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의 삶을 취재, 기록했던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다시 돌아본 한국’사진전이 지난13일부터 오는18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렸고, 19일부터는 “부산식당” 옆에 새롭게 개관한 ‘갤러리 안터’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이 일본의 화보 잡지인 태양특파원으로 한국에 왔을 당시인 60년대 사진이 주종을 이루었다. 한국을 찍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천 사진을 비롯하여 민주화 운동의 시위현장과 미군기지촌 여성 등 한국 사진가들이 방치한 우리 사회의 이면사를 깊숙이 기록하여, 사십 여년에 걸쳐 십 만장이 넘는 방대한 사진을 남겼다.

 

제일 눈길을 끄는 사진은 한쪽 전시벽면을 가득 메운 기지촌 주변에서 살아가는 속칭 양공주로 불리는 미군 위안부 사진이었다. 이 사진들은 본 지 오래되었지만, 보면 볼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치욕의 역사다.

위안부 문제는 고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일로, 당시 중국 채홍사를 통해 우리나라 처녀를 수천 명씩 데려갔다고 한다. 기력이 쇠진해져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환향녀라 불렀다는데, 그 말이 욕설로 쓰이는 화냥년으로 바뀐 것이다.

 

그 이후 2차 대전에 동원된 일본군위안부와 한국전쟁으로 파생된 미군위안부에 이르기 까지 전쟁마다 따라다닌 위안부 문제는 여성 최대의 잔혹사였다. 미군위안부를 양공주 또는 양갈보라 불렀던 소싯적에는 허영에 들떠 바람난 여자들로 알았다. 하이힐에 짙은 화장을 하고 껌을 짝짝 씹는 화류계 여성의 대명사로 각인된 건, 청년 시절 본 신상옥감독의 지옥화라는 양공주를 소재로 한 영화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전시된 미군기지촌 여성들을 살펴보니, 그 자책에 따른 부끄러움에 고개 들 수 없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지촌에 뛰어 들었거나 어쩔 수 없이 팔려 온 순박한 우리들의 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위안부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게 되었고, 그 가슴 아픈 실상에 치를 떨었다.

 

미군위안부는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성을 말하지만, 일종의 정신대나 다름없었다. 더 귀가 막힌 사실은 1951년 정부에서 한국군 위안소를 직접 운영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이 한국군 위안소는 국군과 유엔군 장병들이 이용하는 사창가였는데, 특수위안대, 5종 보급품으로 불렀다 한다. 그 당시 드럼통에 위안부를 한명씩 넣고 트럭에 실어 최전선까지 투입했다는 기록에는 할 말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들을 달러벌이, 애국자, 민간외교관으로 치켜세워, 62년 한 해 동안 2만 명 이상의 미군위안부가 65,000명의 미군을 상대했다. 65년과 80년 사이는 동두천에만 평균 2,900명의 미군위안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인권이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미군 천 명당 성병 발병자가 7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성병이 창궐하자 성 접촉자를 추적해 속칭 밍키하우스라 불리는 낙검자수용소에 완쾌될 때 까지 감금했는데, 약물을 과다 투여해 페니실린 쇼크로 사망한 환자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군에게 성폭행 살해된 사건을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해 용의자인 병사를 출국시켜 수사를 미궁에 빠트리기도 하고, 인신매매로 들어 온 소녀가 탈출해 파출소에 신고를 해도 경찰이 다시 그 곳으로 데려 주는 등,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도 득실거렸다.

 

그러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방관했던 것은 바로 돈 때문이었다. 1960년대의 기지촌 성매매 수입이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군 위안부가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청와대 관리가 정기적으로 기지촌에 가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모아놓고 국익을 위해 봉사함을 격려 했으며, 1973년에는 민관식 문교부 장관이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만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는 것이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정부 각 부처 차관들을 모아 기지촌 활성화 정책을 만든 것은 주한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함이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몸 파는 걸 수출까지 할 수 있는 나쁜 놈들이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고, 이런 위정자들 아래 살아왔다는 게 슬프다. 지금도 기지촌 주변에서 할당된 쥬스를 팔기 위해 몸을 파는 위안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역할을 필리핀 등지의 외국인들이 대신 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 속아서 한국에 들어오고, 미군과 동거해 자식까지 낳아도 본국으로 도망쳐 버리는 미군이 많다고 한다.

