 일부 지역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상전벽해 했으나 탑골공원 담벼락 바깥에 밀집한 식당의 풍경은 수십년전과 그대로”라며 “투자 수요가 많고 거래가 많았다면 땅값이 오르고 임대료도 올랐을 것인데, 낙원동은 그런 분위기에서 비껴갔으니 식당들도 과거와 비슷한 가격에 장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설을 하루 앞 둔 오후 2시 낙원동 떡전골목. ‘대한민국 떡집 1번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거리는 한산했다.

    사진=이원광 기자

     

    3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떡전골목. 한때 대한민국 떡집 1번지로 '명절에 횡단보도까지 줄을 섰다'는 골목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번화한 떡집을 상상했다면 길을 잘못 든 줄 착각할 정도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지만 눈에 띄는 떡집은 9곳 정도였다.

    조선 말기 나라가 어려워지며 궁중을 나온 상궁과 나인들이 떡 장사를 시작한 곳. 떡전골목은 6·25전쟁 직후 배고픔을 달래던 피난민들이 떡을 사고 먹던 장소였다. 그러나 한 때 50여 곳이 넘었던 떡집은 급증한 빵 소비와 기계식 떡의 보편화로 20년 전부터 점차 자취를 감췄다.

    ◇기대보다 시름이 커진 명절 대목

    줄어든 떡집 수만큼 상인들에게 명절은 '대목'이 아니라 '시름'이 됐다. 15살부터 50여년간 골목을 지켜온 평양떡집 사장 이모씨(67)는 "내년에는 설에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30년 전 설날에는 가마니에 쌀과 섞여 있는 '뉘(탈곡이 덜 된 쌀)'만 모아서 떡을 만들어도 한 판을 칠 정도였다"며 "이젠 어제도, 오늘도 아침부터 넋 놓고 앉아 있을 뿐"이라고 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 온 90년 전통의 낙원떡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인과 함께 낙원떡집을 운영하는 사장 김정귀씨(73)는 "설 매출이 작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IMF시절에는 경기 탓에 매출이 줄었었는데 이제는 떡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떡전골목의 쇠퇴는 기계식 떡의 보편화와 떡의 맛보단 모양을 추구하는 세태에도 이유가 있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말이다. 김씨는 송편부터 꿀떡, 영양떡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기계로 만들어지는 것을 두고 "기계로 뽑은 떡이 맛의 평준화를 이끌었다"며 "떡 맛을 찾아 낙원동을 찾는 것은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평양떡집의 김모씨(66·여)는 "강남의 한 품평회에 간 적이 있는데 떡 맛도, 체리 맛도, 빵맛도 아닌 '쌀덩어리'를 먹은 기분이었다"며 "인사동과 강남 떡은 작고 예뻐 인기지만 옛 맛이 사라져 '눈으로만' 먹는 떡이 됐다"고 꼬집었다.


    오후 4시 낙원동 떡전골목.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낙원동 떡전골목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사진=이원광 기자

     

    ◇그래도 자리 지키는 상인들 "전통 지켜나가야"

    떡 상인들은 고유의 떡 문화가 점차 사라진다는 점을 가장 아쉬워했다. 김씨는 "40년 동안 일하며 전통떡으로 만들었던 가진편과 쌍계피 등을 찾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씁쓸해 했다. 가진편은 꿀편, 백편 등의 떡 한편에 공양 한층을 쌓고 종이를 놓는 방식을 반복해 만드는 떡이고 쌍계피는 계피떡을 2개 붙이는 떡이다.

    김씨는 전통 떡을 찾지 않는 문화를 두고 "떡을 전통문화로 인식하는 풍토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 살린다고 나오는 말이 인사동이지만 인사동 떡들은 다 기계떡"이라고 지적했다.

    골목에 남은 상인들은 그러나 떡집만큼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떡집을 30년 넘게 운영해 온 선일떡집 사장 김경화씨(57·여)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열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떡집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은 떡집을 합쳐 커피숍만 운영하거나 떡 카페를 차리라고 권유하지만 나에게 떡집은 '자부심'"이라며 "떡 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전통을 다 없애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빅시리즈③ 세상에서 가장 싸지만 푸짐한 '낙원동 먹자골목'

     

     

     

     

     

     

     

     

     

     

     

     

     

     

     

     

     

     

     

     

     

     

     

     

     

     

     

     

     

     

     

     

     

     

     

     

     

     

     

     

     

     

     

    입동을 사흘 앞둔 4일 서울 종로구의 파고다 공원 주변 음식점 '부자촌'에서 한 할아버지가 3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드신다. 기자의 표정을 보고는 "거참, 그런 안쓰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하고 꾸짖어 주신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 "정말 맛있어, 기자도 한번 먹어볼래?"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순두부찌개 2000원. 콩나물해장국 2000원. 돼지국밥 3000원.

