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난 오래된 사진은 아득한 기억의 저장고다.

반세기가 지난 삶의 기록들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볼수록 정겨움이 더하는 우리의 역사다.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 쪽방 침대 밑에 쌓인 책을 정리했다. 7년 가까이 집어넣기만 하고 나오지는 않았으니, 빈틈 없이 꽉 차 버린 것이다. 버릴 책과 옮길 책을 분류하다 2017년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에서 가져 온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다시 보는 청계천도록을 찾은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삶을 취재하러 왔던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께서 찍은 청계천의 오래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노무라 모토유키 선교사가 찍은 청계천 등 두 분의 사진만 청계천의 중요한 사료로 남았다. 국내 사진가들은 집 구경 하듯 지나치며 찍은 사진들은 간혹 있으나, 청계천 빈민들의 삶에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두 분의 사진을 대할 때마다 부끄러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분들이 대신했는데, 그 무렵의 우리나라 사진가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살롱사진에 빠져 기록의 중요성을 방기한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것은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역사의 순간은 다시 찍을 수 없는 것이다.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특별전 ’가까운 옛날의 자화상‘에도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청계천 사진이 걸린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들어 온 지 숱한 세월이 흘렀으나 여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진전이 열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우리의 역사보다 더 소중한 작품은 없다는 말이다.

 

구와바라 시세이 / 조문호사진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은 1964년 일본의 화보 잡지인 太陽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다. 선생이 한국 현실에 가장 광범위하고 깊숙하게 관여한 시점이 1965년이었는데, 한국을 찍은 사진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천 사진도 이 무렵에 집중적으로 촬영된 것이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이라는 신념을 평생 구현한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은 일본의 중금속 공해 사건을 다룬 미나마타 병을 앓는 사람들을 찍어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나, 그에게 사진가로서 결실을 맺은 것은 한국에 대한 기록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청계천 사진 외에도 기지촌 주변의 양공주에서부터 우리가 방치한 한국 사회의 이면사를 깊숙이 기록했는데, 사십여 년에 걸쳐 십 만장이 넘는 방대한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들은 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빈민들의 리얼한 삶이 담긴 현장이라 보면 볼수록 가슴 뭉클해지는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이 찍힌 65년이라면 진학을 앞두고 서울에서 방황하던 시절이 아니던가?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 청계천 밤길을 걷다 좁은 골목에서 혼이 난 기억이 생생하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아낙에게 떠밀려 들어간 곳이 사창가였는데, 뺏긴 가방을 찾기 위해 시달린 순간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하수구의 악취가 진동하는 청계천의 첫 대면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그 당시의 청계천 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록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청계천도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달동네에 다름 아니었다. 사진에 담긴 장면에는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거나, 빨래를 너는 모습, 때로는 연탄재나 오물을 버리는 평범한 일상이 담겼다. 보면 볼수록 정겨운 장면인데, 마치 무대 세트장 같다.

 

당시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께서 투숙한 곳이 남대문로 그랜드호텔이었다고 한다. 남대문에서 광화문을 향하는 곳에 있던 그 호텔은 청계천까지 걸어서 약 600미터 정도의 거리다. 명동이나 수하동을 거쳐 청계 2가 방향으로 걸었다는데, 낮에는 사람이 없어 이른 아침에 집중적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지저분한 청계천도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는 놀이터 였는데, 사진에는 복개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이주는 물론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세기 전 청계천 변 사람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담긴 이 사진들은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피난민들의 삶의 현장이자, 급변해 온 서울의 한 도시공간이다. 다시 한번 청계천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사진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그와 같은 비유는 무의미하다. 지나간 버린 하나의 사실과 현장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와바라 시세이-

 

/ 조문호

 

구와바라 시세이 / 조문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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