 

지구상에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떠한 방법이든 성매매가 끊임없이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본능과 자본주의 속성이 만들어 낸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 이상 인권이 유린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구와바라 시세이선생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그와 같은 비유는 무의미하다. 지나간 버린 하나의 사실과 현장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지난 15일 보았지만, 충무로에서 따마스전시를 끝낸 이광수교수를 모시고 다시 보러갔다. 마침 전시장에는 구와바라 시세이선생 내외분과 눈빛이규상 대표, 곽명우씨 등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눈빛출판사에서 갤러리인덱스에 이어 개관한 갤러리안터도 구경할 겸, 꼭 구와바라세세이 선생의 다시 돌아본 한국을 감상하시라.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구와바라 시세이의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사진집을 구해 보셔도 된다.

 

사진, / 조문호

새로 개관한 '갤러리 안터'

 

 

낯선 도심 풍경을 사냥한 '도시 산책'전을 보러 갔다.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른 채, 정 동지에 끌려 간 사진전에는

박순규, 이완순, 이한규씨 등 세 분이 참여하고 있었다.

 

갤러리 브레송에는 전시작가 외에도 김남진관장, 곽명우, 박설미, 김창주씨 등

아는 사진가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전시작가 중 아는 분은 박순규씨 뿐이었다.

대전 사는 박순규씨는 마음씨 고운 아낙인 줄만 알았는데, 사진을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다들 산책을 하다 건물에 비치거나 겹쳐진 도심 풍경들을 찍었는데,

어쩌면 세 사람이 작정이나 한 것처럼, 찍은 사진들이 대개 비슷했다.

사람마다 감성도 다르지만 도시를 걷는 감상도 다를 텐데, 다들 문명 비판적 시각이었다.

산책하다 만난 자연도 있을 것이고,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 산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하는 사람이다.

다리가 아파 조금만 걸어도 그다음 날 자리에 드러눕는 체질이다.

그러나 덜덜거리는 고물차를 휠체어처럼 끌고 어디든 찾아다닌다.

예전엔 사랑 없인 못 살았으나, 지금은 차 없으면 못사는 로봇이 된 지 오래다.

 

폐품이 되어버린 내 눈에 들어오는 도시 풍경도 변질되어 괴기하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특히 사진가들은 철저히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눈박이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운전하다 보이는 도심 풍경도, 걸어가다 보이는 거리풍경도 모두 절망적인 것들만 눈에 들어온다.

전신주 위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전선 뭉치나,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같은 부정적인 것에 더 눈길이 간다.

 

문명 비판적인 생각이 작용한 건지, 아니면 부정적인 심성이 작용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진가의 잠재된 의식에 의해 현실을 보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러나 전시된 사진은 마치 누구의 지령에 따른 것처럼 천편일률적이었다.

 

화려한 도시에 가려진 인간의 고독과 상실감을 말하고 있으나, 시각적 미감에 중점을 두었다.

 

욕심 같아서는 산책하다 만난 사람에서 느끼는 온기나 자연에 따른 안온한 느낌의 각기 다른 시선이었더라면,

도시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약이 될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전시작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작가 마다의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위적인 사진이나 일률적인 시각보다 작가의 마음이 담긴 진정성 있는 접근이,

좋은 사진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려 술 생각이 간절한 저녁이었다.

차 때문에 소주 한 잔으로 달래는 뒤풀이지만, 반가운 분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도시 산책사진전은 오는 15알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담양의 옛 공간과 시간의 기억들을 불러 모은 ‘담양뎐_ 기억의 시간’이

지난 3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담양 ‘담빛예술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담빛예술창고’와 사진전문지 ‘포토닷’ 공동 기획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담양의 역사와 자연을 담은 다섯 명의 사진가가 찍은 120여 점을 선보인다.

 

지역 작가로는 故 이해섭 선생이 수집한 담양 100년사 사진아카이브를 비롯하여

전오남, 라규채, 송창근씨가 기록한 담양의 삶의 기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장터사진가 정영신씨가 기록한 80년대 담양죽물시장도 한 몫 했다.