    대한민국에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가게가 즐비한 곳이 바로 이곳 낙원동입니다. 일명 '먹자골목'으로 통하는 종로 파고다공원 뒤편이죠. 가게마다 1980년대 후반쯤에 멈춘 듯한 정경은 낯설면서도 낯이 익습니다. 이곳에 오면 저렴한 가격표에 한 번 놀라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할아버지들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이곳에서 3년째 국밥과 해장국을 2000원에 파는 한 식당주인은 "어르신들 상대로 장사하는데 비싸게 받을 순 없지 않느냐"며 "그나마 가격 부담이 없어서 단골손님은 꽤 있다"고 전했습니다. "월세랑 인건비 빼면 남는 게 뭐 있나. 그분들 주머니 사정 뻔히 아는데. 찾아주는 어르신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장사하는 거지" 식당 주인의 말에 사람 냄새가 가득 배어있습니다.

    근처 다른 식당들도 한 끼 식사가 3000원이 넘는 곳을 찾기 힘듭니다. 점심시간 식당 안에는 플라스틱 테이블마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할아버지들이 모여 밥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무리의 동년배들과 밥을 먹던 박정수(73) 할아버지는 "암으로 고생하던 마누라가 4년 전에 세상을 뜨고 나니 막막하더라고. 한동안은 집에서 멍하니 있는 게 전부였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취미로 바둑을 해보려고 종로에 오기 시작했어. 여기서 싸게 이발도 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자주 들러"라고 입을 뗍니다. 학교 동창이나 동향 사람들끼리 모이는 장소로도 낙원동이 제격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근 식당 간판이 '강원도집', '전주집', '충청도집' 등으로 다들 지역명을 쓰면서 할아버지들의 향수를 달래고 있네요.

    옆에서 홀로 국밥을 먹던 장모(78) 할아버지는 주인이 유리잔 가득 담아준 '잔술'을 두툼한 손으로 쥐고 한 모금씩 아껴 마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한 병 시킬 순 없잖여. 양도 이게 딱 맞지"라는군요. 이렇게 소주나 막걸리를 우리가 흔하게 보는 맥주컵 하나에 가득 담아 단돈 1000원에 파는 잔술도 낙원동에서 볼 수 있는 '명물'입니다.

    명실공히 낙원동 대표 장수 식당인 '유진식당'은 할아버지들의 단골메뉴인 설렁탕, 돼지국밥을 수년째 3000원에 묶어 두고 있습니다. 3대째 이어 온 이 집은 1960년대 후반 인사동에서 국밥장사를 하던 할머니부터 아버지에 이어 지금은 사남매 중 삼남매가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아버지 문용춘(87)씨가 세상을 떴을 때도 삼남매는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다음 날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막내 종현(43)씨는 "오랜만에 들른 단골손님들이 아버지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슬퍼하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식당 벽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아버지 사진을 걸어 놓고 손님들이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종현씨는 "단골손님이던 아저씨가 아들을 데리고 오곤 했었는데, 이젠 세월이 흘러 손자까지 같이 오더라"고 전합니다.

    그는 "어르신들이 '아들아', '막내야'라고 부르며 친아들처럼 살갑게 대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라며 "자주 오시던 어르신의 발길이 오랫동안 끊기면 '아, 돌아가셨구나'하고 짐작하곤 슬퍼질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막내아들'의 마음을 아시는지, 돼지국밥에 반주로 막걸리 한 잔을 걸쳐 얼굴이 발그레해진 한 할아버지가 종현씨를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식당을 나섰습니다.


     


    '유진식당' 위쪽으로 난 좁은 길을 몇 발짝 걸으면 15년 전통의 '고향집'이 나옵니다. 순두부찌개,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한 그릇 가격이 이곳에선 '무려' 2000원입니다. 할아버지들 틈을 비집고 앉아 순두부찌개를 맛봤습니다. 맑은 국물에 순두부가 두 덩이, 그 위에 계란을 톡 깨뜨려 풀고 김 몇 조각을 찢어 올린 게 전부지만 담백하니 먹을 만합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와 함께 뚝딱 한 끼를 해치웠습니다.