 

잔잔한 삶의 풍경에서부터 고고한 선비의 멋이 전시장을 풍미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섯 작가의 기억이 세월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풍경에 관람자의 기억이 더해져 보는 사람의 감회도 달라진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담양 장터의 시끌벅적한 장마당이나,

선비의 멋이 서려있는 소쇄원 풍경도 정겹다.

 

아래는 전시를 기획한 박이찬씨의 전시서문 앞부분이다.

 

“사람의 기억은 마법 같은 특징이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 하고 그 기억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기억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지기도 때로는 슬퍼지기도 한다.

이처럼 기억은 경험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은 기억의 조각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의 관계를 연결해주고

또, 연결되기를 원하며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기억이 사라진다는 가정은 인생의 길을 잃은 것과 같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정자 사진을 선보인 라규채씨는 비움과 무욕, 절제를 주제로 했다.

선비 문화의 산실인 담양 정자들을 매개로 자연의 ‘비움’,

선비들의 삶의 ‘절제’, 자연과 함께하는 선비들의 자연관을 담았다

 

송창근씨는 비 온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소쇄원을 찾았다고 한다.

대봉대에 발을 올려 사방을 둘러보면 광풍각이 지척이고 제월당이 저만큼 있었단다.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은 높직한 바위를 가로질러 한 필의 비단 폭포란다.

 

전오남씨는 죽물을 이거나 짊어지고 가는 행렬에서부터

쌍교 밑 소하천 모래 속에서 찜질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이르기 까지

아스라하게 잊혀 진 삶의 풍경을 소환하며 기억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정영신씨의 담양장은 담양만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장마당 풍경이다.

눈 오는 새벽녘, 대나무소쿠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정담 나누는 모습은 이제 풍경이 되었다.

 

수 십 년 동안 장터를 떠돌아다닌 사진가 정영신씨가 말한다.

“수많은 얘깃거리가 장바닥에 쏟아졌고, 국밥집에서는 막걸리잔 위로 농사 이야기를 부려놓았어요.

이제 시끌벅적한 장마당은 보이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장꾼도,

아이들의 시선을 붙들던 약장수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 전시의 백미는 고 이해섭선생께서 수집한 담양 100년 사진아카이브였다.

 

사진 수집을 위해 40여년동안 애써왔으며, ‘사진으로 본 담양 백년사’를 펴내기도 했다.

누구의 사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담양의 소중한 역사적 사료였다.

 

담빛예술창고는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전시는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지난 2일 정영신씨와 담양 ‘담빛예술창고’에 사진전 보러 갔다.

오후세시 무렵 도착했는데, 서울에서 곽명우씨가 먼저 와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박이찬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별관에는 고 이해섭선생이 수집한 담양 100년 사진아카이브전이 열렸다.

 

기획자 박이찬, 참여 작가 라규채, 정영신, 사진가 곽명우와 어울려 차도 한잔 했다.

고맙게도 ‘죽녹원’ 팬션 예향당에서 하루 묵었다.

또 다른 담양의 기억을 만든다.

 

사진, 글 / 조문호

 

‘담양뎐’ 보러 간 담양에서 뜻밖의 사진전을 보게 되었다.

사진판 마당발 곽명우씨 따라 간 곳은 담양군 창평면 의병로에 있는 ‘문화공간 소통카페’였다.

문 연지 며칠 되지 않은 그 곳은 가수 박강수의 상설전시장과 매장을 겸한 문화공간이었다.

 

일층은 커피 매장이고 이층은 사진 상설전시장인데, 가수 박강수의 '느림의 미학' 사진전 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된 사진은 10여년 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란다.

 열대 풍경과 인간애가 어우러진 사진이었다.

조그마한 프레임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누구나 부담 없이 소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포토에세이 ‘나의 노래는 그대에게 가는 길입니다‘도 출간 했다.

 

박강수는 2001년 ‘부족한 사랑’으로 데뷔해 10장의 앨범과 100곡이 넘는 자작곡을 발표했다.

2011년에는 제18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여자포크싱어상도 받았다.

젊어 신인처럼 보이나 오십대에 접어던 중견 뮤지션인데, 노랫말이나 곡도 좋지만 음색이 매력적이다.

잊혀진 가수 박인희처럼 앳되고 여린 목소리다.

곽명우씨는 박강수의 열렬 팬으로 오래전부터 잘 아는 것 같았다.

 

곽명우사진

노래하고 사진 찍는 박강수 만나려면 담양군 창평면 의병로의 ‘문화공간 소통카페’로 가라.

관람시간은 오후1시부터 5시 까지고, 가시거던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도 한 번 들어보시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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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이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가 김보섭씨의 ‘수복호사람들’이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2일 전시가 시작되었으나 24일 정오 무렵에서야 갈 수가 있었는데,

전시장은 사진계 마당발 곽명우씨가 지키고 있었다.

 

만석동의 굴 따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 '수복호 사람들'에 실린 작품들을

10여 년 만에 다시 볼 수 있었는데. 그때의 감동이 밀려왔다.

 

김보섭씨의 사진들은 끈끈한 바닷바람과 소금기 밴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고단한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애가 사진 전면에 가득하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진가는 따로 가 아니라 서로를 깊숙이 끌어 안았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뜻한 정감을 일게 했다.

 

물때에 맞추어 만석부두를 떠나는 수복호를 따라 나선 작가는

사진에 앞서 그들의 고달픈 삶에 주목하게 된다.

 

고된 몸을 이끌고 굴을 따며 때론 배에서 새우잠을 자가며

밤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에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주름 잡힌 얼굴과 거칠어진 여인네들의 손발은

스스로를 희생하며 자식들을 키워 온 우리의 어머니였다.

그 안타까움과 애절한 마음이 사진에 그대로 전이되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김보섭씨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사진에 담는 사진가다.

"어릴 때 조개 캐던 갯벌이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사진으로나마 정겨웠던 옛 모습을 보존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래전 김보섭씨의 사진전을 보고 쓴 이광수교수의 비평 한 단락으로 마무리하겠다.

“자신의 고향인 인천에서 사라져 가는 공간의 모습은 가족이나 동네 혹은 일터를 구성하는 여러 하위문화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런데 각 사진 한 장 한 장은 사진 미학적으로 볼 때 매우 뛰어난 물성(物性)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자료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그의 인물과 정물 이미지는 매우 잘 다듬어진 시어(詩語) 하나, 하나와 같다. 둘이 섞이면 시어로 기록한 민족지가 된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의 장날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작가갤러리에서 지난 16일 개막되었으나

전염병 때문에 별도의 개막식은 생략되었다.

 

조해인, 김수길, 백승호, 장경호, 곽명우, 최석태, 손귀현씨 등

몇몇 지인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전시를 축하했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오붓한 뒤풀이를 마련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열린다.

 

 

 

포토마가 주최하는 제2FNK PHOTOGRAPHY AWARD 순수부문 수상자 초대전인

손은영의 밤의 집2’가 지난 12일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오후 여섯시에 시상식이 있다기에 사람들을 피해 한 시간이나 빨리 갔는데,

일찍부터 사진가들이 여럿 와 있었다.

 

작가 손은영을 비롯하여 주최측인 '포토마' 하춘근대표,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관장,

사진가 엄상빈, 정영신, 김영호, 곽명우씨 정도는 알겠는데,

다들 마스크 때문에 잘 모르겠더라.

 

빨리 빠져 나오려고 사진부터 돌아보았는데,

지난 번 보여 준 밤의 집보다 좀 더 정형화 된 것 같았다.

 

어둠이 깃든 집의 구조가 마치 집들의 초상사진처럼 존재를 드러냈다.

이전에는 어렴풋이나마 집에서 인적, 즉 사람의 체취가 감지되었으나,

이번에는 자로 잰 듯 수평과 수직으로 그려 진 구조물이

독특한 저마다의 색깔에 의해 마치 무대세트처럼 다가왔다.

 

의도된 작위였다.

점점 각박해지고 규격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촬영할 때부터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었다.

마땅한 집을 찾아내어 화면 구성에서 색조에 이르기까지...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은 손은영씨, (손은영씨 페북에서 옮겼다)

촬영 후 후보정을 통해 또 다른 분위기의 집으로 바꾼 것이다.