    그때쯤 혼자 식당 안에 들어선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떠먹던 백발의 할아버지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그를 한 번 쓱 올려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식사를 이어갑니다. 가끔은 이러다 서로 말동무가 되기도 한답니다. 혼자 밥을 먹는 노인들이 많은 낙원동 식당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입니다.

    손님과 주인은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습니다. 저녁 시간을 넘겨 식당에 들른 할아버지에게 주인은 "오늘은 늦게 나오셨네"라며 미소를 주고받습니다. 좀 전에 밥을 먹고 얼큰하게 취해 돌아온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여어~"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는 "조금만 드셔. 많이 드시면 안 돼"하며 어깨를 다독여 드립니다.

    근처에 불을 밝힌 선술집 포장마차에선 주인과 손님들이 일행처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왁자지껄합니다. 이곳의 안주인 김치찜, 생선구이가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나면 어르신들의 수다도 정점에 다다릅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저녁이 되자 일대는 정감과 활기가 넘쳐 흐릅니다. 유난히 이곳엔 동네이름에서 따온 '낙원'이라는 이름의 식당 간판이 많은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르신들을 정답게 품어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어쩐지 '낙원'의 모습과 닮아 보입니다.


    ◆할아버지들이 꼽은 낙원동 맛집


    "할아버지, 점심 드시러 자주 가는 집 어디에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파고다 나들이 10여년 경력의 '베테랑' 할아버지들의 입이 분주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이 일대에서 먹은 점심만 수백 그릇이 넘을 테니 그럴만합니다.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나서는 건 어르신들이 누리는 일상의 즐거움이자 한편으론 숙제이기도 합니다. 말로 설명해주는 건 부족했는지 소매를 끌고 손수 이곳저곳 데려다 주십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누비고 나니 어르신들의 '맛집'이라고 할 만한 10여곳이 추려지네요. 그 중 몇 군데를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들만큼이나 나이를 먹어 오랜 기간 손때가 묻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수련집·부산집
    낙원동 파고다 오피스텔 맞은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수련집'과 '부산집'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식당의 간격은 50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수련집'과 '부산집'의 대표 메뉴는 각각 가정집 백반과 동태백반. 가격은 3000원으로 똑같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소박하면서 정겨운 분위기를 지닌 두 식당의 음식은 '집밥'과 가장 가깝다는 점이 매력이다. '수련집'은 푸짐한 밥에 국, 여덟 가지 반찬이 소담하게 차려 나오고, '부산집'은 큼지막한 동태살과 얼큰한 국물이 밥맛을 돋운다. 미로 같은 길에 숨어 있는 두 식당은 이제 젊은이들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부자촌
    그동안 밀가루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파고다 공원 동문 근처에 있는 '부자촌'은 2000원대의 콩국수·냉면·짜장면 등 면요리의 가격을 10년간 단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부자촌'을 운영하는 전영길(66) 할아버지는 "단돈 500원도 크게 느끼는 손님들 때문에 차마 올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시내에서 한 끼 가격은 어르신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지만 여기선 그 돈이면 친구들한테 한 턱 거하게 낼 수도 있다"며 자랑을 했다. 요즘 전 할아버지는 손님들이 행여 추위를 타진 않을까 싶어 방한 작업에 여념이 없다. '부자촌'은 30여개가 넘는 다양한 식사와 안주가 특징. 최근에는 찜닭이나 전골 등 안주에 술 2병을 곁들인 1만원짜리 세트메뉴를 출시해 손님 모으기에 한창이다.
     

    팔도 지명 다 모인 순대국밥집
    낙원상가 옆 순대국밥 골목에는 '강원도집', '광주집', '전주집', '충청도집', '호남집' 등 전국 팔도의 지명이 다 있다. 처음 이곳에 국밥집 문을 열었던 주인들의 고향으로,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지금은 새 주인들이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하고 있다. 7년째 '전주집'만 고집한다는 이영옥(66) 할아버지는 이날도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비웠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주인 바뀌는 것도 다 봐왔지. 그래도 인연이라는 게 있으니까 난 여기만 와" 했다. 골목 초입에서 '허리우드식당'을 운영하는 배영애(67)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30여년간 작은 슈퍼를 하다가 1960년대 후반 극장이 생기고 나서 업종을 변경했다. 가게에는 몇 년 전 TV방송에 출연했던 그의 사진이 상장처럼 붙어있다. 낙원동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할머니의 얼굴은 그때보다 주름이 꽤 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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