사진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다시 말해 기록의 예술에서 표현의 예술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번에 발행된 손은영의 '밤 의집2' 사진집 표지 (손은영씨 페북에서 옮겼다)

우리전통가옥은 초가 능선처럼 어딘가 곡선이 있으나

서구의 건축들은 대개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령 같은 수직의 아파트가 점령한 현실에서 본 집의 형태는

옛날 달동네 집이나 마찬가지다.

 

포근한 인간의 정서가 풍기는 달동네를 대신하여

경제성장으로 발전한 삭막한 오늘의 달동네인 것이다.

시대성이 담긴 주택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적인 기록의 가치보다

작가의 주관에 따라 예술사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예술사진 또한 시대적 달동네를 조명하는 기록의 한 축이기도 하겠다.

 

작가는 오랜 나날을 밤에는 찍고 낯에는 후보정하며 올빼미처럼 작업했다.

다시 말해 밤에는 사진 찍고 낯에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색의 조화는 물론 창에 백열등 불빛을 삽입하는 등 미적 요소까지 끌어들였다.

 

사진들은 도식적이면서도 서정적이었다.

도식적인 형태가 정형화되긴 했으나

포근한 색감과 직선의 미가 어울려 관능적으로 다가왔다.

 

사진 속은 잠잠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과 조형감각이 돋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듯, 21일까지 열리니 구경 한 번 하시라.

 

사진, / 조문호

 

‘갤러리 브레송’에서 기획한 ‘The Last Dreamer’ 섹션2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브레송’과 ‘스마트협동조합’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본 전시는 김지욱, 남영주, 모지웅, 류엘리, 변성진씨 등 젊은 사진가 다섯 명이 참여했다.

 

김동진, 김문호, 김장욱, 안명현, 최치권씨가 참여한 섹션1은

지난 10월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바 있다.

 

‘The Last Dreamer’는 코로나에 주눅 들어 사는

사회현상을 형상화한 사진가들의 시각적 연대기다.

 

김남진관장은 ‘코로나 사태 전후에 새롭게 제작되거나

미발표 상태에 있던 작품들을 모아 재구성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창작 활동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등

관람객들에게 코로나의 장기화에 따른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섹션1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려는 시도였다.

섹션2에서는 세상과 사회에 시선을 돌린 일군의 작가와는 달리

인간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번 기획전에 대한 안내를 보아 대략의 내용은 알았으나,

요즘에는 전시장에 잘 다니지 않는다.

사람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기로 한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또 하나 이유는 나이값 좀 하라는 주위의 충고도 한 몫 했다.

전시장 사진찍어 리뷰까지 올려주는 짓을 왜 하냐는 것이다.

소개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한다는 것을 모르냐?고 되물었다.

맞는 말이지만, 성질이 모질지 못해 끌려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2일 ‘갤러리 브레송’을 찾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정영신씨와의 약속에 따라 차를 가지고 그 녀를 데리러 갔다가

입구에 서 있던 김관장에게 붙들려 버린 것이다.

그 날이 2부 개막식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갔는데,

어찌 정영신씨만 데리고 나올 수 있겠는가?

 

전시만 보고 포스팅은 하지 않기로 했으나, 습관적으로 찍은 사진 때문에 또 올리게 되었다.

전시장에는 김문호씨와 이윤기, 곽명우씨 등 잘 아는 사진가도 여럿 보였다.

전시작가인 모지웅씨로부터 사진집을 받았는데, 마음은 편치 않았다.

책은 절대 공짜로 받지 않기로 했지만, 거절하는 게 더 어려웠다.

 

전시작들을 돌아보니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벽에 걸린 이미지가 주는 불안감이었다.

 

성 소수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지웅의 ‘More’,

자신의 불안한 모습을 드러낸 류엘리의 ‘Blue Portrait’,

대면의 자유를 갈구하는 남영주의 ‘코로나 시대의 사랑’,

욕망과 속박을 선이라는 매개를 빌려 몸에 투영한 변성진의 ‘hide & seek or YOU’,

깊은 내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김지욱의 ‘미궁’ 등,

각기 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정신적으로 피로한 시기에 열린 좋은 전시였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The Last Dreamer’ 섹션2는 오는 10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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